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에는 그리 구속을 받고 자라진 않았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의 품에서 벗어나 나 스스로를 책임지기위해 시작을 한 시기였다.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면 우리식구들은 엄마 아빠를 남겨두고 모두 서울로 간다. 울엄만 항상 사람은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늘 말씀을 하시곤 했고 배움이란 끝이 없으니 배울수 있을때 시껏 배워라. 큰오빠부터 시작된 자취생활, 그땐 큰오빠는 결혼을 해서 일본에 살고 있고 둘째오빠도 결혼을 해서 안양에 살고 있었고 울 큰언닌 결혼을 해서 우리 세 자매가 살고있는 동네에 같이 살고 있었다.
항상 결혼한 큰언니 옆에서 자취생활을 하는 이유는 큰언니가 반찬이며 세탁이며 뒷바랒를 모두 해주었다.
우리 자매 넷은 그렇게 그렇게 의지를 하면서 붙어 있었고 나의 재수를 응원한 언니들..
울 큰언니가 부업을 할때마다 날 불렀다. 너도 알바를 하라는 .. 아주 좋은 일감이었던것 같다.
양복에 단추를 다는일, 수백장의 샘플 커튼지에 샘플번호 스티커를 부착하는 일, 매듭없이 바느질 하는일 등등.. 학원을 갔다와서 시간이 될때마다 했었던것 같다. 시간이 부족해서 학원에서 그리 멀지 곳에 분식집에서 알바를 잠시 하기도 했다.
여름방학이면 공무원이었던 세째언니의 입김으로 동사무소 알바를 하기도 했고.....
지루한 재수로 시작된 나의 20대의 생활... 그리 넉넉하진 못한 형편이었기에 나에게 재수란 아주 힘이 들었다.
저녁시간 학원에서는 꾸벅꾸벅 졸기 일수였고 점점 떨어지는 나의 점수..
학교를 다닐땐 공부하고 학교다니는 일이 그리 쉽고 행복한일인지도 모르다니 바보같은 나의 십대여...
그냥 눈높이를 낮추고 대학을 갈껄.. 친구들은 대학을 다니면서 미팅에 MT까정 ... 친구들 대학 축제를 구경간다는건 무지하게 슬픈일이었다.
나의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재수를 하면 더 좋은 세상이 열릴꺼라는 착각을 가지고, 고등학교때 나, 스스로를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한점... 다시 나의 20대로 돌아간다면 현실을 직시하는 눈을 가지고 싶다.
가을이 되면서 난 독서실에서 살다시피했다. 그 전까지는 공부가 주인지 알바가 주인지도 모르게 몇달을 보내고 결심을 했다.
같이 재수를 하는 친구랑 독서실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친구와 함께여서 인지 도통 머릿속에 그려지지도 않았다.
결국 점수가 낮아지긴 했어도 난 대학을 갔고 나의 친군 삼수를 해서 대학을 갔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학비를 부모님께서 내주시긴 했지만 용돈은 나의 언니들한테서 나왔고, 매주 주말이 되면 둘째언니 미용실에 가서 알바를 해야 일주일이 편했다.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 있어서 언니들이 없었다면 지금에 나 조차도 없지 않았나 싶다.
나의 20대를 돌아보면 나에겐 언니들이 있었구나도 싶고 예전엔 알바가 그리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배우지 않았나 한다.
50대가 된 나의 큰언니 그리고 40대의 끝자락을 잡고있는 나의 둘째언니, 40의 중반인 셋째언니, 40대 초반인 나...
어제도 모여서 옹기종기 김장을 했다. 엄마 옆에두고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지금의 40대를 살아가고 있다.
첫댓글 후회할 일을 만드는 것도 젊을 때 가능한 게 아닐까요?
안주하며 사는 노년에는 밍밍한 일만 하며 살게되지 않을까요?
맘이 이상타.....
왜 부러운 거죠?
그 많은 형제들, 용돈을 주는 언니들. 왕 부러워 하며 영웅님의 실수들을 읽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