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펌] http://blog.naver.com/koreahacksim/220585973324
피터 싱어 (Peter Singer),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1. 서론
“돈만 있으면 다 된다”
현대인들의 대부분, 특히 한국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마도 이 문장에 진심으로 공감할 것입니다. 때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희망)하며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 길을 걸어갈 때도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여러분들이 사학과를 선택한 이유도 그런 생각에서였겠지요. 하지만 가끔은 이런 굳은 다짐도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역사 공부해서 뭐에다 써먹게?” 이런 질문을 들을 때면 말문이 막히기도 하고, “경영 전공자 우대, 경영 전공자만 지원가능” 이라는 현실과 마주하면 후회가 밀려오기도 합니다. 내가 잘못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합니다.
황금만능주의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대해 매순간 평가받고 또 평가합니다. (특히 이 경향은 한국 사회에서 더욱 큰 것 같습니다.) 평가의 기준은 대부분 ‘돈’이거나, ‘자기 이익’이라는 영역에 속해있는 가치들입니다. 따라서 돈을 잘 못 버는 것은 창피한 일이며, 편안한 삶이 아닌 것은 불쌍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장 나의 이익이 최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가치관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앞에 있는 일이 너무나 중요하고, 특히 내 자신의 이익이 누구보다 중요합니다. ‘자기 이익’에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을 하면 바보 취급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의 행위의 판단 기준은 대부분이 돈과 자기 이익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인간의 ‘양심’이라는 기준도 남아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양심을 보고도 못 본 척,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이 비일비재해졌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는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윤리적인 삶을 살라” “삶의 목적을 찾아라”고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로 설득하는 책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책을 다 읽었을 때 머리는 완전히 납득되었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당장 이타적인 삶을 살기 위해 고기를 먹지 않고, 헌혈을 하러가며, 봉사활동을 신청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의 발표를 책에 대한 내용과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정리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떠한 행동을 할 것인가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2. 본론
Part 1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01 궁극적 선택
엄청난 부를 누렸던 아이번 보스키는 윤리적인 의식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양심을 져버립니다.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근본적인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을 ‘궁극적 선택’이라 정의합니다.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선택과 다른 점은 가치 판단 기준이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궁극적 선택이란 근본적 가치 자체만이 중요하며 여러 가지 삶의 방식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사람마다 가치관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선택을 하는 주체 이외에 궁극적 선택에 간섭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만이 삶의 방식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을 죽이면 5억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선택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것까지는 할 수 없지만 사기를 쳐서 5억은 얻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편 길거리에 떨어진 5만원도 꿀꺽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윤리적 기준’과 ‘자기 이익’ 중 어떤 것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것이냐 하는 것이 궁극적 선택입니다. 행동을 정당화 하는 기준은 모두 다르지만, 누구나 자신의 선택이 윤리적으로 정당화기를 바랍니다.
저자는 옳은 일을 행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답한 서양 철학가 소크라테스의 문장을 인용하기도 하고(철학적), 부자들이 많은 부와 명예를 얻었음에도 회의감을 느끼는 ‘성공의 올가미’를 언급하며 목적을 추구하는 삶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합니다(현실적). 또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이 이익에 몰두하는 사회적 조건 자체를 바꿔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키려했던 시도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역사적). 한편, ‘자연의 종말’을 걱정하기도 하고(환경적), 죄수의 딜레마와 이기적 유전자 이론에 대한 의문 제기를 통해(과학적) 윤리적인 삶이 자신의 이익을 넘어선 진정한 삶의 목표를 추구하며 살게 하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결국 지금 우리가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는 현재의 통념에서 벗어나면, 더 좋은 삶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는 주장을 여러 측면의 근거로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02 제 잇속만 차리는 사회
현대인의 삶이 팍팍해진 근본적인 이유는 ‘공동체 의식’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라울 나롤은 “오로지 이기적 소유욕으로 뭉친 고립된 개인들이 만든 집단은 튼튼한 윤리망을 구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윤리망이란 사람들이 윤리적 선택을 하는 데 어느 정도의 틀을 제시해주는 공통의 상징, 의식, 전통, 신화, 이념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에는 개개인마다 너무나 다양하게 존재하게 되었고, 결국 집단의 공통된 윤리적 인식이 과거보다 결여되었다는 것입니다. 《리바이어던》을 발표한 토머스 홉스는 현대사회가 “개인의 느슨한 연합”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독일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퇴니에스 역시 끈끈한 공동체 의식으로 묶인 전통적 집단을 일컫는 게마인샤프트(공동 사회)와 개인의 연합을 일컫는 게젤샤프트(이익 사회)두 가지로 사회를 구분하며 현대 사회의 공동체 의식이 희미해졌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한편 부르주아 계급들은 기존의 봉건제와 가부장적 체제를 붕괴시키면서 그 빈자리를 ‘현금 계산’ 즉, 자본주의 체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보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등장이 사회에 ‘통제 불가능한 힘’을 만들어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경제가 정치를 지배하게 되어(『미국 외교의 역사』에서 정치가 주로 경제적 호황을 목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기적으로 행동해서라도 경제적 번영을 이루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여겨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다보니 현대 사회는 ‘서로를 적대시하는 개인들의 집합체’가 되어버렸습니다.
03 흥청망청의 끝
이 장에서는 애덤 스미스와 루소의 의견을 비교하며 경제적 성장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인식을 소개합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1776)에서 “부를 추구하는 개인적 욕망은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 이는 부자뿐 아니라 문명국의 가장 하찮은 국민에게도 유익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어찌되었든 사회의 총량으로 보았을 때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된 것은 분명하므로 경제 성장 과정에서 나오는 불평등은 감수해야한다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는 이전에 발표되었던 장 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1755)의 내용에 대해서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루소는 “사유재산 제도 때문에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쫓겨났다”고 말합니다. 이는 사유재산 제도가 나의 것과 남의 것을 비교하면서 결국 남을 이기려는 욕망을 만들었기 때문에, 오늘 날 발생하는 문제점들의 근본적 원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애덤 스미스는 이에 대해 “과학과 기술의 발명˙개량은 활용되지 못했던 쓸모없던 자연 자원들을 활용될 수 있는 자원으로 만들었고, 이는 결국 사회의 이익을 증진 시키며 인류 번식의 수단을 제공한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저자 피터 싱어는 부의 충족은 욕망을 채울 수는 있으나 진정한 만족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지금 당장의 GNP와 같은 경제 지표로는 우리의 자산이 좀 더 풍요로워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사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산을 없애서 다른 자산을 얻고 있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만족도는 낮아지는데 욕망은 늘어납니다. 따라서 더 이상 지금과 같은 가치관을 갖고 살아서는 우리의 삶이 나아질 수 없습니다. 물질적 부와 소비에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된 이상, 자기 이익에 대한 통념을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04 어쩌다 이렇게 살게 되었을까
이번 장은 역사적인 사건과 연결 지어 사태를 이해해보는 내용입니다. 바로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입니다. 이는 서구를 지배하던 기존 기독교의 관념을 바꾸어 놓음으로써, 물질적 추구를 정당화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1장에서 사람마다 행동을 정당화 하는 기준은 모두 다르지만 누구나 자신의 선택이 윤리적으로 정당하기를 바란다고 언급하였는데, 종교 개혁은 바로 이 부의 정당화를 가능하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중세 유럽에서 상업에 종사하는 계급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돈벌이를 바라보는 기독교의 전통적 시각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성직자들은 ‘소명’을 받은 존재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담의 원죄 때문에 노동의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 주장에 대해 모든 사람이 소명을 받았으며 그것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종교인의 의무라고 반박하였습니다. 강력하고 굳건했던 교회 세력과 맞서려고 했던 마르틴 루터와, 당시 부와 경제력을 소유하고도 교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였던 중간 계급들은 합심하여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한편 장 칼뱅은 이보다 더욱 급진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봉건 경제의 쇠퇴, 도시의 발달, 상인들의 자유로운 거래로 경제가 더욱 복잡해진 이상 돈은 생계를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수단이 되었으니, 이윤 추구는 나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은총의 징표라는 것입니다. 이미 신은 구원할 자를 정해 놨으므로(예정설) 열심히 부를 축적하는 것이 오히려 구원받을 가능성을 늘린다는 주장입니다. 이와 같은 소명에 대한 루터의 개념과, 세속적 부에 대한 칼뱅의 견해는 서양의 여러 국가로 전파되어 그들의 사상을 형성하였습니다. 즉, “부의 추구는 이기심보다 의무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정당화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자는 서구의 이런 사상이 퍼지면서 현대가 이기심이 넘치는 사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Part 2 이익과 윤리적 삶의 관계
05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는 몇 년 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다윈의 '적자생존과 자연 선택'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DNA 또는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생존 기계'이고, 자기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이기적인 행동을 수행하는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그러나 피터 싱어는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이 단지 유전자를 퍼트리기 위한 교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하며, 인간의 이기적 행동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있지 않다는 주장을 제시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진화, 번식 등의 목적을 생각하기에 앞서, 애초에 부모가 자녀의 이익을 먼저 고려하는 것은 인간이 이기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번식이나 진화와 상관없음에도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나 ‘사랑’ 등의 감정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설령 종족 번식을 위한 목적으로 어떠한 이타적 행위를 했을 때, 그것이 이기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행동에 대해 생물학적으로 가능한 설명이 있다고 해서, 의식적 동기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윤리적으로 행동한 사람이 그 덕에 어떠한 이익을 얻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행동 자체가 윤리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피터 싱어는 이러한 주장과 함께 다시 한 번 삶의 방식을 우리 스스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문화적 진화’는 ‘유전적 진화’보다 퍼지는 속도가 빠르고, 의식적으로 목표를 만들어내고 전승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이 자원입대하는 것을 명예롭게 여겼던 사회 풍조는, 종족 번식을 위한 이기적 유전자 때문이라기보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의식적 변화였습니다.
06 일본인이 사는 법
일본을 살펴보는 이유는 서구와는 다른 시각을 살펴보기 위함입니다. 동양과 서양 사고방식의 차이는 당연히 존재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일본인들에게서 자기 이익에 대해, 또한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 사이의 관계에 대해 서구와는 다른 관념을 갖고 있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일본어(內, 우치)와 문화에서 나타나는 요소를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피터 싱어는 일본인들이 자신의 이익 위주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더욱 중시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저자는 개인의 이익보다 나 이외의 다른 것, 즉 집단의 이익을 중시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한 듯합니다. 한편 높은 집단 정체성이 개인이나 사회 전체와 같은 집단 외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지적하며, 집단적 이익 추구 역시도 바람직한 이익 추구는 아님을 언급합니다.
Part 3 어떻게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을까
07 죄수의 딜레마 벗어나기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는 두 죄수가 모두 이기적 선택, 즉 자백을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기는 하지만 결과는 오히려 손해입니다. 저자는 이 죄수의 딜레마와 함께 농부의 딜레마를 소개합니다. 이 역시 두 농부가 서로 협력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개개인의 입장에서 협력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여겨지지 않는 비슷한 유형의 딜레마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사실 죄수의 딜레마보다는 농부의 딜레마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죄수의 딜레마의 경우 서로 한 번의 선택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농부의 딜레마는 같은 마을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매번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너무나 염치 보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느슨하지만 어찌되었든 개인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딜레마는 한 번으로 끝나느냐, 무한히 되풀이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반복되는 딜레마 속에서 어떠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를 내는지 실험을 한 결과 팃포탯(Tit for tat) 전략이 가장 합리적인 결과를 냈습니다. 일부가 신사적이고 일부가 비열한 집단에서, 상대가 비열하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신사적 협력을 중단하는 한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이론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비열한 상대에게 신사적으로 행동한 순간부터 비열한 상대는 이익을 보게 되고, 이때부터 악순환이 시작되어 결론적으로 신사적인 행동이 사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저자는 비열한 집단이 다수인 이상 신사적 행동이 존재할 가능성이 희박해지므로,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신사적인 행동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08 윤리적 삶, 09 윤리의 본질, 10 목적을 추구하는 삶, 11 좋은 삶
책의 후반부에서는 앞에서 나온 이론들이 실제로 나타난 여러 가지 사례를 언급하면서, 대체 윤리적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논의합니다. 저자는 궁극적 선택을 제대로 하려면 우리의 삶의 방식을 윤리적으로 어떻게 분류할 것인지에 대해 알아야만 의식적이고 일관되게 윤리를 실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윤리적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뛰어넘어 생각하는 것이며, 자신이 윤리적으로 행동한다고 말하려면 모든 이성적 존재들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 상관없이 자신이 정한 판단을 적용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판단을 적용했을 때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도 상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와 비슷한 관점으로, 칸트는 어떠한 경향성에도 이끌리지 않고 오로지 의무감으로 행동할 때에 가장 도덕적이라 말합니다. 달리 말하면 어떠한 의무에 도덕적 가치가 있어야만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그냥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터 싱어가 말하는 것은 이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단지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만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 판단 기준을 제대로 갖추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의 목적을 정확히 설정하고, 그 목적에 부응할 수 있으면 나에게 손해인지 이익인지 생각하지 않고 시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성취감 있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물질주의적 이기주의가 싫다면 움직여야 합니다. 윤리적 삶을 위해 현실적이고도 실용적인 대안으로 맞서야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삶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여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 결론
이 책은 “윤리적인 삶을 통해 삶의 목표를 찾으라”고 대단히 이성적으로 설득하는 책입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다”는 감정에 호소하기 보다는 이전 철학자들이나 각종 위대한 저서를 남긴 학자들의 사상, 그리고 실제로 어떤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는지, 과학적 실험에 의한 전략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단히 이성적이기 때문에 간과한 감성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신사적이면 된다는 유토피아적 사고방식이 실제로 적용되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잘 서술되지 못했습니다. 최근 한국 영화계에서는 부조리한 임금 지급 문제에 ‘이의’를 제기했다 ‘어이가 없네’라는 명대사를 만들어낸 「베테랑」과, 윤리적인 신념과 자신의 능력만으로 출세를 하려했던 사람을 짓누르는 수많은 뒷 권력들을 그린 「내부자들」과 같은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윤리적으로 옳은 일을 했는데 삶 자체가 무너지는 일도 많습니다. 돈이라는 권력이 인간 한 명쯤은 간단하게 휘두를 정도로 강력하고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역시 당연히 이러한 점은 인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본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지금 당장 모든 비열한 것들을 전복시키고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선 잃어버린 삶의 목적을 찾고,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이 정한 방향을 걸어 나가며, ‘자기 이익’과 관련된 것에는 눈을 감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물론 부조리에 당하고만 있지는 말라는 전략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방향이 윤리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이라면,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씩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윤리적인 삶을 살아가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훗날의 많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습니다. 우선은 나에게만 이로우면 된다는 생각이나, 금전적 이익에서 벗어난 삶의 목표를 세워봅시다. 이미 그런 목표를 세웠다면 조금만 움직여봅시다. ‘무용 명제’(이전의 책,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에서 등장한 명제)는 옳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아주 조그만 행동이라도 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한 것이 윤리적으로 나쁜 일, 비열한 일, 잘못된 일이 아니라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주어진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게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것으로 더 좋은 삶에 한발자국 나아갈 수 있습니다.
4. 논의점
□ p.38 마지막 문단 “진보는 사회를 개조하면 모든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도덕성을 방치했고, 위선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습니다. 이제 위선자들에게 도덕적 우위를 되찾아야 합니다.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도덕적 문제는 동성애나 낙태가 아닙니다.”
* 나는 이 부분을 서술한 저자의 '위선자'라는 표현이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왜냐하면 동성애와 낙태를 지지하는 움직임이 사회의 의식을 바꾸는 데에 충분히 의미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우분의 의견을 받았다. 당시 기독교가 (합리적인 이유보다) '종교적인 이유로' 금기시하던 것이 동성애와 낙태였으므로, 이것에 치중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 개혁 :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가치관
오랜 시간 굳건히 믿어왔던 신념이 몇몇의 ‘해석’에 의해 180도로 바뀌는 모습을 보고, 우리 사회가 누군가에 의해 조직(혹은 조작)된 목표 아래에서 형성된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과 가지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