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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듯이 음악이란 소리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전달하는 예술이다. 따라서 음악을 감상하고 평가하는 작업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며, 다만 그 내용이 얼마나 다른 이들에게 설득력이 있는가를 보여줄 수 있을 뿐이라고 하겠다. 음악을 기록하고 전달하려는 노력은 악보(樂譜)라는 형식을 만들어냈고, 악보를 통해 음의 높이와 길이 그리고 가사 등 음악과 관련된 상세한 내용이 기록될 수 있었다. 음악을 악보로 표기한다는 것 역시 한계가 없지는 않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음악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물론 같은 악보를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문제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한국 전통음악을 연구하는 저자는 악보조차 전하지 않고, 단지 기록으로만 존재하는 ‘삼국시대의 음악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이 책을 기획했다고 밝히고 있다. 서양 음악과 달리 동양 음악의 경우 악보의 개발과 사용이 늦게서야 이루어졌고, 대체로 기록을 통해서 음악 관련 내용들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대학원에서 미학(美學)을 공부하면서 저자는 동양 음악의 이론을 연구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한국의 전통음악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지만 관련 기록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고 한다. 삼국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삼국사기>에도 음악 관련 기록이 매우 소략했으며, 그마저도 신라 중심의 내용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다른 기록들과 연구 논문을 섭렵하면서 ‘삼국시대의 음악 문화’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관련 기록을 해석하고 그 의미 부여를 통해 당대의 음악사를 조망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으로 결실을 맺었다고 하겠다.
우리의 전통음악을 ‘국악(國樂)’이라 표현하고, 음악은 그저 서양 음악으로 치부하는 현실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인 견해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를 ‘일제에 강점당하고 해방 후에는 미 군정 치하의 시절을 보내면서 우리 것에 대한 의식도 자부심도 돌아볼 여력도 없었던 시대 상황에서 우리의 전통 문화 예술을 지키지 못하고 거의 일방적으로 서양 문물을 수용’했던 결과라고 진단한다. 그렇기에 음악을 전공하는 이로서 전통 음악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대중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아마도 이 책 역시 저자의 그러한 인식이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책 한 권을 접했다고 전통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의 저서들이 뒤를 이어 더 많이 출간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비록 그리 많지 않은 내용이지만, 저자는 다양한 문헌의 기록과 기존의 연구 논문의 성과들을 활용하여 거론된 악기들을 중심으로 삼국시대의 음악 문화를 조망하고 있다. 먼저 ‘악기의 의미’라는 제목의 첫 번째 항목에서 음악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악기릐 중요성을 논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또한 개량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두 번째 항목인 ‘삼국의 음악 문화’에서는 다양한 문헌에 전하는 기록을 통해 삼국의 음악 문화를 비교하고 있으며, 이어지는 ‘악기 수용’이라는 항목에서는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악기와 그것을 개량해서 독자적인 악기를 만들어 활용했다는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예컨대 고구려의 음악가인 왕산악의 거문고와 가야의 우륵이 만들었다는 가야금이 대표적이라고 하겠다. 이밖에도 중국과 다른 우리만의 전통 악기가 다양하게 존재했으며, 그것을 통해 삼국시대의 음악 문화가 다채롭게 향유되었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고려 후기에 수용된 성리학의 영향으로 조선시대는 이른바 유가의 ‘예악(禮樂) 사상’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기록 또한 다양하고 그 분량 역시 방대하기에 마지막 4장에서는 ‘예악사상과 악기’라는 제목으로 전통 음악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죽림칠현 중의 한사람인 혜강의 ‘성무애락론’을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로 삼았다고 한다. ‘성무애락론(聲無哀樂論)’이란 소리(음악)에는 슬픔과 즐거움이 없고, 단지 그것을 듣는 사람이 그러한 감정을 표출할 뿐이라는 내용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보론’으로 ‘<악기>와 <성무애락론>’이란 제목으로, 중국 고대의 음악 이론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전통음악의 이론과 의미에 대해서 약간의 지식을 얻을 수 있었으며, 그 내용은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나에게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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