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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인 <페인트>는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이라는 영문 표현의 줄임말이다. 부모가 되기 위해 대상이 되는 아이들과 면접을 하고, 아이들이 부모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가상의 상황이 작품 속에서 펼쳐진다.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상황, 작가는 그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부모가 된다는 것’의 문제를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다. 이제는 까마득하여 잘 생각나지도 않지만 내가 부모님들에게 했던 갖가지 상념들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고, 아들의 입장에서 나의 ‘부모 노릇’을 진지하게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었다.
어느 잡지에서 읽었던, “결핍이 축복이다!”라는 조한혜정 교수의 말이 생각났다. 학교밖 아이들과의 생활을 통해서, 늘 결핍을 느끼던 그들이 그것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 말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에 비해 부모들의 온전한 ‘보호’ 안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오히려 무엇인가를 스스로 하는 능력을 상실한 것 같이 느껴졌다고 한다. 결핍의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꾸려가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 말에 크게 공감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원하는 모든 것을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사람들이 바라는 진정한 행복의 조건은 아닐테니까.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부모가 포기한 아이들을 국가가 책임지고 양육하는 가상의 시스템이 작품에 설정된 상황이다. 이른바 ‘국가의 아이들(nation’s children)’이 생활하는 곳을 ‘NC 센터’라 부르고, 14살 이상의 아이들을 입양하기 위해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면접을 보아야 한다는 내용. 그곳에서 센터를 이끌어가는 ‘가디언(가디)’들과 태어난 달의 명칭에 따라 이름이 부여되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같은 달에 태어난 아이들은 동일한 이름 뒤의 숫자로 표기되는 현실. 운이 좋아 부모 면접을 통과해서 새로운 가족이 만들어지면, 아이들의 이곳에서의 생활은 삭제되고 새로운 이름으로 생활하게 된다고 한다.
1월에 센터에 들어온 301번째 아이라는 의미의 ‘제누301’이라고 불리는 17살의 아이, 그리고 10월에 센터에 들어와 한 방을 쓰는 14살의 ‘아키505’와 성으로만 불리는 그들을 보살피는 ‘가디’들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그리고 이미 한번 부모를 선택했다가 포기하고 다시 센터로 돌아온, 제누와 같은 나이의 ‘노아 208’이 부모를 만나기 위한 ‘페인트’를 진행하면서 엮어지는 다양한 사연들이 펼쳐진다.누군가는 선택을 해서 센터를 떠나기도 하지만, ‘제누301’은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만났음에도 ‘좋은 아들이 될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끝내 센터를 떠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가디’들의 개인적인 사정이 드러나기도 하고, 온갖 잡일을 처리하는 로봇(헬퍼)들의 존재도 드러난다.
자세한 줄거리는 책을 읽는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는 동안 ‘부모 노릇’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떠올렸다. 부모의 입장에서 아마도 자식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다 너를 위해서야!"라는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진정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자식들을 위해서일까? 혹시 부모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식들에게 ‘너를 위해서’라는 이유를 대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볼 필요가있을 것이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자식일 때의 행동을 돌아보고 문득 부끄러움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자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해 귀기울여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알 것 같다. 모름지기 부모의 처지에서 자식들에게 무언가를 바라기보다 스스로 제대로 ‘부모 노릇’을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많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 작품이라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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