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일
출발하자마자 원래 같이 가는 건데, 일평은 멀리 가버렸다. 따라가다 길을 잃고 20분 정도 늦어졌다. 길을 잃지 않은 사람은 제일 앞에 있던 일평과 제일 뒤에 있던 설린이 뿐이었다. 그래서 설린이는 일평과 우리 사이에 어느 지점에 있는 건 맞는데 어느 쯤에 있는지 몰랐다. 일평을 만날 때 까지 가려고 했지만 8시가 넘도록 나오지 않아서 중간에서 먹으면서 후마가 전화하셨는데 여기선 좀 떨어져 있고 설린이는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후마가 천천히 걸어서 설린이 만나고 아침 먹고 가라고 했다. 이후에 좀 걸어서 설린이를 지나쳤다. 그런데 설린이 속도가 생각보다 그렇게 느리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순례자들에 비해서도 빠른 편이었다. 하지만 일평이랑은 만나지 못한 것 같았다. 마을은 꽤 큰 편이었다. 알베르게도 수용인원이 얼마 되지 않아서 좋았다. 마트도 5분거리안에 있고, 길을 잃은 것만 빼면 정말 만족스러웠다.
6월 29일
22킬로여서 여유롭게 일어나서 준비했다. 이상하게 오늘도 일평이 빨리 가버렸다. 그리고는 14킬로 정도 걸으니까 있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일평은 항상 단독으로 행동하는 것을 좋아했다. 쉴 때도 그렇고 걷기 할 때도 그냥 항상 혼자 떨어져 있었다. 원래는 1시간 반 정도는 같이 가서 아침 먹고 그때부터 각자 가는 건데 일평이 자연스럽게 언제부턴가 혼자 갔다. 그래도 나는 이번에는 오래 가나보다 하면서 따라 붙으려고 안 쉬고 왔는데, 또 딴 데 떨어져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너무 늦어져서 아침을 먼저 먹었다. 일평은 나중에 후마, 설린이까지 다 오고 나서 같이 먹었다. 그래서 먼저 먹은 나랑 석영이는 먼저 출발했다. 도착하고 시를 외우면서 기다렸다. 그런데 좀 추워서 바람막이도 입고 웅크리고 있는데 흐려서 추웠다.
6월 30일
어제 시를 외우긴 했지만 더듬어서 오늘 다시 하기로 했다. 걸으면서 계속 소리 내어 말했다. 다 외워졌지만 나중에 가면 더 못해지니까 더 이상 연습해도 티가나지 않지만 계속했다. 슬 슬 집에 가고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나는 당연히 여기 오면 확실히 한국느낌이 나는 음식을 먹고 싶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런 음식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맛있는 음식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7월 1일
5시에 일어나서 비몽사몽한 채로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28킬로여서 평소보다 조금 일찍 나갔다. 중간에 다른 여러 길에서 합쳐진 사람들과 100킬로 남은 지점에서부터는 걷는 사람들이 만나서 사람들이 많아진 게 확연히 느껴졌다. 특히 100킬로 지점에서부터 시작한 것 같은 100명 가까이 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많았다. 총 두 팀이 있었는데 한팀은 대부분 가방을 메지 않았고 가끔 1킬로도 안 되어 보일 것 같은 가방을 메고 걸었다. 걷는 태도는 너무 시끄러웠고 소리를 지르고 산만했다. 도로를 뛰어다니고 길을 막았다. 다른 한 팀은 진짜로 무거워 보일 것 같은 배낭을 메고도 이야기는 많이 하면서 걸었지만 걸음이 차분했다. 하지만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떠나 사람이 많은 것은 싫으니까 다신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7월 2일
여유롭게 6시 반에 일어나도 되었지만 그냥 5시 빈이 조금 넘으니까 눈이 떠졌다. 보통이라면 바로 일어나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눈을 감았겠지만, 이상하게 별로 졸리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는 12일에 순례가 마무리되지만 나는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3일만 되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았다. 나 스스로 순례를 마무리하며 천천히 길들을 떠올려 보지만 정신없이 지나 가버린 전에 걸었던 길들이 아쉬웠다. 특히 피레네 넘을 때는 너무 오랜만에 걸어서 난 다리의 쥐 때문에 주변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쉽다.
7월 3일
일어나서 기분 좋게 그리고 여유롭게 준비해서 나갔다. 그렇게 걸어서 한 4킬로쯤 왔는데 갑자기 여권 생각이 나며 식은땀이 났다. 숙소 베게 밑에 항상 여권을 두고 자는데 하필 오늘 그걸 그대로 두고 왔다. 그 순간 바로 후마께 말씀드리고 가방을 맡기고 뛰어갔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날이어서 그런지 모두 하나같이 들뜬 모습이었다. 길이 하필 돌이 좀 있는 숲이어서 달리는데 좀 힘들었다. 갈 때는 여권은 절대로 없어지면 않된다. 만약에 그 여권을 누가 가져갔으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에 악착같이 뛰었는데 돌아올 때는 마음이 놓였다. 계속 정신이 없었는데 맡겨둔 가방을 내가 다시 메고 걸으니까 아까 뛰어갔다 온 일은 오늘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지금이 다음날인 것 같았다. 성당에 도착했을 때는 덤덤했다. 그냥 걷고 난 후라 졸렸다.
7월 4일
자고 일어나서 아침은 먹기 귀찮아서 그냥 걸렀다. 걷기를 다 끝내서 긴장이 풀렸는지 다리는 좀 아팠다. 정말로 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하는 것은 틈틈이 순례 마무리 글 메모하는 거랑. 시 쓰기 전에 구상하는 거 정도만 했다. 점심은 초밥을 먹으러 갔다. 거기서 제일 놀랐던 점은 한국인인 걸 알아보고 김치를 내와 주셨고 김치 맛이 거의 한국 식당이랑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먹은 김치가 맛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7월 5일
오늘은 묵시아 버스투어 하는 날이다. 그런데 딱 버스를 타고 조금 가니까 의자가 너무 불편하게 느껴졌다. 의자가 불편한 건 당연하지만 이 의자는 특히 불편한 느낌이었다. 멀미도 살짝 해서 너무 힘들었다. 거기서 뭘 본지도 모르겠다. 돌아올 때는 적응을 했는지 좀 괜찮았다. 돌아와서 바로 마트로 갔다. 거기서는 내일 버스를 탈 때 먹을 간식을 샀다. 그리고 어제 먹고 싶었는데 다 팔려서 못 샀던 포도도 샀다. 그런데 포도가 생각보다 별로였다. 내일은 버스를 9시간 타는데 얼마나 힘들지 상상도 안 된다. 그래서 버스에서 좀이라도 더 잘려고 오늘은 늦게 잘 생각이다.
7월 6일
시리얼을 먹고 기념품을 넣고 무거워진 배낭을 메고 버스를 탔다. 당연하게도 나는 9시간이니까 의자를 뒤로 눕혔는데 뒷사람이 뒤로 눕히지 말라며 의자를 앞으로 밀었다. 좀 짜증 났지만, 일단은 크게 불편하지 않길래 그냥 있었는데 조금 지나니까 목이 좀 아팠다. 하지만 뒷사람이 있으니까 의자를 눕히지는 못했다. 그리고 졸려서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목이 굳어서 움직일 때마다 아팠다. 어찌어찌 버텨서 리스본에 내리니까 첫 인상이 되게 별로였다. 길거리에서는 더러운 냄새가 났고 큰 신식 건물들은 청소가 안 돼서 얼룩져 있었다. 나중에는 숙소도 괜찮고 사람들도 꽤 친절했지만, 첫인상이 그래서인지 쉽게 좋아지진 않았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데 어쩌다가 내가 한 손에 콜라 네 병을 들고 다른 한 손에도 그 정도를 들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잡는 곳이 그래도 편해서 괜찮았는데 숙소에 거의 도착할 때 쯤 느낌이 오기 시작해서 주방 앞에 딱 내려놓으니까 힘이 더 약한 왼팔의 힘이 쫙 빠졌다.
7월 7일
온전히 순례 글에 매진해야지 하고 생각하며 일어났다. 어제 새벽까지 적고 잤던 게 효과가 있었다. 속도가 빠르진 않아도 꾸준히 적을 수 있었다. 분량도 넉넉하게 뽑아서 나름 만족스러웠다. 일평과 후마의 피드백을 받고 이것저것 이것저것 추가하고 말투를 바꾸며 적다보니까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지 하고 마무리 했다. 사실은 너무 졸렸다.
7월 8일
차를 타고 박물관으로 갔다. 분위기와 여러 나라의 물건을 한 공간에서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지만, 배치를 이상하게 해서 동선이 잘 안 나오고 비효율적이었다. 다음은 4킬로 정도 걸어서 시장에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다. 밥을 먹어야 하는 데 가게가 다 차 있어서 한참을 방황하다 먹었다. 볼 건 많았지만 살 건 없었다. 거기서 다시 리스본 대성당까지 걸어가는 중에 걸어가는 중에 순례길에서 만났던 그러니까 내가 여권을 들고 뛰어오던 중 만났던, 일부로 말 걸까 봐 빠르게 지나쳤던 한국분들을 만나서 혹시라도 알아볼까 봐 무서워서 얼른 자리를 피했다.
7월 9일
일어나자마자 글 쓰고, 4시간 정도 쓰고, 밥을 먹고 1시간 정도 더 적었다. 그리곤 이제 할 게 없었다. 저녁 준비하는데 오리를 전자레인지에 돌리니까 망했다. 가름이 흐르고 오리는 그럭저럭 됐지만 한 명이 포크를 대는 순간 형체가 사라졌다. 분명히 오븐에 돌리라고 나와 있어서 그렇게 한 것 같았는데 기름이 흘러 그걸 닦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아마 문제는 접시가 너무 작았던 것 같다. 거기서 제일 큰 접시로 했는데 다 흘러내렸다.
7월 10일
늦잠을 잤다. 그리고 11시 반쯤 점심을 먹으러 뷔페에 갔는데 느끼했다. 하지만 먹을 만은 했다. 그리고 이때까지 갔던 곳 중에 제일 사람이 많이 앉아있는 뷔페였다. 그리고는 쇼핑몰로 갔다. 별로 살 것도 없어서 구경만 하러 갔는데 사람이 많아서 들어가는 순간 움직이기 싫어졌다. 그래서 가만히 있다가 너무 심심하길래 조금만 움직여 볼까 하고 한 층만 돌아봤다. 그리고 다시 원래 자리로 조용히 돌아와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서 구경하는 게 제일 좋았다.
7월 11일
아침 4시 반에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차를 타고 가면서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멍했다. 그렇지만 막상 비행기를 타고 마드리드로 가는 버스를 탔을 때도 거친 아부다비 공항에 도착하니까 뭔가 좀 실감이 나는 듯했다. 마냥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첫 번째 비행기에서는 중국인이 절반을 넘겼다. 그리고 내 옆도 중국인이었는데 나한테 중국어로 뭐라고 떠드는데 짜증 났다. 아부다비 공항은 전에도 느꼈듯이 빨리 벗어나고 싶은 분위기였다. 머리 아픈 향이 진했다.
7월 12일
한국에 도착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습하고 더웠다. 기사님이랑 소통이 잘 안 돼서 차에 타는 게 늦어졌는데 너무 더워서 1초가 1분 같았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음료수나 마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정도 아는 길이 나왔다. 내린 곳은 남자기숙사 앞이었다. 천천히 걸어가는데 들어가자마자 소회를 나눠야 하는 줄 알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 굴리느라 바빴다. 멀리서 학교가 보이는데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을 때 보다는 확실히 더 좋았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주로 빨간색 반찬이었는데 오랜만에 먹는다는 느낌도 나지 않았고, 먹고 싶었던 맛도 아니었다. 그냥 먹던 김치찌개였다.
집에 가려고 차를 탔는데 그제야 기분이 좋아졌다.
첫댓글 집에 가려고 차를 탓는데 그제야 기분이 좋아졌다....
고생 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