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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구려 토론방 연개소문은 권력에 미친 반역자였을까? 아니면?
한단인 추천 0 조회 485 07.11.15 02:52 댓글 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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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11.15 10:24

    첫댓글 단순 권력욕이었다면 다른 대가들 처럼 영류태왕과 뜻을 함께 하여 본전을 챙기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보장태왕의 부친인 고대양은 영양태왕과 동모제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론해봅니다.

  • 07.11.15 11:53

    반역이란 개념부터 명확하게 하여야겠습니다. 고려왕조와 조선왕조시대에서는 어디까지나 왕에 대한 충성과 반역의 개념이 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따라서 왕조시대에서 보는 눈으로는 어떠한 이유가 없이 당연히 반역의 행위로 밖에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다만 왕조개념이 없어진 오늘날 국민들의 국가에서는 국가를 위주로 보아야겠지요, 왕의 정치행위에 따라 국가의 존망을 함께 따지는 것으로 연개소문 장군을 반역으로 볼 수 없다는 개념이 아닐까요?? 또한 죽는날까지 고구려라는 자신의 국가를 끝까지 사수한 행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 07.11.15 19:38

    그를 반역자로 보느냐, 애국지로 보느냐는 순전히 가치관의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유교적인 입장이라면 그는 천하의 죽일놈이요, 실학적인 입장이라면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영웅이 되기에,, 평가자의 방향에 따라서 판단이 틀립니다.

  • 07.11.16 11:17

    일명 쿠데타에는 3가지 종류가 있죠. 1. 철저한 준비와 확고한 국가경영방침을 정하고 하는 쿠데타.. 이경우가 가장 이상적인 쿠데타라고 볼 수 있죠. 명림답부와 창조리, 연개소문, 이방원의 난, 수양대군의 난등 이러한 쿠데타뒤에 그국가가 더욱 발전된다고 볼 수 있죠. 2. 단순한 권력탐으로 인한 쿠데타, 단순한 권력을 위해서 한 쿠데타는 그후 국가발전에 큰장애가 되죠. 중종반정, 인조반정등을 예로 들 수 있죠. 중종반정은 이후 임진왜란을 일어나게한 권력층을 생산합니다. 그후 조광조의 개혁을 실패하게 만들고요. 인조반정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하죠. 그후 조선의 생산시스템은 붕괴되죠. 3. 단순히 욱하는 마음에

  • 07.11.16 11:21

    일어난 경우. 가장 비참하다고 할 수 있죠. 별 개혁도 없이, 정국이 냉각되니깐요. 고려의 무신정변이 대표적이죠. 계속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던 무신들이 한순간의 사건으로 욱해서 일어나게 되니깐요. 그후에 100년간 무신정권시대가 열리죠. 제가 볼때 연개소문의 쿠데타는 첫번째 경우라고 봅니다. 그는 철저한 준비와 확고한 국가경영방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런 당나라에 대한 유연성 부족과 2차고당전쟁처럼 전략적미스, 후계자 구도실패등으로 고구려는 당나라에게 국력부족으로 멸망하게 되고, 고구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2번 걸친 당나라의 침공을 격퇴시켰으니깐요.

  • 07.11.16 17:05

    잘봤습니다~

  • 작성자 07.11.16 22:10

    무전신현님. 당 태종은 연개소문의 집권 전인 641년에도 고구려 원정에 대한 야욕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연개소문의 쿠데타가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삼국사기 원문에는 연개소문이 당에게 여자를 보내면서 '고압적인' 글을 보냈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저의 경우는 여자를 보낸 것이 당으로 끌려간 포로 송환에 대한 뇌물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당태종이 고구려 원정을 하려 한 목적은 당태종 자신의 권력 장악 과정이 정당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벌인 정당성 확보 차원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중원에서 천자의 사명이란게 그렇죠. 조만간 이걸 주제로 글을 올리겠습니다.

  • 07.11.17 23:21

    그런데 무엇보다도 영류태왕이셨다면, 연륜이셨다는 이런 류의 말은 듣기가 조금 그렇군요. 공정하게 저울질해서 연개소문 비판 하는게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단인님께서 언급하셨듯이 이세민이 먼저 고구려를 치려고 했고 영류태왕은 이점을 파악하지 못했고 이 상태에서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킨 것으로 알고 있슴니다만?

  • 작성자 07.11.18 05:26

    여자를 보낸 것에 대해 당태종이 어떤 식으로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물론 무전신현님의 생각처럼 수치스러운 것이었다고 '당태종'이 생각해서 여자들을 물리쳤을 수도 있지요.(전 달리 생각하지만) 그러나 연개소문의 의도도 그랬다고는 할 순 없습니다. 의도된 것과 결과가 같다는 보장은 없거든요. 당시 연개소문에게 급한 것은 전쟁의 수습이지 전쟁의 재발이 아닙니다. 전쟁의 상흔이 크다면 대당강경조로 나가는 그의 입지만 좁아지기 때문에 그 상처를 봉합해야 그의 정책 수행이 가능해지죠. 때문에 포로 교환에 대한 사전 공작으로 생각한 겁니다. 반면 무전신현님의 반론은 연개소문에 대한 일종의 편견 때문이라 생각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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