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는 아니지만, 가끔은 사회적 고통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이 인류가 겪고 있는 고통의 평균치에도 훨씬 못 미칠 것이라는 생각도 그 중 하나다. 그 범주를 인류에서 통각을 가진 모든 생명체로 넓힌다면 그 정도가 더 할 것이다. 그 평균치의 사회적 고통과 나의 삶이 무관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드는 것이다. 늦게나마 조금씩 철이 드는 징조이기도 할 것이다. 철이 든다는 것은 결국은 사회화된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요즘 병원에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어제는 전북대학병원 호흡기 내과에 가서 폐 시티를 찍었다.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는 과정에서 왼쪽 폐와 오른 쪽 폐에 각각 문제가 있음이 밝혀졌다. 왼쪽 폐는 기관지 확장증이 왔는데 치료불가라고 했다. 치료가 불가하다면 병세를 완화시킬 방법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폐렴과 독감 예방 접종을 하고 외출하고 돌아와서는 꼭 손을 씻으라고 했다. 그러겠노라고 했다. 오른 쪽 폐에는 결절이 생겼는데 한 달 뒤에도 크기가 같으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어제가 그 한 달이 되는 날이었다. 사진 결과는 다음 주에 나온다. 병원을 나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내 고통이 인류가 겪고 있는 고통의 평균치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 고통이 육체적인 고통에 한정되어 있었음에도 내 대답은 “아니요!”였다.
내 대답이 부정적이었던 것은 어제 내가 병원까지 걸어서 갔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제 작년 가을 이후 나는 발을 조금씩 절고 있다.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이지만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조금만 걸어도 발바닥이 딱딱해진다. 걷다가 서서 발로 툭툭 허공을 차기도 한다. 그러면 발바닥이 초기화되어 조금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걷다가 서고 걷다가 서고하는 일을 반복하다보면 짜증이 나기도 한다. 나는 왜 아픈 곳 투성인지, 언제부터 내가 병골이 되었는지 내 자신이 한심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어쨌거나 걸어서 병원에 갔다. 갈 수 있었으니 간 것이다. 그것도 모처럼의 산책이어서 아주 기분 좋게.
지난 1월 19일 서울 아산 병원에서 전립선 암 수술을 받았다. 회복실에서 눈을 떴을 때 5초 가량 행복했다.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두 번째 기쁨이었다. 첫 번째 기쁨은 뭐였을까? 수술을 하는 동안, 나는 잠깐 잠을 잔 기분이었다. 그 잠이라는 것도 아주 짧은, 거의 선잠에 가까운, 그것도 아주 기분 좋은 짧은 잠을 자고 난 느낌이었다. 하지만 수술실 밖에서 다섯 시간이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가족들은 달랐으리라. 그들에게 내가 나타나면 그 길고 고통스러운 기다림도 끝인 것이다. 나에게 그 이상의 기쁨은 없었다. 하지만 그 전에 내가 치러야할 통과의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무릎과 아랫배와 가슴께에서 참기 어려운 통증과 불편함이 감지되면서 영혼의 자유마저 결박당한 기분이 들었다. 나와 거의 같은 시간에 회복실에서 깨어난 다른 환자들이 고통과 불편함을 호소하며 내 지르는 비명에 가까운 아우성 소리도 들려왔다. 그때 내가 경험한 고통의 질량은 나를 포함한 예닐곱 명의 환자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평균치 정도쯤 되었을까?
사실 수술 후 통증이 찾아온 시간은 길지 않았다. 요즘은 무통주사를 개인에게 목걸이처럼 달아주고 필요할 때 누르라고 한다. 누르지 않아도 통증을 잠재워줄 기본량은 흘러나온다. 수술 후 첫날 밤 간호사는 무통주사를 누르지 않고도 말짱한 나를 보더니 외려 “괜찮으세요?”하고 물었다. 아프면 참지 말고 누르라고 하더니 내가 안 아프다고 하자 그럴 리가 없다고 자기가 두 번 눌러주고 갔다. 그 후로는 퇴원할 때까지 한 번도 누르지 않았다. 견딜만했기 때문이다. 물론 통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암 수술을 했는데 이 정도는 아파야 맞는 거 아니야?”
이래저래 요즘 병원을 집처럼 드나든다. 당연한 말이지만, 병원에 가면 아픈 사람이 참 많다. 그래서 마음이 우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생로병사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이니 어쩌겠는가. 나는 병원에 다녀올 때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이 고통의 평균치에 미치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말이다. 죽음 직전의 고통의 극단에서도 그런 생각이 들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도 같다. 나는 이 사회의 평균치에 비해 비교적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사실) 말이다. 아직은 내게 행복의 부채감 같은 것이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아직은 이런 생각들이 어설프고 충분하지 않다. 사회적 실천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철이 들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첫댓글 건강하세요라는 평범한말이 아플땐 가장 크게 들리지요
암을 친구처럼 여기는 형님의 쾌유를 다시 한번 기원합니다!
그래도 친구씩은 하고 싶지 않은데 ㅎㅎ
진솔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오늘 전 외롭지가 않네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도 샘의 고통은 제가 경험한 극악의 고통에 비하면 지극히 보편적인거라 생각됩니다 누구나 병들고 죽으니 말이죠. 그에 비하면 9살 적 지 부모에게 물고문 당하는 일은 보편적이지 않잖아요 ㅎㅎ. 요즘 사람들의 아픔을 많이 봅니다 제 강아지를 준 할머님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좌판에서 장사를 하시는데 엊그제 눈이 오고 추운데 비닐을 둘러 쓰고 계시더라고요 들어가시지 뭐하냐고 했더니 심심해서 방에있으면 시체된 기분이라고 그 할머님에게 그날 비바람 맞는 일은 고통이 아니라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감사한 일이 아니었겠습니까.
엊그제 오래된 영화 화려한 휴가를 봤습니다... 그거 보면서 참답게 죽는 다는 것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 생각했습니다.. 어치파 죽는 거 의미 있게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그냥 나이 먹고 병들어 할일 없이 방안에 누워 죽음을 맞는 것 보다 그 편이 정말 멋있고 의미 있을 거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파이팅 건강하세요 20년 더 사셔서 저랑 한 잔 해야죠..
그러자. 네가 내 평균을 조금 가져 갔으니 내가 밥 사마. 한 오년 땡겨서 십오년 뒤쯤 술도 한 잔하자.
@안준철 샘 요즘 일 하면서 샘 생각 많이 했는데........ 덕분에 시 하나 건졌어요..... 뭐 마음에 안 들면 할 수 없고 감상평 부탁!!!!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