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아름다운 황혼과 설화가 실려 있지 않은 해풍 속에서 영원의 토대를 마련할 수 없어서 도시로 몰려간다. 그들은 더러 뿌리를 내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처참한 모습으로 시들어간다. 도시로 간 지 이 년 만에 돌아온 누이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어제 저녁 어머니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말씨와 정성스런 손짓으로 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가를 물었다. 누이는 어머니를 붙들고 왜 자기를 낳았느냐고 한다. 모녀는 같이 울음을 터뜨린다. 도시로 가는 사람들이 여간 해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다가, 나는 누이가 돌아온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가보겠노라고 황혼과 해풍에게 굳게 맹세한다.
소설가라고 자칭하는 작자는 자신의 치기가 사랑하던 여자를 잃고 나서부터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천부의 성격으로 보이며, 그는 세상의 여자들이 모두 자기 소유인 양 불쌍해 한다. 그는 자신의 성격 때문에 적이 많다. 술이라면 활명수만 마셔도 취하는 그가 친구만 만나면 술을 사라고 졸라댄다. 정작 술집에 데려가면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고 얼굴이 시뻘개져서 변소에 간다고 뺑소니를 치거나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시시한 유행가만 부른다. 성실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는 가난이 무슨 자랑이라고 마음에 드는 여자만 있으면 붙들고 가난과 순정 타령을 한다. 전쟁터의 군사라면 총살형의 법령을 알면서도 틀림없이 이중간첩을 했을 사람이다. 거만하지만 째째한 그는 용모에 자신이 없었는지 소설까라고 자칭하면서 으스대는데, 겨우 얄팍한 소설책 한 권을 출판해 놓았다. 그는 도대체 몇 달 동안이나 이발을 하지 않은 것인지 머리털이 코끝까지 닿았으며, 목욕도 얼마 동안에 한 번씩 하는지 곁에 가면 찌릿한 냄새가 난다. 그는 어느 여학교의 교무실에서 용무를 마치고 나오다가 현관의 학생 우편함에서 편지를 몽땅 훔친다. 편지 속에서 홀어머니가 있는 힘을 다해 구해서 딸에게 보낸 돈 이백원을 찾아내고 술집으로 가서 기분 좋은 태도로 술을 마셔댄다. 그는 생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을 빙빙 돌아다니면서 사는 놈이다. 시골의 어머니가 아들이 아무리 먼 곳에 있더라도 심신 평안하다고 해서 성당에 다니기도 했다는 편지를 받고 북북 찢어 버린다. 그는 속아 넘어가 줄 만큼 순진한 사람을 만나면 심각한 이야기를 꺼내 환심을 사려고 한다.
퍽 오래 전에 시골에서 편지가 왔다. 누이가 해풍 속에서 살결을 태우면서 자라난 젊은이와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누구나 사랑하고 배반하기 마련이어서 나는 심판대에 세우기는 난해한 순환이라고 생각한다. 일기에 절망 도피 자살 등의 용어가 기록되어 있다.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무엇인가를 자꾸만 주고는 떠나간다. 남자는 그 물건들에 둘러 쌓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불러보고 자기에게 자살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자신을 센치한 치한인가 보다고 생각한다. 서울 역전 광장 남쪽의 공중 변소에 들어가 아버님께라는 희미한 낙서를 보고, 자신을 되돌아 본다. 오늘 새벽 '나는 착한 사람입니다'라고 마지막 남은 거짓말을 담은 유서를 썼으나 오후에 찢어 버리며, 도시에서 침묵을 배워왔던 누이가 도시에서 조리에 맞지 않는 감정의 기교만을 배운 나보다 얼마나 훌륭한가를 생각한다.
'가하'오빠라고 시작된 축전의 부호 사용이 자신의 감정의 뉘앙스와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향의 누이는 '축 순산'을 읽을 것이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문 속에서 이 모든 괴로움 속에서 태어난 누이의 자식이 우리가 그것을 겪었다는 이유만으로 구원받을 미래인이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을 읽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그것이 실현된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