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친구들과 어울려 주량을 자랑하듯 내세우며 술을 마시던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도 술을 좋아하지만, 이제는 건강을 생각하며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저자 역시 이런 부제를 내걸 정도로 애주가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리즈의 책들이 다 그렇듯이, 이 책 역시 저자의 술에 관한 다양한 경력을 소개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술을 좋아해서 이 책을 쓰게 됐고, 이 책을 쓰게 돼서 기쁘다’라고 책을 저술한 느낌을 정리할 수 있다고 한다. 굳이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부질없는 노릇이겠지만, 만약 내가 같은 주제로 글을 쓴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저자는 자신이 마신 ‘첫 술’이 수능 백일을 앞두고 친구들과 마신 ‘수능 백일주’였다고 한다. 까마득한 학력고사 세대인 나에게는 생소하지만, 간혹 대학생들에게 그러한 문화가 있다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어찌됐든 ‘첫 술’에 잔뜩 취한 다음 날 아침에는 어김없이 ‘다시는 술을 마시나 봐라’는 다짐을 하게 되지만, 결국 그 경험이 저자를 이른바 ‘주당’의 세계로 이끌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양한 술에 대한 기억은 애주가들에게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라고 할 것이다. 각자의 상황과 경험들을 대치한다면, 그야말로 각자의 술에 대한 ‘찬란한 역사’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술에 대한 편력을 한꺼번에 정리하여 소개할 수 있는 저자의 능력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즐기던 대학 시절 누군가 술을 살 수 있는 조건이 되면, 술을 마시고 테이블 한 쪽에 우리가 마셨던 술병들을 나열하며 스스로 만족했던 경험이 떠오른다. 아마도 저자는 ‘소주 오르골’ 소리를 듣는 것에서 그러한 만족감을 느꼈던 것 같다. 소주병을 따서 첫잔을 따를 때 들리는 ‘똘똘똘똘과 꼴꼴꼴꼴 사이 어디쯤에 있는’ 소리를 일컬어 저자는 ‘소주 오르골’이라고 표현한다. 그 소리를듣기 위해 아직 다 마시지도 않은 소주를 두고 새 병을 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우연히 마신 와인에 빠져 점점 고급 와인을 찾으면서 경제적 압박을 받았던 경험, 그리고 마침내 ‘혼술’의 경지에 이르게 되기까지의 과정 등이 저자의 개성적인 필치로 그려지고 있다. 나 역시 최근 코로나시대를 맞아 지인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보다 혼술을 하는 기회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누군가는 ‘혼술’이 알콜 중독의 전조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다른 사람과 보조를 맞추지 않고 언제든지 술잔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 혼술의 매력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혼술은 언제나 1차에서 끝난다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술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만의 음주에 대한 기억과 역사를 되짚어보게 될 것이라고 여겨진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