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에 우리 땅을 밟은 선교사를 기억하며 감사한다
죽음의 땅이나 다름없던 절망의 나라에 생명의 복음을 전해 주고 교회와 학교와 병원을 통해 영혼과 육신을 새롭게 살게 해 주신 선교사님들의 사랑과 헌신을 기억하며 감사와 존경을 드린다.
1858년 2월 6일 펜실베이니아주 수더턴에서 태어난 헨리 아펜젤러의 고조부는 스위스 이민자 출신이고 어머니는 독일계여서 아펜젤러는 독일어와 프랑스어에 능숙했다. 1882년, 뉴저지주 드루 신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했고,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가는 것이 확정될 무렵인 1884년 12월 17일에 랭커스터 제일감리교회에서 엘라 닷지(Ella jane Dodge 1854-1916)와 결혼했다. 그때에 미국을 떠나 조선으로 오는 길은 멀고 험했다. 1885년 1월 14일에 기차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를 향한 아펜젤러 부부가 부산에 도착한 날은 4월 2일이었고, 제물포항에 도착한 날은 부활절인 4월 5일이었다. 조선 땅에 첫발을 디딘 사람은 부인이었는데, 선교본부에 보낸 첫 보고 편지 끝자락에 이렇게 쓴 글이 진한 감동을 준다.
부활절에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사망의 빗장을 산산이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께서 이 나라 백성들이 얽매어 있는 굴레를 끊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빛과 자유를 허락해 주옵소서.
-이만열. 「한국 도착보고: 1885년 연례 보고서」
『아펜젤러, 한국에 온 첫 선교사』, 연세대학교출판부, 1985
아펜젤러의 기여 가운데 으뜸은 배재학당 설립이다. 이 학교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정치·경제 체제의 초석을 형성하는 데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뿐 아니라 후손들도 아펜젤러의 선구자적인 해안과 판단에 빚을 지고 있다. 배재학당의 영어 이름은 ‘Hall for Rearing Useful Man’이다.
그는 이 학교를 기능공이나 기술자를 배출하려 의도하지 않았고 자조 정신을 갖춘 근대 시민과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의 선각자적인 혜안은 1897년 연례 보고서에 “우리는 감리교가 마땅히, 반드시 이 나라 720만의 사람들을 위한 최고 수준의 교양 및 대학 과정, 신학 과정이 있는 학교를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아펜젤러는 학생들의 자치 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그가 바란 것은 학생들이 사회 개혁과 애국 계몽 운동에 기둥으로 성장해가는 것이었다. 배재학당의 이름이 뜻하는 바를 힘써 실천하고 있었다
크게 감사할 일은 아펜젤러가 아끼는 학생 가운데 한 사람이 이승만이었다라는 사실이다. 이승만이 1895년 4월 2일에 입학해 1896년 11월 30일까지 배재학당을 다니는 동안 배운 것은 영어만이 아니라 정치적 자유와 민권 의식, 근대 시민 국가의 토대에 관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것은 1896년 11월 30일에 조직한 계몽 운동 단체인 협성회다. 하지만 재학 중에 이승만은 기독교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다. 그러다가 이승만은 1899년(24세) 고종 폐위 사건과 관련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5년 7개월간 한성 감옥에 갇혔고, 이 기간 동안 선교사 에디 (Sherwood Eddy, 1871~1963)에게서 성경을 받고 회심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 이승만이 한성 감옥에 있는 동안 게일, 언더우드, 아펜젤러 부부, 번커 부부 등의 선교사들은 성경과 전도 문서를 비롯한 150여 권의 기독교 서적과 신문 잡지들을 반입했다. 특히 아펜젤러는 제자를 구해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이 노력의 결과는 이승만 개인만 아니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구해내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 위의 글은 공병호, 『이름 없이 빛도 없이』, 207-210을 많이 참조하였다.
올해 부활절에는 이런 고마운 분들의 사랑과 헌신을 기억하고 싶다. 더구나 나라가 어렵고, 배재학당이 소원했던 유능한 인재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이기에 아펜젤러 선교사와 이승만이란 분들이 감사하고, 그분들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부활절에 베푸신 주님의 은혜가 여전할 것을 믿고 소망을 갖는다.
생각할수록 기이하다. 왜 미국과 영국에서, 호주와 네덜란드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와 복음을 전하고 살 길을 알려 주었을까? 1884년-해방 전에 1,529명의 선교사가, 해방 후-1984년까지에는 1,427명의 선교사가 우리나라에 왔다고 하니 그 숫자가 엄청나다. 우리는 잘 모르고 있었지만 우리를 사랑하고 몸과 물질을 바쳐서 도우려 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 지금도 그렇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늘 감사한 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다스리시고 기도해 주시고 계신다는 사실이었다. 외롭고 힘들 때마다, 주변의 친척들 중에 믿는 사람이 없어서 답답할 때마다, 하늘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예수님을 기억하며 힘을 얻었던 시간이 많았다. 둘러보면 모두 남이고, 모두 적인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우리 편이 많고, 우리의 적보다 강한 분이 나를 지켜보시며 인도하신다. 그분은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다. 이승만이 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자신은 물론 나라 전체가 바뀌었다. 이 글을 읽는 자마다 이러한 전환점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