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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3:16)
자, 여러분 여러분이 오늘 지금 읽으신 본문은, 너무나 잘 아는 그런 구절이죠? 어려서부터 우리는 이 구절을 가지고, 노래도 만들어서 불렀고요, 그냥 수천 번도 더 부른 노래죠?
(요한복음 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어떤 절에 가니까, 그 절에도 이게 붙어 있더라고요.. 크리스마스 즈음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게 절에도 붙어 있을 만큼 참 유명한 구절이에요.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도, 대부분 이 구절은 알더라는 것이죠. 그렇지만 이 구절이 참 오해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들에게 오늘 이것을, 잘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새벽이슬 청년들 수련회에, 제가 인제 강사로 가서, 몇 번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윤지 어린이가 저에게 와서, 한번 물어 본적이 있어요, ‘목사님! 이 이야기를 전에 있던 교회의 어떤 목사님께서, ‘하나님은 온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 온 세상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신 것이다.’ 그게 맞느냐?’라고, 저에게 인제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인제 우리 청년들이야 그것이 무슨 이야기인지 너무나 인제 명확히 잘 알고 있지만, 혹시 이 중에 여러분들께서도 요즘 하도 헛소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혹시 여러분들이 그러한 내용들에 미혹될까봐, 제가 이 설교를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요, 지금 이제 한시(漢詩)를 하나 읊어 드리겠습니다. 이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지. 여러분들 좀 알아 맞춰보십시오.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 (金樽美酒千人血)
옥반가효는 만성고라 (玉盤佳肴萬姓膏)
촉루락시 민류낙이요 (燭淚落時民淚落)
가성고처에 원성고라 (歌聲高處怨聲高)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예, 춘향전에서 나오는 말이에요. 이 말을, 여러분! 지금 괜찮지만, 변사또의 잔치에, 그 참석해서, 이 말을 못 알아들었으면, 다 감옥 가는 거예요. 곤장을 맞든지, 주리를 틀리든지 말이죠?
이 말은, 가렴주구를 일삼던 변사또의 잔치에, 어사또인 이몽룡이 찾아가서, ‘너희들 그렇게 살면 안 된다. 회개해라!’라는, 자, 일성(一聲)을 날린 것이죠. ‘금준미주(金樽美酒)! 그 금잔에 들어 있는 맛이 있는 맛난 술은, 백성들의 피고, 그 옥반가효(玉盤佳肴)! 옥쟁반에 그 진수성찬은, 백성들의 원성이다. 촛물이 떨어질 때, 백성들의 눈물이 떨어지고, 저 가성고처 (歌聲高處)에 이 원성(怨聲)이 너희들에겐 들리지 않느냐?’ 이 말이었다고요.
이 말을 알아듣고, 벌벌벌벌 떨면서,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다 살아났지만, 이 말을 못 알아듣고, 계속해서 뭐 금준미주! 옥반가효! 그러니까, ‘야! 맛있게 많이 먹으라는 모양이다!’ 그래놓고 이 잔칫상에만 눈을 두고 있었던 사람들은, 다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됐죠.
여러분! 우리에게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계시다고요. ‘나는 곧 간다! 너희들은 회개해라!’ 그런 메시지를 성경을 통해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던지고 계시다고요. 하나님께서는!
그런데 사람들은 그 잔칫상 위의 ‘금준미주 옥반가효’에 거기에 관심을 두느라고, 그 메시지를 듣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듣기는 듣는데, 엉뚱한 이야기로 듣는 사람들이 있다고요. ‘야! 이 술과, 이 고기와, 이 진수성찬을, 예수를 믿음으로 해서, 우리에게 줄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 ‘바로 성경의 내용이다.’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게 알아듣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죠. 그 사람들도 큰일 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많이 읽고, 뭐 심지어 외우는 사람도 봤어요. 영등포 교도소에서 나오는 사람이, 하도 교도소에서 할일이 없어서,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운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렇게 외웠다 할지라도, 이 내용이 무슨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를 알지 못하고 외우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요. 위험한 것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요한복음 3장 16절이, 사람들에게 오해되어 이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오늘 좀 잘 알고 가셔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구절에 진의(眞意)를 잘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구절은, 시카고의 무디교회에서요, 무디가 설교하고 있는 그 자리에, 무어 하우스라는 영국 설교자가 와서, 한 달 동안 이 구절만 갖고 설교를 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그 심오한 그 내용이 들어있는 구절이, 바로 이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그런 만큼, 우리가 바르게 이해하고 있을 필요가 있을 겁니다.
자, 먼저 16절에 나오는 ‘세상(世上)’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고 넘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말의 그 이해가, 교파 간에 참 이견(異見)이 많다고요. 그 칼라너 같은 보편구원론자! 유니버설리즘을 주장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이 세상을 그냥 그야말로, 그냥 불특정 다수! 그냥 세상! 모든 인간! 이렇게 번역을 한다고요.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지옥 가지 않고, 전부 다 천국 갈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한다고요. 그리고 심지어는 ‘영혼소멸설’까지 발전한다고요. 이것이!
‘천국 갈 영혼은 다 천국가지만, 천국에 못갈 영혼들은 그냥 다, 소멸되어서 없어져 버릴 것이다.’ 그래서 안식교에서도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죠.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여러분! 소멸되어진다면! ‘그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가 창조한 그 피조물이 지옥에 들어가서 그렇게 괴로움을 당하는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계시겠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상, 하나님의 속성상, 모순되는 것이다!’ 그렇게 주장들을 하는데, 정말 그런 것일까?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알미니안 주의자들은, ‘하나님은 전 인류를 위해서, 일단 아들을 죽이시고, 일단 아들을 죽여 놓으시고, 그것을 믿는 자는 구원해 주고, 믿지 않는 자는 유기(遺棄)시킨다.’ 이렇게 전한다고요. 이들은, 하나님은 지금 전 인류를 위해서 아들을 죽여 놓으셨고, 우리 인간은, 그 예수를 믿을 수 있는 능력! 즉 ‘선행적 은총’이라는 것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그런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믿을 수 있고, 믿지 않을 수 있는, 이런 자유의지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우리가 가르치는, ‘죄와 허물로 우리는 죽어 있었던 자들이다’라는 것을, 무시하는 것이죠. 그들은 우리 안에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또 그 예수를 믿고 나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그 장성한 분량까지 노력해서, 그 거룩을 완성해 낼 수 있다! 완전성화까지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바로, 알메니안주의를 주장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 인류를 위해서 주셨다.’라고 이렇게 주장을 하는 것이죠.
그럼 이 16절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에서 그 ‘세상’이 정말 ‘전 인류’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신약성경에 세상이라는 말이 백여든다섯 번이나 나와요. 백여든다섯 번! 제가 어저께 이 ‘세상’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구절들을, 다 찾아서 읽어 봤어요. 그런데 요한의 글에, 백다섯 번이 나온다고요. 그런데 요한은요, 자세히 이 구절들을 살펴보면, 요한은 이 ‘세상’이라는 말에 의미를, 두 가지로 쓰고 있다고요. 제가 그것을 여러분들에게 오늘 확인시켜 드리려고 하는 거예요.
작년에 작고하신 ‘제임스 보이스’ 목사님이 쓰신 그 주석과, 그분의 설교를 제가 쭉 찾아봤는데, 그분도 역시 저와 동일한 그러한 결론을 내고 계시더라고요. 이 요한이 쓴 ‘세상’이라는 그 단어의 원어는, ‘코스모스(cosmos)’라는 단어예요. 헬라어 코스모스! 그 코스모스라는 단어가 지금 영어에서는, 코스모스가 뭐죠? 우주죠? 우주!
이 ‘코스모스’라는 단어는 원래, 그 헬라어 원어의 뜻이 뭐였냐면, 장식(裝飾)! 잘 꾸며진 장식! 그러니까 요모조모로 잘 꾸몄거나, 잘 조화되어서, 아름답고 우아한 사물! 그것을 가르치는 게 바로 코스모스였다고요. 그것이 오늘날 이 우주를 가리키는 코스모스로 적용이 되어졌단 말이죠. 코스모스란 단어에서 ‘코즈매릭(cosmetic)’이라는 영어가 나왔어요. 이것이 지금 우주를 가리키는 코스모스라는 단어가 됐는데, 맞는 말입니다! 우주는 그렇게 하나님에 의해서 조화롭게, 질서 있게, 아름답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우주(宇宙)예요. 그래서 이 코스모스라는 단어가 이 우주라는 말이 된 거거든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정말 하나님이 안 계시다’라는 것을 한번 증명해 보고 싶어서, 동양철학을 열심히 공부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 참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었어요. 고3 때도, 거의 교회에 가서 살았으니깐요.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가서, 저에게 갑자가 많은 자유가 주어지게 되니까,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예수를 믿고 있으니까 하지 못하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하나님이 없다는 거만 증명하면,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고 살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래서 당시에, 다산 글방이라든지, 이런 출판사에서 나온 ‘종교다원주의’ 책을 많이 읽었고, 그리고 동양철학이라든지, 다른 종교를 두루두루 연구하기 시작했었다고요. 그래서 거기에서 진리만 발견이 되면, ‘꼭 예수만 믿을 필요가 있는가?’ 이렇게 인제 주장하고 다닐 참이었죠. 그래서 동양철학을 처음에, 주역(周易), 노자(老子), 장자(張子)부터 이제 공부를 했어요. 누구한테 제가 배웠냐 하면, 그 대순진리회 증산도가의 교주인, 안정전씨의 친동생 안중선씨의, 이제 제자로 들어갔어요. 수제자였어요. 저희가! 저와 저희 과 친구 한 명하고, 저희 학교 수학과 2학년 선배하고, 동국대 인도철학과에 다니고 있는 굉장히 천재적인 소년이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와 이렇게 넷이서! 그분의 인제 수제자로 들어가서, 어 아주 정식으로 그 주역과 노자 장자를 이제 배우기 시작했다고요.
사실은 저희들이 이용당한 거예요. 뭐 이 노자나 장자! 유교! 천주교! 기독교! 전부 자료를 수집해서, 책을 하나 썼어요. 그것이 요즘 대순진리회를 믿는 사람들이, 교과서처럼 쓰고 있는, ‘이것이 개벽(開闢)이다’라는 책입니다. 저희들 스무 살 스물한 살짜리들! 대학교 1-2학년들이, 맨날 막걸리 먹고, 짜장면 먹으면서 쓴 책이에요. 그냥 자료 모아서! 그걸 가지고 지금 교과서로 쓰고 있으니까, 참 제가 죄책감이 막 ~ ! 참 나쁜 일 많이 했어요. 제가! 여러분! 절대 그런 거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이것이 개벽이다! 무슨 개벽이 어디 있어요? 심판밖에 없어요! 인제 개벽은 없습니다.
그렇게 인제 공부를 하면서, 제가 더불어서 한 게 뭐냐면, ‘외계인을 찾아내면, 성경은 거짓이다.’라는 게 인제 밝혀지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간만 만들지 않았다는 게 증명이 되니까, 유에프오(UFO)를 찾아다녔어요. 넷이서! 그러니까 카메라를 항상 달고 다녔어요. 그 유에프오를 찍으러 다니면서, 우주에 대해서 공부를 했다고요. 저희가!
저는 그 우주를 공부하면서 인제 무릎을 딱 꿇었죠. 우주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어마어마해요. 아름다워요. 우주는! 어떻게 그 거대한 우주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매년, 매달, 매주, 매일, 매시간, 매초, 제 길을 따라서, 그 시간에 그 길을 따라서, 이 우주는 움직이고 있더라는 거예요. 누군가가 만들어 놓지 않고, 누군가가 지금 경륜해 가고 있지 않으면, 이 우주가 이렇게 움직일 수가 없는 거예요. 그 자리만을 움직이고 있다고요. 하나님이 정해놓은 금을, 바다는 한 번도 넘어오질 않아요. 그만큼 우주는 엄청나고, 그 엄청남 앞에, 우리는 ‘참 아름답다! 경외스럽다!’ 이렇게밖에 이야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우주는 엄청나다고요.
맞습니다! 이 코스모스(cosmos)라는 단어가, 이 ‘우주(宇宙)’라는 말로 변한 데에는 그런 의미가 있는 거예요. 아름답게 하나님께서, 조화롭게, 질서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이 우주! 코스모스란 말입니다. 이 코스모스란 말이, 우주를 그 지칭하는 말이 된 것이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단어가 거기에 적용된 거예요.
이 우주에서, 인간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어딥니까? 지구죠? 지구(地球)! 그 지구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켜, 성경은 ‘세상이다!’ 이렇게 그 단어를 적용했다고요. 그래서 성경에서 세상 그러면은, 모든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죄에 빠져서, 영원한 지옥에 빠져 버릴 그 사람들을 가리켜서, ‘세상이다!’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요. 그래서 우리가, 야! 세상에 빠지지 말어!‘ 이렇게 오늘날도 이야기하잖아요? ’야! 세상 것들 추구하지 말어!‘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들과 대조해서,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을, 우리가 ’세상이다!‘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요. 그러니까 이 지구! 이 땅덩어리를 살아가는 모든, 죄 속에 던져져 있는, 그런 모든 인간들을 가리켜서, ‘코스모스, 세상!’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고요. 성경은!
이러한 그 코스모스라는 단어의 일반적인 이런 용례 때문에, 우리가 요한복음 3장 16절을, 오해하게 된 거예요. 이렇게 ‘세상’이라는 말이, 아담 이후로 태어난,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인류를 지칭하는 것이면, 그 보편구원론자들이나 알미니안주의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맞죠.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 모든 세상! 모든 인간을 위해서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셔서 죽이셨다!’ 그 말이 맞죠. 그러나 제가 반박을 한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보편구원론자들의 의견을, 제가 먼저 반박을 할 텐데, 정말 하나님은 전 인류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셨다! 그렇다면 지옥 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야 돼요. 예수님이 모든 인간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셨다면, 지옥 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야죠. 그런데 성경은 지옥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너희들은 거기에 가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라!’ 그렇게 이야기한단 말이에요. 마태복음 23장 13절 보시면요,
(마태복음 23:13-15)
1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4 (없음)
1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라고 하면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계세요. 누가복음 13장 28절 보시면,
(누가복음 13:28) (표준새번역)
28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는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는 바깥으로 쫓겨난 것을 너희가 보게 될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면서 이를 갈 것이다.
바깥으로 쫓겨나서, 그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이 있다는 것이죠. 29절을 보면,
29 사람들이 동과 서에서, 또 남과 북에서 와서, 하나님 나라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밖으로 쫓겨나서, 그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존재들이 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고요.
마태복음 7장에는 ‘주여! 주여!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목사 노릇하고, 기적을 일으키고, 앉은뱅이 일으키고, 능력을 행했는데, 나를 모르시다니요?’ 그러니까, 주님이 뭐라고 그러십니까? ‘불법을 행하는 자여! 내게서 떠나가라!’ 어디로 가는 거예요? 지옥으로 가라는 거예요. 너희는!
그리고 마태복음 25장에서 양과 염소의 심판이 있죠? 그 유명한! 왼편에 있는 염소들이 어디로 갑니까? 주님이 뭐라 그러십니까? ‘마귀들과 함께, 영원히 타는 불속으로 들어가라!’ 그런다고요. 분명히 성경은 지옥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고요. 그리고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그 이야기에서도, 그 부자가 어디 가 있습니까? 지옥에 들어가 있어요.
베드로전서 1장 19절에 보면, ‘예수께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셨다.’라는 말이 있어요. 그 옥이 어디일까요? 지옥이에요. 거기가 이 말을 가지고 가톨릭은, ‘봐라! 죽어있는, 그 지옥에 가 있는 사람들에게도, 천국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라고 이렇게 가르치는데, 요 구절에 대해선 제가 나중에 시간을 따로 내서, 자세히 설명을 해드릴게요. 이 구절은 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하여튼 지옥은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제가 나눠드린, 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그 첫 장 둘째 장, 한번 보세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우리 장로 교인들이 믿는 성경은, 바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라는, 그 성경을 가장 잘 요약해 놓은 것이라고요.
거기 32장, 33장에 보면, ‘지옥은 있다! 사후에 세계는 있다!’라는 것을,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구절들을 쭉 다 찾아놓으셨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32장 1항만, 여러분들에게 읽어드리겠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사후에 흙으로 돌아가서 썩으나, 영혼은 불멸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즉시 돌아간다. 의인의 영혼은, 죽는 순간에 거룩함으로 완전케 되어, 지극히 높은 천국에 들어가, 거기서 빛과 영광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뵈오며, 몸의 완전한 구속을 기다린다. 그러나 악인의 영혼은 지옥에 던지어져, 거기서 고통과 칠흑 같은 어둠 가운데 지내며,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이 가게 되는 이 두 장소! 천국과 지옥 외에, 성경은 다른 아무것도 인정하고 있지 않다. 연옥 같은 거는 있지 않다.
없다는 거예요. 지옥과 천국만 있는 것입니다. 구천을 떠도는 귀신? 이런 거 없어요. 죽으면 무조건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가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 것에 속지 마세요. 집에 가서 여러분 잘 읽어 보세요. 우리 청년들은 제가 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한 권씩 줬는데, 꼭 읽으셔야 돼요. 여러분! 여러분이 믿는 바가 무엇인지를, 꼭 알고 계셔야죠.
두 번째로, 알미니안주의자들에 대한 반박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그들은 조금 전에 말씀해 드린 대로, 모든 인류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셔서 죽이셨고, 그 예수를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인간들에게 있기 때문에, 그 예수를 믿어주면 우리를 구원하고, 그 예수를 믿지 않으면 유기시킨다. 뭐 이렇게 이야기들을 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들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굉장한 열심을 냅니다. 자기들에게 그러한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그냥 열심을 안 내고 어영부영 살다가, 하나님의 마음에 안 들면, 그들은 탈락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고요. ‘펄씨비어런스 오브 더 세인트(perseverance of the saint), 성도의 견인’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어요.
하나님은, 한번 구원한 자는 끝까지, 그 맹렬한 사랑과 그 고집으로, 거룩한 자로 만들어서, 천국에 데리고 가신다는 게, 우리가 가르치는 것이고, 그들은? ‘아니다! 그들이 싫다고 안 하면, 구원을 했던 자도 유기시켜 버린다. 탈락시켜 버린다.’ 그렇게 그들은 가르치고 있다 말이죠. 아니, 예수님이 일단 죄값을 다 치러주셨다면서요? 그런데 또 우리에게 어떤 그 값을 또 원하신단 말이에요? 외상값을 우리 아버지가 다 갚아줬는데, 그 주인이, 내가 지나가는데 또 ‘너 외상값 갚어!’ ‘우리아버지가 갚았잖아요?’ ‘그건 그거고, 너도 갚아야 돼’ 이 이야기나 마찬가지라고요.
그 피 값이 그렇게 값어치 없는 거예요? 이 세상에 있는 그 죄를 다 합쳐서, 그분의 품에 앉고 죽으신 거예요. 그분은 그만큼 영원하신 능력이 있는 하나님이시라고요. 이미 다 도말됐다고요! 다 도말됐어요! 그런데 거기에 무슨 우리의 행위가 보태지냐고요? 구원에!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그것은!
만약에 한명도 안 믿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한 명도 안 믿으면? 예수님은 개죽음 당하신 거죠. 그러면! 괜히 죽은 거잖아요? 하나님은 예수를 괜히 죽이신 거잖아요? 한 명도 안 믿으면 인간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렇게 계획성 없이, 그렇게 목적도 없이, 그렇게 일을 하시겠습니까? 우리 인간이 하는 행위에 따라, 좌지우지 되어 역사를 움직여 가는 그런 하나님이라면, 우리가 뭘 믿고 그분을 따르겠어요?
하나님은 창세전에, 완벽한 계획과, 작정과, 그 예정을 가지시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 땅에 세우신 거라고요. 누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속해져서, 다 그 영원히 타는 불속으로 들어가 버렸어야만 했을, 그 세상에서 어떤 자들만을 건져 내어서, 그들만을 위해서! 그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 있기 때문에, 그들을 건져 내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거라고요. 모든 인간을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단 말입니다.
성경은 거기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 6절을 보시면요,
(요한복음 17:6, 9)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세상 중에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자들만을 위해서 오신 거예요. 전 세상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17장 9절에 보시면,
9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창세전에,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부탁하신, 그들만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그 품에 안고 건져 내라!’라고 명령하신, 그들만을 위해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4절 보시면요,
(요한복음 17:14-16)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아니, 어떠한 한 무리를 세상이 미워하더라는 거예요.)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우리는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고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 그것이 전(全) 세상이다.’ 아니란 말이에요.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들이라니깐요. 그들을 위해서 오신 거예요. )
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그런다고요.)
예수님의 관심은, 전 세상에 있지 않아요. 그 세상에서 건져 내어진, 그 세상에 속하지 않은, 어떠한 한 무리에게만 관심이 있다고요. 다 지금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이것이! 요한복음 15장 19절 보시면요,
(요한복음 15:19)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그런단 말이에요.)
우리는 그 세상과 아무 관계없는 자들이 되어버린 거라니깐요. 제자들더러, 예수님이, ‘너희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들이다.’라고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오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그 ‘세상’은 뭐냐 말이에요? 분명히 세상! 코스모스(cosmos)라는 단어의 용례가, 이렇게 전 세상! 죄에 빠진 자들! 그들을 지칭하는 것이었는데, 그럼 오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곳에서의, 그 세상은 뭐냐 말이에요?
여러분이 그 세상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는 그곳들을 잘 읽어 보면, 요한은 이 ‘세상’이라는 단어를 두가지 의미로 쓰고 있다고요. 첫 번째가 지금까지 제가 말씀해 드린 대로, 그 모든 세상 사람들! 죄 속에 빠져서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그 사람들! 그 사람들을 ‘세상’이라고 이야기하고, 두 번째로, 어떠한 의미로 이 ‘세상’을 쓰냐면? 그 세상에 속해서, 그 세상과 함께 휩쓸려서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원래 그 세상이었던 자들인데, 그 세상 속에서 건져 내어진, 그들을 바로, 여러분! ‘교회를 세상이다.’라고 또 쓴다고요.
요한은 지금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바로 그 세상에 속해 있다가, 하나님으로 부터 건져내어짐을 받은, 세상에 속해져 있던 그 세상들! 그들을 가리켜서도 ‘세상이다.’라는 말을 여러 군데에서 쓰고 있다고요. 그래서 지금 이 말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말은, 하나님이 세상에 속해서, 곧 멸망하여 죽어 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 자들 중에서, 끌어낸 어떠한 자들! ‘그들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말이 바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말이라고요.
제가 그 성령의 사역! 거기에 대해서 설교할 때, 이 부분에 대해서 잠깐 짚고 넘어갔었죠? 성령이 이 땅에 오셔서 하는 일이 뭐라 그랬죠? ‘죄(罪)에 대해서, 의(義)에 대해서, 심판(審判)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그러죠? 여기에서 이 ‘책망하신다’라는 ‘엘렌코’라는 헬라어 원어가, ‘깨닫게 하신다’라는 말이라 그랬잖아요? 깨닫게 하신다!
성령은 누구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오시는 분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예수가 누구인지, 성경이 무슨 이야기인지, 도대체 그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어떠한 것인지를, 이해시키러 오신 분이 성령님이시잖아요? 성령님은, 모든 세상을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 성령님이시란 말이에요.
그래서 이 구절에서도,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이 세상 속에 있다가, 그냥 세상과 함께 멸망되어져 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 자들 중에서 건져 내어짐을 받은, 그 세상에게,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깨닫게 해주러 오신 분이, 바로 성령님이시다.’라고 여기서, ‘세상’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쓰고 있다고요.
한 구절 더 찾아보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라고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러 오신 분이 아니라, 세상에 속해 있다가 거기에서 건져 내어짐을 받은, 그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러 오신 분이라고요. 우리가 조금 아까 그 구절들에서 살펴봤잖아요? 여기에서도 역시 이 ‘세상’은, 바로 이 전 세상이 아니라, 그 세상에 속해 있다가 건져내어짐을 받은, ‘하나님의 교회’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렇게 두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고요.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를 가지고, ‘봐라! 세상은 바로 이런 뜻인데, 코스모스(cosmos)라는 뜻인데, 하나님은 전 인류를 다 구원하실 거야!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은 반드시 오고야 말거야!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면, 행복은 찾아와!’ 이렇게 가르치는 그런 사람들은, 조금 더 깊이 성경을 보지 못하는 거라고요.
세상은, 거기서 말하는 세상은, 전 인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 교회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교회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왜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말이죠?
여러분! 그러면은 도대체, 그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기에, 하나님은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말씀을 해 놓으셨을까요?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라는 그 사랑의 크기를 우리가 알려면, 누가 이 세상을, 누가 우리 교회를 사랑하셨는지를 먼저 아셔야 돼요. 누가? 하나님이!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 천지를, 그 어마어마한 거대한 그 우주를, 그 아름다운 우주를 말 한마디로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 그 하나님이, 우리 같은 인간을 사랑하셨다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그 하나님이, 이 우주를 말씀 한마디로 창조하실 수 있는 그 전지전능한 그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다! 거기서 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그 사랑의 크기를 우리는 가늠해 낼 수 없어요. 그래서 신론(神論)이 중요한 거예요.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얼마만큼 사랑하셨는가? 그것을 여러분이 알려면, 14절, 15절을 함께 읽고, 16절을 또 연이어서 한번 읽어 봐야 돼요.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3:14-16))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절이요.)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에서 이 두 구절 사이의 분모가 같아요.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뒷 구절하고, 15절하고, 똑 같은 구절이란 말이에요.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이는’이 바로 앞에 구절들을 다 받는 거죠.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셨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예수님이 들리는 사건이다.’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이처럼’이라는 말은, 바로 14절의 이야기를 받고 있는 거라고요. ‘이처럼’이라는 말이!
그러니까 그 이야기가 무슨 말이기에,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그렇게 자랑을 하냐고요? 그 이야기는 민수기 21장 4절부터 나오잖아요? 한번 이것은 같이 읽어봐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 민수기 21장 4절이요.
(민수기 21:4-9)
4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이게 이 놋뱀 이야기의 전부예요. 이게 놋뱀 이야기의 전부라고요. 지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구원을 선물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셨는데,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높이 든 것처럼, 그렇게 예수님을 그 장대에 달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부분이, 이 이야기라고요.
여기에서 뱀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무엇을 상징합니까? 죄! 죄인! 그 죄의 원흉인 마귀! 사탄을 이야기 한다고요. 뱀이라는 것은! 놋이라는 것은 뭐죠? 심판(審判)을 상징하는 거예요. 묵시 문학에 보면, 심판을 상징할 때 놋을 쓴다고요. 놋!
장대에 단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신명기 21장에,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받은 자다.’라는 말이 있죠? 뱀! 놋! 장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주와 심판의 자리인 그 장대에, 이 죄가 되셔서, 이 교회의 죄가 되셔서, 거기에 달리신 거예요. 그것을 바라보는 자는 나았단 말이에요. 바라보는 자!
그건 무슨 말이냐 하면, 믿음으로 밖에,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대에, 저주와 심판의 장대에 달려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 이외에는, 절대 살아날 수 없다는, 그 구원의 이야기를, 민수기 21장은 이야기 하고 있는 거라고요.
천지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 이 땅에 직접 오셔서, 십자가의 저주와, 심판의 그 뱀이 되셔서, 달리셨다는 거예요. 그 뱀이 되셔서! 그 자리는 우리가 달렸어야 될 자리라고요. 이 뱀! 그 뱀인 우리가 달렸어야 할 그 자리에, 하나님이신 그분이 달리신 거예요.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구원이라고요. 그게 기독교예요. 그게 기독교! 그것을 믿는 믿음!
놋뱀을 장대에다가 달아놨다고 해서, 그것을 쳐다 본 자가, 어떻게 그 놋뱀에서 무슨 레이저광선이 막 나와서 치료를 하겠습니까? 그 말은, 오직 믿음으로 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너희들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그냥 두 손 딱 놓고,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믿음으로 밖에, 그 저주와 심판의 자리에, 놋뱀이 되셔서 달린 그 예수를, 바라보는 것밖에 너희는 아무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주와 심판의 죄가 되셔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그분이, 장대에 달리셨다고요. ‘그 사랑! 그 사랑을 너희가 정말 아느냐?’는 거예요. 하나님이 세상을 그토록 사랑하셨다! ‘이처럼’이란 말은 바로, 그 말이라고요. 하나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그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끊어내셨다고요. 끊어내셔서, 그 저주와 심판의 장대에다가 달아버리셨단 말이에요.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구원을 선물해 주시기 위해서! 그 사랑을 입은 분들이 여러분이란 말이에요. 그 사랑을 입은 분들이! 성경은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다가 우리가, 무얼 보탠다고 하는 거예요? 우리의 행위요? 고행(苦行)이요? 선행(善行)? 이런 것들을 그 구원에다가 우리가 보탤 수 있단 말이에요? ‘0.1%만이라도 너희들이 이마만큼은 좀 해줘야 되겠다.’라고 하나님이 요구하셨다면, 우리는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지옥갈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 우리에 대해서 너무 잘 모르고 계세요. 우리가 얼마만큼 큰 죄인이라는 걸, 여러분 아셔야 돼요. 그래서 아마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죄 속에다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도, 계속 놔두시는 거예요. 너희들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면, 거기에서 출발하지 못하면, 기독교는 있을 수가 없어요.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그 사랑이, 그 은혜가, 얼마나 큰 건지 어떻게 알아요? 여러분! 실패하고 좌절하면서, 거기에 머물러 있지 말고, 여러분을 보세요. 여러분이 누구이신가를! 그 죄인! 우리는 그런 죄인이에요.
그런데 그들이 당시에 불뱀에게 물리면, 술과 고약을 썼었다 그래요. 당시에는 독뱀에게 물리면, 술은 상처를 소독하는 거죠? 그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사마리아인이, 그 강도 맞은 자를 술로 소독하잖아요? 술로 소독하고 고약으로 빨아냈다고요.
그런데 이 민수기 21장에서, 그들이 술과 고약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까? 그들은 인간적인 처방을 즉시 중단하고, 하나님께 돌아서서, ‘하나님! 고쳐주십시오!’ 했다고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거예요. 인간이 할 수 있는 처방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다! 우리는 선행하자! 헌금 많이 해라!’ 고행, 수행, 삼보 일배! 이런 것으로 해탈할 수 있고, 천국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고요. 몰몬이 그렇죠? 여호와증인들이 그렇죠? 안식교도 그래요. 가톨릭도 마찬가지예요. ‘내탓이요! 내탓이요!’ 그것이 다 그 이야기라고요.
우리가 보시를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 하면, 그것이 우리의 죄와 상쇄되고 어떤 때는 소멸된다. 성경은 그것을 거부하는 거예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처방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내려진다 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선행을 쌓고, 아무리 여러분이 고행을 쌓는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이미 독뱀에 물렸기 때문에, 그 독은 계속 퍼져가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두 번째로, 그들은, 뱀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 이제 지금 불뱀이 왜 왔는가? ‘아! 우리가 이렇게 원망하고 불평했다.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우리가 제대로 못살았기 때문에, 불뱀이 왔구나!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의 행위를 좀 개선하자! 도덕적인, 윤리적인, 어떤 그런 갱신! 앞으로 잘 살자! 우리 법 잘 지키면서 잘 살자!’ 그러한 것이 우리를 건져 낼 수 없다고요.
지금부터 잘 사는 거 좋아요. 죽을 때까지 예수님이 원하는 그대로 다 살아 냈다고 하자고요. 그전에 지은 죄는 어떻게 할까요? 전도서에서 분명히 하나님 말씀하시죠? ‘내가 이미 지난 것도 다 찾는다.’ 내가 이미 지난 것도 다 찾으신다, 그래요. 그러면 옛날에 지은 죄는 어떻게 할 거예요? 그거는 해결 못해요.
제가 장사를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몇 개월 동안 외상값을 안 갚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오더니, ‘내가 당신과 다시 거래를 하고 싶은데, 이제부터 내가 꼬박꼬박 물건 값 다 갚을 테니까, 지금부터 거래하자! 그전에 있었던 건 다 없었던 걸로 하자!’ 그러면 거래 하시겠습니까? 외상값 가져와서 다 갚아야죠. 그래야지 그 다음부터 정상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거라고요.
‘지금부터 우리가 경건하게 깨끗하게 잘 살자! 그러면은 우리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안 된다고요. 그것으로도 우리는 그 뱀독을 막을 수 없는 거예요. 도덕적인 개선! 그런 것이 우리를 뱀독에서 건져줄 수 없다고요.
그리고 불뱀에 물린 자들더러, 그 불뱀과 맞서서 싸우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우리가 사회정화하고, 또 그 죄와 죄를 양산해 내는 무슨 유흥업소! 이런 거 많이 없애고 그러면, 그러면은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행복한 지상낙원이 올 수 있을 줄 알아요.
그래서 기윤실! 기독교 윤리 실천 운동본부! 길기도 해요. 아주 다음에 무슨 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이래서 촛불 들고 맨날 나가죠? 광화문에! 나가서, ‘사회를 깨끗이 만들자! 공직자의 비리를 없애자!’ 그렇게 해서 이 땅에, 정말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올까요? 아니, 그분들이 한 일이 좋은 일들이 많아요. 많지만 이런 엉뚱한 엉터리 신념을 심어줄 수 있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할지라도, 체제를 바꾸고 지도자를 바꾼다 할지라도, 여러분! 이 땅에 지상낙원은 올 수가 없어요. 이념! 사상! 체제! 지도자! 그게 바뀐다고 행복한 나라가 되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이 민주주의를 위해서, 투사가 되어서, 무슨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몸을 던져서 분신을 하고 ,자살을 한다 할지라도, 그렇게 돼서 잠깐 ‘그래, 우리가 잘못 했다!’ 그러면서 무슨 뭐 보안법을 폐지하고, 뭘 하고 한다 할지라도, 이 땅에 지상낙원은 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북한의 김정일 모가지만 하나 딱 따면, 북한이 그리스도의 백성들로 꽉 찰 거 같아요? 거기 기독교인들이 갑자기 많아질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네로 황제 때 하고, 로마의 국교로 기독교를 인정했던 콘스탄틴 대제 때 하고, 언제가 더 신실한 기독교인이 많았을 것 같습니까? 네로 황제 때가 더 많았어요.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인정하는 그 순간부터, 기독교는 타락하기 시작했다고요. 썩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삶속에, 적당한 텐션(tension)을 두시는 거예요. 우리의 힘으로, 절대로 그 구원에, 하나님나라의 완성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것과 싸우는 게 아니에요. 기독교의 본질은, 교회의 거룩이라고요.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이 원하는 그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면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거예요. 그것이 전도이며, 선교이지! 체제를 바꾸고, 지도자를 갈아엎는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은 이 땅에 오질 않아요.
그리고 하나님은 놋뱀 조각을 지니거나, 그 놋뱀을 단 그 장대의 조각을 지니면, 뭔가 효험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시지도 않았어요. 보통 십자가를 많이 걸고 다니죠? 차에다가도 십자가 많이 걸고 다니고, 뒤에다가 물고기 마크도 하고 다니고, 성경책을 창문 아래다가 항상 놓고 다니고 그러면은, 뭔가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거 같다고 이야기한다고요. 귀신이 자기에게 범접을 못한다. 이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여러분! 정말 십자가를 드라큘라한테 딱 했는데, 드라큘라가 녹을 것 같아요? 거기에 담겨진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고, 아무리 갖다 대 보세요. 십자가 뺏어서 두들겨 팰 거예요. 아마! 성경에 나오잖아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러가라!’ 그랬더니, 귀신이 어떻게 해요? ‘내가 바울도 알고, 예수도 아는데, 넌 누구냐?’ 하면서 옷을 다 벗기고, 두들겨 패잖아요? 귀신이!
십자가 목걸이 하려면, 차라리 이렇게 뒤로 돌려서, 그러면 십자가를 지고 다니는 거나 되죠. (하하하) 그런 것이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그 담긴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요,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무용지물이에요. 무용지물! 성경책을 뒤에다 갖고 다니면, 차사고가 안 난다고요? 저는 대한 성서공회 찬송가, 성경책 나르는 그 트럭이, 엎어진 것도 봤어요. 성경책이 막 여기저기! 막 난리가 났더라고요. 거기에는 효험이 없어요. 그 안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의 의미를 아셔야 돼요.
제 음악하는 후배 중에 기타 치는 김태원이라는 후배가 있어요. 그 친구가 옛날에 대학교 때, 자기 그 후배라고 수원전문대 다니고 있었던, 그 이승철이라는 애를 데리고 왔었어요. 그놈 뭐 워낙 잘생겼고, 노래도 워낙 잘하더라고요. 참 잘될 것이라고 했는데, 잘 되더라고요.
그런데 대마초 사건으로 감옥에 갔어요. 거기서 이 친구가 뭘 구했냐하면, 그때 당시에, 서진 룸살롱사건으로 사형을 받았던, 조폭이 갖고 있던, 염주를 하나 구했어요. 여러분! 세상에서는요, 그러한 미신이 있어요. ‘사형수가 갖고 있었던 그 염주를 몸에 지니고 있으면, 만사형통이다!’라는 그런 미신이 있다고요.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그거를! 감옥에서 그거 하나 얻어갖고 나와서!
그런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진짜 잘 돼요. 아니, 데뷔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계속 걔는 꼭대기에만 있어요. 여러분! 정말 여러분의 삶에 도움을 받고 싶으면, 그런 걸 어디 가서 하나 구해보세요. 차라리! 그럼 부적이죠? 십자가는요, 그러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그런 거를 원하시고, 십자가를 달고 다닌다면, 그 염주가 더 효험이 있는 거 아니에요? 그거 오죽하면 예수님이 죽으시고 지금까지, 진짜 예수님이 달리셨던, 십자가조각이라고 팔았던, 그 나무를 다 합치면요, 성당을 네 개나 다섯 개 지을 수 있는 분량이래요. 그 나무가! 얼마나 사람들이 그걸 찾아다녔으면, 그렇게 속여서 팔았겠어요? 이게 진짜 예수님이 달렸던 십자가! 그거 있으면 뭐 할 거예요? 그걸로? 그게 여러분 구원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천만에요!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하나님은 그 놋뱀을 붙들고 기도하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어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그러한 요구도 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고요. 구원이 뭔지도 모르는데, 무슨 불뱀에다 대놓고 기도를 해요? 그냥 믿음으로 바라보는 거예요. 믿음으로! 그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해 주신다고요. 그러니까 믿음으로 밖에, 구원은 우리에게 올 수 없다는 거예요.
기도원 같은데 가면, 왜 십자가 붙들고 기도하는 아줌마들 있잖아요? ‘저기는 내 자리야!’라고 저기서부터 그냥 뛰어 와서 그거 붙들고 기도해야, 인제 저 응답이 잘된다고! 그래서 제가 저 꼭대기에다가 달아놓은 거예요. 저거 좀 내려야, 내려놓으면, 저거 붙든다고 싸울까봐! 오죽하면 이 사람들이요, 히스기야 왕 때까지, 이 놋뱀을 그 때까지, 애지중지 갖고 다녔어요. 거기에 대놓고 분향을 했다니깐요. 그때까지! 그래서 히스기아 왕이 그 때에서야, 종교개혁을 하면서, 그때에서야 불살라 버렸다고요. 그 놋뱀! 거기에 무슨 효험이 있는 줄 알고! 십자가 들고 다니면 무슨 효험이 있는 줄 알고! 오직 믿음! 믿음! 그거 밖에는 없어요.
지금 제가 열거해 드린 이 많은 노력과, 이 행위들! 인간들이 여태까지 하고 있는 일들 아닙니까? 그거는 정말 그 질병의 원인, 이 질병의 근원과, 이 질병의 증상을 헷갈리고 있는 거예요. 질병은 그 원인이 있다고요. 그런데 지난주 병원에 갔는데, 제가 폐에 염증이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기침을 제가 하도 많이 하고, 목에서 피가 나오고, 막 열이 많이 나서, 병원에 갔는데, 저는 그게 감기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제가 열이 날 때는 해열제를 먹었어요. 몸이 막 쑤실 때는 진통제를 먹었다고요. 기침이 날 때는 감기약을 먹고 잤다고요. 그런데 그 때뿐이에요. 계속 되어져요. 그 증상은! 원인은, 폐에 있었다고요. 이건 고쳐야 되는 거예요. 이거는! 그래야지 열도 없어지고, 기침도 안 나오고, 몸도 쑤시지 않는 거예요.
여러분! 여러 가지 증상들이 많이 있어요. 이 사회에! 그것들을 하나, 하나, 반창고 붙이고, 뭐 해열제 먹고, 진통제 먹으면서, 그 노력도 헛된 것은 아닐 거예요. 그러나 그것이 있게 된, 이 죄라는 것이 해결되어지지 않으면, 이 땅에 어떻게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오겠어요? 죄의 문제를 해결하셔야 되는 거예요. 그 죄라는 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가?
그것이 해결되어진 것이 바로, 저주와 심판의 그 장대에 죄가 되셔서, 그 하나님이신 그분이 달린 그 사건! 그것을 믿는 것 밖에는 없다 말이에요. 그것을 지금 성경은 우리에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 바로 그 사랑!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셨다.’라는 바로 그 말이라고요. 우리가 뭔가 좀 잘했기 때문에, 뭔가 좀 고급한 수준에 신앙인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를, ‘자, 이제 됐다. 그 정도면 됐다!’라고 구원하신 게 아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아직 하나님의 원수였을 때에’라고 로마서가 이야기하잖아요? 원수였을 때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죠? 의인을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건, 뭐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요. 저도 우리 후배와 선배들이, 그렇게 뭐 할복을 하고, 휘발유를 붓고, 몸에다가 불을 대는 모습을 수없이 많이 봐 왔으니깐요. 그러나 원수를 위해서 죽는다는 것은, 우리 이성으로는 생각을 할 수 없는 거예요. 우리 이 이성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그런 어마어마한 그 사랑이라고요!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신 거예요. 세상에 속해서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그 중에서, 건져 내어진 그 세상! 그게 바로 여러분이란 말이에요. 그 사랑! 그것을 바로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의 실패와, 우리의 약점과, 심지어 우리의 죄 까지도, 그 하나님은 품어 안고 계시다고요. 여러분이 조금 실수하고, 여러분이 실패한다고 해서, 그냥 와서, ‘이 나쁜 놈! 그럴 수 있냐?’고 패는 분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걸 설득하고, 징계하셔서, 고치셔서, 끝까지 아들로 만들어 가시는 분이, 바로 그 하나님시라 말이에요.
우리 아내가 처음 저를 만났을 때 저한테 제일 처음 한 얘기가 뭐냐 하면, 자기는 ‘다리 짧고, 머리 큰 사람이 제일 싫다!’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못 일어났잖아요? 일어나면 바로 들키니까! 그런데 저를 사랑하게 됐어요. 우리 집사람이! 그러니까 TV에 무슨 탤런트들 나오잖아요? 머리 짧고, 다리 길고, 그런 사람들 나오면, 저한테 얘기해요. ‘오빠!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 긴 다리를, 저 부실한 긴 다리를 갖고, 이 인생을 헤쳐 나가냐?’는 것이죠. 오빠의 다리는 짧고 굵기 때문에, 안정감이 있다는 거예요. 저 작은 머리에 뭐가 들어 있겠냐는 것이죠? 머리는 그래도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군대 가서 철모가 맞는 게 없어서 말이죠? 제가 특별 주문했다니깐요. 그 정도는 되어야, 그 안에 뭔가 들어있는 게 있을 거 아니냐? 말이에요.
사랑이라는 건 그런 거예요. 약점까지도 사랑해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 안고 계시다고요. ‘내가 혹시 이래서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실 지도 몰라! 나에게 쏟아 부어놓은 이따만한 사랑이 요만하게 줄어들었을지도 몰라!’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동일한 사랑으로 여러분을 사랑하신다고요. 언컨디셔널 일렉션(unconditional election)! 조건 없이 사랑하신다고요.
여러분! 그러면요 그런 큰 사랑을 받은 우리인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이 땅에서는, 목사는 대우를, 대우를 참 잘 받아요. 대통령보다도, 저는 목사가 대우를 더 잘 받는다고 생각해요. 대통령이나 어떤 그런 상위 권위자들이 하는 대우는, 가식적일 때가 있어요. 때로는요! 그 사람한테 혹시 혼나지 않을까, 아니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해서, 그냥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대우일 수 있어요. 목사에게는?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목사가 새벽기도 끝나고,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그렇게 궁금하셔서, 설렁탕도 하나 사다놓고 가시고, 죽도 쒀놓고 가시고, 누룽지도 끓여놓고 가시고. 이런 대우가 어디 있어요? 세상에!
그런데 하나님은 왜 그런 대우를 못 받으시냐 말이에요? 제가 그렇게 하신 분들을 뭐라 그런 게 아니라, 계속 하세요. 그런 거 좋은 거예요. 그런 건! 그런데 하나님은 왜 대우를 못 받느냐고? 이 시대에! 제가 가끔 목사들을 폄하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목사들을 대우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을 대우하는 자가 되어서, 그 다음에, 우리 형제와 자매를 돌아보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어떻게 대우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그분이 뭐가 필요하신 분이에요? 돈이 필요하신가요? 선물이 필요하신 분인가요? 그분이 일손이 딸리시는 분인가요? 어떻게 대우할 수 있어요?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살아내는 거예요. 그것밖에 없어요. 그분에게 우리가 하나님을 대우하는 방법은! 그분의 뜻대로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그분의 뜻대로 사는 거예요? 제가 마지막으로 그 대답을 해 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을 우리가 함께 읽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3-8) (표준새번역)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음행을 멀리해야 됩니다. 4 각 사람은 자기 아내를 거룩함과 존중함으로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5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과 같이, 색욕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6 또 이런 일에 탈선을 하거나 자기 형제자매를 해하거나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에도 말하고 경고한 대로, 주님께서는 이런 모든 일을 징벌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7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은, 더러움에 살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에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8 그러므로 이 경고를 저버리는 사람은, 사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는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뭐예요? 여러분이 거룩하게 살아주시는 거예요. 그것이 하나님을 대우하는 거예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알았잖아요? 그러면 우리 노력이라도 하자고요! 실패하더라도 그 방향으로 일어나셔야 되는 거예요. 그 방향으로! 하겠다는 것이죠. 우리가 의지를 발동해서 한번 해 보자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을 대우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세상에 속해서, 그 영원한 불못으로 떨어져 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 중에 어떠한 한 무리! 그 교회를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인 그분이 장대에, 저주와 심판의 자리에, 죄가 되셔서 달리신,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는 그 사랑에 반응하는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라는 말의 진의인 것입니다.
(25) 神は世をこのように愛された(ヨハネ3:16)
さあ、皆さん。皆さんが今日読まれたこの本文は、とてもよく知られている有名な箇所ですよね。
私たちは子どもの頃からこの節を使って歌も作って歌ってきましたし、何千回も歌ってきた歌でもあります。
(ヨハネによる福音書 3:16)
「神は、そのひとり子をお与えになったほどに、世を愛された。…」
あるお寺に行ったとき、そこにもこの言葉が貼られていました。クリスマスの頃になると、「神は世をこのように愛された」という言葉が、
お寺にまで貼られるほど本当に有名な節なのです。イエスを信じていない人たちでも、ほとんどの人がこの節を知っているのです。
しかし、この節は大きく誤解されたまま人々に伝えられているため、今日はそれを皆さんにきちんと説明したいと思います。
私は以前、「새벽이슬(サイビョクイスル)」青年たちの修養会に講師として行ったことがあります。
何回目だったかは覚えていませんが、そのときユンジという子どもが私のところに来てこう尋ねたことがありました。
「牧師先生。以前いた教会のある牧師が、『神は全世界を愛されたので、全世界のためにイエス・キリストを死なせたのだ』と言っていました。それは正しいのですか?」
私たちの青年たちはその話がどういう意味かよく理解していますが、最近は変なことを言う人たちが多いので、皆さんがそうした内容に惑わされるかもしれないと思い、今日この説教をすることにしました。
では、まず私が漢詩を一つ朗読します。この話が何を意味しているのか、皆さん当ててみてください。
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
燭涙落時民涙落
歌聲高處怨聲高
これはどういう意味でしょうか。これは『春香伝』に出てくる言葉です。この言葉を、もし皆さんが変学道(ピョンサト)の宴会の席で聞いて意味が分からなかったら、皆牢屋に入れられることになります。ある者は鞭打たれ、ある者は拷問を受けるでしょう。
この言葉は、重税と搾取を続けていた変学道の宴会の席に、御史(暗行御史)である李夢龍が現れて、
「お前たち、そのように生きてはいけない。悔い改めよ」と一声叫んだものです。
「金樽美酒!その金の杯に入っている美味しい酒は、百姓たちの血であり、玉盤佳肴!その玉の皿に並べられたご馳走は、
百姓たちの恨みである。蝋燭の涙が落ちるとき、民の涙も落ちている。そして歌声が高く響くその場所では、
民の怨みの声も高く響いているのが聞こえないのか!」
この意味を理解して震えながら家に帰った人たちは助かりました。しかし意味を理解できず、「金樽美酒!玉盤佳肴!つまり『もっとおいしく食べろということだろう』」などと言って宴会の料理ばかり見ていた人たちは、皆大変なことになったのです。
皆さん、神は聖書を通して絶えず私たちにメッセージを送っておられます。
「私はもうすぐ行く。あなたがたは悔い改めよ。」
神はそのメッセージを聖書を通して絶えず私たちに投げかけておられるのです。
しかし人々は、その宴会の料理である「金樽美酒・玉盤佳肴」にばかり目を向け、そのメッセージを聞こうとしません。聞いてはいても、
全く違う意味で受け取ってしまう人たちがいるのです。
「この酒や肉やご馳走を、イエスを信じることで私たちに与えてくださるのが聖書の内容だ」と教える人たちがいて、そう理解する人たちもいるのです。その人たちも大変なことになります。
聖書をたくさん読んでいる人もいます。中には暗記している人も見ました。永登浦(ヨンドゥンポ)刑務所にいた人の中には、あまりにすることがなくて、聖書を最初から最後まで暗記してしまった人もいたのです。
しかし、それを暗記していたとしても、その内容が何を語っているのか正しく理解していなければ、何の意味もありません。
むしろ危険なのです。
特にこのようによく知られているヨハネ3章16節が、人々に誤解されたまま理解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
ですから皆さんは今日これをよく理解して帰り、他の人にもこの節の真の意味を正しく伝えてください。
この節は、シカゴのムーディー教会で、ムーディーが説教しているところに、ムーアハウスというイギリスの説教者が来て、
1か月間この節だけを使って説教したほど、非常に深い内容が含まれている箇所です。
それほど重要な箇所なのですから、私たちは正しく理解する必要があります。
まず16節に出てくる「世」という言葉を理解してみましょう。
この「世」という言葉の理解については、教派の間でも大きな違いがあります。
例えばカルナーのような普遍救済論者(ユニバーサリズム)は、この「世」をそのまま「不特定多数のすべての人間」と解釈します。
つまり
「神はすべての人間のためにこの地に来られた。だから誰も地獄に行かず、皆が天国に行く」
と主張するのです。
さらにそこから「魂消滅説」にまで発展します。
「天国に行く魂は天国に行くが、天国に行けない魂はただ消滅してしまう」
という考えです。実際、セブンスデー・アドベンチストもそのように主張しています。
もし本当にそうなら、どれほど良いことでしょうか。
「愛の神が、自分が創造した被造物が地獄で苦しむのを見ていられるはずがない。それは神の本質、神の属性と矛盾する」
彼らはそう主張します。
では本当にそうなのでしょうか。少し見てみましょう。
第二に、アルミニウス主義者たちはこう言います。
「神はまず全人類のために御子を死なせ、その後でそれを信じる者を救い、信じない者を捨てる」
つまり神はすでに全人類のために御子を死なせておられ、人間には「先行的恩恵」と呼ばれる能力があるので、自分で信じることも信じないこともできる自由意志があるというのです。
しかしそれは、私たちが「罪と過ちの中で死んでいた者である」という教えを無視するものです。
彼らは、人間には信じる能力があり、さらにイエスを信じた後も、自分の努力によってキリストの満ち満ちた身丈にまで成長し、完全な聖化にまで到達できると教えます。
これがアルミニウス主義の主張です。
この二つの立場の人々は共に
「神はイエス・キリストを全人類のために与えた」
と主張しているのです。
では、ヨハネ3:16の「神は世をこのように愛された」の「世」は、本当に「全人類」を意味するのでしょうか。
新約聖書には「世」という言葉が185回も出てきます。そのうち105回はヨハネの書物に出てきます。
私は昨日、この「世」という言葉が出てくるすべての箇所を調べて読んでみました。するとヨハネはこの「世」という言葉を二つの意味で使っていることが分かったのです。
昨年亡くなられたジェームズ・ボイス牧師の注解と説教を調べてみましたが、彼も同じ結論に至っていました。
ヨハネが使った「世」という言葉の原語は、ギリシャ語の「コスモス(cosmos)」です。
コスモスとは何でしょう。英語では「宇宙」という意味ですよね。
もともとこの言葉の意味は「装飾」でした。つまり、よく整えられ、美しく調和しているものという意味です。
そこから英語の「cosmetic(化粧)」という言葉も生まれました。
宇宙とはまさにそのように、神によって調和と秩序をもって美しく造られたものです。
だからこの言葉が宇宙を指すようになったのです。
私が大学一年生の時、本当に神がいないことを証明したくて、東洋哲学を熱心に勉強したことがあります。
高校まではとても熱心に信仰生活をしていました。高校三年の時など、ほとんど教会に住んでいるような生活でした。
しかし大学に入ると突然自由が与えられました。やりたいことはたくさんあるのに、イエスを信じているためにできないことが多すぎたのです。
神がいないことさえ証明できれば、好きなように生きられると思ったのです。
そこで当時「宗教多元主義」の本を読み、東洋哲学やさまざまな宗教を研究しました。
もし他の宗教に真理があるなら、「なぜ必ずイエスを信じ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と主張するつもりでした。
そこで周易、老子、荘子などから勉強を始めました。
その宇宙の中で、人間が最も関心を持っている場所はどこでしょうか。地球です。地球です!
その地球に生きているすべての人々を指して、聖書は「世」と呼ぶのです。ですから聖書で「世」と言うとき、それはすべての人々、
すなわち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ず、罪の中に落ちて永遠の地獄へと向かってしまう人々を指して「世」と言うのです。
ですから私たちも今日よく言うでしょう。「世に流されるな!」とか「世のものを追い求めるな!」と言うでしょう?
つまりキリストを信じ、キリストに属する人々と対比して、その反対側にいる人々を「世」と呼ぶのです。
この地球、この地に生きている、罪の中に投げ込まれているすべての人間を指して「コスモス」「世」と呼ぶのです。
聖書はそう言っているのです。
このようなコスモスという言葉の一般的な用例のために、私たちはヨハネの福音書3章16節を誤解してしまうのです。
もし「世」という言葉が、アダム以降この地に生まれたすべての人類を意味するのなら、普遍救済論者やアルミニウス主義者たちの言っていることは正しいことになります。
「神は世をこのように愛された。だからすべての人類のためにイエスを送って死なせた。」
そういうことになります。
しかし私はこれに反論してみましょう。
ヨハネが「世」という言葉を使うとき、それは必ずしも「すべての人類」を意味してい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
ヨハネはこの言葉を二つの意味で使っています。
一つ目は「神に反対する堕落した世界」という意味です。
ヨハネの福音書をよく見てください。
ヨハネ15:18
「もし世があなたがたを憎むなら、あなたがたよりも先に私を憎んだことを知りなさい。」
ここで言う「世」は、神に敵対する世界です。
ヨハネ17:9
「私は彼らのために願います。世のためではありません。」
もし「世」がすべての人間を意味するのなら、イエスは「世のためには祈らない」と言ったことになります。
これは明らかに違う意味で使われています。
ヨハネ第一2:15
「世も、世にあるものも愛してはいけません。」
ここでも「世」は神に敵対する価値観の体系を意味しています。
このようにヨハネが言う「世」とは、罪に支配された人間の世界、神に反逆する世界を意味する場合が多いのです。
しかしもう一つの意味があります。
それは「人種や民族の区別なく、神が救われる民を持っている世界」という意味です。
つまり、ユダヤ人だけではなく、異邦人の中にも神の民がいるという意味で「世」という言葉が使われることがあるのです。
当時のユダヤ人は、自分たちだけが神の民だと思っていました。救いはユダヤ人だけのものだと考えていたのです。
しかしヨハネは言うのです。
神はユダヤ人だけを愛されたのではない。神はユダヤ人だけのために御子を与えたのではない。神は「世」を愛された。
つまり、異邦人の中にも神の民がいるという意味です。
ですからヨハネ3:16の「世」とは、「すべての個人」を意味する言葉ではありません。
もしそうだとしたら、大きな問題が生じます。
神がすべての人を同じように愛しているなら、なぜある人は救われ、ある人は滅びるのでしょうか。
神の愛が失敗したということになるではありませんか。
神がすべての人を救おうとして御子を死なせたのに、多くの人が地獄に行くのなら、それは神の計画が失敗した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しかし神は失敗する方ではありません。
神は全能であり、神の計画は必ず成し遂げられるからです。
もしイエス・キリストがすべての人の罪を本当に贖ったのなら、その人たちは必ず救わ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
神が罪の代価をすでに支払ったのに、再びその罪のために人間を地獄に送るなら、それは二重の処罰になります。
神はそのような不正義を行う方ではありません。
ですからキリストの十字架は、ただ可能性を開いたのではありません。
キリストは実際に自分の民を救ったのです。
マタイ1:21
「この方はご自分の民をその罪から救うからです。」
「救うかもしれない」ではありません。
「救う」のです。
ヨハネ10章でもイエスはこう言われました。
「私は羊のために命を捨てる。」
イエスは「狼のために」死ぬとは言いませんでした。
羊のために死ぬのです。
ですからヨハネ3:16の意味はこうです。
神はこの堕落した世界の中から、すべての民族、すべての国民の中から、ご自分の民を愛された。その愛のゆえに御子を与えられた。
そしてその御子を信じる者は誰でも滅びることなく永遠の命を持つのです。
ここで重要なのは「信じる者」です。
神の民は必ず信じるようになります。
なぜなら神が彼らに信仰を与えるからです。
人間の自由意志によって救われるのではありません。
神の恵みによって救われるのです。
これがヨハネ3:16の本当の意味です。
神の民は必ず信じるようになります。なぜなら、神が彼らに信仰を与えるからです。
人間の自由意志によって救われるのではありません。神の恵みによって救われるのです。
これがヨハネの福音書3章16節が語っている本当の意味なのです。
皆さん、もし神が全人類を同じように愛しておられるのなら、この世は今どうなっているはずでしょうか。
すべての人が救われ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はずです。
神が全人類の罪の代価をすでに御子の十字架で支払われたのなら、その罪の代価を再び人間に要求することはできません。
もしそれでも地獄に行く人がいるなら、それは神が同じ罪を二度罰していることになります。
十字架でも罰し、地獄でも罰するということです。
しかし神はそのような不正義を行う方ではありません。
ですから十字架は「救われる可能性」を開いた出来事ではありません。十字架は実際に神の民を救った出来事なのです。
イエス・キリストは十字架で、「救われるかもしれない人々」のために死んだのではありません。
「必ず救われる人々」のために死なれたのです。
だからイエスは十字架の上でこう言われました。
「完了した。」
もし救いがまだ人間の選択にかかっているのなら、イエスは「完了した」と言うことはできません。
人間が信じるかどうかによって救いが決まるのなら、十字架の働きはまだ終わっていないことになるからです。
しかしイエスは「完了した」と宣言されました。つまり救いは十字架で完全に成し遂げられたということです。
皆さん、聖書をよく見てください。
ヨハネ6:37
「父が私に与えてくださる者は皆、私のもとに来ます。」
ここではっきりと言っています。
父が与えてくださる者は「来る」のです。
「来るかもしれない」ではありません。「必ず来る」のです。
さらにヨハネ6:39ではこう言われています。
「私に与えてくださった者を、私は一人も失うことがない。」
もし救いが人間の自由意志にかかっているのなら、この言葉は成立しません。人間が途中で信仰をやめてしまう可能性があるからです。
しかしイエスは言われました。
「私は一人も失わない。」
これは何を意味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
救いは神の主権によって完成されるということです。
神が選び、神が呼び、神が信仰を与え、神が最後まで守り抜かれるのです。
これが聖書が教えている救いです。
皆さん、もし救いが人間の決断にかかっているのなら、天国に行っても私たちは永遠に不安を抱え続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
「もしかしたら自分は信仰を失うかもしれない。」
「もしかしたら自分は救いから落ちてしまうかもしれない。」
そのような不安を持ちながら永遠を過ごすことになります。
しかし聖書はそのような救いを教えていません。
聖書が教えている救いは、神が始めた救いは神が最後まで完成させるという救いです。
ピリピ1:6
「あなたがたのうちに良い働きを始められた方は、キリスト・イエスの日までにそれを完成させてくださると、私は確信しています。」
救いを始めたのは人間ではありません。神です。
だから完成させるのも神です。
ローマ8:30
「神はあらかじめ定めた人々を召し、召した人々を義とし、義とした人々に栄光をお与えになりました。」
ここをよく見てください。
あらかじめ定めた人々は、必ず召されます。
召された人々は、必ず義とされます。
義とされた人々は、必ず栄光に至ります。
途中で脱落する人はいません。
ですからヨハネ3:16はこういう意味なのです。
神はこの罪に満ちた世界の中から、すべての民族、すべての国民の中にいるご自分の民を愛された。その愛のゆえに御子を与えられた。そしてその御子を信じる者は誰でも滅びることなく、永遠の命を持つ。
ここで「誰でも」という言葉がありますが、それは「すべての人」という意味ではありません。
「信じる者は誰でも」という意味です。
そしてその信仰さえも神の賜物なのです。
エペソ2:8
「あなたがたは恵みによって信仰により救われたのです。それは自分自身から出たことではなく、神の賜物です。」
信仰さえも神の贈り物です。
ですから救いは最初から最後まで神の恵みなのです。
これが福音です。
そしてこれが、ヨハネ3章16節が本当に語っている福音なのです。
皆さん!まず私は、普遍救済論者たちの意見を反論してみようと思います。本当に神が全人類のためにイエス・キリストを死なせたのだとしたら、地獄に行く人は一人もいないはずです。イエス様がすべての人間のためにこの地に来て死なれたのなら、地獄に行く人は一人もいないはずでしょう。
ところが聖書は地獄があると語り、「あなたがたはそこに行かないように気をつけなさい」と語っているのです。マタイの福音書23章13節を見ると、
(マタイ23:13-15)
13 偽善の律法学者たち、パリサイ人たちよ。あなたがたはわざわいだ。あなたがたは天の御国の門を人々の前で閉ざしてしまう。自分も入らず、入ろうとする人も入らせない。
14 (なし)
15 偽善の律法学者たち、パリサイ人たちよ。あなたがたはわざわいだ。あなたがたは改宗者を一人得るために海と陸を巡り歩くが、得たらその人を自分より二倍も悪いゲヘナの子にしてしまう。
このように天国と地獄について語っておられます。ルカの福音書13章28節を見ると、
(ルカ13:28)
28 アブラハム、イサク、ヤコブ、そしてすべての預言者が神の国にいるのに、あなたがたが外に追い出されているのを見るとき、
そこで泣いて歯ぎしりすることになる。
外に追い出され、そこで泣いて歯ぎしりする場所があるというのです。29節を見ると、
29 人々は東からも西からも、また南からも北からも来て、神の国の宴会の席に着くであろう。
宴会に参加する人がいる一方で、外に追い出されて、そこで泣きながら歯ぎしりする者たちがいると語っているのです。
マタイ7章には、「主よ、主よ、私はあなたの名によって預言し、牧師の働きをし、奇跡を行い、足の不自由な人を立たせ、力あるわざを行いました」と言う人が出てきます。すると主は何と言われますか。「不法を行う者たちよ、私から離れて行け!」と言われます。
どこへ行けというのですか。地獄へ行けということです。
そしてマタイ25章には有名な羊と山羊の裁きがあります。左側にいる山羊たちはどこへ行きますか。主は何と言われますか。
「悪魔とその使いたちのために用意された永遠の火に入れ!」と言われます。
このように聖書は明確に地獄があると語っています。また、金持ちと貧しいラザロの話でも、その金持ちはどこにいますか。
地獄にいるのです。
第一ペテロ1章19節を見ると、「イエスが、獄にいる霊たちに宣べ伝えられた」という言葉があります。その獄とはどこでしょうか。
地獄です。カトリックはこの言葉を使って、「ほら見なさい。死んで地獄にいる人たちにも天国へ行く機会がある」と教えます。
しかしこの箇所については、後で時間を取って詳しく説明します。この箇所はそのような意味ではありません。
とにかく地獄は存在します。そして皆さんにお配りしたこのウェストミンスター信仰告白を見てください。
ウェストミンスター信仰告白とは、「私たち長老教会の信徒が信じている聖書はこのような内容である」ということを最もよくまとめたものです。
32章、33章を見ると、「地獄は存在する。死後の世界は存在する」と聖書が語っていることを、聖書の箇所を並べて説明しています。
32章1項を一つ読んでみます。
人間の体は死後に土に帰って朽ちるが、魂は不滅の本質を持っているため、それを与えた神のもとへすぐに帰る。
義人の魂は死ぬ瞬間に聖さにおいて完全にされ、最も高い天国に入り、そこで光と栄光の中で神の御顔を仰ぎ見ながら、体の完全な贖いを待つ。しかし悪人の魂は地獄に投げ込まれ、そこで苦しみと暗黒の中に留められ、最後の日の裁きを待つのである。
体から離れた魂が行く場所は、この二つ、すなわち天国と地獄以外に聖書は何も認めていない。煉獄のようなものは存在しない。
存在しないのです。地獄と天国だけなのです。九泉をさまよう霊、幽霊などというものはありません。
人は死ねば必ず天国か地獄へ行くのです。皆さん、そのようなものにだまされないでください。家に帰ってよく読んでみてください。
私たちの青年たちにはこのウェストミンスター信仰告白を一冊ずつ渡しましたが、必ず読まなければなりません。
皆さん、自分が何を信じているのかを知っ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次にアルミニウス主義者たちへの反論をしてみましょう。彼らは先ほど言ったように、神はすべての人類のためにイエスを送って死なせ、そのイエスを信じる能力が人間にあるので、信じれば救われ、信じなければ捨てられると教えます。
だから彼らは非常に熱心です。自分たちにその能力があると信じているからです。彼らはイエスを信じて救われた後も、熱心に生きなければ神の気に入らず、救いから脱落する可能性があると教えます。「聖徒の堅忍(perseverance of the saints)」など全く認めません。
しかし私たちはこう教えます。神は一度救った者を、最後までその激しい愛と固い意志によって聖なる者にし、天国へ導かれると。
彼らは違います。「いや、その人が嫌だと言えば、救われた人でも捨てられる」と教えます。
しかしイエスがすでに罪の代価をすべて支払ったと言うのなら、なぜ私たちにまた何かの代価を要求するのでしょうか。
父が借金を全部返したのに、主人が「お前も払え」と言うようなものです。
その血の価値はそんなに軽いのでしょうか。イエスはこの世のすべての罪を背負って死なれたのです。
なぜそこに人間の行いが加わるのでしょうか。アルミニウス主義は本当に理屈に合いません。
もし誰一人信じなかったらどうなるのでしょうか。イエスは無駄死にしたことになります。
全知全能の神がそんな無計画なことをするでしょうか。
神は創世の前から完全な計画と予定を持って世界を造り、人間を造り、十字架を立てられたのです。誰のためですか。
この世界に属して永遠の火に入るしかなかった人々の中から、ある者たちを救い出すためです。
その神の民がこの地にいるから、彼らを救うためにイエスは来られたのです。すべての人のためではありません。
聖書はこう言っています。
(ヨハネ17:6,9)
6 世の中から私に与えてくださった人々に、私はあなたの御名を現しました。
9 私は彼らのために祈ります。世のためではありません。あなたが私に下さった人々のためです。
つまり「世の中から与えられた者」のためです。
(ヨハネ17:14-16)
14 私があなたの言葉を彼らに与えたので、世は彼らを憎みました。
15 私が願うのは、彼らを世から取り去ることではなく、悪から守ることです。
16 私が世に属していないように、彼らも世に属していません。
イエスの関心は世界全体ではありません。世から救い出されたある群れにあります。
(ヨハネ15:19)
19 あなたがたが世のものであったなら、世は自分のものを愛したでしょう。しかしあなたがたは世のものではありません。私が世から選び出した者だからです。
では「神は世をこのように愛された」の「世」とは何でしょうか。
ヨハネは「世」という言葉を二つの意味で使っています。
一つは罪の中にあるすべての人々。もう一つは、その世の中から救い出された者たち、すなわち教会です。
つまり「神は世をこのように愛された」とは、「滅びるしかなかった世の中から救い出された人々を神がこのように愛された」という意味です。
そしてその愛とはどれほど大きなものでしょうか。その愛の大きさを知るためには、まず誰が愛したのかを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誰でしょうか。
神です。
その神はどのようなお方なのでしょうか。
この天地、あの途方もなく巨大な宇宙、美しい宇宙を、ただ一言の言葉で創造されたその神が、その神が、私たちのような人間を愛してくださったというのです。そこから出発するのです。
その神が、この宇宙を一言で創造することのできる全知全能の神が、私たちを創造された。そこから出発しなければ、その愛の大きさを私たちは測ることができません。だからこそ神論(神についての理解)が重要なのです。
その神が私たちを愛されたのですが、どれほど愛されたのでしょうか。それを知るためには、14節と15節を一緒に読み、続けて16節も読まなければなりません。読んでみましょう。
(ヨハネの福音書 3:14-16)
14 モーセが荒野で蛇を上げたように、人の子も上げられなければならない。
15 それは、彼を信じる者がみな永遠の命を得るためである。
16 神は、実にそのように世を愛された。それは、その独り子をお与えになったほどである。それは、彼を信じる者が一人も滅びないで永遠の命を得るためである。
ここで、この二つの節には同じ分母があります。
「彼を信じる者が滅びないで永遠の命を得るためである」という部分です。15節も16節も同じ内容なのです。
「それは」という言葉が、前の節をすべて受けているのです。つまり、「彼を信じる者が永遠の命を得るようにするために、神は独り子をお与えになった」という意味です。
では、それはどういう意味でしょうか。
「モーセが荒野で蛇を上げたように、イエスも上げられる出来事」という意味なのです。つまり「このように」という言葉は、まさに14節の出来事を受けているのです。
では、その話とは何でしょうか。
民数記21章4節から出てきます。これを一緒に読んでみましょう。
(民数記 21:4-9)
4 民はホル山から進んで紅海の道を通り、エドムの地を回って行こうとしたが、道のために民の心は耐えられなくなった。
5 民は神とモーセに向かってつぶやいた。「なぜ私たちをエジプトから連れ出して、この荒野で死なせるのか。ここには食べ物も水もない。この粗末な食べ物はもういやだ。」
6 すると主は燃える蛇を民の間に送り、蛇は民をかんだので、イスラエルの民の多くが死んだ。
7 民はモーセのところに来て言った。「私たちは主とあなたに向かってつぶやき、罪を犯しました。主に祈って、
この蛇を私たちから取り去ってください。」モーセは民のために祈った。
8 主はモーセに言われた。「燃える蛇を作り、それを旗ざおの上に掲げよ。かまれた者はそれを見ると生きる。」
9 モーセは青銅の蛇を作って旗ざおの上に掲げた。蛇にかまれた者が青銅の蛇を仰ぎ見ると、生きた。
これが青銅の蛇の話のすべてです。
つまり、「神が世をこのように愛された」と言うとき、モーセが荒野で蛇を高く掲げたように、イエスがその柱に掛けられる出来事を指しているのです。
ここで蛇とは何を象徴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聖書では罪、罪人、そして罪の元凶である悪魔、サタンを象徴しています。
では青銅とは何でしょうか。裁きを象徴しています。黙示文学では裁きを表すときに青銅が使われます。
そして柱に掛けられるとは何でしょうか。申命記21章には「木に掛けられた者は呪われた者である」と書いてあります。
蛇、青銅、柱。
天地を創造された神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が、呪いと裁きの場所であるその柱に、罪となって、教会の罪となって、掛けられたのです。
そしてそれを見上げる者は癒されたのです。
これは何を意味するのでしょうか。
信仰によってしか、イエス・キリストがその呪いと裁きの柱に掛けられたことによって救われる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救いの物語なのです。
天地を創造された神が、この地に来て、十字架の呪いと裁きの蛇となって掛けられたのです。本来そこに掛けられるべきだったのは私たちでした。罪人である私たちが掛けられるべき場所に、神ご自身が掛けられたのです。その出来事によって私たちに与えられたものが救いです。これがキリスト教です。
青銅の蛇を掲げたからといって、そこからレーザー光線が出て人を癒したわけではありません。
つまり、信仰によってしか救われないということです。私たちは何もできず、ただそれを見上げるしかないのです。
私たちは罪と咎によって死んでいた者でした。「神よ、私を救ってください」とさえ求めることのできない者でした。
だからただ信仰によって見るのです。その信仰さえも神が与えてくださる賜物です。
したがって救いは、信仰によってしか私たちに来ないのです。
祈祷院のような所に行くと、十字架をつかんで祈っているおばさんたちがいるでしょう。
「そこは私の場所よ!」と言って、向こうから走ってきて、それをつかんで祈らないと祈りがよく聞かれると思っているんです。
だから私はその十字架をいちばん上に取り付けておいたんです。あれを下ろしたら、あれをつかもうとして争いになるかもしれないからです。
人々はヒゼキヤ王の時代まで、その青銅の蛇を大切に持ち続けていたのです。そしてそれに向かって香を焚いていたのです。
それでヒゼキヤ王が宗教改革を行うとき、ついにそれを焼き捨てました。青銅の蛇に何か効き目があると思っていたからです。
十字架を持ち歩けば何か効き目があると思っているのと同じです。
しかし、ただ信仰です。信仰です。それ以外にはありません。
私が今挙げてきたこの多くの努力や行い。これは人間がこれまでずっとやってきたことではありませんか。
しかしそれは、病気の原因と症状を取り違えているのです。病気には原因があります。
先週、私は病院に行きました。肺に炎症があると言われました。私は咳がひどく出て、喉から血が出て、熱も高かったので病院に行ったのですが、私はそれがただの風邪だと思っていたのです。だから熱が出ると解熱剤を飲みました。
体が痛むと鎮痛剤を飲みました。咳が出ると風邪薬を飲んで寝ました。
しかしそれはその時だけです。症状は続くのです。原因は肺にありました。そこを治さ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そうすれば熱も下がり、咳も止まり、体の痛みもなくなるのです。
皆さん、社会にもさまざまな症状があります。それに対して一つ一つ絆創膏を貼ったり、解熱剤を飲んだり、鎮痛剤を飲んだりする努力は無駄ではない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それが生じた根本原因である罪が解決されなければ、この地にどうしてキリストの青い季節が来るでしょうか。罪の問題を解決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その罪がどれほど恐ろしいものなのか。その罪が解決された出来事こそ、呪いと裁きの柱に罪となって神ご自身が掛けられたその出来事です。それを信じること以外にはありません。聖書はそれを私たちに説明しているのです。
その愛、その愛こそが「神は世をこのように愛された」という言葉なのです。私たちが何かうまくやったから、私たちが高い信仰の水準に達したから、「もう十分だ」と言って救われたのではありません。ローマ書はこう言っています。
「私たちがまだ罪人であったとき、まだ神の敵であったときに」と。敵であったときにです。
愛する人のために命を捨てることは誰にでもできるかもしれません。正しい人のために、正義のために命を捨てることは、
決心すればできるでしょう。私も先輩や後輩たちが切腹したり、ガソリンをかぶって体に火をつけたりする姿を何度も見てきました。
しかし敵のために死ぬということは、私たちの理性では考えることができないことです。
私たちの理性では到達することのできない、とてつもない愛なのです。その愛で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
世に属して滅びるしかなかった者たちの中から救い出されたその世、それが皆さんなのです。
その愛、それを「このように愛された」と言われているのです。
私たちの失敗、私たちの弱さ、さらには私たちの罪さえも、神は抱きしめておられるのです。
皆さんが少し失敗したからといって、「この悪いやつ!」と言って殴るようなお方ではありません。
説得し、懲らしめ、正し、最後まで子どもとして育てていくお方、それが神なのです。
私の妻が初めて私に会ったとき、最初に言った言葉はこうでした。「私は足が短くて頭が大きい人がいちばん嫌いなの!」と言ったのです。だから私は立ち上がれなかったんですよ。立ち上がったらすぐばれてしまうからです。
ところが私のことを愛す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だからテレビに俳優が出てくるでしょう。
足が長くて頭が小さい人たちが出てくると、私にこう言うのです。「あの人たちはあんな長い頼りない足でどうやって人生を生きていくのかしら?」と。お兄さんの足は短くて太いから安定感があるというのです。そして「あんな小さい頭の中に何が入っているの?」とも言います。頭はこれくらいはないと、中に何か入っているとは思えないと言うのです。
愛というのはそういうものです。弱点まで愛するのです。
神はそれとは比べものにならないほどの愛で私たちを抱いておられるのです。
「もしかしたらこれで神が私を嫌いになるかもしれない。
あれほど大きな愛が少し小さくなってしまったかもしれない。」いいえ、違います。同じ愛で皆さんを愛しておられるのです。**無条件の選び(unconditional election)**です。条件なしに愛してくださるのです。
では、そのような大きな愛を受けた私たちはどうすればよいのでしょうか。
この地上では、牧師はとてもよい待遇を受けます。私は牧師は大統領よりもよい待遇を受けていると思います。
大統領や権威ある人に対する待遇は、ときには形式的なものです。
怒られるのではないか、不利益を受けるのではないかと思って、仕方なくすることもあります。
しかし牧師に対しては違います。信徒の方々は、牧師が早朝祈祷会のあと食事をしたかどうかを心配して、ソルロンタンを買ってきてくださったり、お粥を作ってきてくださったり、ヌルンジまで用意してくださいます。こんな待遇があるでしょうか。
しかし神はなぜそのような待遇を受けないのでしょうか。この時代に。私は牧師を軽く言うことがありますが、それは牧師を大切にするなという意味ではありません。まず神を大切にする人になりなさいということです。
その後で兄弟姉妹を顧みなさいということです。
では、私たちはどうやって神を大切にするのでしょうか。神は何か必要とされるお方でしょうか。お金が必要でしょうか。
贈り物が必要でしょうか。働き手が足りないのでしょうか。
神を大切にする方法は一つしかありません。神の御心のとおりに生きることです。
では、どうすれば神の御心のとおりに生きることができるのでしょうか。何が神の御心に従って生きることなのでしょうか。
最後にその答えをお話しして終わりにしたいと思います。
テサロニケ人への第一の手紙4章3節から8節までを一緒に読みましょう。
(テサロニケ人への第一の手紙 4:3-8)(新共同訳)
3 神の御心はこれです。あなたがたが聖なる者となることです。あなたがたは淫らな行いを避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
4 各自が自分の妻を、聖さと尊敬をもって扱うことを知っていなければなりません。
5 神を知らない異邦人のように、情欲に支配されてはなりません。
6 また、このようなことで道を踏み外したり、自分の兄弟姉妹に害を与えたりしてはなりません。私たちが以前からあなたがたに言い、警告してきたように、主はこれらすべてのことを罰せられる方だからです。
7 神が私たちを召されたのは、汚れの中に生きさせるためではなく、聖さにあずからせるためです。
8 ですから、この警告を退ける者は、人を退けるのではなく、あなたがたに聖霊を与えてくださる神を退けるのです。
神の御心とは何でしょうか。
皆さんが聖く生きることです。それが神を敬うことなのです。
私たちはすでに、その神の愛を知ったではありませんか。
それなら、私たちも努力してみようではありませんか。たとえ失敗したとしても、その方向に向かって立ち上が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その方向に向かってです。
やってみようとすることです。私たちが意志を働かせて、一度やってみようとするのです。それが神を敬うことではありませんか。
神は世を、すなわち世に属して永遠の火の池に落ちるしかなかった者たちの中から、ある一つの群れ、すなわち教会を、
このように愛してくださいました。神ご自身であるその方が、柱に、呪いと裁きの場所に、罪となって掛けられた、その愛で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
それゆえ私たちは、その愛に応答する生き方をしようではありませんか。
それこそが、今日のヨハネの福音書3章16節、
「神は世をこのように愛して、その独り子をお与えになった」
という言葉の本当の意味な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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