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초목
산천초목이 벌벌떠는 어사 땡땡땡
천하에 이보다 더한 사람은 없어
초야에서 열공하는 중에
목놓아 우는 여인의 한많은 사연을 듣고..
강권순 - 산천초목 2014. 12. 18.
곡소개 : 제주도 구전민요를 제주교대 조영배 교수님이 편집하고 강권순님이 부름. (정가극에 사용된 곡은 아니지만 정가란 장르를 맛볼 수 있는 강권순의 히트곡 산천초목을 소개합니다.
이 노래는 제주도 민요를 정가풍으로 편곡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곡으로 정가가 낯선 사람에게도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 웹에서)
산천초목 - 강권순
산천초목 속잎이 난디
구경가기가 얼화 반갑도다
꽃은 꺾어 머리에 꽂고
잎은 따다가 얼화 입에 물어
날오라 하네 날오라 하네
산골처녀가 얼화 날오라 한다
돋아오는 반달처럼
도리주머니 주워놓고
만수무강 글자를 새겨
수명당사 끈을 달아
정든 임 오시거든
얼화 채워나 봅시다
동백꽃은 피었는데
흰눈은 왜 오나
한라산 선녀들이
춤을 추며 내려온다
제주도 지방에 전승되는 창민요(唱民謠).
이 민요의 사설은 신재효본(申在孝本) 「홍부가」나 「가루지기타령」에 나오는 거사 사당패가 부르는 사설과 거의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과거 본토의 민요였던 것이 제주도에 흘러들어 오늘날까지 전승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 민요의 사설은 경기 및 서도입창의 「놀량」, 남도 「화초사거리」의 첫머리 사설과 동일하여 본토 산타령계 민요의 특징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흥부가」나 「가루지기타령」에 나타나는 「산천초목」의 첫머리 사설은 지금도 제주도의 민속마을인 정의고을(1423년에서 1914년에 이르기까지 약 500년 동안 정의현의 도읍지였던 지금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등지에서 그대로 전승된다.
정의고을은 5세기에 걸쳐 도읍지였던 곳으로, 이 곳 기녀(妓女)들이 본토의 「산천초목」을 배워 애창하면서 민간에도 이 노래가 자연스레 퍼지게 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신재효본 「흥부가」에 “산천초목이라 셩림한듸/귀경가기 질겁도다.”라고 되어 있는 첫머리가 「가루지기타령」에서는 “산천초목이 성림한듸/귀경가기 질겁
다.”로 되어 있는데, 오늘날 제주에서 불리는 「산천초목」에서는 흔히 “산천초목 속입난디/구경가기가 반가와라.”라고 나타난다. 다소 변형되기는 했지만 같은 맥락의 민요임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지는 사설은 크게 바뀌었는데, 정의고을의 「산천초목」은 남녀의 애절한 사랑과 애틋한 이별의 정한을 담고 있다. 곧 “
이 불겅 돈
불고/풍년이 들겅 임풍년 들라.”라든가, “임이벨
신 날 밤이/나는 무사 못 죽었나.”라든지 “태펭양 너른바다에/풍기둥당실 빠져 죽지.”라는 사설은 오늘날 제주에서 전해지는 「산천초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민요는 그 사설이나 선율적 특성으로 보아 본토 산타령계 민요가 전승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오늘날 사라져버린 본토 산타령계 민요의 드물게 찾아볼 수 있는 전승의 예라는 점에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첫댓글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