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미년(癸未年) 섣달 그믐이 코앞에 다가왔다. “섣달이 둘이라도 시원치 않다” 는 말과 같이 아무리 아쉬워도 세월은 가고 해는 바뀌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데도, 사람들은 언제나 이날이 오면 괜히 아쉽고 허전한 감정을 느끼는 게 섣달 그믐이다.
자고로 섣달 그믐날은 반드시 내 집에서 자고 새해를 맞는 것이 우리 민족의 독특한 풍속이다. 공부하러 간 손자도 빚 독촉에 못 배겨 피해나간 아들도 일년 내내 떠돌아다니는 봇짐장사 장돌뱅이 남편도 이날은 모두 우리집으로 돌아온다. 심지어 내 집이 비좁아 평소에 이웃집 동네사랑방에 가서 잠자리를 신세지던 이들도 섣달 그믐날 밤에는 우리집으로 와서 식구들과 함께 비좁은 잠자리를 한다. 만약에 섣달 그믐날 안 돌아오는 식구가 있으면 온 집안이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가라앉아버린다. 그가 오밤중에라도 돌아오면 온 집안이 금방 새는 아침처럼 밝아지며 사유야 어떻든 반갑기만 하다.
섣달 그믐날에는 단란한 가정 우리집에 우리 식구가 한자리에 모두 모여 지난 일년내 물심양면으로 쌓인 께름한 찌꺼기를 완전히 털어버리고 가는 날이다. 누구와 안 좋았던 사이가 있으면 말끔히 풀어버리고, 남에게 진 빚이나 외상 값도 모두 갚아버리고 새로운 희망으로 새해를 맞는 게 우리 민족의 섣달 그믐이다.
12월 31일 다음 날은 으레 1월 1일이라는 단순한 숫자적인 관념 외에 별다른 정서적 상념 없이, 그저 무미건조하게 송구영신하는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새삼 새겨 봐야 할 훌륭한 풍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는 이 좋은 풍습을 현실로 실천해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첫댓글 좋은 말씀입니다 늘 설날 같게 그런 마음으로 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