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군사독재 시대...
김병상 신부님과 함께 인천시민회관 광장에 모여 촛불 들고 민주화를 염원하는 기도 모임이 오늘도 여지없이 이어졌다.
1986.5.3일 인천의 많은 시민이 모여, 군사정권 타도를 목청 높여 외쳐 대고 수없이 쏘아 대던 최류까스가 골목 까지 날라와 눈물과 콧물이 정신 없이 쏟아질 때, 쫒기던 대학생들을 위하여 반드럼 들이 큼직한 고무다라에 물을 가득 채워 놓고 대문을 활짝 개방 해 놓던 어머니...
그 이후 주안1동 성당 신자들은 오후 7시가 되면 시민회관 광장 모임이 상설화 되었다.
인천 5.3민주화 운동이 도화선이 되어 1987년 6월 항쟁으로 전국이 어수선 할 때...
대의원제도에 의한 체육관 선거의 비민주적 제도에 대한 저항의 꿈을 조용히 키우고 있었다.
가장 절실하였던 부분이 노동조합의 간선제...
대통령의 간접선출도 큰 문제였지만, 이를 합리와 시키기 위한 사회 모든 공조직의 단체장 간선 선출 문제... 특히 노동조합 조직 운영의 문제점으로 조합원으로 부터 외면 받는 상태에서 구태 의연한 조합 간부들의 작태...
대의원에 의한 간접선거 제도는 모든 참여자는 물론 관련자들의 요구와 관심도의 저하 요인 발생으로 미래 성장 동력을 상실 할 뿐 아니라 가장 비민주적인 제도임으로 정부와 모든 사회의 구성단체는 직선제로 해당 단체장 선출방법의 변화가 시급하다는 대자보를 1987년 11월 달에 KT인천지사 민원실 출입 정문 유리창에 이절지 지면에 수기 작성하여 부착하였다.
군사정권에서 정부투자기관의 이러한 대자보 부착은 감히 상상도 못 할 큰 사건이였다.
많은 직원들이 공감하고 응원을 하였지만, 이 순간 이후 회사와 한국노총 KT노동조합의 특별 관리라는 감시와 동료와의 격리는 상상을 초월 할 정도로 나에게 주어진 큰 부담을 감수해야 했고, 그로 인하여 인생의 변환점이 되었다.
그로 인하여 생각지도 못할 전출...
4급 승진 KT성남지사의 인사 발령으로 인천에서의 꿈은 마지못해 후임으로 공채출신 새내기에게 위임 하였지만, 일부 조합원의 배신으로 인지도가 전무하였던 그는 3표라는 아슬아슬한 표 차이로 안타깝게 노조지부장 선출에서 낙선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멀리 성남에서 응원하였던 그 때 상황에서 신출 내기 신입사원과 장기 집권한 터줏 대감과의 경합에서 그 이상의 지지를 받은 결과로 자평하며, 이후 Kt와 KTTU라는 두 거대 조직은 작은 나 하나를 감시하고, 동료들과 격리 시키는 공작 과정이 더더욱 예민하여진 상태였다.
1996년 회사에서 추진하였던 신인사 제도(안)은 내가 역제안한 137페이지의 인사안을 갖고 제도국장과 토론에서 원점으로 돌려졌고, 유사직렬 통폐합을 시키는 작업등 그 외 조직의 많은 문제점을 풀었던 과정을 연재 할 것이다 .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거침없는 행동은 나의 큰 변환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