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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 후기
가길 아주 잘 했다. 갈까 말까를 두고 고민을 좀 했던 나의 산행 소감은 이 한 마디로 요약된다. 사실 지난 봄 어느 북한산행 뒤풀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1박2일 지리산행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다. 더운 여름날 ‘지리’한 산을 힘들이며 갈 마음이 선뜻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십 수년 전에 당시 회사 산악반을 따라 뱀사골이라는 곳엘 갔던 것이 나의 지리산과의 첫 인연이었는데, 무척 지루했다는 기억이 전부여서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자가제정 안식년이 끝나기 전에 큰 산행을 한번 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여,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음으로써 양쪽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었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조용하게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직접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등산 고수들간에 산행 코스를 두고 벌어지는 대화가, 지리산에 대하여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는 마치 어린 시절 시골에서 듣던 서울 얘기와 같이 들렸다. 이 코스는 이렇고 저 코스는 저렇고 하며 저마다 의견을 내고 주장을 펼 때, 나는 그저 ‘그런가 보다’하는 생각뿐이었고, 잠자리는 매우 불편할 수 있다는 데는 쉽게 수긍이 갔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내가 갈지 말지를 결정하는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들이니 대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도 아무런 상관은 없었다. 단지 나 같은 사람이 여간 해서는 혼자서 가기 힘든 지리산이니만큼 고수들 일행에 편승해서 갈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인원이 확정되는 단계에서 나는 가기로 최종결정을 하였다. 그리고는 산에 가서 장시간 걸으면서 어떤 생각들에 잠겨 볼까 하는 상상도 해 보았다.
상당한 기간의 준비 끝에 드디어 8월 22일이 왔다. 하필이면 전운이 감돌 정도로 남북한간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가족들을 두고 혼자만 1박2일로 산행을 간다고 생각하니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아내에게 결코 전쟁 같은 것은 없으리라는 말을 남기고서 묵직한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이번 사태가 좀 심각해 보이기는 했어도 실제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평소의 확신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으며, 특별취재반으로 차출되어 좋은 산행 기회를 박탈당한 박경만 님만 이번 사태의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총 예약자 11명 중에서 한 명이 못 가게 되었으니 10명이 출발하여야 하는데 약속시간인 5시 30분에 집결지인 사과나무치과 주차장에는 9명이 있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1명은 집 근처에서 태우기로 하고 일단 출발하였다. 그런데 그 분의 집 근처로 알려진 곳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아 전화로 재확인을 시도하였으나 마지막 전화는 그냥 끊어졌다고 한다. 그 분은 포기하고 출발할 것인가가 논의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드는 결정적인 시점에 갑자기 그 분이 나타났다.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유영호 님은 전날 행사가 늦어 당일 오전 2시 반에 잠자리에 들었단다. 잠을 채 3시간도 못 자고 그 시간에 맞춘 것이 대단하게 생각되었다. 다른 산도 아니고 지리산이었으니 가능했으리라. 유영호 님은 늦어서 미안하다며 아침 턱을 쏘았고, 홍창욱 님은 직장에서의 일화들을 드라마틱하게 들려 주셔서 모두들 유쾌게 웃으면서 엔도르핀으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다.
산행은 청학동에서 시작되었다. 차가 청학동 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자마자 박 고문님은 어느새 인근식당으로 들어가 주인 아주머니와 김치구입 흥정을 끝내고 아주 만족스런 표정으로 나오신다. 나 같은 사람은 이번 산행을 따라만 가도 된다는 증거를 보았다. 박 고문님은 지리산에 와서 지리산 김장김치를 맛볼 수 있게 되었으니, 집에서 김치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 오히려 더 잘 된 일이라는 아주 긍정적인 해석을 내 놓으셨고 모두가 이에 맞장구를 쳤다. 산에 오르기 전에 공동 짐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나는 이미 배낭이 팽팽하여 선뜻 나서지를 않았는데, 내가 다른 볼일을 보는 사이에 내 배낭이 제일 여유가 있어 보여 짐을 조금 더 넣었노라고 유경샘이 알려 줬다. 유경샘의 짐 꾸리는 솜씨는, 나 같은 사람은 그냥 따라만 가도 된다는 또 다른 강력한 증거였다. 한편으로는 배낭을 조금 더 큰 것으로 준비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배낭 크기가 작은 사람은 대신 무거운 짐을 지기로 했으니까 최소한 내가 더 무거운 짐들을 지겠다고 자원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살짝 후회도 되었다. 그러나‘내가 낙오하지 않고 무사히 산행을 마치는 것이 팀에 기여하는 길이지…’라고 자위하면서 세석대피소를 향한 10킬로 등반 길에 올랐다.
청학동에서 삼신봉까지 오르는 길은 가파른 돌길이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한발 한발 내 디디면서 몸이 좀 풀렸다 싶을 정도가 됐을 때에 전날 온 비로 불어난 계곡물이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고, 마침내 주변의 낮은 봉우리들을 굽어 볼 수 있는 곳까지 올랐다. 그렇게 오르막을 한참 올랐는데 겨우 2킬밖에 못 왔단다. 초반에 가파른 길을 올랐으니 남은 길은 좀 나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삼신봉에서 점심 자리를 폈다. 메뉴는 즉석 비빔밥. 유경샘이 준비해 온 비빔밥 재료들을 비닐 봉지에 넣어서 비볐는데, 단순히 땀 흘린 후 산에서 먹는 밥이라서가 아니라, 완벽하게 준비해 온 음식재료와 아이디어 덕에 기내식 비빔밥보다 몇 배는 더 훌륭한 비빔밥을 산에서 즐길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삼신봉 표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박경만 님이 동행했더라면 여기서부터는 카메라 셧터를 훨씬 더 많이 눌렀을 테지만, 우리는 성능이 좋아진 스마트폰을 적절히 활용하여 기념이 될 사진들을 만들어 나갔다. 최신형 전화기를 가지고 온 한명숙 님의 기여도가 높았다.
삼신봉에서 세석대피소로 향하는 길은 상당 부분이 숲으로 가려져 있었다. 이정표가 세석대피소까지 남은 거리를 조금씩 줄여 나가는 것을 보면서 힘든 것을 잊고 한발 한발 내 디뎠다. 힘들 때에는 목표까지의 거리를 생각하지 않고 한발 한발에 집중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목표에 언제 도달하나 하고 조바심을 내면 더욱 힘들어지고, 목표에 빨리 가려고 서두르다 보면 사고의 위험도 높아질 것이고, 마음을 오로지 목표에만 둔다면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의미와 재미를 놓치기 쉬울 터이다. 그래서 아주 힘든 순간에는 오로지 지금 내 딛고 있는 한 발에만 집중하려고 하였다. 그렇게 가다 보면 그 결과로서 자연스럽게 목표에 도달할 테니까. 지금 내딛는 한발에만 집중하면 힘도 덜 들고, 이 한발을 제대로 걸었기 때문에 다음 한발을 또 내디딜 수 있다는 작은 성취감을 느끼면서 안정적으로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열에서 좀 떨어져서 혼자 걸을 때에는 이런 생각들도 마음 속으로 끌어 들였다. 이번 산행을 계기로 뜻 있는 결심을 하나 한다면 무엇이 좋을까? 우선 떠오르는 것은 과음하지 않기이다. 금연 절주하겠다고 결심한 지가 그 언제였던가. 금연은 8년이나 되었으니 이만하면 성공하였다고 할 수 있지만, 절주를 하지 못해 후회한 적이 근래에도 여러 번 있었으니, 내게 결심이 필요한 것이 있다면 단연 절주를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이 마땅하리라. 담배도 쉽게 끊은 것은 아니었다. 아들에게 금연결심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고서야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흡연을 하는 것은 주었던 선물을 도로 빼앗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같은 방법으로 절주도 아들에게 선물로 주면 이행이 되지 않을까? 시기적으로도 지금이 적절하다. 고3인 아들이 이제 대학에 가면 어차피 술을 제대로 가르쳐야 할 테니, 그 전에 나 자신부터 바로 잡아 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덧 이정표가 2킬로 이내의 숫자를 보여 주고 있다. 세석대피소에서의 저녁 만찬에 대한 기대가 고개를 든다. 김혜성 님이 출발할 때부터 숨김없이 드러냈던 만찬에 대해 거는 그 기대. 사실 다른 분들도 모두 저녁에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는 것은 산행 준비단계에서부터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세석대피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가벼워지고 접어 두었던 저녁에 대한 기대는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세석대피소로 오르는 입구의 길목은 마치 어느 산골마을의 초입과도 같이 시냇물에 징검다리가 놓여 있는 아늑하고 정겨운 풍경으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세석대피소에 도착하니 취사장 테이블은 이미 다른 등산객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노천 마당의 맨 가장자리 테이블 옆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그나마 공간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박 고문님의 경륜과 빠른 상황판단력이 빛을 발하였다. 지붕이 있는 쪽의 가장자리 테이블과 벽 사이의 공간을 재빨리 차지하고 우리 짐을 그쪽으로 옮기도록 하신 것이다. 우리가 자리를 옮기기 시작하자 다른 팀도 들어오려는 시도를 하였으나 이 명당 자리는 이미 우리가 선점하여 정당한 사용권을 확보한 뒤였다. 10명이 둘러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자리여서 마치 텐트 속에 둘러 앉은 것 같이 아늑한 분위기였다. 차츰 빗방울이 굵어지면서 노천 마당의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 우산으로 비를 가려가면서 음식을 먹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우리가 그들을 부러워했었는데, 이젠 상황이 역전되었다. 우리는 한껏 안도감을 느끼면서, 오히려 비가 와서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는 기분까지 숨기지 않으면서, 모두가 기다리던 만찬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제일 먼저 나온 음식은 홍창욱 님이 준비한 고급 양주였다. 삽겹살이 채 구워지기도 전부터 일단 잔이 돌기 시작하면서 병에 남은 술의 양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나는 다음날 산행을 위해서 과음은 안 된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절제를 하였다. 예전에 과음하고 난 다음날 등산하면서 심하게 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리니 절대 기분 내키는 대로 마셔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게다가 낮에 걸으면서 생각했던 절주의 실천을 위한 첫 시험대가 아닌가. 그래도 분위기를 즐기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가오리 대장님의 1.8리터짜리 소주와 복분자가 소진되고, 음식을 완벽하게 준비해 온 유경샘에 대한 감탄사가 연발되더니 마침내 ‘위대하신 지도자’로 칭송되고, 날렵하게 고기를 구워 대는 한명숙 님에 대한 칭찬이 오가고, 술의 기운이 분위기를 막 고조시키면서 저녁 만찬 1차가 마무리될 즈음엔, 여기 저기서 춤과 노래가 꿈틀거리며 나오기 시작하였다. 젊은 날 데이트하던 아가씨 앞에서 추었다는 박 고문님의 마이클 잭슨 춤 복원은 압권이었다 (다음에 충분히 넓은 공간에서 다시 한번 제대로 보여 주실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이어서 임영근 님이 들국화의 록 음악을 선보이려는 순간 우리 일행은 대피소 관리직원들로부터 소음을 자제해 달라는 경고를 들었고, 김혜성 님이 비장의 카드로 가져온 포도주로 담소를 나누면서 마지막 라운드를 조용하게 마무리하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집합시간인 5시가 조금 넘어 밖으로 나와 보니, 역시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는 벌써 나와서 다른 여성 동지들과 아침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전날 술을 절제한 덕에 대략 집합시간은 지켰지만, 아침 준비에 별 도움은 주지 못하고 물통을 한번 들어 오는 것으로 그쳤다. 이날 아침도 역시 속풀이 용으로 준비해 온 사골미역국에 모두들 크게 만족해 하며 맛있게 에너지를 충전하고는 이번 산행의 절정인 지리산의 정상 천왕봉 등정을 시작하였다.
세석에서 출발하여 촛대바위에 이르자 시야가 사방으로 확 트인다. 천왕봉이 저 뒤로 보이고 다른 방향으로도 모두 산이 겹겹이 쌓여서 구름을 머금고 있다. 지리산의 웅장함을 이보다 더 잘 감상하기도 쉽지 않으리라. 가오리 대장님을 비롯한 우리 팀의 고수들 덕분에 전망이 좋은 코스로 천왕봉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전날 적게 마신 덕분에 다른 사람의 짐을 조금 넘겨 받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겨서 무임승차하는 것 같은 데서 오는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장터목을 거쳐 천왕봉에 이르는 길은 주로 능선을 따라 가는 것이라서 그리 힘들지 않았고, 곳곳에서 바라다보이는 첩첩산중의 병풍을 감상하면서 이번에 지리산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거듭되었다. 우리는 지리산 천왕봉에 와 본 사람들의 수가 얼마나 될까를 궁금해 하기도 하면서, 모르긴 해도 그렇게 많지는 않으리라는 추정으로 결론을 냈다. 세석에서부터 천왕봉까지 거리는 약 5킬로에 불과하니, 전날 걸은 거리의 절반이고 또 목표가 저만치 보이니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걸을 수 있었다. 드디어 천왕봉에 올랐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남한의 대표적인 영상(靈山)의 정상에 오른 순간의 성취감과 감흥이 표정에 생생하게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 해발 1915미터라고 적힌 천왕봉 표석 옆에서 가급적 빨리 기념 사진을 찍었다. 앞으로 다시 오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더욱 확실하게 추억의 증거를 남기고도 싶었다. 그런데, 표석에 음각으로 새겨진 천왕봉이라는 글자가 많이 마모된 상태로 보아서는 천왕봉을 다녀간 사람의 숫자가 올라오면서 추측했던 것보다는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각자 독사진을 찍은 후 동행한 열 명이 함께 단체사진을 찍고는 사방을 둘러보며 정상에서 보는 지리산의 광대함을 다시 한번 감상한 후 하산길로 접어 들었다.
천왕봉에서 로타리까지는 2킬로에 불과하지만 내내 경사가 매우 심하여 매우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했으며, 내려가기도 힘든 그 길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정상까지의 거리가 약 1킬로인 지점에서 마주친 등산객 일행이 잠시 멈춰 서서 희망 섞인 어조로 말한다. “이제 얼마 안 남았네.” 그들에게 남은 1킬로가 얼마나 힘든 길인지를 몸으로 느끼면서 내려가던 중인 나에게 그 말은 무척 크게 들렸다. 자연스럽게 그 일행을 쳐다보게 되었고 ‘그게 만만치 않은 1킬로인데’ 하는 뜻으로 빙긋이 웃다가 그들에게 들켰다. “야, 저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웃는다.” 웃다가 들켰으니 한 마디 건넸다. “어떻게 하나. 용기를 드려야 하는데... 무척 힘든 코스이지만 한발 한발 내 딛다 보면 도달할 겁니다.” 그러자 그쪽에서 인사말이 돌아왔다. “네, 안녕히 가세요.”땀이 나고 숨이 차서 얼굴이 발그스름하게 상기된, 그들 중에서 가장 젊고 아름다워 보이는 아가씨였다. 마음에 드는 이성을 보면 설렘과 두근거림을 느꼈던 나의 이십 대 초반 시절의 추억이 잠시 떠올랐다.
로타리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분들이 벌써 점심 준비를 하고 있다. 메뉴는 라면과 햄김치비빔밥. 시장기가 아니라 음식 맛 자체로도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게 준비하고 조리된 점심이다. 이제 중산리 탐방안내소까지 3.4킬로만 내려가면 산행이 마무리된다. 배도 든든하고, 하산길이니 별 부담이야 있으랴 하는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지만, 하산길의 상당 부분이 가파른 경사의 돌계단 길이었다. 천왕봉을 이쪽 길로 올랐더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쪽으로 내려오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실제로 나는 어떤 팀이 천왕봉을 향해서 가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하산하는 것도 보았다.
로타리에서 중산리 탐방안내소로 내려오는 구간에서는 주로 한명숙 님과 둘이서 후미쪽에서 걸었다. 한명숙 님은 이번 산행을 위한 체력시험을 통과하였다고는 하지만 등산 초심자인데, 배낭은 내 것보다도 큰 것을 메고 있었다. 우리는 속도보다는 안전이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걸으면서 내려오는 길 내내 서로에게 길동무가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중산리에 도착하고 나니, 드디어 1박2일의 산행을 성공적으로 마쳤구나 하는 뿌듯함과 안도감이 들었다.
일산에 도착하여 사과나무치과 뒷편 올갱이해장국집에서 가진 뒤풀이는 유쾌한 추억을 남기면서 성공적으로 마친 이번 산행을 축하하는 분위기. 산행 내내 간간히 이어졌던 유영호 님의 동음이의어 유희가 이 자리에서도 꽃을 피웠다. 나는 절주 계획을 공개하고 첫 시험대를 무사히 통과하였다.
2015년 8월 22-23일의 지리산 산행, 아주 의미 있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귀쫑 덕분에 나는 안식년의 기념이 될 만한 큰 점 하나를 찍었다. 좋은 사람들과 밥 같이 먹는 것이 행복이라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는 근래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다. 산행을 함께 해 주신 아홉 분(김태화, 장유경, 박종호, 임영근, 홍창욱, 박현순, 김혜성, 유영호, 한명숙) 모두에게 감사한다, 행복의 요소를 제공해 주신데 대하여. 산행으로 힘들었던 다리 근육들이 한 이틀 동안은 뻐근하게 아팠으나, 사흘째부터 통증이 사라졌다. 그러나 산행하면서 느꼈던 뿌듯함과 즐거움은 2주가 지난 지금 전혀 그 강도가 약해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진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첫댓글 와!! 너무 재미있고 위트가 넘치는 후기입니다!! 역시 양구 1이십니다!!^^ 선배님의 글을 읽으니 지난 산행의 추억이 새록새록 옆구리를 타고 뒷목을 거처 정수리로 솟아 오릅니다!!^^ 감사합니다!!^^
글을 그렇게 읽어 주시니 제가 감사합니다 ☆☆☆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날의 정경이 훤히 그려지네요. *^^*
소음 자제 경고는 낯설지 않네요. ㅋㅋ 흥 많은 귀쫑 식구들 ∼∼
절주를 하신다니 그 점이 아쉽네요. 소(少)주로 결심을 바꾸실 생각은 없으신지 ^^;;
소주 반병, 막걸리 2잔, 맥주 500CC 한 잔, 뭐 이 정도로요.
남옥님의 산행후기 덕분에 그날의 실상을 낱낱이 알게 되어 지리산 가지 않고도 함께 갔다온 듯 합니다.
이러다 몇 년 지나 저도 지리산 일행 중에 끼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뒤바뀌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까?
싶을 정도로 생생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ㅋㅋ
ㅎㅎㅎ 제가 말한 절주는 絶酒가 아니라 節酒인데요~ 귀희 님의 少酒와 대략 일치합니다.
그 밤의 만찬이.. 그 날의 비빔밥이.. 그 날의 소주가.. ~^^
생생한 후기 잘보았습니다.
이렇게 인생에 행복한 점을 찍듯 각인된 지리산이라 아마도 다시 찾으실껍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다시찾게 되는 산
지리산이지요~~~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누구하고 같이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지요. 같이 가신 모든 분들이 이번 산행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한 특별함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 뒤풀이에서 산행후기 얘기를 꺼냈는데, 말을 하고 나니까 바로 '숙제'가 되더라구요 ㅋ
2주가 지나서 숙제를 냈습니다. 남들 앞에 내 놓을 만한 수준의 글은 못되더라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각자 산행중 경험했던 유무형의 즐거움을 다시 한번 떠 올려보는데 조금 도움이 되었다면, 제겐 다행이고 영광입니다 ☆
지난 늦여름의 지리산의 아름다운 추억이
손남옥 님의 <지리산 산행 후기>로 마무리되네요.
이번엔 눈이 내리는 겨울의 추억은 덕유산에서 만들면 어떨까요?
코~~~올~^^
극기훈련하는 분들 같아용. 한여름은 지리산, 한겨울은 덕유산 ㅠ.ㅠ
꽃피는 봄, 선선한 가을은 놔두고 …
겨울엔 제가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웬만하면 덕유산도 함께 가겠습니다.
ㅍㅎㅎㅎ
글 보고도 많이 웃었는데
마지막에 귀희님 댓글보고 박장대소했습니다.
그러게요.
무슨 극기훈련. ㅋㅋㅋㅋ
3년전의 기억이 온전히 담겨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