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이야기(채만식) 독후감(신기우)
전혀 새로운 방식에서 조선의 독립을 재조명한 소설을 읽게 되었다. 채만식 작의 ‘논 이야기’.
이 소설의 주인공 한생원은 성격적인 문제가 있는 인물로서 무엇이든지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이기적인 인물이다. 그의 성격은 술값 등으로 날려버린 빚을 갚기 위해 일본인인 길천이 논을 시세의 배로 쳐서 매입한다는 말을 듣고 성급히 팔아버린 후, ‘조선이 독립되면 다시 내 땅 되는데...’ 하고 떵떵거리고 다니는 것에서 알 수 있었다. 그의 그러한 허풍이 심했던지, 일제 35년간 그 마을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엉뚱한 계획을 세운다던지, 허랑한 일을 시작하여 놓고 서는 천연스럽게 성공을 자신한다든지, 결과를 기다린다든지 하는 사람이 있을라치면, ‘흥, 한덕문이 길천이에게다 논 팔아먹던 대 났구나.’라는 속담을 썼다고 표현되어 있다.
8월 15일, 조선이 독립하던 그는 섬뻑 만세를 부르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어도, 이번에는 저절로 만세소리가 나려고 하였다고 한다. 아마 그는 그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생각했었나? 내 생각에는 그는 일본인 길천에게 팔아버린 그의 논이 다시 돌아오게 되어서 기뻐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대로 일은 풀리지 않고, 결국 논을 되찾지 못하게 된 그는 ‘독립됐다구 했을 제, 내, 만세 안 부르기, 잘했지? 라고 말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한덕문이 왜 이러한 비뚤어진 사고관을 가지게 되었는가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과연 그의 성품이 처음부터 이기적이고, 앞뒤 분간할 줄 모르며, 무조건 자기중심적으로 사태가 진행될 것이라고 믿는 그러한 것이었을까?
아마도 그의 성품은 그의 주위를 둘러싼 힘없는 민중으로서 어쩔 수 없는 환경에 놓여진 것에 기인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는 구 조선시대에 살았고, 일제 35년에도 살았고, 해방후 신 조선시대에도 살았다. 그러나 그러한 세 시기 중에 그를 돌보아 주는 시대가 있었는가? 그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오늘버틈 도루 나라 없는 백성이네, 제길 삼십육 년 두 나라 없이 살아왔을려드나. 아니 글쎄, 나라가 있으면 백성한테 무얼 좀 고마운 노릇을 해주어야, 백성두 나라를 믿구, 나라에도 마음을 붙이구 살지.’와 비슷한 것이다. 구 조선시대에 그는 아무런 죄도 없는 그의 아버지가 동학 농민이라는 의심을 쓰고 잡혀가자, 이방의 말을 듣고 열 마지기를 원님에게 바친다. 과연 그의 아버지는 며칠 후 옥에서 나온다. 다른 이들도 모두 논을 바치고 나온다. 일제 시대 때, 그는 구 조선시대와 다름없이 지내지만, 자꾸 빚이 늘어나게 되자, 길천에게 땅을 팔고 만다. 뒤늦게 그는 후회하지만 돌이킬 수 없다. 신 조선시대에 그는 일제시대 때 빼앗긴 땅을 나라에서 되판다는 말을 듣는다. 그는 분개한다. 아무리 판 땅이라도 일제시대때 판 땅인데, 왜놈들이 물러가면 다시 돌려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리고 조선인 관리자에게 넘어간 땅을 되찾으려고 뒷 산에 쫓아간다. 뒷 산에 쫓아가 조선인 관리자와 싸움을 한 것은 분명 잘못한 일이지만, 나라가 일제 때 빼앗긴 땅을 일반 백성에게 되판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분명 한생원이 생각하는 ‘나라가 땅을 되판다’라는 이야기는 그에게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결국 나라가 백성들에게 잘못한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내가 이 지면에서 분명하게 밝히고자 하는 것은, 허생원의 자질구레한 일이 아니다. 나는 다만 나라가 그에게, 아니 일반 민중들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나라가 그러한 백성을 만들었으며,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였다면, 나라가 다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현대 사회에도 적용해볼만한 문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