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솜아,
얼마 전에 유언장을 썼어.
(진짜 죽을려고 쓴 게아니라, 그림책 수업에서 과제로 한거야!)
근데, 진짜로 그런 상황이 아니어서 그런가?
엄청 애틋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맹숭맹숭, 그닥 쓸 말도 없는 것 같고,
귀찮다는 생각마저 드는거야.
일종의 회피 일 수도 있겠지만,
진짜로,
아둥바둥, 혹시 못한 말이 있지 않을까.. 곱씹고 신중하고 그런 거 없이, 내 인생 돌아보며 되집고 그런 것도 싫고,
정말 말 그대로 숙제하는 기분이더라.
싸이글 보면 저걸 내가 적었나, 어디서 옮겨왔나 싶을 정도로
나도 감수성이 많이 죽었나바. 시니컬해지고..
그래도 첫 머리는 당연히 남편이 먼저 소식 들을테니 남편에게 쓰는데,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런 말을 남겨야 할 것 같은데
안나오더라고... 그냥 홀아비 만들어서, 미안해.. 정도?
그리고 더 쓸 말을 찾다보니 난 이런 게 서운했다.
내가 너 연락 안되는 거 조바심 냈던 건, 바로 이렇게 갑작스런 사고로 맞이하게 될 너의 부재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에겐 일종의 트라우마 인데.. 이제 너도 조금은 어떤 기분인지 알겠지? 뭐 이런 .. 결국 나무라는 듯한 이야기..
원래 유언장을 미리 써보는쓰 이유는,
감사나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당부를 전하며,
내 자신을 반성해보고, 지금 이 순간 죽지 않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삶 속에서 그 마음들을 실천해보라고 쓰는 거잖아??
근데 난, 더 잘해야지. 내가 잘 해야지.. 가 아니라
결국 이럴 거 더 빨리 놔줄걸
나도 쫌이라도 더 자유롭게 나답게 살걸
이런 생각이 앞서는 모양이더라.
그러고 나서 엄마아빠에게 당부의 말을 전할 때는 눈물이 나더라
그래도 우리 가족밖에 없지 않냐고,
서로 그만 아프게 하고 화해했으면 좋겠다고.,
아빠도 정말 우리 가족을 생각한다면 술 좀 줄이고,
엄마도 아빠 너무 미워만 하지말고, 미워하는 맘 때문에 에너지 낭비하고,?걱정근심 짊어지고 살지 말고
나 이렇게 먼저 가는 것도 다 뜻이 있는거니,
이걸 개기로 우리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고 서로 힘되주고 했음 좋겠다고,
그리고 굴곡 많았던 삶. 맨날 앞으로 살날이 너무 많아 ~지긋지긋해~ 노래 불렀는데,
난 이제 얼마나 편한거냐고. 그렇게 생각해달라고
천국이나 가게 기도해 달라고 ..
엄마한테는 이 나이 먹도록 늘 짐만 지우고, 효도 한번 못하고 아코 남겨두고 이렇게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아빠한테는 이젠 용서도 했고 이해도 하는데, 외로울 거 알면서도 잘 찾아가지도 않고, 따뜻하게 한번 안아주지도 않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쓰는데.., 이건 진짜 가슴에 사무치는 이야기라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더라.,
그리고 맘을 가다담고
그래도 주변 사람들한테도 마지막인데 못다한 이야기들을해보자. 하니 젤 먼저 다솜이 너더라. 뭐 주변사람 생각해야지 하기 전에 이미 다솜이 너에게 할말들이 주루룩 떠오르더라.
내 일기장과 각종 글들, 그리고 남편이 필요한 책 외에는 책도, 필요하다면 옷도 다 너에게 주라고 그랬네.
남편한텐 미안한 말이지만, 글쎄 뭐 내 유품 이런 거 남겨줄 필요 없잖아. 새론 사람을 만나든 혼자살든 어쨌든 나한테서 벗어나는게 맞고, 또 당연히 잊고 살아갈 거라 생각 되거든. 살아서도 의미 없었던 것들인데 죽고 난 후에 의미있게 간직하라고 하는 거 이상하잖아. 난 이미 죽었은데 그걸로 내가 서운하고 말고 할 것도 없고,
그리고 내 살아 생전에도 속내를 다 보일 수 없었는데
굳이 죽은 후에 다 까발려지는 건 원치 않아서., 보면 안될 것들도 있고,
내 치부도, 내 못된 마음, 혼자 감춰야 했던 마음..
너에게만은 보여줄 수 있었으니..,물론 그래도 부끄러운 것들도 있고, 더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긴 하지만..,다솜이 너에게 마지막으로 고해성사하듯 다 전하고 가고 싶다 생각했나봐..
그래도 누구 하나쯤은 오래도록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데..
'진짜 나'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게 다솜이 너네..,
내 욕심, 이기적인 마음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럴 수 있는 네가 있어서 덜 외롭다., 했어
우리 주고받은 편지,메일, 커플 일기장 등등
꼭 엮어서 멋진 우정의 이름으로 책 내달라고도 부탁했는데,
나 죽고나니 이런저런 핑계로 미뤘던 거, 못한 것들 후회되지 않냐며, 이건 꼭 미루지말고 해주라! 했네 ㅎ
죽으면 그뿐 이라고 생각해.
죽은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
사람들도 잠깐 슬퍼하겠지만, 자신의 삶을 변함없이 살아갈 거고 ,
결국 죽은자는 잊어버리겠지.
가끔 몇몇 에피소드 속에 등장이야 하겠지만,
글쎄,, 그게 진짜 나일지는 모르겠네.
넘 회의적인 생각일까?
아빠와 엄마는, 넘 괴로워 할 것 같은데..
나의 죽음으로 인해 삶이 더 피폐해 질 것 같아서
너무 걱정이되는데., 의외로 아니었으면 좋겠네.
다 날 잘 모르는데, 그 누구에게도 당장 없다고 큰일나는 사람은 아닌데...
그래도 다솜이 너 하나만은 가장 많이 가장 오래 날 기억해 주지 않을까 .. 가장 나답게 나를 떠올려 주지 않을까? 좋은 모습으로 미화시켜주지 않을까? 그리워해주지 않을까.. 너 하나만은 그래주지 않을까 ..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내가 불쌍하고,
조금 다솜이 네게 미안해서 또 울었네.
마지막 순간에도 사랑의 회한이 들지 않고,
가장 아파하고, 내 죽음으로 인해 서로 보듬을 수 있는 가족은 엄마아빠, 석이고..
가장 날 그리워 해줄거라 생각되는 사람은 다솜이 너이고,
남편은 도대체 뭐지??
그렇게 또 물음표가 찍히네.
그리고., 역시 바보같이 그리운 사람이 하나 또 떠오르네.
김동률의 동반자 가사처럼..
입을 떼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질 것 같아
그저 나즈막히 이름 한번 부르고 끝낸다.
엇, 이건 쫌 로맨틱 한데? ^^ ㅎ
죽는 마당에 이름쯤은 불러도 되겠지?
쓰다보니 유언장은 내가 아니라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써야하는건데... 싶으네.
떠나는 그뿐인 마음으로 쓸 것이 아니라, 나중에 다시 성심성의껏 적어봐야겠다.
첫댓글 이 글 보니 눈물이 난다야...
이 글 보기 전에 너랑 통화하고 싶어 카톡 보냈는데...
역시 거긴 너무 늦은 시각이라 답이 없네...
내가 낼 연락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