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스 가족의 봄 편지
봄입니다!
보드라운 햇살과 꽃바람에 배움터 생명들이 하나 둘 깨어나고 있어요. 하늘도, 땅도, 우리 아이들도.
여러분도 그러하시지요?
지난 겨울 배움지기 수련의 화두는 “우리가 뭘하려고 모여있나?” 였습니다. 길고 긴 수련의 끄트머리에 제게 이런 답이 들렸던 것 같아요. “나는 하늘의 소리를 들으며, 사랑하며, 배우는 학생으로 살러 왔다.”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모든 게 달라보였어요. 가장 크게는 배움터의 모든 존재, 마주치는 모든 상황들이 배움꺼리로 다가왔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이 배움터가 저의‘온전한 생활 터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 아닌게 아니라 요즘 저는 매일 집에서 살림살이 하나하나 빼오는게 일이랍니다. 압력밥솥, 주전자, 행주치마, 드립커피세트까지... (같이 사는 사람이 집 넓어진다고 좋아라하대요. ^^)
그리고 그 겨울의 끝자락, 저는 하늘이 보내주신 열 한명의 아이들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기쁘게 떨리고, 유쾌하게 긴장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오호라, 나는 이제부터 열 한명의 자식을 기르는 엄마로 살겠구나! 그러면 되겠구나!’
안성우, 정용훈, 장재희, 강다은, 이주환, 임현승, 하승희, 이준서, 조구빈, 강태식, 이어진 그리고 저 제니스 이렇게 열 두 식구는 3월 한 달을 이렇게 살았습니다.
아침산책은 충분히 놀며놀며 걷습니다. 나날이 달라지는 해의 높이, 갯벌의 밀물썰물, 어김없이 피어나는 매화꽃, 이른 아침 땅을 일구시는 동네 어르신들의 살가운 말 한마디... 이 모두가 매일 만나는 풍경이며 일상입니다. 갑자기 비 내리는 아침, 우산없이 걸을 아이들 생각에 급히 차를 돌렸는데 되려 아이들이 묻습니다.“왜 안 걸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리는 걷는다며?”우리 이렇게 걸으며 살고 있어요. (도법 스님이 그러셨어요. 때려서라도 걷게 하라고! 사람이면 걸어야 한다고)
배움터에 도착하면 제니스 가족은 팽할아버지 (팽나무인 줄 알았는데 느티나무) 아래 하나 둘 모여 하늘기도를 드립니다. 비염을 낫게 해 달라고, 우리 엄마가 잔소리를 안 하시게 해 달라고, 오늘은 더 많이 놀게 해 주시라고... 다 모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모인 가족들끼리 손잡고 그렇게 오늘 염원을 담아봅니다.
가족방에 모이면 (실은 열두명 모두 모인 적이 거의 없어요) 둥글게 모여앉아 아침열기를 시작합니다. “두 손 하늘 땅~” 하면 반가부좌를 틀고 왼손은 하늘, 오른손은 땅을 향해 올려 놓습니다. 부스럭부스럭 궁시럭궁시럭~ 잘 되지 않지요. 연습하자고 합니다. 고요와 평화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려주자고 합니다. 이윽고 찾아오는 놀랍도록 고요한 평화. “close your eyes" (영어로 하면 더 잘 통할때가 있답니다) 눈을 감고, 내 몸 어느 한 곳에 빛을 보내주기도 하고, 함께 하지 못한 가족들과 마음 주어야 할 존재들을 위해 마음을 모아줍니다. 차를 마시거나 (서로 차 선생 하겠다고 야단), 향을 피우거나 (서로 피우려고 안달), 비님 오시는 날엔 촛불을 켜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하늘의 소리를 들려준다는 리코더와 만납니다. 유키, 하니, 비니, 스타워즈, 메리크리스, 레도, 신호등, 삼식이, 앵그리버드... 이름을 붙여주고 매만져줍니다. 처음엔 고사리 손으로 구멍 막기도 힘들어 하더니 이젠 제법 고운 소리를 냅니다. 어린 친구들도 따라 할 수 있게 느리게 느리게, 정성을 다 해 한 음 한 음 만나는 연습.‘피어납니다’'다 봄님이에요’‘송알송알’‘섬집아기’‘내 친구 이름은’(오, 벌써 레파토리가 이렇게 다양해졌다니!)
윤독도 해 보았어요. 관옥 선생님이 쓰신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란 책을 한 친구가 읽고싶은 데까지 읽고 다른 친구에게 전해 주는 건데요, 아직은 익숙치 않아 모기 소리가 되거나, 대충 읽고 다른 친구에게 책을 던져버리거나...가장 어려운 건 아무래도 ‘잘 듣는 것’입니다. 일주일동안 윤독을 하다가 지금은 쉬고 있습니다. 조금 더 무르익은 후 다시 찬찬히 해 보려구요.
10시 30분쯤 아침열기를 마치면 그 날의 ‘밥선생’ 두 명이서 밥을 짓습니다. 백미만 골라 지을까봐 아예 콩, 수수, 현미, 백미를 미리 섞어 쌀통에 넣어두었지요. 처음엔 이러쿵저러쿵 하던 친구들도 이제는 한마디 불평도 없습니다. 지난 주엔 저의 주도로 압력밥솥에 밥을 지어봤는데 죽밥, 생쌀밥, 탄밥 등등 엉망진창... 모두 저를 노려보았습니다. (그래도 누룽지 해 주니 좋아하대요!) 지금은 그냥 아이들이 전기밭솥에 밥을 짓고 있습니다.
일명 ‘수업’이라고 일컬었던 교과목 배움 대신, 크게 오전/오후로 나누어 교실 안팎의 배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3월 중순까지는 배움 준비 기간이었습니다. 주로 오전엔 공책 만들기, 새 배움터 익히기, 가족 약속 정하기, 찾는배 정하기 등 새로운 공간과 흐름에 몸과 마음을 적응하는 시간을 보냈고, 오후엔 배움지기들이 페인팅, 공간정리, 청소, 살림방 꾸미기 등 공동울력을 하는 동안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친구들이 힘을 보태주기도 했습니다. 나머지 친구들은 맘껏 뛰노는 자유시간을 보냈지요.
3월 중순부터는 본격적인 밭일이 시작되었습니다. 거름을 주고, 이랑을 만들고, 씨감자를 심고... 흙을 통해 치유와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았기에, 자연의 흐름에 따라 생명을 심고, 기르고, 거두어 먹고, 싸서 다시 땅으로 순환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살고 싶었습니다. 우선 저 스스로 그렇게 살려고 해요. 아이들의 참여는 순전히 자율에 맡기고 있습니다. 하기 싫은 마음을 가진 친구들은 신성한 밭에 들어가지 말자고 약속했습니다. 해야 할 밭일을 알려주고 스스로 필요한 농기구를 요청하면 제가 창고에서 꺼내줍니다. 호미, 삽, 구아, 장갑... 절로 알게 되겠지요. 이랑은 호미로는 파기 어렵다는 것, 장화가 훨씬 편하다는 것, 똥거름을 나르려면 맨손은 거시기 하다는 것, 일하다보면 목이 마르다는 것도... 제가 그러고 있거든요! 재밌는건 농사일 하기 싫다고 손사래쳤던 친구들도 하나둘 밭으로 모인다는 겁니다. 요 귀여운 청개구리들! 지금은 감자, 고구마, 봄콩을 심었고, 이번 주까지 쌈채소를 심을 생각이에요. 제가 워낙 생초보라 구랑실과 너구리 밭을 곁눈질하며 몸으로 때우고 있습니다. 일을 마치고 리어카에 농기구와 아이들을 태우고 냅다 한 번 내달려주면 신나서 다들 자빠집니다. 노처녀가 힘도 세다며...!
매주 달날 오후는 찾는배 시간입니다. 아이들 스스로 구랑실, 너구리, 민들레, 제니스라는 사람을 찾아 배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 배움지기들에게도 다른 가족 아이들을 만나고 (실은 많이 그립거든요), 아이들과 나의 ‘결’을 알아갈 수 있는 좋은 시간인 것 같아요.
매주 나무날 오후는 ‘빛칠하기’라 이름 부르는 젖은 그림 그리기 시간을 가족별로 갖습니다. 이 배움을 위해 전날 배움지기들은 미리 수업시연을 해요. (배움지기가 아이들 역할을 하는데 참으로 어색하고 웃음보가 터지기도 하고...) 젖은 종이는 빛깔의 깊이를 훨씬 풍성하게 해 주는 것 같아요. 이 세상에 빛이 있어 볼 수 있는 모든 아름다운 빛깔들을 만나는 시간. 잘그렸다 못그렸다도 없고, 무심한 나의 붓질이 의도하지 않은 놀라운 그림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내 안의 무한한 감성과 미적인 감각을 일깨우는 시간이기를 기대합니다.
매주 불날과 물날 오후, 새싹·줄기가 힘껏 몸으로 노는 자유시간을 가질때 잎새·꽃잎·열매는 생활 속 지혜 찾기 배움을 갖습니다. 4월부터 생태 화장실과 퇴비장을 아이들과 함께 지어보려고 합니다. 지속가능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생태순환적 삶을 살아보자는 것이지요. 지난 주엔 생태 화장실의 의미와 내가 그리는 생태화장실의 모습을 이야기 했습니다. 네 명의 작은가족 배움지기들이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안팎의 역할을 나눠보기로 했습니다. 수와셈, 과학, 생물, 디자인 등등 공부거리가 무궁무진 하겠지요?
매주 쇠날은 공동체의 날. 배움터 모든 식구들이 몸놀이를 함께 하고, 작은가족 회의를 합니다. 저희 가족은 첫 회의였는데 다섯바퀴까지 도는 열정을 보이기도! 아침열기를 제대로 해 보자, 밥 지을때 감자를 넣자, 신발장 실내화와 운동화 칸을 구분해서 사용하자 등등...
매일 11시 40분부터 밥모심을 준비합니다. (밥모심은 각자 가족방에서) 갓 지은 잡곡밥, 진짜로 맛있게 익은 김장김치와 정성스런 엄마들 반찬 두 가지를 각자 앞에 차려놓고 12시 정오기도 종이 울리면 손을 멈추고 마음을 모읍니다. (아마도 아이들의 가장 절절한 기도는 ‘땡땡!’ 마침 종소리를 듣는 걸거예요. 공간이 워낙 넓어져서인지 아침부터 배고프다며 아우성이거든요. 기도하며 침만 꼴까닥~)
밥선생이 그 날 밥모심 기도를 정합니다. 밥은 하늘이라고, 하늘은 혼자 못가지듯이 밥은 서로서로 나누어 먹자고,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삼키자고, 사람이 고마운 줄을 모르면 그게 사람이 아닌거라고... 말로만 읊조렸던 기도와 노랫말대로 해 보자고. 가장 중심에 두는 건 자기에게 주어진 음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밥 한 톨 흘리거나 남기지 않고 제대로 먹는 것입니다. 식기 소리 내지 않고, 소리 지르지 않고, 음식을 입에 문 채 돌아다니지 않고, 맛잇는 반찬 욕심내지 않고... 어휴, 밥모심만 잘해도 배울 게 엄청나대요! 지난 주였나요, 반찬을 깜박한 게 아주아주 신나는 밥상을 선사했습니다. 칼 하나씩 들고 밭에 나가 냉이와 각종 봄나물을 캐서 공양간에서 봄나물 된장국을 끓였거든요. 들통 가득 끓인 국이 금세 바닥이 났고, 아이들은 ‘맛있다!’를 연발하며 매일매일 요리해 먹자고 졸라대기도 했습니다. 이웃 가족들에게 한 대접씩 인심도 쓰구요. 하지만 아직 밥모심 숙제거리가 많답니다. 우선 열 두명 모두 모이는 것이 가장 큰 소망. 결석하거나, 밥때가 되면 소리없이 사라지거나... 편식과 폭식의 습관도 차차 개선해야겠구요. 가정에서도 단맛, 인스턴트, 지나친 육류 등의 식습관을 고쳐나가 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이 듭니다.
하루닫기는 청소로 시작합니다. 청소가 귀찮은 일 또는 벌칙이 아닌, 사는 데 꼭 필요한 즐거운 놀이라는 걸 함께 느끼고 싶어요. 간디 선생님도 정리정돈과 청결을 중요한 교육으로 여기셨다지요? 처음엔 제가 하면 당연히 따라하겠지 하고 자율에 맡겼는데... 흠... 그래서 어제부터 사다리타기로 소임을 나누었더니 결과가 사뭇 달라졌어요. 3시도 안되어 청소하겠다는 친구, 빗자루만 들고 돌아다니면서도 눈치는 보는 친구, 야무지게 정해진 소임을 다 하는 친구...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을 알아차리기만 해도 절반의 배움은 되지 않을까요?
마무리 명상은 리코더를 불고, 신나고 즐거운 하루에 감사하며 들숨의 시간을 가지려고 연습 중입니다. 이 마무리 시간이 남은 하루를 이끌어 준다고 합니다. 더 마음 모으고 싶습니다. 제니스 가족의 헤어짐 인사는요,“우리는 한 몸 한 마음, 나는 하늘 사람!”이렇게 아이들을 보냅니다.
3월 한 달, 저희 이렇게 살았습니다. 아마도 새로운 흐름이 자리 잡고 뿌리 내리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그래서 천일을 바라봅니다. 아이들과도 긴 호흡으로 가고자 합니다. 배움지기의 삶이 곧 배움이 되는 사랑어린 배움터. 이 모든 것의 중심은 바로 나, ‘사랑’입니다. 각 가정에서 따뜻한 빛을 보내주시길!
2012년 3월 29일 나무날 제니스 두 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