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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주의 철학자로만 알고 있었던 데이비드 흄의 생애와 사상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상세히 알 수 있었다. 그는 인간 본성을 탐구하는데 있어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뉴턴의 과학적 방법론과 존 로크의 인식론을 토대로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탐구하려고 했다. 경험을 떠나서는 어떤 인식도 불가능하다는 그의 주장은 이른바 경험주의 철학으로 명명되기에 이른다. 지금의 관점에서는 경험주의 이론이 지닌 허점이 명백하게 드러나지만, 당시 그가 왜 이러한 주장을 펼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철학사의 흐름을 통해서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데이비드 흄의 생애와 함께 자신의 철학적 관점을 정립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자 한 철학자'라는 책의 부제가, 철학자로서의 그의 실상을 보다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로서 데카르트의 회의론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며 경험을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여전히 서구 사상을 지배하고 있는 신학적 관점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으며, 정작 영국에서는 무신론자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저자는 흄이 신을 부정하지는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의 대표적 논거로 알려진 <인성론>은 프랑스의 라플레슈에 머물면서 저술을 했으며, 출간 초기에는 오히려 ‘위험한 책’으로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후 이 책을 출간했으나, 당시 사람들의 평가는 그리 좋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인성론>은 흄 스스로도 '인쇄기에서 이미 사산되었다'라고 말하며, 여러 차례 개정을 하며 다른 제목으로 바꾸어 출간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오늘날 사람들에게 그 책이 그를 대표하는 저서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만연한 '종교적 기적'에 대해 흄은 '기적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증거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증거보다 늘 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적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믿을 만한 근거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즉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믿는 것은 '기적이 아닌 그저 놀라운 행운'일 뿐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던 당시 영국에서는 흄을 무신론자라고 비판을 했던 것이다. 저자는 흄이 종교에 대해 비판을 했지만, 무신론자가 아닌 이러한 '황당한 주장'들을 당연시하는 세태에 대해 비판적이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돌아온 이후 두 곳의 대학에서 무신론자란 이유로 교수 임용에 실퍄하여, 흄은 평생 재야 학자로 활동해야만 했다. 저자는 만약 흄이 대학 교수가 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철학자로 알려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는 고향인 에든버러를 떠나 프랑스 라플레슈에서 <인성론>을 저작하고, 영국으로 돌아온 이후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자 다시 고향으로 귀환하였다. 이후 프랑스 주재 영국 대사를 따라 프랑스로 향한 흄은 당시 지성인들의 사교장이었던 살롱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과의 교유를 하기도 했다.
이 당시 프랑스의 박해를 피해 방랑하던 루소의 후원자가 되어 영국으로의 도피를 도와주지만, 루소의 감정적인 성향 탓에 그의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결별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저자는 이 두 사람을 일컬어 '계몽주의의 두 거장'이라고 일컫고 있으며, 훗날 루소와의 관계에서 벌어진 사건을 '내 인생의 불행'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이미 6권으로 구성된 <영국사>가 베스트셀러로 자리를 잡으면서, 만년의 그는 고향인 에든버러에서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올드칼튼 묘지에 묻혔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흄의 사상과 그 시대적 배경 등을 상세히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철학사에서 경험주의가 가진 장점과 단점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왜 흄이 경험을 중시했는지에 대해 당시의 지적 풍토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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