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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달
김 용 훈
무서리가 하얗게 내린 이른 새벽이었다. 3시나 되었을까?
“어찌, 불(시동) 일어나요? 시방 배추 값이 똥값이란디........”
엉겁결에 배추 값이 똥값이라고 말한 실수 때문에 또 지청구를 들었구나 싶었다. 그러나 한번 내뱉은 말을 주어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순심이는 속으로 또 당했다 싶은데 아니나 다를까,
“이 여편네 말한 것 보소, 배추 금이 아무리 싸기로서니 똥값이라니!,”
남편 남수가 그 댕그란 눈을 위 아래로 내려 깔면서 다가서더니 금방 귀싸대기라도 내려칠 기세다.
“........”
한바탕 아내에게 퍼부은 남수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경운기의 플러그를 뽑아 펜치로 사기부분을 짓눌러 잡고는 불에 굽고 있었다.
순심이는 이렇듯 울러 매도 차마 때리지 않는 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경운기를 고치고 있는 남편을 애처로이 쳐다보고 있었다.
“경운기가 안 되면 리어카라도 끌고 갈 것 인게 그렇게 알아,”
곁에 서 있는 아내를 향하여 한 마디 했다. 그것은 배추를 결코 팔러 나갈 것이라는 다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순심이는 불빛이 흘러나오는 방안으로 들어 가 버리고 말았다.
남수는 한참을 경운기를 붙잡고 실랑이를 한 후 몇 번 태 태 태 거리다가 하얀 연기만 실낱같이 내 품고 그만 죽어버리는 경운기에게 욕을 퍼부으면서 발길질을 하고는 마당을 가로질러 방으로 들어가 이른 새벽밥을 먹었다.
먼저 들어와 밥상을 차려놓은 아내 순심이가 숟갈을 들고 있는 남수를 향하여,
“못 고치것소,”
“......”
“결코 가야 쓰것소,”
“......”
남수는 아무 말도 않고 밥을 먹었다.
“내가 준비 할 것인 게 밥 먹고 나와.”
“예.......”
순심이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시장을 가느니 마느니 통아 지를 팔 경우 ,남편 남수에게 당할 수뿐이 없는 처지였다. 배추가 결구가 되기 전에 밭떼기 장사꾼들이 드나들면서 팔라고 사정들을 했는데 거절을 해서 팔지를 아니했다 한 결 같이 떠도는 말들이 올해에는 채소 값이 금값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드세 없이 가격이 곤두박질치더니 결국은 요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었다. 그때 팔 것을 후회해 보았으나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였다, 그때는 남수도 팔 생각이 없었고, 순심이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순심이는 남편 남수가 나간 뒤에야 숟갈을 들고 밥상머리에 앉았다. 대강 시장요기를 하고는, 아직도 건너 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 아들둘이 일어나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상을 봐 놓고 몸빼 바지를 챙겨 입고 마당으로 나왔다. 도깨비 시장에서 빨리 팔면 그만이거니와, 만일에 늦어질 경우를 대비해서였다.
남수는 이미 리어카에 배추를 가득 싣고 있었다.
“애들 단도리는 잘 했것제,”
“........”
“왜 대답이 없어 배추 팔로 가잔께 꼴았는가,”
“......”
아내 순심이가 암말도 없자,
“아무리 싸니싸니 해도 둘이서 오늘 하루 품은 나올것이제......내가 다 자네 주께......”
아내 순심이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아무리 똥값이라고는 해도 품삯은 안, 나오겠냐 싶었기 때문이었다.
남새밭 귀퉁머리를 막 빠져 나오는데 리어카가 고랑에 빠져 꼼짝을 아니하자 저만큼 뒤따라오던 순심이가 잽싸게 달려와 리어카 꽁무니에 달라붙더니 ,
“미요.‘
“응,”
“응싸.”
하고 밀자 리어카가 고랑에서 빠져 나왔다.
“되았네 이제 잡고 따라만 오소,”
리어카 앞에서 꼬랑지를 할랑거리는 검둥이를 향해서 순심이가 집으로 가라고 소리를 지르자 검둥이는 이만큼 따라오다가 오던 길을 뒤돌아 몇 번을 머뭇거리더니 집으로 향했다.
2
차마 고향으로 돌아 갈 수는 없었다. 서울이라는 곳은 눈뜨고 코 베어 간다는 말이 딱 맞은 곳이었다. 첫해에 당했다. 먼저 올라간 동향 선배와 금융업(?)에 손을 댔다가 몽땅 날리고 고생만 하다가 다시 낙향을 하기로 결심을 할 때는 차마 고향으로는 내려 갈 수 없고 남도의 어느 곳에라도 내려가 숨어살기로 작정을 하고 찾아내러 온 곳이 이곳 s시의 변두리에 자리를 잡았는데 명색이 행정 구역만 시이고 실제로는 구비 길을 돌고 도는 산골짜기에서 비탈진 묵은 밭을 일구면서 살아가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고향에서는 그래도 드물게 그 지역에서 알아주는 상업학교 까지 나왔다. .
.차마 어른들 뵈올 면목도 없거니와 선조들을 대할 체면도 서지를 아니했다. 고향사람들 만날 용기는 더더구나 나지를 아니 했다. 그래서 숨어 든 곳이 이곳이었다.
농촌에 희망이 없어들 했고 희망이 없는 것 같아 고향을 떴는데 또다시 희망을 일구어 보자는 마음으로 농촌으로 돌아와 아무도 몰래 이곳에 숨어들어 서울에서, 그것도 아내가 몰래 추슬러 놓은 돈을 가지고 이곳 청소골 관풍재에 버려진 땅들을 사들여 밭을 일구었다. 그리고 입구에다. 간판을 써 붙이었다.
<샛터농장>
고향 마을이 샛터다 고향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샛터농장 이라고 간판을 붙었다. 이곳에서 고향의 꿈 농군의 꿈을 일구어 보자는 속셈이었다. 첫해 수박 농사에 수지를 맞추고 수박 끝 작물로 김장거리를 심어서 재미를 보았다. 고생은 되었지만 속 끓일 일없이 지냈다. 뿐만 아니었다. 아이들도 자연 속에서 뛰놀면서 잘 자라 주었다. 교육환경도 좋았다. 분교가 있어 적은 숫자의 학생을 알뜰히 가르쳐 학생들과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양계에서부터 시작이 된 것이다. 닭 값이 곤두박질치더니 결국은 사료 값에 약값만 처지다 보니 땅이며 집이며 모든 재산이 금융권에 저당이 잡혀지고 결국에 가서는 수일간에 경매를 붙인다고 난리를 피우는 것이었다.
“춘가,“
“안 춥소, 당신이 춥것소,”
“리어카 끈게 땀이 나네,”
리어카를 붙잡고 뒤따라오는 아내 순심이를 돌아보면서 남수가 말을 하자 아내 순심이가 대답을 했다 그 뒤쪽 저 만치 샛터농장 끝 부분에 위치해 있는 빈 계사(鷄舍)에 애처로이 붙어 있는 비닐 조각이 새벽바람에 펄렁이고 있었다.
관풍재에서 부터는 계속 내리막길이고 보니 남수는 리어카 손잡이만 쥔 채로 줄곧 내달았고 아내 순심이는 리어카 꽁무니에 묶어놓은 줄을 잡고 계속 그 뒤를 따랐다. s 시까지는 길은 계속 내리막길이기 때문에 리어카를 미는 일보다는 잡아 다니는 일이 더 많았다. 즉 뒤따르는 순심이는 제동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얗게 내린 무서리가 퇴색한 도로 가장자리 잔디 위에서 새벽 달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3
남수는 리어카 손잡이에 걸터앉아 내력 없는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보이쇼!,”
‘보기는 뭣을 봐,“
“배추 똥값이라고 오지 말자고 안헙디여,”
“지금 비어나 죽것는디 비어챈가.”
남수가 순심이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그 땡굴한 눈알을 굴려도 순심이는 이랑 곳 하지 아니하고 말대꾸를 한다.
“이제 쪼끔 있으면 아침 도깨비 시장도 파할 것인디 도로 실고 갈 일 생각헌게 심난허요, 올라 갈 때는 나는 모른 게 당신 혼자 알아서 허이쇼,‘
순심이는 앙칼지게 쏘아 붙였다.
배추, 무, 김장거리가 역전 도깨비 시장에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몇 사람이 와서 물어보고는 발길을 돌리기를 서 너 차례 하더니 이제는 물어 보는 사람도 없다. 오만원은 턱도 없는 가격이라는 것이었다.
담배 한가치를 다 피운 남수는 조금 남은 꽁초를 리어카 손잡이에 비벼 끄더니 건너편 시래기가 널려 있는 쓰레기더미에다 던져 버리고는 손바닥에 침을 “퇫” 뱉더니 리어카를 끌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역전시장 뒷골목을 빠져나오자 주택가가 나왔다, 순심이는 뒤따라가면서 궁시랑 거렸다.
새벽녘에 배추를 다 팔고 순심인 첫 차를 타고 올라가 애들을 학교에 보낼 참이었는데 틀린 것 같았다. 마음이 다급했다.
“배추사려,!”
남수가 갑자기 외장을 치기 시작했다. 다급한 순심이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배추사란 말이요,!”
“속이 꽉, 꽉, 찬 배추요.!
골목을 얼마나 돌았을까 두 부부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지친 두 부부가 리어카 앞에 걸터앉아있는데 골목 끝에서 여인 하나가 눈을 비비면서 이쪽을 향하여 다가오더니.
“얼마요.”
반가웠다. 순심이가 잽싸게 나서더니,
“얼마면 살라요,”
“요새 배추가 싼디.......”
“알아서 주이쇼,“
결국 이 만원에 흥정이 되었다. 그런데 돈을 치르려던 여인은 배추를 집에까지 날라다 주어야 산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러마고 했다. 그러나 막상 가서보니 아주머니네 집은 골목 끄트머리 담이 높이 둘러져있는 계단이 많은 높다란 집이었다.
배추 단을 옮기는데 족히 한 시간은 걸렸다. 골목길을 빠져 나올 때는 배추가 실려 있을 때보다 발걸음이 더 무거웠다.
4
역전 장 들머리 쪽으로 빠져 나오자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아침 손님을 끌기 위해서 부지런히 나불댔다. 음식 냄새를 맡으니 허기가 더해왔다.
“밥이나 먹고 가세,”
“나도 배고파서 못 가것오.”
“배추 날라다 쟁여 주니라고 고생했네.”
‘아따 그 노무집 먼 노무집이 높기도 하고 계단이 그렇게 만탄가.....“
“글매 말이요, 다리가 푹푹해 죽것소,”
“그러것네 빈 속으로는 못 가것고 밥이나 묵고 가세,”
순심이도 배가 고파서 한 발짝도 옮길 수가 없었다.
닭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었다. 삶은 닭 한 마리가 나오자 둘이는 정신없이 먹었다. 다 먹고 나자 그 국물로 인삼 뿌리를 넣고 끓인 죽이 나왔다.
“휴-은자 살 것 같네,”
“나도 그 요야,”
“나 반주로 술 한잔하면 못쓰까,”
“그러쇼.”
술까지 한잔하고 나니 살 것 같았다.
“아이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가 든든한 게 살 것 같네,”
“이제 갑시다!.”
순심이가 다급하게 재촉을 했다.
“그러세 애기들 기다리것네...... 학교는 갔으깨......”
남수는 아내 순심이에게 묻 잦는 말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걸어가더니
“얼마요,”
“이만오천 원입니다.”
“뭐....이이이만 오천원이라고라우.....”
“곧 죽어도 삼계탕인디 보약 아니요, 싼 것이요,”
“오메.....그 노무 달구새끼 때문에 살림 망했는디......”
앞이 캄캄했다. 샛터농장 끝머리에 펄렁이는 비닐만 바람에 난무(難舞)하는 계사(鷄舍)가 눈앞에서 아롱거렸다.
“오천 원 만 더 주소,”
이미 밖에 나와 리어카 곁에 서있는 순심이를 향하여 남수가 손을 내밀자
“아까 배추 값 받은 돈은 어쨌소....”
“바 바 밥값이 부족해서.....”
“무무엇이라고라우......”
순심이가 꼬깃꼬깃한 돈 오천 원을 떨리는 손으로 세어서 건네주고 있었다.
“가세......”
“.......”
남수와 순심이가 끌고 가는 리어카..... 그 위 하늘가로 밝아오는 햇빛 때문에 아무도 알아주지 아니하는 낮달이 걸려있었다.
세 방울의 눈물
"아차!“
차를 잘못 탔는가 싶었다. 택시 잡기 어려워 급한 김에 아무 차나 탄 것이 그만 실수를 한 것 같았다.
“이 차, 시내로 안으로 들어갑니까?”
하고 기사에게 물어 보았다.
“시내로 안 들어 간 시내버스가 있다요. 빙빙 돌아갈 따름이지.”
시계를 보았다. 일찍 나오기를 잘했다 싶었다.
토요일 오후 3시 30분 <밀물 다방>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었다.
‘혜숙이 고것이 중매를 다 하다니’ 생각만 해도 기특하다. 여고를 졸업하고 직장생활 한 지가 2년이 갓 지난 큰조카 혜숙이가 좋은 총각 있으니 한 번 만나보고 결혼을 하라는 것이었다. 올해에는 내가 꼭 고모 시집 보내주겠다고 웃으면서 놀리기로 조금은 화가 났으나 나이가 나이니 만큼, 또 혹시나 하는 기대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디 네 덕에 시집한번 가보자 중매 해 봐.” 속으로 애타 는 심정을 숨기고 천연덕스런 척 웃음으로 넘겼더니 혜숙이에게 3일 전에 전화가 온 것이다. 나이도 걸맞고, 말수 적고, 성실하고, 알뜰하니 사업도 잘 되 간다는 것 같더라고 꼭 결혼하라고 맹랑한 것이 자신을 해서, 고맙고 기쁘면서도 “그런 아저씨에게”하고는 웃었던 것 이었다. “뭐, 뭐..그러면서 대뜸 혜숙의 대답은 ”고모야 처녀 아주머니지.“ 하는 것이었다. 미아(美芽)는 웃으면서 ”잘해 봐라.“ 하고는 전화를 끊고, 속으로 이 날을 고대했던 것이다.
노처녀로 직장생활 하기도 쑥스럽고 해서 그만, 시집이나 갈 것이라고 직장도 3년 전에 그만 두었는데 작년부터는 아예 중매도 뚝, 끊어진 것이다.
미아는 속으로 다급했다. 아니 이제는 절망적이다. 독신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청승맞게 혼자 살 생각은 전혀 없다 결코 결혼은 해야 한다는 것이 미아의 속으로 다잡아먹은 지론이고 보니 다급할 수뿐이, 이제는 바닥까지 낮아진 눈높이도 모르는 중신아비들은 타는 속도 모르고 아예, 거들떠도 안 본다. 밑으로 둘 있는 여동생들도 다 결혼하여 애들을 낳고 산다. 과신한 눈높이가 미아의 인생을 망칠 성만 싶었다. 만으로 세어서 한 살을 뺀다 할지라도 33세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처녀 나이 30대가 되면 이렇게 막가는 인생인 줄 미처 몰랐다. 30이라는 숫자가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다. 달력도 30, 31에서 그 달은 끝나지 않던가, 이렇게 절망적일 수가 없었다. 이제는 그 누구라도 꼭 나타나기만 하면........
토요일 오후 시내버스는 만원이었다. 내리는 숫자보다 타는 숫자가 더 많았다. 변두리를 돌기 때문에 각지의 학생들을 다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이제 움쩍도 못할 정도로 만원이었다. 미아는 택시를 탈것을 잘못했다고 후회해 본다. 그러나 한편 마음이 들떠 일찍 나온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시간은 아직도 45분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미아는 두 눈을 감았다.
내임은 누구일까? 무엇을 하는 임일까.? 미남일까? 키는 얼마만큼 할까 학교는 어느 대학을 나왔을까? 무슨 사업갈까? 돈은 얼마만큼 있을까? 몇 평짜리 아파트일까? 이층 단독 주택일까? 자가용은 그랜저 정도? 내임은 나만 사랑 할 거야! 사업은 날로 번창하고, 아들 하나 딸 하나 아니 아니 아들은 둘은 되어야지 딸은 하나이고..... 만원 버스 비좁은 틈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중에도 미아는 배시시 웃으면서 꿈을 꾸고 있었다.
갑자기 “끽”소리를 내면서 급브레이크에 제동이 걸린 차가 멈춤, 하자 버스속의 사람들이 앞쪽으로 쏠리더니 중심을 잃은 몸뚱이를 바로 잡기 위해 한 발짝씩 옮겨 뛰어 놓았다. 미아도 쏠리는 중심을 바로 잡기 위해 발을 옮겨 뛰는데 힐의 뒤축이 물컹하니 무엇이 밟히는가 싶더니,
“아이고메! 사람 죽이네! 장헌 삐딱구두 신었는 갑이네!”
중년이 갓 넘은 아주머니 한 분이 주저앉으면서 한쪽 발등을 움켜쥐는 것이었다. 사색이 된 아주머니는
“살양말 신고 삐딱구두 신은 사람만 사람이여!”
주저앉은 채로 또 한 번 닥달을 하더니 말로는 분풀이를 다하지 못했던지 미아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비틀어 꼬집는 것이었다.
미아는 화들짝, 꿈에서 깨어났다.
“아얏!“
비명을 지르면서 뒷걸음쳐 물러섰다. 또다시 하이힐의 뒤꿈치에 물컹하니 발등에 밟히자.
‘아이고메! 발등거리 아퍼러어!“
건장한 체구의 사나이가 자지러지고 있었다.
“미...미... 미...안 합니다....”
미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주저앉아버렸다.
사나이는 험상궂은 얼굴로 미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저앉으면서 훔쳐본 사나이의 건장한 체구와 빨간 줄무늬 넥타이가 인상적이었고, 투박한 말투가 찡하고 미아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미아는 만원버스의 사람과 사람사이를 뚫고 뒤쪽으로 숨어버리고 말았다. 혜숙이 고것 말 듣고 선보러 온 것이 아무래도 진천한 짓 한 것만 같았다.
버스에서 내리자 해방된 기분이었다. 힐 뒤꿈치로 짓이긴 아주머니 아저씨를 다시는 만날 턱이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한 숨 돌리니, 이제야 종아리가 쓰리다. 아주머니가 어찌나 모질게 꼬집던지 스타킹이 찢어져 나갔고 종아리는 새파랗게 멍이 들어 있었다.
미아는 양품점에 들려 스타킹을 하나 사들고 종종 걸음으로 XX빌딩 화장실로 들어갔다. 스타킹을 갈아 신고 시계를 보았다. 아직도 15분이 남았다.
“휴우-!”
한숨을 크게 쉬고 겨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고치다 말고 만원버스에서 생긴 일을 생각하면서 웃음을 참지 못해 킥킥 웃었다.
<밀물다방>에 들어서자 약속시간 5분전이었다. 다방 안을 둘러보던 미아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이었다. 빨간 줄무늬 넥타이의 사나이가 저쪽, 구석지에 앉아있는 것이었다. 미아는 재빨리 자세를 낮추고 들어가 얼굴이 보이지 않는 반대 방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약속 시간이 15분이 지나자, 혜숙이가 나타났다. 미아가 일어서서 손짓을 하자 고모를 쉽게 발견한 혜숙이가
“고모 많이 기다렸어?”
“아니.”
“다른 다방으로 가면 안 되냐?“
“왜 맘에 안 들어?”
“응 그냥....?”
“참 고모도 별 노무 타령을 다 허시네.”
‘아이고 이 맹랑한 것 속 모르는 소리 말아라! 입 밖으로 이 말이 튀어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고는 미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마 나왔을 텐데.......”
혜숙은 혼잣말로 씨불이면서 다방 안을 두리번거리더니
“고모 나왔어 저쪽으로 가자.”
하면서 미아를 일으켜 세우더니 사나이가 있는 쪽으로 쫄망쫄망 앞서서 걸어가는 것이었다. 미아는 얼굴을 푹 숙이고 빨강 넥타이의 사나이를 지나칠 양으로 뒤따라가는데 사나이 앞으로 발걸음을 멈춘 혜숙은,
“일찍 나오셨네요.”
하면서 자리를 잡는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서있는 미아를 향해,
“고모에요.”
“……!”
사나이는 엉거주춤 미아를 넋 나간 모습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는 사이에요?”
혜숙은 미아와 사나이를 번갈아 보면서 심상찮은 행동을 읽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사나이가 혜숙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고모… 이쪽은 내가 다니는 교회의 주일학교 부장 선생님 강준걸 집사님…총각집사에요. 나는 갈라요, 두 분이서 잘 해봐요.”
고모답지 못한 모습에 혜숙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자리를 떴다.
“아이고메 발등거리 쿡쿡 쑤시구려.”
‘……“
꿀 먹은 벙어리 마냥 할 말을 잊어버린 미아는 눈을 내리 깔고 검지로 탁자를 문지르고 있었다. 내리깐 시선으로 잠깐 훔쳐본 준걸씨의 오른쪽 발등거리는 소복이 부어올라 있었다.
종업원 아가씨가 와서 차(茶)주문을 독촉했다.
“나는 매실차 마실란디…….”
“……”
미아는 입이 떨어지질 아니했다.
“아무래도 발등거리 뼈다구가 깨져버렀는 갑이요…….”
미아는 울고 싶었다. 또 시집가기는 틀린 것 같다. 13개월 만에 보는 선인데 몽달이 신세가 되는 모양이다 싶으니 중치가 콱 막히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를 하기는 해야 쓰겠는데 괜히 억장이 무너지면서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자신의 의사는 완전히 무시된 매실차 두 잔이 배달되었다. 대화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오고가는 대꾸가 있어야 하는데, 암말 않고 건너편 수족관을 건너다보고 있는 준걸씨의 시선을 훔쳐본 미아가 용기를 내어 자신도 종잡을 수 없이 튀어나온 말은,
“비단잉어 저놈 매운탕 해먹으면 좋겠다.….”
“머! 머! 비단잉어를 매운탕이요! 하! 하! 하! ”
강준걸씨의 웃음소리가 뒤통수에 퍼부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미아는 정신없이 <밀물다방>을 뛰어 나오고 있었다.
이튿날,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뜰을 방안에서 내려다보면서 미아는 눈물을 한 방울 흘렸다. 이 한 방울 눈물은 쥐뿔도 아닌 인물 때문에 눈을 높은데 두어 시집 못간 것이 후회되어 흘리는 눈물이었다.
두 번째 눈물이 뚝 떨어졌다. 이 눈물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매운탕을 좋아하셔서 물고기만 보면 매운탕과 아버지와의 연관 때문에 무의식중에 내뱉은 매운탕 눈물이었다.
두 번째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는 순간, 전화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여보세요.”
굵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네, 말씀하세요.”
“나 강준걸인데 결혼합시다. 예수 믿은께 술은 안 마셔도 매운탕을 좋아합니다.”
“……”
미아는 혼비백산 정신이 아찔아찔했다.
“허락하는 것이요 안하는 것이요!”
우렁우렁 당찬 목소리는 미아를 완전히 보듬고 전화기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미아의 속셈은 ‘주여 감사합니다.’ 이었는데 준걸씨의 답변은 자기에게 감사하단 줄 알고,
“감사하긴요. 다 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하면서 전화기에 대고 대꾸하고 있었다.
미아의 세 번째 눈물은 주룩주룩 흘렀으나 아예 닦을 생각도 않고 전화기를 든 채 막 울어버리는 것이었다.
곰(熊) 이야기
야! 이게 얼마만인가!
나는 너무나 반가워서 손을 얼싸안듯이 쥐면서 소리를 질렀다.
오래간만이다.
진규의 손은 거칠었다. 사십이 갓 넘은 나이인데도 이십여 년 전의 모습 그대로 변한 것이 없었다.
차나 한 잔 하자.
진규를 끌고 다방으로 들어갔다.
다방 안은 한산했다. 서너 명의 사내들이 저쪽 구석지에서 레지를 가운데 앉혀놓고 잡담을 한다. 무슨 말을 했는지 아가씨가 킥킥거리며 배를 움켜쥐고 웃고 있더니 나와 진규를 발견하고는 쪼르르 달려와서 엽차를 가져다 놓는다. 진규와 나는 냉커피를 시켰다.
나는 진규 앞에서는 자신이 있다. 여태껏 그렇다. 진규는 이력서 한 장도 제대로 쓸 줄 모를 뿐만 아니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꼭 나에게 타협을 하고 조언을 받고야 행동에 옮겼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가?
…머…그락…저락…….
진규는 그 버릇을 지금도 버리지 못하고 머뭇머뭇하더니 뒷머리를 긁적긁적 긁으면서 말했다.
차(茶)를 배달한 아가씨는 껌을 짝짝 씹으며 달걀같이 튀어나온 엉덩이를 요란스럽게 잡아 흔들면서 다시 구석지로 가버렸다.
진규의 별명은 곰(熊)이었다. 생긴 것도 우둔하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하는 행동도 곰이었다. 반쯤 벌어진 입, 어구적 거리는 벌어진 다리, 매끄럽지 못한 어둔한 말(言語), 생긴 것과 하는 행동이 곰과 맞아떨어지는 나의 죽마고우다.
그런데 이 곰에게 장점이 있다면, 자신의 곰 됨을 인정해 버리는 이것이 장점이었다.
야! 이 곰 같은 놈아!
응…알았어…나는 …곰 인디 어쩔 것이냐…내가 잘못 했어…….
이런 식이고 보니 잘잘못을 따질 형편이 아니었다. 그 누구라도 허어……!하고는 헛웃음 치고 말아버리는 그런 꼴이 되고 만다.
그러면은 이 곰은 벌어진 입의 이를 드러내고 한번 씩- 웃어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우리 고향 도동 이라는 마을 너머로 향등과 덕남골 중간에 길고 평평한 무등산 자락의 골이 있는데 우리는 가끔 그곳까지 나무를 하러 다녔다.
그런데 당시에 우리 또래 중 곰같이 나무를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똑같은 바탕을 긁어모아도 곰은 어떻게 된 일인지 소득이 다른 나무꾼들 보다 많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곰은 솔폭 구석구석을 성실하게 긁어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무지게를 지고 올 때도 그렇다. 향등 저수지를 끼고 도는 산자락, 긴등재가 우리들에게는 가장 고역이었다.
우리 또래의 나무꾼들은 다섯 번은 쉬어야 우리 동네가 보이는 영(嶺)마루에 도달을 한다. 그런데 곰은 그렇지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중간에서 한 번 쉬고는 영마루에 올라서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올라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늦게 올라오면서 그 고생을 하는 것이다.
야, 이 곰아. 여러 번 쉬고 빨리 올라오지 그 고생이냐.
일곱 명의 우리 또래 나무꾼들이 지게를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영마루에 줄줄이 받쳐놓고 곰을 향해 말을 하면은 곰은 씩- 웃으면서 작대기를 받치고 멜빵 사이에서 이마의 땀을 옷소매로 훔치면서 빠져 나와서는
너희들 몇 번 쉬고 올라왔냐?
다섯 번.
나는 한 번 쉬고 올라왔다.
야, 이 곰아, 다섯 번 쉬고 올라온 우리보다 한시경이나 늦게 올라온 주제에 자랑이냐. 곰은 곰이다.
…곰 인디 어쩔 것이냐…….
이런 식이었다.
그 시절에는 광주 시내에다 나무를 팔기도 했고, 동네에서도 더러는 거래가 되기도 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시내에다 나무(땔감)를 팔려면 꼭두새벽에 월산동이나 양동, 구동 시장에 당도해야 했다. 통금이 해제된 즉시 땔감 거래는 끝이 나기 때문이다. 그 장사도 부지런한 사람이나 했다.
곰은 국민(초등)학교 6학년 2학기 접어들면서 학교를 그만 두었는데 이유는 사친회비(일종의 수험료와 육성회비)가 너무 많이 밀려 면목이 없어서 금당산 근방 산 속에서 중간 치기를 한 것이다. 그러나 졸업장은 어찌 어찌 받아 명색이 중퇴는 면한 것이다.
곰의 그 짤막한 학교생활은 하나같이 모두가 다 꼴등이었다. 공부는 두말할 것도 없고 그의 꾸부정한 다리 가지고는 달리기도 별 도리가 없이 꼴등을 도맡아야 했다. 그런데 곰은 꼴등을 하는 주제에 곰 같은 행동을 했다.
하루는 선생님이 곰을 칭찬을 했는데 그 점수는 평상시보다 10점이나 오른 36점이었다. 그런 주제에 가장 늦게까지 낑낑대면서 시험 문제를 풀었다. 다른 사람이 다 낸 후에도 10분은 늦게 내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시험지를 빼앗듯 해야만 마지못해 건네주면서
지금도…많이 못했는데…틀리더라도 다 해야 쓸 것인데…….
곰에게는 연필을 굴려 찍어 맞추는 그런 요량도 아예 없었다.
오래달리기를 하는데 운동장에서 다섯 바퀴를 돌았다. 보통 4,5분대에 완주를 하는데, 곰은 무려 7분 45초를 달렸다.
보다 못한 선생님이 세 바퀴를 돌 때에 그만 뛰라고 했으나 곰은 끝까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다섯 바퀴를 다 돌고 주저앉으면서
결코 다 돌았다.
이런 식이었다.
그날 하교 길에 내가 핀잔을 주면서 병신같이 끝까지 달렸냐.고 말을 하자 …그래도 아무도…없는 운동장에서 혼자 남아 끝까지 달리니 일등 한…기분이드라…뒷 땅은 다 내 땅이고…….
곰은 그때 <뒷 땅은 다 내 땅이다.>는 말을 하면서 사뭇 심각해지기까지 했었다.
진규가 곰이라는 별명을 결정적으로 얻게 된 사건의 내력은 이러했다.
뒷동산에서 술래잡기를 하다가 땅벌 떼를 만난 우리들은 더러는 벌을 쏘이면서도 몸을 숙이고 기다시피 도망을 갔는데 곰은 벌을 쏘이자마자 작대기를 움켜쥐고 벌집을 요절내고 말았다.
땅 벌떼가 아무리 엉겨 붙어도 곰은 막무가내였다. 결국 곰은 곰 같은 짓에 곰 같은 놈이 되고 만 것이다. 온몸이 부어올라 큰 고생을 했다.
곰은 미련한 동물이어서 곰 잡는 비결은 곰이 다니는 길목에다 돌을 달아 놓으면서 박치기를 계속하다가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돌에 맞아 결국은 스스로 죽는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그날 벌집을 요절낸 행동은 이런 곰의 행동과 같다하여 곰이라는 별명이 붙여져 버리고 만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규와 헤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쯤인데, 그 때 우리들의 나이가 19세였다. 그해 초가을에 진규네가 우물을 팠다.
3일 만에 물이 났다. 동네 초입과 중간, 가장 위쪽, 이렇게 세 개의 우물이 있어 80여 호가 식수로 사용했다. 가정 샘이라는 것을 진규네가 가장 먼저 판 것이었다.
지금과 같은 모터 펌프가 아니고 손으로 뿜어 올리는 수동식 펌프인데, 일명 작두 샘 이라고 했다. 파이프를 샘 중앙에 세우고 자갈로 메워 시멘트를 바르면 훌륭한 샘이 된다.
그런데 샘에 들어가는 자갈이 깨끗하고 좋은 깻돌을 사용했다. 그때는 광목간 도로가 포장이 되지 않아 도로 보수를 하기 위해 놓은 깻돌을 도로에 깔았다.
어쩌다가 그렇게 많이 맞았냐?
곰의 몰골은 험상궂었다. 어디 한곳 성한 곳이 없었다. 허리를 쓰지 못하고 방구들을 짊어지고 누워서 끙끙 앓고 있었다.
도로에 깻돌이 하도 좋아 바작(혹은 귀발이라고 함 지게위에 흙이나 모래를 담기위에 소쿠리와 흡사한 지게의 부속품) 에다 퍼붓다가 혼났다.
누구에게? 하고 내가 묻자
지나가던 찝프가 한 대 멈추더니 신사가 한 사람 내리더라…지게를 다 때려 부숴 버리더니 나라에 돈을 훔쳐 가는 도둑놈이라고…작대기로…양신 두들겨 패더니…감옥소에다 집어넣어 분다해서…한번만 용서해주라고 빌었더니…나랏돈 가지고 도로에 자갈을 깔았으니…너는 나라 돈을 도둑질한 순 악질, 매국노와 같은 도둑놈이라고…그 사람이 용서해줘서 나 콩밥 면했다…아이고, 허리야.
도망쳐버리지 맞고 있었어, 이 곰아.
잘못했으면 맞어야지……아이고, 허리야.
그 닷새 후 곰은 신문을 말아 쥔 손을 허리에 기대고 우리 집 사립문을 들어섰다.
성욱아, 나 때린 사람 신문에 났어야.
쥐고 있던 신문을 나에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고위 공무원 도로국장 ○○○ 거액 횡령 구속>
사진과 같이 사회면 톱을 장식하고 있었다. 신문을 보고 있는 나를 향해
나 갈란다. 똥물 먹을 시간이다. 허리 아픈디는 뚱 물이 좋다고는 허드라만은 … 아이고, 써서…….
나는 의자의 등받이를 기대고 기지개를 켜면서 진규를 앞에 두고 여유작작한 자세로 찻잔을 건너다보면서 애들은 몇이나 되며,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항시 밑으로 내려다보았던 곰을 대하는 지배욕을 오래간만에 다시 한 번 만끽해보는 그 재미도 과히 싫지는 않았다.
애들은 아들 둘에 딸 하나다…초과했지…너야 일찍 집장만 했을 것이다마는 나는 겨우 3년 전에 간신히 장만했는디…지금을 올라갔고 1억이 넘는다고 하드라…애들도 나 닮아서 공부도…잘 못허고…그래도 중간은 …넘어야…나는 곰 인게…….
곰이 이렇게 커 보일 수가 없었다. 전세아파트 옮겨가고 좋아라고 감격하여 눈물 흘리던 아내, 딸 하나 낳고 자신이 없어 아내 몰래 예비군 훈련받으러 가 정관수술 해버린 자신의 비겁한 행동.
성욱이 너는…잘 지내지…….
…응…차 마시자.
내가 찻잔을 움켜쥐자 진규는 조용히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큰 곰 앞에 작고 약삭빠른 토끼가 된 듯 했다.
너는 교회도 잘 다닌 모양이다.
씁쓸한 찻잔을 목구멍에다 털어 넣으면서 내가 말하자,
응…나 안수집사다…….
그래-!
곰 앞에서 타락한 모습을 발견한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성욱이 너는 애들이 몇이나 되냐?
…뭐…그냥…….
나는 어느 순간 작고 초라한 모습이 되어 더듬거리고 있었다.
성욱이 너, 그때 화 많이 냈지.
24년 만에 만난 친구가 밑도 끝도 없이 그때 말을 하니 종잡을 수가 없어 물끄러미 쳐다보자,
그때 나무 뺏길 때야…….
진규가 말을 하자 그때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들보다 서너 살 위인 청년에게 무등산 자략을 내려오다 나무를 빼앗겼었다. 그때 진규와 내가 힘을 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내가 한판 붙어보자고 그렇게 사정을 해도 진규는 나무둥치를 넘겨주고 빈 지게를 지고 나섰던 것이다.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곰인 진규를 두고두고 원망했으나 그때 진규는어쩔…것이냐…….하면서 뒷머리만 긁적였었다.
진규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면서
나는 그때 빼앗긴 것이 아니라 그 나무강도가 불쌍해서 주어버렸어야…너는 빼앗겼다고 생각하니 억울했을 것이다…성욱이 니 생각과 틀리게 맘먹은 것을 지금까지도 미안하게 생각 했는디…이제 사과한다. 미안하다…나는 곰인게…….
진규는 울산으로, 나는 서울로 갈라섰다.
내가 곰같이 살았구나.
성욱은 고속버스 창밖을 내다보면서 그 깨달음만 곱씹고 있었다.
191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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