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여! 떠나야만 했는가?
벗이여!
그대로
떠나야만 했는가?
깊어가는 가을이
너무도 간절하여진다.
내가 서있는 이곳엔
하루가 저물고 있다.
이제는
하루의 수고로움을
덜어야 할 시간이다.
어쩌면 석양길은
숭고함일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
여기는 어딘가?
오래전 벗이여!
어느 가을 날
운동회가 끝나고
그대와 같이하던
저문 석양길 위의
추억속의 모습처럼
가을을 닮아
참 외롭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강물위에
기다림으로 떠돌던
어느 하루들은
낙엽이 되는 바람으로 떠났다
옛일은
기억하기보다
잊음에 가깝고
부평초같은 헤아림만
생각 할 수록 부질없기만하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바람이
소슬하여지고
며칠전에는 상강(霜降)이었다.
간밤에는
무서리를 닮은 이슬이
강변에 가득하였다.
마른 땅이
차가워지고 있을 것이다.
속절없는 세월!
나락이 베어지고
비어져가는 들판에는
그리운 옛 날의 허수아비가
옛 추억을 잡으려는 듯
두팔을 벌리고 있다.
그러나
어느 기억하나도
어느 추억하나도 잡히지 않고
바람만이 머물다 가버린다.
가을이 깊어지면
말 할 수 없는
막연함이 서성이게 한다.
물 빛을 닮은 바람이
높아진 하늘가에서
서성이고
오래된 기다림은
이제 떠남으로 결론하고 있다.
벗이여!
2004.10.26.
며칠 전
고향에서 온 전화가 있었다.
그보다 더 며칠 전
남해에 급히 일이있어
그날따라 차를 운전하기 싫어
택시를 타고 갔다가
남해의 한 개인택시로
진주까지 돌아오게되었는데,
그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기사가
나를 잘안다고 하였다.
나는 잘모르지겠는데
그 친구는 자기가 후배라면서
나를 아주 잘안다고 했고
말도 하대할 것을 억지로 강요(?)하여 그러기로 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러다 그 후배의 고향이 서면인 것을 알았고
나는 서면에 꼭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다고 하였다.
참으로 오래전의 기억...
나에겐
중학교 3년을 같이한
수남이란 친구가 있었다.
얼굴이 검고
키가 좀작은 그 친구는
내 앞자리에 앉았고
나는 뒷자리에 앉았다.
그 친구는 서면서 배를 타고
우리가 다녔던 중학교에 통학을 했다.
아마 서면에서 남면으로
통학하던 동창들이
당시 10여명쯤은 되었는 것 같다.
서면 서상항을 출발한 배가 남면 평산항에 닿아
학교까지 2키로 정도 걸어오는 시간에
언제나 수업은 시작되었고
대부분 지각을 밥먹듯하였다.
학교에서도 예외로 하였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 앞자리에
가방을 던지 듯 내려놓고 땀냄새 풍기며
주저앉던 친구...
배 시간에 맞추기위해 새벽밥을 먹고
통학의 고단함에 졸기도 자주 하던 친구...
바람이 많이 불거나 비가 많이오면
배가 다니지 못하여 결석도 자주하였고...
그럼에도 공부는 꽤 잘한 친구였다.
유머가 있어 남들을 웃기는 재주도 있었고...
글솜씨도 있었고...
나하곤 제법 친한 벗이기도 했다.
2-3학년 스승 의 날 기념식때부터
또는 무슨 명목의 백일장이 있으면
숫기가 적은 내가 남들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면
내 명찰을 바꿔달고 전교생이 모인 단상에 올라가
내이름으로 된 글을 의기양양하게 낭독하기도 하였다.
전교생 중
더러는 그 친구가 나인 줄 알기도 했고...
그러던 친구였는데
중학교를 졸업한 후론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당시 우리 벗들은 다 그랬지만
그 친구도 가정이 어렵다고 했고
인천인가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는소문도 들렸고...
서면의 동창들을 수소문하여
몇번인가 그 친구의 근황을 물었으나
단 한번도 연락을 받은 적이 없었다.
내가 꼭 연락을 바란다는 간곡함에도...
그러다 그 후배가 같은 고향이라며
알아봐 주겠다고 약속을 했고
며칠전에사 전화가 온것이다.
"..형님! 전화를 드릴까 말까 몇번이고 망설이다
그래도 약속을 했기에 연락을 드립니다".라고 뜸을 드렸다.
참 이제사 제대로 된 소식을 받아보겠구나하고
"그래 어디에 산다고 하던가?"
" 아니 그게 아니고요......."
그 형님은 2년전에 이 세상을 하직했다고................"
" 그래서 망설이다가 연락을 하는 겁니다"라고 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배를 타다가 그랬다고 했다.
이런 무정한 친구 같으니
30년도 휘 지나서 전해주는 소식이 고작
먼저 세상을 달리했다는 그 말이란 말인가?
그날 나는 제법 몇병의 소주를 비웠다.
그냥 가녀린 어린 날의 추억 한 페이지겠거니 하고
털어버리자고해도..
그냥 모른채 그 친구의 근황을
묻지 않는게 낳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고
그러나 왜 그렇게도 마음이 아팠던지...
그리고 지금도 생각하면 망연하여진다.
벗이여!
다시는 만나지도 못할 것을 안다.
빛바랜 졸업기념 앨범에
흑백의 슬픈 넋으로 자리한
벗의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 영상을 더듬으며
내가 진정 할 수 있는 한마디...
그처럼 연락도 없이 살다가
그대로 떠나야만 했는가?
가슴을 허물며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부디 주님의 나라에선
나날이 아름답고 행복하여라.
더러 이승에서 고단함이 있었거든
과정이거니 하고
편안하기를 간절히 기도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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