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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세상에서 실망하지 말고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삶을 살자
1. 은성아, 네가 친구들과 나눈 대화를 곰곰 생각해보니 우리 시대에 교회를 이루는 신자들의 모습에 대해 여러 가지로 공감하게 되었다. 그들의 모습이 감사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럼에도 버리시지 않고 지금까지 붙들어 주시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기만 하다. 네 말처럼 요즘 우리 교회는 안팎으로 많은 비판과 공격을 받고 있다. 그래서 자녀들 중에는 그런 모습에서 상처를 입고 믿음을 버리고 세상으로 휩쓸려가는 일들이 자주 생기고 있다. 상처와 실망을 주는 교회에 나가느니 차라리 집에서 예배하겠다고 하는 소위 ‘가나안 성도(?)’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전체 개신교인 약 771만 명 중 출석 교인 545만 명, 불출석자(가나안 성도) 226만 명으로 2012년(약 11%)에 비해 3배 가까이 급증하여 최근 조사에서는 전체 기독교인의 31%를 차지한다고 한다. 연령별 비율을 보면 청년층과 3040세대에서 특히 높으며, 20대 기독 청년의 약 44%, 30대의 38%, 고등학생의 46%가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고 하니 교회의 장래가 크게 염려된다.
2. 은성아,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왜곡되는 일, 말씀에 불순종하는 일이 매우 일찍부터 시작되고 있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의 말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말씀을 바르게 말하지 않고 왜곡시키면서 하와를 죄에 빠뜨리는 속임을 성공시킨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참 선지자들의 말은 거부되고, 거짓 선지자들의 말이 환영을 받았다. 신약성경을 보면 초대교회의 신자들도 거짓 사도와 거짓 선생의 공격과 속임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저지른 종교적인 죄악에 대하여 규탄할 뿐만 아니라, 불의한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고, 공의를 굽게 하며, 약자들을 착취하던 당대의 정치 권력에 대하여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모두가 평안하다고 생각하던 시대에 감추어져 있던 불편한 진실을 폭로하고,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선지자들을 거부하고 박해하였다(마 5:12; 마 21:33~46, 막 12:1~12, 눅 20:9~19; 마 23:34~38). 심지어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도 영접하지 않았다(요 1:11). 성경에서 몇 군데를 살펴보자.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에 대하여 말하며 각각 그 형제와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 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에 있었음을 알리라(겔 33:30-33)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 11:4)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6-9)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3-17)
3. 은성아, 우리는 이런 사실을 먼저 잘 알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너무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심판하시러 다시 오시는 날까지 교회 안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있을 것이요, 성숙한 신자만 아니라 어린 신자와 연약한 신자도 함께 있을 것을 알기 때문에 넓은 마음으로 교회의 연약과 허물을 용납하고 보듬어줄 수 있어야 한다. 신약성경을 보면 많은 교회가 나오는데 이런저런 문제들이 있었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책망도 하고, 복음 진리 안에서 해결해 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4.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힘쓸 것은 무엇일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탄만 하고 있다면 복음의 참 능력을 드러내지 못한 것이리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를 순종하려고 해야 할 것이다. 먼저 베드로 사도의 가르침을 배워야 하겠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1:23-2:2)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 베드로 사도가 전한 복음으로 거듭난 신자들은 모든 육체와 그 영광이 풀이 마르고 꽃은 떨어지듯 썩어질 것들이지만, 세세토록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영원함을 안다면 마치 갓난 아기들 같이 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이것이 복음의 본질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며, 그 말씀을 젖을 먹듯이 계속 잘 먹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게 된다. 갓난 아기들은 얼마나 왕성하게 젖을 찾는지 생각해 보거라.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예수님을 믿게 된 고등학생이 가방 속에 성경과 전도일지를 넣고 다니면서 열심히 성경을 읽고 전도하며 일지를 쓰는 것을 보았다. 나도 고등학생이 될 때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성경을 전부 읽어보고 싶어서 월말고사가 없던 12월에는 학교에서도 매일 열심히 읽어서 결국 그해 연말에 성경 전체를 읽을 수 있었다. 누구라도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나서 성경을 읽지 않는다면 도무지 정상 생활을 할 수 없다. 참으로 믿게 되었으면 성경을 읽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갓난 아기가 젖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방 굶주림을 느끼게 되고 큰소리로 울면서 젖을 찾는 것처럼, 처음 신앙 생활을 시작한 신자는 누구보다 열심히 성경을 읽고 싶어하고, 그 말씀에서 기쁨과 감사와 능력을 발견한다.
여기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라는 표현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사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했다. 하와는 그 시험에 실패하였고, 아담마저 동참했으며, 그 이후로 하나님께서 생명을 얻게 하는 말씀을 계속 보내주시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전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어떤 경우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자기의 말을 전하였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할 때에도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바울 사도는 그렇게 하지 않다는 것을 말씀해 주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7)
5. 은성아,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일이 무엇일까? 바울 사도는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 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대로 말씀을 전하는 것이리라. 산상보훈에서 예수님은 “옛 사람에게 말한 바 ***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반복하여 말씀하셨다. 옛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열심히 가르쳤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의 본래의 바른 뜻을 고쳐서 알려주신 것이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고, 4대 성인 중의 한 명으로 여기며,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거부한다. 그리고 성경을 대할 때에 훌륭한 도덕서나 역사서, 혹은 철학서나 종교의 교리서 정도로 여기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생명의 책”으로 받기를 거부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는 진리와 능력의 책”인 것은 부정한다. 그런데 구약을 대할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가르친 정도에 머무르면 부족하고, 예수님에 대하여서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위대한 사람 정도로만 받아들여서는 옳은 것이 아니며, 성경을 대할 때에 구원의 책, 생명의 책이 아니라 인간 세상에서 뛰어난 책으로만 여겨서는 잘못된 것을 믿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 나라와 관계가 없고, 이런 정도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과 관계가 없는 자들이다. 자기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주장할지라도 결코 성경적인 신앙생활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자들에게서 율법주의와 사회복음과 합리주의와 은사주의가 환영을 받으며,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실은 자기 이성을 따르는 이들을 가리켜 ‘실천적 무신론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대형교회에서는 웅장한 예배당과 화려한 무대와 장비를 갖추고 40-50분간 찬송을 부르다가 설교는 15분-20분만 하고 예배를 마치는 일들이 많다고 한다. 여러 교회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하여 설교와 강의는 많고 많은데 “들을 말이 없다”는 한탄이 들린다. 과거에는 이름만 듣던 교회의 선생님들이나 그분들의 책들이 요즘엔 한국어로 번역되어 손 뻗으면 닿는 가까운 곳에 있는데, 그런 좋은 선생님들이나 좋은 책들은 무시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자기 경험이나 도덕적 상식만을 이야기하는 설교자들에 대해 한숨을 짓는 교인들이 많다. 우리 주변에서는 바울 사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 일만 있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6. 은성아, “남은 자”라는 말을 기억하지? 주변의 교회가 성경적이지 못한 것 같고,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갈등과 불만이 있고, 교회 밖에서는 비판과 공격이 계속될지라도, 그런 넓은 길을 가지 않고 “좁은 길”을 걷는 소수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울 사도가 이미 초대교회 시절부터 바른 교훈을 멀리하고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것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 않았니?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이제 우리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말씀을 붙잡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성경 말씀이 도덕서나 신학서적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그 말씀이 주는 약속과 위로에서 기쁨과 힘을 얻고, 그 말씀이 주는 책망과 징계를 받아 회개와 새롭게 하심에 이르며, 날마다 그 말씀을 먹고 장성해 가면서 온전한 구원으로 자라가야 할 것이다. 너무 바빠서 밥을 먹지 못할망정 성경을 읽지 못하고 지나가는 날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경을 토대로 믿음을 잘 정리한 책들과 가까워야 한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비롯하여 『벨직 신앙고백서』와 『도르트 신조』 등도 잘 알아야 한다. 이것들을 읽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지만 우선순위를 잘 정하여 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읽어가면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충분히 다 읽을 수 있게 되고, 다시 읽으려고 하면 훨씬 짧은 시간에도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짧은 유튜브 혹은 쇼츠에 점점 길들여지면서 책을 잘 읽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슬픈 사실이다. 다음 글을 읽어보자.
감리교의 창설자 존 웨슬리는 “성도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은총의 사업은 한 세대도 못 가서 사라져 버릴 것이다. 책을 읽는 그리스도인만이 진리를 아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니엘 웹스터는 “만약 신앙 서적들이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광범위하게 유포되지 않고, 사람들이 신앙적으로 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가 될지 걱정스럽다. … 만약 진리가 확산되지 않는다면, 오류가 지배할 것이요, 하나님과 그의 말씀이 전파되고 인정받지 못한다면, 마귀와 그의 궤계가 우세할 것이요, 복음의 서적들이 모든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타락하고 음란한 서적들이 거기에 있을 것이요, 우리나라에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못한다면, 혼란과 무질서와 부패와 어둠이 끝없이 지배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위의 글들은 『기독교강요 상』, 원광연 옮김. 5-6.에서 인용함)
오늘 우리 신자들의 서재에 무슨 책이 많이 있을까? 건강과 여행, 주식 투자와 요리에 관한 책들이 많이 있지 않을까? 아니면 그럴듯한 철학과 세계관을 주장하는 것으로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의 책이나, 자기 계발과 성공에 관한 책들이 많이 있지 않을까? 존 웨슬리와 다니엘 웹스터의 말을 귀를 기울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교회의 서재에서도 어거스틴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의 책들이 많이 발견되기를 바란다. 식사 시간을 비롯한 교제의 시간에도 신앙의 위인들이나 그분들의 책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는 이것을 떠나 다른 곳으로 혹은 다른 것으로 갈 수가 없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서 이 영생의 도를 배운 사람은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라는 공자의 유명한 말이 자기의 것이 되어 참 만족과 감사와 감격의 마음으로 가득할 것이다. 그래서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교회를 공격할지라도, 교회가 어떻게 타락하고 어두워진다고 할지라도, 실망하고 낙심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고 오직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기를 기도하면서 끝까지 인내할 것이다.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는 《논어(論語)》 이인(里仁)편에 나오는 공자의 유명한 말로, “아침에 도(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