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내가 법관이 되기를 원하셨고
가난으로 평생을 찌드신 어머니는
아들이 돈을 잘 벌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어쩌다 시에 눈이 뜨고
애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나는 부모의 뜻과는 먼 길을 걸어왔다
나이 사십에도 궁티를 못 벗은 나를
살 붙이고 살아온 당신마저 비웃지만
서러운 것은 가난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시대는 없는 사람이 없는 대로
맘 편하게 살도록 가만두지 않는다
세상 사는 일에 길들지 않은
나에게는 그것이 그렇게도 노엽다
내 사람아, 울지 말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아라
평생에 죄나 짓지 않고 살면 좋으련만
그렇게 살기가 죽기보다 어렵구나
어쩌랴, 바람이 딴 데서 불러와도
마음 단단히 먹고
한 치도 얼굴을 돌리지 말아라.
(정희성의 '길' 전문)
여러 해 전, 광양에서 열린 윤동주 관련 발표회에 참석했던 시인을 만난 적이 있다.
이제는 은퇴해서 부산에서 활동하신다는 말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의 내용으로 보아, 이 작품은 벌써 칠순이 넘은 시인의 나이 40살 무렵의 젊은 시절에 창작한 것이리라.
시를 쓰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국어 교사로 평생을 살아온 자신의 삶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무엇보다 '평생에 죄나 짓지 않고 살면 좋으련만'이라고 토로하는 시인의 맑은 심성이 느껴진다.
비록 젊은 시절 부모들의 뜻과는 다르게 교사로 그리고 시인으로 살아왔으며, 지금은 아내에게마저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지만 그 삶을 그대로 존중한다.
2020년 새해가 시작되는 아침, 이 작품에 담긴 시인의 맑은 심성을 느껴본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