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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된 평가 패러다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남악중학교 정종삼
우리 교육계는 수업을 개선하기 위한 많은 실험적 활동들을 다양하게 전개해왔다. 90년 대 이후부터 열린 교육, 협동학습, 혁신학교 운동, 배움의 공동체, 거꾸로 교실, 하브루타 등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학생들의 배움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수업개선을 위한 노력들은 열의를 가진 교사들에 의해 많이 보급되었다. 하지만 일선에 있는 선생님들 중에는 개선된 수업 방식을 적용하려고 하더라도 이를 어떻게 ‘평가’에 반영할 지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이러한 교육적 실천을 현장에 적용하는 데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를 자주 확인할 수 있었다. 위와 같은 현상은 수업 방법에 있어서는 교실 내 협력적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한 구성주의적 관점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평가에 있어서는 여전히 교육 목표달성을 평가의 목표로 보는 타일러(R. Tyler)주의의 시각과 더불어 평가가 입시와 중요한 관련을 갖고 있음으로 인해 평가의 객관성 즉 ‘신뢰도’만을 중시하는 교사들의 체화된 인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던 지체 현상에 기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기이한 현상을 현재까지 유지시켜 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학습결과에 대한 평가(assessment of Learning)’에서 ‘학습을 위한 평가(assessment for learning)’, ‘학습으로서의 평가(assessment as learning)’로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청되고 있다. 이러한 평가 패러다임의 변화는 ‘평가의 준거(frame of reference)’의 무게 중심을 이동시키고 있다 기존 평가 패러다임 내에서는 ‘규준참조평가(상대평가)’가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면 최근에는 ‘준거참조평가(절대평가)’, ‘능력참조평가’, ‘성장참조평가’가 주목받고 있다(Oosterhof, 1994)고 할 수 있다. 규준참조평가는 학습의 결과를 숫자로 환원하여 학습자의 상대적 위치를 규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서열화는 학력 낙오자를 양산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됨으로 인해 공교육의 추구해야 하는 공공성을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이유로 학생이 도달해야 하는 성취기준을 도달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준거참조평가’와 학생들의 갖고 있는 능력을 제대로 발휘했는지 평가하는 ‘능력참조평가’ 그리고 학생의 학습을 통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평가하는 ‘성장참조평가’는 평가에 있어 교사가 무엇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평가패러다임이 현재 우리 교육현장에 어떻게 들어오고 있으며 그 안에서 교사들은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세 가지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과정중심평가’와 ‘평가주체의 확대’를 어떻게 적용하지에 관한 점이다. 2015교육과정에서는 평가에 있어 결과만이 아닌 ‘과정’을 중요성을 강조하며 ‘과정중심평가’의 적용을 교사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더불어 평가의 주체에 있어서도 다양화를 꾀하고 있다. 기존의 평가가 교사 단독으로 이루어졌던 것을 교사와 더불어 학생도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학생들이 참여하는 ‘동료평가’와 ‘자기평가’는 이러한 평가 주체의 확대를 의미한다.
최근 수업개선을 선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선생님들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평가에 있어서 과정중심 평가와 동료평가, 자기평가를 수업에 적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려가 되는 지점이 있다. 최근 어떤 선생님의 수업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그 선생님은 모둠이나 개인이 발표를 한 다음에 이를 지켜보았던 학생들로 하여금 발표자의 점수를 5점 척도로 하여 부여하게 하였다.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최종 점수를 부여하기는 하였지만 자기 점수가 몇 점인지 동료학생들로부터 확인받아야 하는 학생들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더러는 자신이 좀 더 나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근거를 동료 학생들에게 강변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더 나은 점수를 받기 위해 비굴해 지는 자신의 모습을 동료들에게 보여 주어야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연출된다. 하지만 듀이가 강조해 왔듯이 교실 또한 학생들이 다른 동료들과 함께 상호작용을 하면서 자신의 자아를 만들어 사회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학생들은 점수가 아닌 가능성으로서 지지받고 지원받아야 한다.
평가가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지원하기 위한 도구적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숫자로 환원된 자아가 아닌 성장과 발달의 가능성을 서로 확인하며 이를 긍정하고 지원하는 체제로 가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과정중심의 평가, 동료 평가, 자기 평가는 양적 평가가 아닌 질적 평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중심평가에서 질적평가를 구현하기 위한 방안은 ‘성장과 발달을 지원하는 피드백’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학생의 현재 상황을 확인하고 더 나은 배움에 도달하도록 하기 위해 교사에 의한 피드백과 동료학생들의 격려와 칭찬 그리고 조언은 학생들로 하여금 현재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너 나은 배움과 성장을 이끌어가게 할 동력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학기말에 총괄적으로 학생의 성장과 발달 상황을 교사에 의해 양적으로 평가하는 방향으로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는 교사별평가를 제도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존의 교사 중심 수업에서 학생들에 의한 협력적 활동중심의 수업으로 바꾸고자 하는 교사가 있다고 하자. 한 학년을 자신이 맡고 있다면 별 다는 문제가 안 되지만, 만일 동일학년에 동일교과 교사가 두 명 이상이라면 문제는 쉽지 않다. 나이스(NICE) 상에 지필평가와 수행평가를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동료교사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하면 이러한 변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고 학생들이 학습한 내용에 대해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환경 안에서 교사는 교수·학습과 평가에 있어서의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전문성을 신장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남교육에서도 교사별 평가가 조속히 실시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더불어 교사별 평가가 교사간의 단절과 고립의 차원으로 고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교사들은 동교과 교사와 교과가 추구하는 목적을 학교 내에서 구현하기 위해 지속적인 협력적 상호작용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교사가 반성적 실천의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교사는 동료교사와 고립된 상태에서 전문성을 신장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는 이러한 교과교사들의 협력적 전문성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시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체화와 관련된 점이다. 최근의 교육과정의 흐름은 교과가 도달해야 할 내용요소와 기능요소를 통합하여 ‘성취기준’으로 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도달해야 하는 기준으로서 역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교사는 이러한 교육과정 상의 목표를 어떻게 도달할 것인지에 대해 수업을 디자인하고 이 과정을 통해 나타나게 될 학생들의 성장과 발달의 정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평가계획이 구성되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체화가 어떤 교육적 인식론에 근거하고 있는지에 대한 방향이 명확하게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글 앞에서 밝힌 수업에 대한 새로운 방안들은 교사가 성전처럼 여겨지는 교과서의 객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을 학생들에게 동일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객관주의적 인식론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방안들은 다양한 경험과 인식의 체계를 갖고 있는 학생들이 서로 협력적 상호작용을 통해 각각의 의미를 찾아내고 만들어 간다는 사회 문화적 구성주의적 인식론에 근거해 있다. 따라서 수업이 이러한 협력적 상호작용을 통한 주체적이며 맥락적인 의미의 구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평가에 있어서도 학생의 교과를 통한 자기 의미의 발견과 구성 그리고 자아의 성장과 발달의 정도를 측정하는 질적평가의 방향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교육과정-수업-평가는 사회 문화적 구성주의적 인식론에 바탕을 둔 일체화를 통해 교육의 인식론적 패러다임의 일체화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다만 이러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단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현재 시행되고 있는 자유학기제는 이러한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새로운 평가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우리 전남교육이 견지해야할 방향에 대해 세 가지 점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현재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 담론이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실천에 앞서 우리 교육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평가는 어떤 방향과 실천방안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단순한 기능주의적 접근으로 인해 과정중심평가는 수업 중 매순간이 평가의 대상이 되며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동료와 자기를 양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평가의 악순환으로 빠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교육이 사교육과 차별화 될 수 있는 것은 교육의 공공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공공적 가치는 단 한명의 학생도 소외시키지 않고 배움과 성장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는 교사의 책무성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교사는 교육의 성공과 실패가 자신에 달려있다는 무거운 책무성을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해 학교의 관리자들과 교육청은 최대한의 지원체제와 환경들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그 안에서 학생들이 즐겁게 성장하여 바람직한 민주시민으로 자라나는 것이 공교육이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전남 교육이 이러한 변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