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외 1편
윤인자
밤새워 내린 눈이 길을 지운다
제 집 앞 눈을 치우고
마을회관 앞으로 하나둘 모여
포클레인으로 밀고
삽과 밀대, 빗자루
손에 든 연장으로 눈을 치운다
또 다시 길 위에 눈이 쌓이고
텔레비전에서 폭설을 예보한다
밤은 깊어 새근거리고
난로 가에 시간은 타들어가고
하루의 피곤은 불쏘시개로 화력을 올린다
난로 위엔 구수한 보리차가 우러나고
마을 회관 주전자는 폭설처럼
하얀 입김을 폴폴 내뱉는다.
요양원에서
윤인자
요양원 휴게실 한쪽 구석진 자리에
열심히 염주를 돌리며 주문을 외우듯
깡마른 체구에 기도하는 할머니 한 분
휠체어 밀어드려요? 말을 걸어도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열심히 기도를 한다
요양보호사가 휠체어를 밀자
잠깐만 더 있다 들어가면 안 돼요?
요양보호사에게 부탁하듯 공손하다
저녁 식사 시간이라 들어가야 한다며
휠체어 바퀴를 풀어 밀고 가는데
지나가는 복도를 쓱 한 번 훑어보던 할머니
무슨 주문을 외우는지 입술을 들썩이며
검버섯 낀 야윈 손으로 염주를 돌린다
수많은 세월의 강을 건너온
할머니의 길을 짐작조차 못하지만
어떤 곡진한 사연이 있는지
그냥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요양원 천정만 슬픈 눈으로 바라본다.
윤인자 프로필
2011(리토피아)신인상 수상
시집 『에덴의 꿈』 『스토리가 있는섬 신안島』
『시가열리는 과수원』
(공저)『해당화 문학』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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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자 2022년 겨울호 시와사상 폭설외1편
윤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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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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