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의 달력/목필균·시인
한 해 허리가 접힌다 계절의 반도 접힌다 중년의 반도 접힌다 마음도 굵게 접힌다
동행 길에도 접히는 마음이 있는 걸 헤어짐의 길목마다 피어나던 하얀 꽃 따가운 햇살이 등에 꽂힌다
* 6월 / 황금찬
6월은 녹색 분말을 뿌리며 하늘 날개를 타고 왔으니
맑은 아침 뜰 앞에 날아와 앉은 산새 한 마리 낭랑한 목소리 신록에 젖었다
허공으로 날개 치듯 뿜어 올리는 분수 풀잎에 맺힌 물방울에서도 6월의 하늘을 본다
신록은 꽃보다 아름다워라 마음에 하늘을 담고 푸름의 파도를 걷는다
창을 열면 6월은 액자 속의 그림이 되어 벽 저만한 위치에 바람 없이 걸려있다
지금은 이 하늘에 6월에 가져온 풍경화를 나는 이만한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다
* 이해인/ 6월의 장미
하늘은 고요하고 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
6월의 장미가 내게 말을 걸어옵니다
사소한 일로 우울할적마다 "밝아져라" "맑아져라" 웃음을 재촉하는 장미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누구를 한번씩 용서할 적마다 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
6월의 넝쿨장미들이 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 자꾸만 말을 건네 옵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 이름다운 계절에 기쁨 한송이 받으시고 내내 행복하소서
* 6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 이채 / 시인
꿈이 있는 당신은 행복합니다 그 꿈을 가꾸고 보살피는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바람이 높아도 낮아도 그 바람을 가다듬으며 한 그루 꿈나무에게 정성을 다할 때
숲을 닮은 마음으로 흙을 닮은 가슴으로 햇살은 축복이요 비는 은혜입니다
기쁨이 클수록 눈물이 깊었음을 꽃 지는 아픔 없이는 보람의 열매도 없다는 것을
어느 날의 하루는 지독히 가난했고 어느 날의 하루는 지독히 외로웠어도 슬픔도 괴로움도 견뎌야 했던 것은 꽃 같은 당신의 삶을 사랑했기 때문이리라
누군들 방황하지 않으리오 누군들 고독하지 않으리오 방황 속에서도 돌아와 누운 밤 그 밤의 별빛은 그토록 차가웠어도
고독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아침 그 아침의 햇살은 더 없이 눈부십니다
믿음이라는 가치 앞에 당신의 삶은 겸손하고 사랑이라는 가치 앞에 당신의 삶은 진지합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인내의 걸음을 늦추지 않는 당신 그런 당신을 나는 진실로 사랑하고 싶습니다
유월에
- 나태주 / 시인
말없이 바라 보아주시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합니다
때때로 옆에 와 서 주시는 것만으로도 나는 따뜻합니다
산에 들에 하이얀 무찔레꽃 울타리에 넝쿨장미 어우러져 피어나는 유월에
그대 눈길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나는 황홀합니다
그대 생각 가슴속에 안개 되어 피어오름만으로도 나는 이렇게 가득합니다.
* 6월의 언덕 /(노천명·시인, 1912-1957)
아카시아꽃 핀 6월의 하늘은 사뭇 곱기만 한데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고 안으로 안으로만 든다
이 인파 속에서 고독이 곧 얼음모양 꼿꼿이 얼어 들어옴은 어쩐 까닭이뇨
보리밭엔 양귀비꽃이 으스러지게 고운데 이른 아침부터 밤이 이슥토록 이야기해볼 사람은 없어 파라솔을 접듯이 마음을 접어가지고 안으로만 들다
장미가 말을 배우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사슴이 말을 안 하는 연유도 알아듣겠다 아카시아꽃 피는 6월의 언덕은 곱기만 한데 ....
* 6월의 나무에게 /(카프카)
나무여, 나는 안다 그대가 묵묵히 한곳에 머물러 있어도 쉬지 않고 먼 길을 걸어왔음을
고단한 계절을 건너 와서 산들거리는 바람에 이마의 땀을 씻고 이제 발등 아래서 쉴 수 있는 그대도 어엿한 그늘을 갖게 되었다
산도 제 모습을 갖추고 둥지 틀고 나뭇가지를 나는 새들이며 습윤한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맑고 깨끗한 물소리는 종일토록 등줄기를 타고 오르며
저녁이 와도 별빛 머물다가 이파리마다 이슬을 내려놓으니 한창으로 푸름을 지켜 낸 청명은 아침이 오면 햇살 기다려 깃을 펴고 마중 길에 든다
나무여, 푸른 6월의 나무여
* 6월에는 스스로 잊도록 하자 - (안톤 슈나크·독일 시인, 1892-1973)
시냇가에 앉아보자 될 수 있으면 너도밤나무 숲 가까이 앉아 보도록 하자
한 쪽 귀로는 여행길 떠나는 시냇물 소리에 귀기울이고 다른 쪽 귀로는 나무 우듬지의 잎사귀 살랑거리는 소리를 들어보자
그리고는 모든 걸 잊도록 해보자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 질투 탐욕 자만심 결국에는 우리 자신마저도 사랑과 죽음조차도
포도주의 첫 한 모금을 마시기 전에 사랑스런 여름 구름 시냇물 숲과 언덕을 돌아보며 우리들의 건강을 축복하며 건배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