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11.그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이 모든 재앙이 그에게 내렸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지역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서로 약속하고 오더니
12.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가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13.밤낮 칠 일 동안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고통이 심함을 보므로 그에게 한마디도 말하는 자가 없었더라
<설교>
모든 것을 가진 자로 출발한 욥은 모든 것을 잃은 자로 전락합니다. 따라서 세상의 시각에서는 욥에게서 세상이 종교를 앞세워 추구하고 목적하는 복의 모습과, 피하고 싶어 하는 저주의 모습 모두를 목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으로 욥의 복의 이유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 둔다면 재앙은 죄로 인한 심판에 두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욥의 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한 사탄의 사고임을 주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현대 기독교 신앙의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욥이 많은 소유를 가지고 살다가 순식간에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일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과 무관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의미 없이 벌어지는 사태는 아닙니다. 적어도 말씀드린 것처럼 성공과 실패, 부요와 가난 등이 신앙의 여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생각할 기회는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욥에게는 그와는 차원이 다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계획하신 바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늘 민감하게 생각하는 소유가 많아지고 사라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과의 관계 문제입니다.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고 자신을 알게 함으로써 인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욥을 통해서 우리 인생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욥기는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다”는 말로 끝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소유가 있고 없고는 이 선언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는 것입니다. 죽음의 그 자리까지 많은 소유를 짊어지고 부를 누리다가 갈 수 있고 소유가 없이 그야말로 거지 나사로처럼 살다가 갈 수 있습니다.
길을 가는 도중에는 그것이 비교가 되고 부러움이 됩니다. 강자와 약자로 구분되어 힘없는 자의 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의 자리에서는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오직 필요한 것은 믿음뿐입니다. 신자는 그것을 알기에 죽음의 자리를 향해 가는 길에서 믿음에만 뜻을 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알지 못하면 욥이 누렸던 부와 재앙에 초점을 두고 신앙을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친구들의 등장입니다.
11절에 보면 “그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이 모든 재앙이 그에게 내렸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지역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서로 약속하고 오더니”라고 말합니다.
욥의 세 친구는 엘리바스, 빌닷, 소발입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욥이 겪는 재앙에 대한 소식을 듣고 위로하기 위해 약속을 하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욥의 친구들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욥의 세 친구가 욥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받는 재앙으로 몰아가면서 회개하라는 말로 욥을 공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을 친구의 고통을 외면하고 배려하지 않는 태도로 여기면서 친구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욥의 친구들은 욥이 겪는 고통에 대해 동정심을 갖고 있었고 욥을 위로하기 위해 약속하고 함께 온 것입니다. 욥에 대한 이들의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것은 욥에 대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12,13절을 보면 “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가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밤낮 칠 일 동안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고통이 심함을 보므로 그에게 한마디도 말하는 자가 없었더라”고 말합니다.
이들이 욥을 멀리서 처음 봤을 때 욥인 줄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모습이었습니다.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난 종기로 인해서 욥의 외모가 쉽게 알아볼 수 없 정도로 비참한 상태가 된 것 같습니다. 욥의 비참한 모습을 본 친구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며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해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립니다. 이것은 슬프고 애통한 자기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이스라엘 고대 사회의 하나의 의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밤낮 칠일동안 욥과 함께 땅에 앉아 있으면서 욥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욥의 고통이 심한 것을 보고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할 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사람들이고 욥에 대한 친구의 우정도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욥에 대한 공박도 욥을 힘들게 하고자 하는 것보다는 친구의 고통을 해결하는 길을 알려주기 위한 진심어린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욥과 친구들의 만남에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욥을 만난 친구들의 반응입니다. 소리 질러 울고 옷을 찢고 티끌을 머리에 뿌리는 것은 욥의 처지가 비참하게 되었기 때문이고 그 모습을 보면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동정심이 유발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은 동정심조차 없는 분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했던 욥을 사탄의 도발 때문에 견디기 힘든 비참한 상황으로 밀어 넣으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동정심이라는 인간의 감정으로 성경을 보면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들이 많습니다. 이스라엘이나 이방 민족에 대한 심판의 행위들을 보면 일말의 동정심도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동정심은 신앙과는 무관한 인간 본성의 감정입니다.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자신의 삶에서 심한 고통을 겪고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는 자에 대해 감정인 것입니다. 그 같은 동정심으로 어려움에 있는 사람을 얼마든지 도울 수 있고 또 돕기도 하지만 그것을 신자의 신앙적 행동으로 규정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동정심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가령 관계가 좋지 않거나 미워하는 대상이 고통을 겪는다면 동정심보다는 ‘꼴좋다’는 마음이 앞설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동정심은 모든 자에게 공평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정심을 배경으로 하는 구제는 세상이 생각하는 구제일 뿐 성경이 증거 하는 구제와는 차별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기독교를 보면 동정심에 대한 바른 이해의 부재로 인해 복음의 참된 정신이 훼손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환경이 좋지 않은 나라에서 물질적 도움을 주는 것을 복음을 전하는 선교로 인식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물질적 도움을 주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으로 복음을 전한다고 생각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환경이 좋든 나쁘든 죽음으로 가고 있는 모든 자에게 필요한 것은 십자가 복음이라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에게는 욥이 불쌍하게 보였겠지만 그들 역시 불쌍한 존재들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불쌍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규정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불쌍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에 불쌍하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나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쌍한 존재였을 뿐이라는 시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적인 구제는 물질을 주는 자와 받는 자가 동일하게 불쌍한 존재로 만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고통을 받고 어려움에 있는 자는 단순히 동정심으로만 대한다면 자신이 불쌍한 존재라는 것은 보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스스로 복음의 의미를 훼손하는 것이 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존재하는 불쌍한 존재임을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동정심은 악마의 세력에 붙들린 인간의 본성에 불과할 뿐입니다.
동정심을 갖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려움에 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동정심이나 불쌍히 여기는 감정은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 또한 동정을 받아야 할 불쌍한 존재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고통을 겪으면 자신에게 주어진 편안함이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진 은혜이며 내 힘으로 누리는 것이 아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은혜가 아니면 나도 불쌍한 존재일 뿐이라는 고백으로 함께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Chapter 5
His Friends' Sympathy
Now when Job's three friends heard of all this evil that was come upon him, they came every one from his own place; Eliphaz the Temanite, and Bildad the Shuhite, and Zophar the Naamathite: for they had made an appointment together to come to mourn with him and to comfort him.
And when they lifted up their eyes afar off, and knew him not, they lifted up their voice, and wept; and they rent every one his mantle, and sprinkled dust upon their heads toward heaven.
So they sat down with him upon the ground seven days and seven nights, and none spake a word unto him: for they saw that his grief was very great. (Job 2:11-13 KJV)
(Sermon)
Job, who had everything at the beginning, became one, who lost everything. Thus, from the world's point of view, it could be said that Job's situations showed us both, blessing, which religions pursue, and cursing, which religions avoid.
In this sense, it is common to state that the reason Job was blessed is his fearing God and the reason he was in the disaster is the result of God's judgement of his sin. Yet, we mustn't forget all these written above are Satan's words against the Word of God regarding the faith of Job. Furthermore, it is because knowing this can be how to discern the faith of right and wrong in modern Christianity.
That he suddenly lost everything while enjoying all the possessions has nothing to do with His fearing God. It doesn't mean it is meaningless in it either because, spoken earlier, it, at least, gives an opportunity for us to think that 'success and failure' and 'wealth and poverty' are not given to us dependent on faith.
No doubt that there is far more meanings in the story of Job, which is the will of God for him. It is the relationship with God, which is fundamentally different from what people are sensitive to, increasing and decreasing their possessions. It is the work of God that He lets Job know who God is and who Job himself is, opening his eyes to see his life at a new angle. That's why we can have a chance to view our lives from the new aspect.
The Book of Job ends with the statement, "So Job died, being old and full of days." As I have already told you, the condition of possessions is meaningless before this proclamation. All age and die. Until the moment of death, some enjoy riches with their exuberant possessions, or some live without any possessions like a beggar, Lazarus.
It might be true that the haves are envied by others and the have-nots are unfairly treated by the haves. However, we all know well that everything becomes meaningless at the point of death. What is needed is faith. Believers, knowing this, would pursue only the matter of faith. Without knowing this, we might end up focusing on Job's riches and disasters to judge his faith, which is presented by Job's friends.
In Verse 11, it says, "Now when Job's three friends heard of all this evil that was come upon him, they came every one from his own place; Eliphaz the Temanite, and Bildad the Shuhite, and Zophar the Naamathite: for they had made an appointment together to come to mourn with him and to comfort him."
His three friends are Eliphaz, Bildad and Zophar. They made an appointment to come to comfort Job after they had heard of him in predicament while they were living in their different places. By the way, it can't be wrong that most christians have a prejudice regarding Job's friends. It is probably because they criticized him by demanding him to repent, assuming that he was in such for his sins. Thus, many conclude that his friends neglected his pains while being inconsiderate.
However, it should be noted that they sympathized with him for his pains, causing them to come to see him. We can find that they were truthful for Job by taking a look at what they did.
In Verses 12 and 13, it says, "And when they lifted up their eyes afar off, and knew him not, they lifted up their voice, and wept; and they rent every one his mantle, and sprinkled dust upon their heads toward heaven. So they sat down with him upon the ground seven days and seven nights, and none spake a word unto him: for they saw that his grief was very great."
When they saw Job, he was not recognizable, likely for he was smitten by sore boils from head to foot. The three friends, seeing Job in the miserable condition, lifted up their voices, wept, rent their clothes, and sprinkled dust upon their heads. It can be understood that it is customary that the ancient society of Israel did to express their sorrowful and saddened hearts.
Then, they didn't say anything to Job for seven days and nights. They must have thought that there would be nothing to comfort Job with their words. In other words, they were speechless. In this sense, we can know that they were godly and had a deep friendship with him as well.
What I would like to think about at the meeting between Job and his friends is the reactions of his friends. Lifting their voices, weeping, rending their garments and sprinkling dust on their heads were all due to his miserable condition, sympathizing with him. Sympathy worked out in their minds.
In this sense, God might seem unsympathetic because God pushed Job, fearing God, into the disastrous situations owing to the provocation of Satan. In fact, there are many stories in the Bible that we can't accept as they are from our sympathy's point of view. Seeing the judgements against Israel and all the gentiles, there is nothing that looks like sympathetic.
To cut long story short, sympathy is a mere human emotion, having nothing to do with faith. It is a feeling that we are emotionally sorry for those who are in a great pain, difficult situations and limited environments from our comparatively better conditions' perspective. We can help the needy from our sympathy and we actually do it, but we mustn't think that this is an act of faith at all.
It is also true that our sympathy doesn't work for all equally. For example, if we saw someone, by whom we are offended, in such condition, we would rather say, 'you deserve it', in mind than show our sympathy. Thus, we can finalize that our sympathy isn't fair for everyone. As a result, helping the needy based on our sympathy is no difference from that of the world, which we ought not to be confused with what the Bible teaches of helping the poor.
From this understanding in mind, the true spirit of the gospel is being damaged by lacking of the comprehension of sympathy in modern Christianity, one of which is to recognize providing material needs to impoverished countries as a part of missionary work for the gospel.
Of course, I am not saying we shouldn't do that, but I am trying to tell you that we shouldn't consider such work as a part of the preaching of the gospel. What we must remember is that men, dying eternally, need nothing but the gospel of the cross no matter how rich or poor they are.
Although It is true that Job seemed miserable to the friends of Job, it should also be known that they were as miserable as Job was because the condition of men is determined by the relationship with God. Thus, it is not that we are miserable by our limited environments, but we had better be aware that life without Christ is miserable. Only then, can we have a sense that we would also be miserable without the grace of God. Therefore, the biblical help of the needy is that the giver and the receiver are to come to meet at the same position, in being miserable.
If one only sympathizes with others who are in pains, one can't see oneself miserable, resulting in the damage of the meaning of the gospel because one denies the fact that one is by the grace of God. Thus, the sympathy is our nature, captured by the evil power.
I'm not saying not to sympathize with others. I don't mean not to feel sorry for those who are in pains. We can't control our feelings and emotions of sympathy. The important point is that we must not miss the fact that we are also the ones who need to be sympathized by God. When we see someone who is in hardships, we should recognize that what we are enjoying in our lives is not of us, who would rather deserve the eternal destruction, but by the grace of God. Being gathered in a confession, "I would be as pitiful as others unless God gave me His grace", is what is called, 'eccle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