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인생을 지키는 숨쉬는 울타리.
가을 추억을 되새겨보면 가장 먼저 떠오른 모습이 허수아비다.
논과 밭 들녘에서 1년 내내 피땀 흘려 가꾼 알곡을 잃어버릴까 봐 훠이 훠이 짐승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지키고 있다. 수명은 불과 두 달 정도 그야말로 초단기 지킴이라는 일자리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알곡을 다 지킬 수는 없다. 허수아비가 논과 밭에 있다고 새들과 짐승들이 아주 접근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농부의 이마에 흘린 땀방울의 개수만큼은 남겨두고 가라는 의미로 설치를 하는 것이다.
어디든 묵묵히 말없이 서 있지만 없는 것보다는 경각심을 높여주는 지킴이 일 뿐이다.
요즘은 여기저기 허수아비를 볼 수 있다.
고속도로를 지나다 보면 자주 눈에 띄는 경찰차 모양과 경찰모를 쓴 허수아비에 과속차량 운전자는 깜짝 놀라기도 한다. 마네킹에 경찰 유니폼을 입힌 허수아비를 세워두어 운전자에게 경각심을 주기도 한다. 저 멀리에 경찰인 듯한 모습만 보여도 운전자들은 긴장하고 안전운전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전자들도 한두 번 속지 여러 번 오면 허수아비인 걸 알기 때문에 무시하는 경우도 잦다. 들판에 허수아비를 세워 두어도 새들과 짐승이 훔쳐먹듯이 근본적인 단점은 어쩔 수 없다. 이에 진화하여 부자연스럽게나마 경광봉을 든 팔을 흔드는 허수아비도 보인다. 공사장 입구를 지키는 허수아비, 등하굣길에 교통 단속을 하는 허수아비. 그리고 또 있다.
그는 바로 각 가정을 말없이 지키는 멋진 아버지다.
가정에서의 아버지란 존재도 마찬가지다.
에피소드 하나를 얘기해 볼까 한다.
늦둥이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 이런 말을 했다. “ 엄마 아빠도 월급 받나요? "
그래 월급 받지 하니 아들 하는 말 " 아빠는 그냥 구청에서 나라에 봉사만 하는 줄 알았어요."
제 딴에 아버지가 매일 출근을 하지만 용돈이든 교육비든 모든 걸 엄마가 주니까 아빠는 공무원이니까 돈벌이는 안하고 나라에 봉사만 하는 줄 알았나 보다.
아이코 이거 엄마가 아버지를 허수아비로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그때부터 아빠에게 학부모 소집 등 학교생활에 직접 참여하도록 했다. 나의 교육방식이 아이들을 너무 순진하게 키웠는지 큰애는 초등 3학년 때 한번은 학교 갔다 와서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하는 말이 ” 엄마 우리 선생님도 화장실 가시던데요“ 했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너무 되바라질까 봐 순수한 동심으로 키워서일까.
사실 오른쪽남자는 작은 아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그저 묵묵히 가정을 지켜줄 뿐 아이들의 교육에 일일이 간섭을 하거나 개입하지 않았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보릿고개 세대들의 아빠는 대부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어린 시절은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신 이유로 아버지께서 학교 자주 오신 것 같았다. 장날 학교를 지날 때 후문 쪽에 사택이 있었고 담임선생님을 찾으셔서 아이를 엄하게 지도해 달라고 주문을 하시곤 했었다.
농사를 짓는 가정에서 자란 우리 세대는 아침저녁은 늘 밥상머리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수저를 사용하는 법도 눈물 콧물 흘리면서 배웠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을 보면 포크는 잘 사용하지만 젓가락을 잘 못쓰는 아이들이 꽤 많다.
그 시절은 아버지의 권위가 대단했지만 요즘들어 아버지는 그저 가장으로서 돈 버는 기계처럼 대우받는 가정이 많은 편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아버지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아버지를 허수아비로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것은 엄마들의 몫이다.
한 가정에 있어 위험으로부터의 든든한 울타리는 아버지고 정서적 울타리는 어머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합리적인 권위와 사랑의 보금자리가 우리 아이들을 건강한 꿈나무로 잘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알곡을 지키는 허수아비가 비록 정교하게 만들어지지 않아 허술하지만 그래도 없는 곳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세상에서 기계나 컴퓨터 이외 100프로 완벽한 것은 없다.
적당한 여백이 있기에 우리는 건강하게 숨 쉬고 살아가는 것이다.
멋진 허수아비와 아름다운 허수엄마의 웃음꽃이 바로 행복한 가정의 열쇠이다.
첫댓글 가정을 지키는 숨 쉬는 울타리, 허수아비, 허수엄마 ㅎ 표현 재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