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를 덤벙덤벙 썰어 국을 끓이는 저녁이면 움파 조곤조곤 무 숭덩숭덩/붉은 고춧가루 마늘이 국에서 노닥거리는 저녁이면//어디 먼 데 가고 싶었다/먼 데가 어딘지 몰랐다//저녁 새 벚나무 가지에 쪼그리고 앉아/국 냄새 감나무 가지에 오그리고 앉아//그 먼 데, 대구국 끓는 저녁,/마흔 살 넘은 계집아이 하나/저녁 무렵 도닥도닥 밥한다/그 흔한 영혼이라는 거 멀리도 길을 걸어 타박타박 나비도 달도 나무도 다 마다하고 걸어오는 이 저녁이 대구국 끓는 저녁인 셈인데/어디 또 먼 데 가고 싶었다/먼 데가 어딘지 몰랐다//저녁 새 없는 벚나무 가지에 눈님 들고/국 냄새 가신 감나무 가지에 어둠님 자물고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2005, 문학과지성사) 전문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가 떠오르는 시다. 백석의 시가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아” 대굿국을 끓여 먹는 ‘어여쁜 사람’을 그리워한다면, 허수경의 시는 “대구를 덤벙덤벙 썰어 국을 끓이는 저녁” 그 자체를 그리워한다. 대굿국을 끓이던 그 옛날의 저녁, 어딘지도 모르는 먼 데로 떠나고만 싶던 계집아이는 먼 데인 그때 그곳으로 타박타박 다시 돌아가고 싶다. 시가 애달프고 처연한 이유, 시에서 아득히 먼 거리를 환기하는 지시관형사 ‘그’가 반복되는 까닭이다.
시를 쓸 당시에 시인은 독일에 체류하며 고고학을 공부하던 중이었다. 우리는 먼 이국땅에 있는 시인을 향해 타박타박 걸어온 ‘그 흔한 영혼’이 어떤 이들의 영혼인지 모른다. 몰라도 사무치게 깨달아진다. “물질이든 생명이든 유한한 주기를 살다가 사라져갈 때 그들의 영혼은 어디인가에 남아”(허수경) 있으리라는 것을. 또한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와 『혼자 가는 먼 집』이라는 시인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시집 제목은 그의 미래에 대한 예감이기도 했음을.
허수경은 2018년, 독일에서 투병 중 별세했다. 시인은 모국어로 시를 쓰며 ‘먼 데’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달랬던 모양이다. 덤벙덤벙, 조곤조곤, 숭덩숭덩, 도닥도닥, 타박타박, 쪼그리고, 오그리고, 눈님, 어둠님. 이 시집에 수록된 다수의 시는 표준어로 한 번, 시인의 고향인 경남 진주의 언어로 또 한 번 쓰여 있다. 시인은 고향 진주를 두고 “그 인간의 도시에서 새어 나오던 불빛들이 내 정서의 근간”이었노라 고백한 바 있다. “그 먼 적 대구국 기리는 저녁,/마흔뎅이 가시나 한 것/저녁 적 도다닥 찬데리여//그 흐저다한 혼이라는 길이 말종이 먼 재도 길 타서 타박타박 나배도 달녁도 낭구도 마다코 걸어다미는 이 저녁 새 대구국 기리는 저녁센데”(「대구 저녁국-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라는 진주 방언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말인데도 낯설다. 시인은 이를 ‘내 말’이라 부른다. 참으로 사무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