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pohang.go.kr/tv/4791/subview.do?enc=Zm5jdDF8QEB8JTJGYmJzJTJGdHYlMkYyMzclMkYzNTk3ODAlMkZhcnRjbFZpZXcuZG8lM0Y%3D
우연히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흥해배씨세적興海裵氏世蹟>에는 흥해군과 형제이신데, 백중관계(伯仲關係), 즉 누가 형이고 아우인지는 알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영상을 보면, 흥해배씨 천희 종중이 봄, 가을 두번의 향사를 주관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역사와 전설이 섞여서 내려오는 이야기라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내용도 있습니다만, 우리 집안의 시작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시청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 흥해현이 흥해군으로 승격된 것도 진각국사와 관련지어 설명합니다.
스님인데 무덤이 있는 것도 특이하구요. 스님께 제를 올리는데, 고기를 올리는 것도 특이합니다.
<포항 시청> 홈페이지 자료
진각국사 배천희(1307~1382)는 흥해 태생으로 호(號)는 설산(雪山), 본관은 흥해(興海)이다.
1319년(충숙왕 6년) 13세에 화엄(華嚴) 반룡사(盤龍寺)에 들어가 일비대사(一非大師)에게서 삭발하고 스님이 되어 19세(1325년)에 승과에 급제한 후 금생사(金生寺), 덕천사(德泉寺), 부인사(符仁寺), 개태사(開泰寺) 등 10여 절의 주지로 지내다가 원나라에 들어가 강남(江南)의 몽산(蒙山)에게서 의발(衣鉢)을 받고 귀국한 후에 치악(雉嶽)에 은거하였고 낙산사(洛山寺)로 역유(歷遊)한 후 공민왕 16년(1376년) 치악에 환거(還居)하였다.
왕은 유사(遺使)하여 '國師大華嚴宗師禪敎都總攝(국사대화엄종사선교도총섭)'을 후하고 동 19년에는 인장(印章)과 법의(法衣)를 하사하였다. 다음해 국사는 경천사(敬天寺)에 있다가 금강산을 순유(巡遊)하던 중 왕이 유사하여 청환(請還)하였고 진각(眞覺)은 치악으로 돌아갈 것을 간청하였다. 다음해 부석사에 들어가 전우(殿宇)를 중영(重營)하게 되었다.
우왕 11년 소백산에서 시적(示寂)하였는데 향령(享齡) 76세 법랍(法臘) 63세였다. 대사가 국사로 책봉되어 대사의 출생지인 흥해가 군(郡)으로 승격되었고 시호(諡號)는 진각(眞覺), 탑호(塔號)는 대각원조사이며 대사의 비(碑)는 경기도 화성군 광교산 창성사지에 있던 것을 수원성곽 안의 화홍문 곁에 전각을 세워 보물 제14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첫댓글 "승과에 급제한 수 "는 "승과에 급제한 후"로
"화홍문곁에"는 "화홍문 곁에" 로 바로 잡아 주시기를.....
세밀히 읽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