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10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제비는 참새목 제비과에 속하는 여름 철새다. 한반도를 비롯하여 동아시아 일대에서 번식하는 제비는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숙한 새였다. 야생조류로는 드물게 사람들과 매우 가까이 살았으며 <흥부와 놀부> 이야기에서는 착한 흥부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새로 등장하기도 한다.
제비의 가장 놀라운 특성은 “사람한테 겁을 내지 않는다”라는 점이다. 대부분 동물이 사람을 무서워하고 피하는데, 제비는 오히려 사람이 사는 집의 처마에 둥지를 튼다. 집에 둥지를 트는 이유는 황조롱이나 매 등의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추측된다. 사람과 가까이 사는 고양이가 제비를 공격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비는 다른 새와 달리 진흙을 뭉쳐 수직인 벽에 집을 지어서 어느 정도 공격을 피할 수가 있다.
제비가 가장 많이 집을 짓는 곳은 먹잇감이 풍부하고 집 지을 진흙과 지푸라기를 구하기 쉬운 논밭 근처의 사람이 사는 집 처마 밑이다. 특이한 점은 다른 조건이 다 갖춰져도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제비가 집을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사람 사는 집이 뱀이나 다른 새 등 천적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비는 예로부터 9월 9일(음력) 중양절에 강남에 갔다가 3월 3일(음력) 삼짇날 돌아온다고 해서 날이 겹치는 양수 날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조라고 여겼다. 제비의 이름을 빌린 제비꽃은 제비가 돌아오는 때와 이 식물이 꽃피는 시기가 일치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제비는 시속 50km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데, 최대 속력은 시속 250km 정도로 새 가운데서도 상당히 빠른 편이다. 제비는 V자 모양의 꼬리 깃털을 가지고 있어서 공중에서 빠른 속도를 유지한 채로 급선회할 수 있어 천적으로부터 피하기가 쉽다.
▲ V자 모양의 제비 꼬리 깃털(출처 나무위키)
턱시도(tuxedo) 같은 남성복 뒷길의 도련이 두 갈래로 갈라진 옷을 연미복(燕尾服)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제비의 꼬리 깃털과 닮았기 때문이다. 연미복의 영어 이름도 ‘swallow tailed coat(제비 꼬리 외투)’라고 하니 동양이나 서양이나 사람이 제비를 보는 눈은 비슷한가 보다.
제비의 몸체 곡선이 매끈하고 멋들어지며 민첩하게 날아다닌다는 특성을 사람에게 비유하여 1980년대에 춤 선생을 제비라고 지칭했다. 여기에서 나온 말로, 카바레에서 연미복을 입고 여자를 유혹하는 멋진 외모의 남자를 제비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비족과 관련된 썰렁한 유머 하나를 소개한다.
질문: “제비가 어떻게 울까요?”
답변: “싸모님 싸모님~!”
제비가 많았던 옛날에는 한반도에 한해에 약 500만 마리의 제비가 날아와 2,500만 마리의 새끼를 낳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제비는 나방류, 벌류, 파리류 등 다양한 곤충을 먹이로 한다.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 산림연구소에서 2009년에 제비 둥지에 무인영상기록장치를 설치하여 조사한 발표에 따르면, 어미 제비는 하루에 14시간 동안 평균 350마리(적어도 280에서 많게는 420마리)의 먹이를 물어다 새끼들에게 먹였다. 계산해 보면 제비 한 마리가 제주에서 활동하는 5달 동안 평균 52,500개의 먹이를 소비하였다. 먹이 가운데 해충의 비율을 15%로 치면 제비 1마리가 한해에 7,875마리의 해충을 없애 준 셈이다. 따라서 제비는 사람에게 매우 이로운 새다.
제비 다리에 가락지를 부착하고 2006년~2008년까지 3년 동안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제비 10마리 가운데서 6마리가 돌아와 귀소율은 60%에 달했다. 하지만, 한반도에 날아오는 제비가 날로 줄어들고 있으며 귀소율(전년에 살던 곳에 돌아오는 비율)도 감소하고 있다. 귀소율이 줄어드는 까닭은 자연사나 사고사로 인한 죽음, 그리고 이런 죽음으로 인해 배우자가 바뀌면서 새로운 둥지를 선택하게 되는 것 등으로 추론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제비는 서울 도심에서 많이 보였지만, 이제는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한 새가 되었다. 기상청 서울관측소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서울에서 제비가 공식적으로 관측된 기록이 없다고 한다. 제비가 사라지는 것은 농약 사용으로 인한 먹이 부족, 그리고 도시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제비집의 재료인 진흙과 짚ㆍ풀을 얻기가 힘든 것도 그 원인이 된다.
중국에서는 제비집을 일류 요리로 친다고 하는데, 요리에 쓰는 제비집은 ‘금사연(金絲燕)’이라는 바다제비의 둥지다. 중국 남부와 동남아 해안가에 사는 금사연은 흙으로 둥지를 만드는 우리나라 제비와는 달리 물고기살이나 해초에다 타액을 섞어 높은 나무의 홈이나 바위절벽 틈새에 둥지를 만든다. 이러한 제비집으로 만든 요리는 콜라겐이 풍부한 건강식재료로서 주로 화채나 죽으로 만들어 먹는다. 이 요리는 맛도 맛이지만 가래를 삭이고 기침을 진정시키며 폐에 도움을 주는데,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허한 기를 보호해 준다”라고 표현하였다.
제비는 항해 속도도 조류 가운데서 가장 빠르고 항속 거리도 제일 긴 철새인데, 도중에 추락해 죽는 제비가 늘고 있다. 제비는 섭씨 9도의 등온선을 따라 이동하는데, 이러한 온도 감각에 이상이 생겨 중국의 따뜻한 지방인 강남으로 제철에 못 돌아가는 낙오자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것은 농약에 오염된 벌레를 잡아먹은 뒤 제비의 독특한 생체 적응력, 곧 바이오리듬이 깨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설화에 나오는 심술궂은 놀부는 제비 한 마리의 다리를 분질러 놓았지만, 인간이 뿌린 농약은 제비 종족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놀부가 받은 악과응보(惡果應報)는 어떠한 형태로 인간에게 재현될지 걱정이 된다.
정호승 시인의 시 <제비>를 소개한다.
돌아와 줘서 고맙다
다시는 네가 안 오는 줄 알았다
그동안 아프지는 않았는지
아직 봄비는 내리지 않았다
네가 말없이 훌쩍 떠나버렸을 때
얼마나 섭섭했는지
그동안 내가 보낸 편지는 받아보았는지
답장이 없어 너의 빈 둥지에
늘 촛불을 켜놓고 기다렸다
그렇다
헤어짐은 우리를 만나게 한다
아직 우리들의 방은 따뜻하다
애벌레 같은 봄비도
곧 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