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예수님은 이렇게 권면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마음이 둔하여
진다'라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둔해지다가 결국에는 '양심에 화인'을 맞은 상태까지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첫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과거에는 교회에 잘 나갔어요" "과거에는 열심히 기도했어요"라며
"과거에는..."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은 마음이 둔하여져서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기도하지 않고 성경을 읽고 행하지 않아도 별
문제나 느낌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경계하며 권면하십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방탕함과 술취함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마비시킵니다. 이러한 행위는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져있는
사람들이 하는 행위입니다. 또 이것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지나칠 정도로 빠져있어서 거기에서 헤어나올 수 없이 중독된 상태를 말합니다.
중독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 그것을 절대로 끊을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중독이라는 것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에 중독되어 살아가면서도 그것이 중독된 상태인지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만약에 술을 끊을 수 없다면, 그는 이미 술에 중독이
되어있는 상태입니다. 순대나 선지, 육회 등을 먹으며 스테이크를 먹을 때에 피가 고여있는 상태에서 먹는다면 그는 피 맛에 중독된 사람입니다.
컴퓨터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은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게임에 중독된 사람이며, TV 앞에 오면 아무 생각없이 TV를 켜는 사람은 TV에 중독된
사람입니다. 한국에는 2006년도 약국보다 성인오락실의 숫자가 더 많다는 통계가 나온바가 있듯이 오락에 중독된 사람도
수다합니다.
또 2009년 8월25일자 국민일보와 한겨레신문을 보면, 한국내의 도박중독자가
3백20만명이라고 국정원이 밝힌 바
있습니다. 도박이나 알콜, 담배, 마약, 성, 음식, 운동, 쇼핑, 일, 종교의 중독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으며, 현대에 오면서 문명과 문화의
발달로 인해 생긴 중독들은 TV중독,
인터넷 중독, 게임 중독, 휴대폰 중독 등 새로운 중독들이 생겨났습니다. 특히 인터넷이나 휴대폰 중독이 많이 늘어났는데, 이를 구별하는 방법이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정상인은 "이제 좀 쉬어볼까?"하면서 인터넷을 켜지만, 인터넷 중독자는 "이제 좀 쉬어볼까?"하고
인터넷을 끈다고 합니다. 휴대폰이나 TV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당신은 전자와 후자 중 어디에 속합니까? 많은 이들이 후자에 속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아, 나는 아닌 줄 알았는데, 나도 (인터넷,
휴대폰, TV,
게임)
중독자였구나"라고 깨달을 것입니다.
플러(Fuller)신학대학원의 <크리스천 회복센터(Christian Recovery Center)>의
데일 라이언(Dale Ryan)교수는 지구의 현실을 중독(addiction)과 학대(abuse)와 외상(trauma)이라고 말하면서 4가지로
사람을 분류했습니다. 즉 중독자, 학대받은 자, 정신적으로 외상을 받은 자, 건강한 자로 나누면서 그 중에 건강한 사람은 10% 내외라고
분석했습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도 정상적인 10%내외의 사람쪽에 설 수 있는지 우리의 삶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중독자와 학대자, 외상자들이 교회에 나오지만, 그들은 그들의 고통을 숨긴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에 와서 '치유사역'이 늘어나면서 이러한 이들에게 눈을 돌리고 있지만, 그러나 아직도 그것은 수박 겉핥기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바리새인처럼 율법주의적인 신앙을 유지하기를 원하는 교회일수록 더욱 그러한 자들이 발을 붙이지 못합니다. 교회나 목회자들은
무조건 "기도를 많이 해라, 찬송을 많이 불러라, 성경을 많이 읽어라. 그리고 회개를 해라. 주님을 만나라"라는 피상적인 말만을 늘어놓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은 기본적으로 정말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실 교회나 목회자들이 그들의 고통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밖에 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도를 해야하며, 어떻게 회개와 용서를 해야하는 지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고 그저 항상 기뻐하며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라고만 가르칩니다. 그런데 학대를 받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께서 내주하시면
가능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라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회개도 하고 열심히 새벽기도회에도 나가면서 신앙생활을 하지만 아무 것도 나아지는
것이 없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옆에 있는 누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부터 이러한 중독과 학대와
외상으로부터 치유함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나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될 수 있습니다. 나 한
사람이 치유받을 때에 나로부터 하나님의 빛이 드러나지만, 나 한 사람이 치유받지 못할 때에 나로부터 어두움의 그늘이 확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나를 형성한 어린 시절부터 더듬어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모든 무거운 짐들을 하나
하나 다 끌러놓으시기 바랍니다. 속에 있는 모든 하고싶은 말을 다 하나님께 아뢰기 바랍니다. 선하고 포장된 말만 하지 말고, 악하고 더럽지만,
예를 들어서 "그사람은 정말 죽이고 싶었습니다"라고 하는 말까지도 하나님께 다 내어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까지도 끄집어 내었을 때에, 우리는 배설한 후의 시원함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나서 내 속에 그렇게 더러운 것이
지금까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을 지금까지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했던 것을
알게되면서 회개가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상처를 주었던 사람이 나쁜 사람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나도 그와 똑같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함으로 인해 내 삶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것을 주님 앞에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와야만 주 안에서 진정한 자유함과 평안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치유받고 회복되지 못하여 믿음으로 뛰어넘지 못한 장애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더욱 나아가기
힘들게 만듭니다. 마귀가 가정을 통해 또는 학교나 직장을 통해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학대를 받게하며 중독되게 한 모든 장애물들을 우리는
주님의 말씀으로 물리치고 믿음으로 뛰어 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부터 그리고 우리 가정부터 치유되고 우리의 교회와 직장과 사회가 주님의 말씀으로
치유되어 주님의 진정한 빛을 발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당부하시는 말씀은 "스스로 조심하라"입니다. 조심하는 것은 가족도 친구도 그
누구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해야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은 다 "내 책임"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자 책임전가하는 일을 서슴치않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되어있는 사람은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지 않고 스스로를 살피며
조심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 (장애 요소)때문에 이렇게 됐다"라고 말을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환경과 상황과
사람 탓을 할 시간에 하나님 앞에서 경건의 훈련을 연습하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조심하는 방법은 "항상 기도하고 깨어있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한다는 것은,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를 생각하며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쓰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깨어있다는 것은
영적으로 정신을 차리라는 말입니다.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눈뜨고 코를 베어가는 세상" 속에서 마귀의 밥이 되어
지옥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별력을 갖기 위해서는 성경을 많이 그리고 자세히 읽어야 합니다. 백번을 읽었어도 건성으로 읽고 숫자를 채우기
위해 읽었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한 번을 읽더라도 자세히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구약과 신약이 서로 짝이 되어 연결이 되어서 성경의
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며, 잘못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약이 있기 위해 구약이 존재하며, 구약이
있었기에 신약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므로 성령께서 비추어주시는 조명을 통해 진리를 깨닫게 되는 분별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뜻밖의 그날"은 반드시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뜻밖의 그날"에 닥칠 것입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결코 우리가 계산할 수도 알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시간낭비하며 그날을 계산하지 말고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고 행하는 가운데 주님
앞에 섰을 때에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의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동안 주님앞에 기도도 잘 나오지 않고, 성경을 읽는 것도 힘들며, 더더욱 찬송은 제 입에서
나오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끊임없이 저를 버리지 않고 이끌어주셨습니다. 제가 무엇이관대 저를 이처럼 사랑하여주시고
이끌어주십니까? 제 부모님도 형제도 친구들도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때가 많은데, 어떻게 주님은 저를 놓지 않으실 수 있으십니까? 주님의
그 크신 은혜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자라온 환경과 상황이 저를 외롭게 만들었고, 우울하게 만들었으며, 제 자존감에 너무나 큰 손상을
입혀서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주위에서 저를 칭찬해주는 소리를 들을 때면, 왠지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어서 불편한
것처럼 몹시 불편하고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 말에 익숙치 못해서 그랬습니다.
혹시 저 한 사람 때문에 저의 온 가족이 불안 속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왔다면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도 모르게 자라는 과정 속에서 보고 들은 것이 무의식적인 언행으로 표출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성장하는 과정속에서 많은 학대(언어, 육체, 성적, 영적인 학대)를 받으며 자라다보니
학대라는 토양 위에서 중독이라는 씨앗이 뿌려져 자존감의 결여와 조울증, 충동적인 생각과 행동, 죄책감, 용서못함, 증오심 등과 같은 좋지못한
뿌리를 깊이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좋지못한 많은 열매들이 제 삶속에 맺힌 것을 보라보면서 제 의지로도 그 뿌리를 송두리채 뽑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며 더욱 낙심하고 좌절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가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도 해결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오늘 그것을 저 스스로 해결하라고 하십니다. 스스로 조심하며 항상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아담과 하와처럼 모든 문제를 다른 사람의 탓으로 넘기며 그들을 원망하며 살아왔습니다. 이젠 주님 안에서 저 스스로
책임을 지고 주님께서 주신 의지를 갖고 주님의 선한 길을 선택하며 걸어가기를 원하오니 저에게 긍휼을 베푸사 용서하여 주시고 항상 깨어
기도함으로 분별력을 갖고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혹시 저 한 사람 때문에 제 가족들이 힘들어하고 폭탄을 안고사는 심정으로 불안해하며 제 비위를
맞추느라 노심초사했다면, 저를 먼저 용서하여 주시고, 저로 인하여 무언가에 중독된 저희 가족이나 친구나 아랫사람들을 그 속박에서 벗어나 주안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와 저희 가족을 짓누르고 무언가에 중독시켜서 속박하려고 하는 마귀로부터 벗어나 주님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며 훨훨 날아다닐 수 있기를 원하오니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젠 주님께 나아가는 모든 장애 요소들을 주의 말씀으로 물리치고 밝고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제 삶 가운데에서 역사하여 주옵소서. 저와 저희 가정을 회복시켜 주실 주님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