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BIBLE) 번역의 역사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성경입니다. 그만큼 성경의 영향력은 막대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우리 손에 전해지게 된 것일까요?
성경의 기자
전승에 따르면 모세는 기원 전 15세기에 창세기부터 시작하는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약의 경우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을 사도 요한이 1세기 막바지에 밧모섬에서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전승을 모두 인정할 경우 성경은 약 1600여년에 걸쳐서 40여명의 기자에 의해서 기록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영감과 인도하심을 믿는 사람들은 이를 당연히 믿지만, 비평가들 중에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왈가왈부가 많은 성경이 어떻게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게 되었는지를 간단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약 성경의 공인(얌니아 회의, AD 90년)
AD 90년 요하난 벤 자카이가 중심이 된 랍비들은 얌니아 회의를 개최합니다. 얌니아 회의에서는 오늘날 개신교에서 정경으로 인정하는 구약 39권이 공인되었습니다. 이를 타나크(Tanakh, תנ"ך)라고 하는데, 타나크는 구약 성경의 세부분(토라, 네비임, 케투빔)의 앞글자를 딴 약어입니다. 이를 프로토 마소라 본문(Proto MT)이라고 합니다.
1. 토라 (Torah, תורה) — 율법서
'가르침' 또는 '지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성경의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입니다. 모세가 기록했다고 전해져 모세오경이라고도 불립니다.
구성: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총 5권)
내용: 세상의 창조와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 그리고 유대인들이 지켜야 할 613개의 계명(율법)을 담고 있습니다.
2. 네비임 (Nevi'im, נביאים) — 예언서
'예언자들'이라는 뜻의 복수형 명칭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시점부터 바빌론 유배 전후까지의 역사를 다룹니다.
전기 예언서: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사적 서술 중심)
후기 예언서: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및 12 소예언서 (하나님의 메시지와 심판, 회복의 선포 중심)
3. 케투빔 (Ketuvim, כתובים) — 성문서
'글들(Writings)'이라는 뜻으로, 문학적이고 지혜적인 성격이 강한 책들의 모음입니다. 삶의 지혜, 시, 역사적 기록 등 다양한 장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성: 시편, 잠언, 욥기, 전도서, 아가, 룻기, 애가, 에스더, 다니엘, 에스라·느헤미야, 역대기상·하
특징: 인간의 고난, 사랑, 지혜, 그리고 공동체의 예배에 사용되는 찬양 등을 담고 있어 실천적인 신앙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하난 벤 자카이
얌니아회의를 주최한 요하난 벤 자카이(Yohanan ben Zakkai)는 현대 유대교의 근간을 만든 랍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유대교는 성전 중심의 제사 율례를 기초로 하고 있었는데,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이후 요하난 벤 자카이는 유대교가 경전 중심의 종교로 변모하여 지금까지 그 명맥이 내려올 수 있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요하난 벤 자카이의 유명한 일화로는 로마군이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을 때의 탈출기가 있습니다. 유대 강경파(열심당,Zealot)가 투쟁을 고집하자 온건파였던 그는 제자들이 도움으로 관 속에 들어가서 성밖으로 빠져나갔고, 로마군 사령관인 베스파시아누스를 만나 그가 황제가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청을 했는데, 얌니아(Yavne)와 그곳의 랍비들을 살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베스파시아누스는 그 청을 들어주었고, 예루살렘 성전 파괴이후 종교적 정체성의 혼란에 빠져 있던 유대교를 얌니아 학당을 중심으로 하여 제사의 종교가 아닌 회당 중심의 토라 공부 중심의 종교로 변모시켰고, 이는 유대인들이 전세계로 디아스포라를 겪으면서도 정체성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의 공인(카르타고 공의회, AD 397년)
반면 신약 성경은 복잡한 과정을 겪으면서 정경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초대교회가 형성되면서, 사도들은 주님의 공생애를 기록하였고, 또 혼란과 고난 당하는 제자들에게 신학적 지침과 위로를 주기 위해서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도들이 쓴 이 편지들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필사되어가며 널리 읽혔고, 구약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진 성경으로 인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사도들의 이름을 빌어서 쓴 위경들도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2세기에는 마르시온이라는 이단은 구약을 인정하지 않고 누가복음과 바울 서신 일부만을 정경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이에 자극받은 교부들은 구약처럼 신약 역시 정경화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3세기의 교부 오리게네스는 당시의 사본들을 검토하여 현재와 비슷한 신약 정경 목록을 제시하였습니다. 특히 저 위대한 4세기의 교부 아타나시우스는 367년 부활절 서신에서 현재와 동일한 27권의 신약 목록을 확정하여 정경화 작업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교부들의 노력을 토대로 히포 공의회(AD 393년)에서 신약 목록이 결정되었고,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정경 목록이 확정되었습니다.
신약성경 공인의 기준
1. 신약성경의 기준은 첫째는 사도성으로 사도 또는 사도의 동역자가 저술하였는가 하는 것
2. 둘째는 정통성으로 초대교회의 신앙고백과 부합하는가를 기준으로 정경을 선정하였습니다.
히에로니무스(제롬)의 라틴 벌게이트(Vulgate) 성경(가톨릭의 기준 성경)
성경을 확정하고자 하는 열망이 불타오를 때 당시 로마 교회에도 고대 라틴어 역본(Vetus Latina)들이 존재했지만, 이 역본들은 통일되지 않았고, 필사 과정에서 오류가 너무 많았습니다. 따라서 당시 로마 교회의 주교(교황) 다마수스 1세는 히에로니무스에게 성경번역을 의뢰하게 되었습니다.
히에로니무스의 신약 번역 과정
히에로니무스는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랴(Caesarea)에 머물며 그곳의 방대한 자료가 있는 도서관을 이용했습니다. 당시 가이사랴의 도서관에는 고대 교부 오리게네스가 정리한 헥사플라(Hexapla, 6개 언어 대조 성경)를 비롯해 당대 최고의 성경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히에로니무스는 이곳에서 가장 권위 있는 그리스어 신약 사본들을 직접 열람하며 라틴어 불가타 성경의 정확도를 높여 번역하였습니다. 당시 히에로니무스가 사용한 사본들은 당시에도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 초기 사본들이었고, 훨씬 원형에 가까운 알렉산드리아 본문 계열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요약하자면 히에로니무스는 기존의 조잡한 라틴어 역본들을 기초로 삼되, 가이사랴 도서관 등에 보관되어 있던 가장 오래된 그리스어 사본들을 표준으로 삼아 교정하여 라틴 불가타 성경의 신약성경을 번역했던 것입니다.
히에로니무스의 구약 번역 과정
반면 구약은 처음에는 70인역을 기초로 삼았지만, 번역 연구를 통해 원본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면서 얌니아 회의에서 공인된 프로토 맛소라 본문(Proto-MY)을 번역의 중심역본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히에로니무스는 프로토 맛소라 본문에 포함된 타나크를 제외한 외경을 역본에서 제외시키려고 하였으나,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를 포함해 70인역을 수백 년간 사용해온 교회는 70인역에 포함된 외경 역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히에로니무스는 이에 타협해 외경 역시 벌게이트 성경에 포함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히에로니무스는 외경은 히브리어 원문에 존재하지 않기에, 성경이 아니라 교회의 책(에클레시아스티키, Ecclesiastici)이라는 경고성 글을 남겼습니다.
라틴 불가타 성경의 완성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전을 라틴어로 번역한 히에로니무스(제롬)의 불가타 성경은 중세 천년 넘게 가톨릭 교회의 표준(Editio Vulgata)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만, 후대로 갈수록 히에로니무스의 경고는 무시되게 되었고, 외경 역시 가톨릭 사회에서는 일반적인 성경으로 인정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의 성경은 73권(구약 46권, 신약 27권)으로 구성됩니다.
외경의 목록
토빗기 (Tobit), 유딧기 (Judith), 마카베오기 상·하, 지혜서 (Wisdom of Solomon), 집회서 (Sirach/Ecclesiasticus), 바룩서 (Baruch), 에스더기 추가분, 다니엘서 추가분
종교개혁과 성경의 번역
종교개혁의 열풍이 유럽을 휩쓸던 AD 1516년 인문학자 에라스무스는 그리스어 신약 성경을 출간하고 이는 종교개혁의 분수령이 됩니다. 에라스무스는 신약성경을 번역할 때 동로마 지역에서 내려오던 그리스어 사본들(비잔틴 사본군)을 수집하여 대조 편집했고, 이것이 표준본문(Textus Receptus, TR)이라 불리게 됩니다.
에라스무스의 번역은 신약에 집중되었기에, 구약의 경우 종교개혁가들은 외경이 포함된 라틴 불가타 성경 대신, 얌니아 회의 이후에 정립된 마소라본문(Masoretic Text, MT)을 히브리어 원전으로 채택하여 구약을 39권으로 확정하고 정경으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종교개혁가들의 성경은 66권(구약 39권, 신약 27권)으로 구성되게 됩니다.
에라스무스의 표준본문(TR)과 마소라 본문은 이후 마틴루터의 독일어성경과 영국의 킹제임스 성경(KJV)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반응
종교개혁가들이 외경을 제외하자 가톨릭 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1546년)를 열어 외경을 제2정경으로 재확인하였고, 이때부터 개신교의 66권 체제와 가톨릭의 73권 체제가 완전히 갈라서게 됩니다.
현대의 성경 번역
에라스무스의 표준본문(TR)과 마소라본문(MT) 당시에는 혁명적인 원문에 가까운 번역이었으나, 표준본문은 실제 동로마 제국의 12세기 본문에 의존하였고, 마소라본문 역시 10세기의 본문이었으나 그 이후 현재까지 훨씬 오래되고 원형에 가까운 대문자 사본과 파피루스들이 대거 발견되었습니다.
이후 발견된 구약성경의 사본
여러 사본의 발견으로 구약 텍스트의 역사가 1000년이나 앞당겨졌으나, 마소라본문(TR)의 정확성이 얼마나 높은지 알려주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1. 레닌그라드 사본 (Codex Leningradensis, 서기 1008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성경 완본입니다. 현대 히브리어 성경(BHS)의 표준 저본입니다.
2. 알레포 사본 (Aleppo Codex, 서기 930년경): 마소라 학파의 정수가 담긴 가장 정교한 사본이나, 유실된 부분이 있어 레닌그라드 사본보다 권위는 높지만 완결성은 떨어집니다.
3. 사해사본 (Dead Sea Scrolls, 기원전 3세기~서기 1세기):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이 사본들은 현대 성경이 1,000년 뒤의 마소라 본문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습니다. 특히 '이사야서 전체'가 발견되어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4. 70인역 (Septuagint, LXX, 기원전 3~2세기): 히브리어 구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사해사본과 대조했을 때, 마소라 본문보다 더 오래된 히브리어 원문을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있어 현대 번역에서 중요하게 참조됩니다.
이후 발견된 신약성경의 사본
신약은 에라스무스가 사용했던 '비잔틴 사본군'보다 훨씬 오래된 알렉산드리아 사본군이 발견되면서 현대 번역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습니다.
① 3대 대문자 사본 (4~5세기)
1. 시내 사본 (Codex Sinaiticus): 4세기 중엽 사본으로, 신약 전체를 포함한 가장 오래된 완본입니다.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2. 바티칸 사본 (Codex Vaticanus): 시내 사본과 비슷한 시기에 기록되었으며, 본문의 순수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받아 현대 비평 본문의 핵심 저본이 됩니다.
3. 알렉산드리아 사본 (Codex Alexandrinus, A): 5세기 사본으로, 복음서 이외의 부분(서신서, 요한계시록)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② 파피루스 사본 (2~3세기)대문자 사본보다 더 오래된, 초기 교회의 흔적입니다.
1. 체스터 비티 파피루스: 3세기 초반의 사본으로 바울 서신과 복음서의 초기 형태를 보여줍니다.
2. 보드머 파피루스: 요한복음과 누가복음의 아주 초기 텍스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
현대 성경은 에라스무스의 표준본문 대신 위 사본들을 총 망라하여 편집된 비평본문(Critical Text)을 저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고학, 사본학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16세기의 종교개혁가들보다 훨씬 더 원형에 근접한 텍스트를 읽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성경 원본은 없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텍스트를 비교한 결과 수많은 사본의 차이와 번역의 변화 속에서도 그 차이점은 무시할 정도로 적습니다. 더욱이 기독교의 핵심교리를 흔들만한 결정적인 텍스트의 변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결국 어떤 판본을 보더라도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로 귀결되는 책입니다. 지금까지 성경이 이렇게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것 자체가 성령의 인도하심의 결과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