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3 박해의 종식
8.3.1 정부의 입장-기해<척사윤음>
선교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신자들이 서울과 각 지역에서 죽임을 당할 무렵, 조정에서는 1839년 11월 23일(음력 10월 18일) <척사윤음>을 반포하였다. 이미 대부분의 대표적인 신자들을 체포·처형하였으므로 더 이상 박해를 끌어갈 필요가 없다는 판단 아래 이를 반포함으로써 천주교는 사악한 학문이라는 점을 널리 알리는 동시에 이 대대적인 박해를 일단락 짓고자 한 것이다.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 기해<척사윤음>은 우의정인 조인영이 지은 것으로, 지방까지 널리 알리도록 하였다.
기해<척사윤음>은 먼저 태조(太祖, 1392~1398) 이후 역대 임금들의 교서·교훈·격언 등을 근거로 ‘천주학’이 성행하는 현실을 개탄하고 윤음을 내리는 목적을 밝히고 있다. 이 당시 조선은 스스로를 ‘소중화’(小中華)라고 한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유교 문명의 수호자로 자처하였다. 그렇기에 여기에서 벗어나는 문화와 사람은 모두 사학이고 이단이며 오랑캐로 간주되었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조선은 문명을 이룬 곳으로 교화와 미풍, 그리고 도덕적 가르침이 이어진 지 오래되었는데, 흉적 이승훈(李承薰, 베드로, 1756~ 1801)이 서양의 책을 사 가지고 와 천주학이라 일컫고 이를 퍼뜨려 오랑캐와 금수의 땅으로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1752~1801) 신부가 감히 도시를 활보하고, 황사영(黃嗣永, 알렉시오, 1775~ 1801)은 <백서>를 마련하여 해양의 선박을 불러들이고자 하였고, 요망한 역관이 몰래 서양인을 불러들인 것도 두세 번에 이르니, 그들이 얼마나 흉악한 꾀와 배반을 도모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도 없고 백성들을 가르치지 않고 벌을 주는 것은 그들에게 재앙을 주는 것이니, 전통적인 유교이념에 따라 백성을 교화하고자 천주학의 잘못된 부분을 하나하나 분석하여 윤음을 내리니 잘 받들라고 하였다.
첫째, 이 학문은 하늘을 공경하고 높이 받든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하늘을 속이고 업신여기는 행위라고 하였다. 천주학을 한다는 자들이 공경하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죄를 씻고 은총을 구하는 여러 가지 천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하늘이 명한 여러 가지 유교적 가치를 공경하고 그 가르침에 순종하지도 않으면서도 하늘을 빗대는 사악한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둘째, 예수라는 존재는 고금을 통해 있을 수 없는 거짓된 이치라고 하였다. 예수는 사람인지 귀신인지,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지 못하겠는데, 하느님으로 왔다가 죽어서 다시 하느님이 되어 만물과 백성의 대부모가 되었다는 거짓 주장을 편다는 것이다. 또한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하늘과 몸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서로 섞일 수가 없는데 하늘과 사람을 뒤섞는 이치에 닿지도 않는 주장을 하느냐고 반문하였다. 특히 예수는 가장 참혹하게 죽은 자라고 하니 그 학문이 복이 되는 것인지 화가 되는 것인지가 분명한데 처형되는 것을 즐겁게 여겨 두려움도 모르니 천주교 신자들은 매우 어리석은 자들이거나 망령된 자들이라고 하였다.
셋째, 부모를 업신여기어 사람의 근본 도리인 ‘효’를 찾을 수 없다고 하였다. 영혼의 부모인 하느님을 받들고, 육신의 부모는 제사를 폐하면서까지 관계를 끊는다며 짐승에게도 있는 부자의 의리를 외면하니 사람으로서의 양심이 극도로 없다고 하였다. 또한 예수가 아비 없이 태어났다고 하는 것도 부모의 은덕을 갚으려하기는 커녕 거짓으로 속이는 것이라고 하였다.
넷째, 천하에 통용되는 군신의 의리를 부정한다고 하였다. 교황, 교주 등의 칭호를 만들어 군주의 권력을 훔쳐서 임금의 교화가 미치지 못하게 하고 명령이 시행되지 못하게 하니, ‘충’을 어기어 재앙과 난리의 근본이 된다고 하였다.
다섯째, 부부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이 ‘정’(貞)을 더럽힌다고 하였다. 부부가 있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세상의 이치인데 결혼하지 않는 것을 정숙하고 정결한 덕이라 하고, 오히려 남녀가 섞여 살면서 풍속을 어지럽히니 전자는 인류가 멸망해 없어지는 일이고, 후자는 인륜이 더럽혀지는 일이라고 하였다.
여섯째, 이미 철저하게 비판받은 진부한 불교의 주장인 천당·지옥의 이야기를 한다고 비난하였다.
일곱째, 무엇 때문에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우리나라의 법을 버리고 다른 무리의 사악한 학설을 받아들여 함정으로 나아가느냐고 지적하였다. 우리나라에는 풍속이 있고 그 안에서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왜 스스로 만 리 밖의 사설에 빠져 스스로 죽음을 자처하느냐는 것이다. 백성은 모두 국왕의 자녀들이므로, 이미 죽은 자들이야 어쩔 수 없지만,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은 이제라도 바꿀 수 있으니 애통한 마음으로 이를 깨우쳐 알린다고 밝혔다.
이 윤음을 반포한 뒤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더 이상의 체포를 몰아붙이지는 않아 박해는 일단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옥사와 처형 등으로 이미 체포된 신자들의 순교는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