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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에서 공자(孔子)는 매우 특별한 인물이며, 유가(儒家)에서는 그를 성인(聖仁)이라 칭하고 있다. 특히 공자가 생존했던 시기는 이른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과도기에 해당한다. 수많은 군웅이 할거했던 춘추전국시대를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누는 기준이 바로 공자가 편찬했던 역사서인 <춘추>의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루어지는 분량과 상관없이, ‘오월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동주 열국지>의 제4권에서 가장 주목할 인물은 바로 공자라 할 수 있다. 물론 공자의 생애와 행적에 대해서는 사마천의 <사기>와 공자의 제자들이 엮은 <논어>를 통해서도 상세히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도 마지막 부분에 공자와 제자들의 활약이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국시대에 활동했던 맹자는 당시의 군주들이 자신의 힘을 바탕으로 세력 다툼을 행하는 패도정치를 대신하여, 인의(仁義)와 같은 덕목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역설했다. 맹자는 스스로 공자의 사상을 잇는다고 자처하면서, 전국시대 각국의 군주들을 찾아다니며 왕도정치를 시행할 것을 역설했다. 그러나 공자의 행적이 그렇듯이, 맹자의 말을 따르는 군주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주변의 강국에 의해서 금방이라도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는 판국에, 도덕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는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이른바 춘추시대의 군주들은 패도를 추구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명분을 바탕으로 행동했지만, 전국시대에 이르면 그러한 명분조차도 없이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는 것에 치중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최초의 왕조는 과거 장안(지금의 시안)이라 불리는 대륙의 서쪽 내륙에서부터 시작되어 점차 동쪽과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동주 열국지>의 제4권인 ‘오월시대’는 남방국인 초나라의 세력 확대 이후에 동남쪽 변방이 위치해 있던 오나라와 월나라가 본격적으로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시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할 인물들은 바로 오나라에서 활동했던 오자서와 월왕 구천을 패자로 이끌었던 범리(범려)라고 하겠다. 본래 초나라 출신이었던 오자서는 부친과 형이 초왕에 의해서 처형을 당하자, 복수를 다짐하며 여러 나라를 거쳐 오나라에 정착하게 된다. 오자서는 오왕 합려를 왕위에 즉위시키고, 그를 춘추시대의 패자로 군림할 수 있도록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하지만 합려의 아들인 부차가 즉위하면서, 같은 초나라 출신의 망명객인 백비와의 마찰로 인해 끝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어가면서 죽어서라도 오나라가 망하는 것을 지켜보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자신의 목을 오나라 성문에 걸도록 하고, 분노한 오왕에 의해 시신은 가죽자루에 쌓여 강가에 버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가문의 복수를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오자서의 초반의 행적은 아주 드라마틱하며, 오왕을 도와 마침내 초나라를 격파하여 부친을 죽인 초평왕의 시신을 파헤쳐 채찍질을 하는 부분에서는 독자들의 쾌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후 다시 오왕에게 충간을 하지만 끝내 버림받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오자서의 비장감이 넘치는 스토리는 후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오자서의 일생은 후대에 다양한 이야기를 파생시키며 전해졌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에서도 적지 않은 문인들이 복수를 다짐하며 오자서를 소재로 한 한시와 시조를 지어 남기기도 했다.
이와는 달리 범리는 오나라에 의해 망할 지경이었던 월왕 구천을 도와, 끝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구천을 패자로 만들었던 인물이다. 이후 범리는 미련 없이 월나라 조정에서 물러나, 강호에 묻혀 살면서 명예를 지킨 인물이라 하겠다. <사기>의 ‘화식열전’은 상업적 수완을 발휘하여 부자가 된 인물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 글에서 월나라를 떠난 범리가 이름을 ‘치이자피’로 바꾸고 장사를 통해 큰돈을 벌어 백성들을 구제해 도주공이라 칭송을 받기도 했다고 밝히고 있다. 아마도 <사기>의 내용을 수용한 것으로 보이는 이 책에서도 범리의 후일담을 간략하게 밝히고 있다. 군주를 도와 패권을 쟁취한 이후 오자서와 범리의 상반된 행적은 난세를 살아가는 지략가들의 행적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14년 동안 중국 대륙을 돌아다니며 각국의 군주들에게 인(仁)을 바탕으로 정치를 행할 것을 강조했던 공자의 사상은 비록 당대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이후 맹자와 주자를 통해서 정치한 철학으로 정립되어 지금까지 동아시아 철학의 핵심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땔나무에서 자며 동물의 쓸개를 맛보며 복수를 하기 위해 준비하는 월왕 구천의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도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오월시대’의 과도기를 지나고 이제 중국의 역사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전국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이후의 중국 역사는 자신에게 유리한 바를 좇기 위하여, 이해관계를 좇아 쉽게 결합하고 또 헤어지는 이른바 ‘합종연횡’이 판치는 모습이 전개될 것으로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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