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곁을 지켜준 가족과 이웃들 그리고 내가 보호해야 할 그들(데이케어)로 인한 내면의 기쁨이 충만한데서 비롯된다고 본다.
데이케어에 오는 아이들
짝짝이 양말 아무렇지도 않아
맞아, 우리 눈도 짝짝이 귀도 짝짝이
- 「짝짝이」 부분
공든 탑 무너지면
다시 쌓으면 되지
공든 탑 무너지는 소리에
아이들 즐거운 환호성
-「공든 탑」 전문
일하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맡기는 곳인 데이케어센터를 찾아 낮 동안 그들을 보살피는 시인의 환한 미소는 가슴에서 우려낸 듯한 햇살을 닮았다. 빵구난 양말 때론 짝짝이 양말을 아무렇지 않게 신고 오는 아이들을 정겹게 맞이하는 성품의 소유자라면, 삶을 가치 있게 사는 동안 얻어지는 에너지는 실로 클 것이다. 행복한 수고로움의 가치를 안다는 것이 어쩌면 휘게의 만족 공간일 지도 모른다.
디카시 꽃 피우고
떠나가신 노시인
시는 순간이지
인생도
- 「노시인」 부분
문학에 대한 열정을 최근 디카시로 꽃 피우고 있는 시인은 디카시의 순간성을 인생에 빗대어 짧은 언술로 잘 표현하고 있다. 유독 전나무가 많은 그곳의 눈 내린 이미지가 짧은 시적 문장을 만나고 있는 「노시인」을 보면 이는 디카시의 순간성과 곧 녹아 사라진 백설, 더불어 인생도 그와 같다고 노래하고 있다. 시의 한 장르인 디카시를 처음으로 알게 해준 이를 추모하는 시간이다.
부산에서 캐나다까지
누런 봉투 속에 담겨온 디카시집
우송료 많이 든다구요?
그래도 보내주고 싶어요
떨리는 가슴으로 시인의 집에 들어가네
- 「시인의 집」 전문
이어 십여 년 동안의 작품을 모아 첫 디카시집을 출간한 조영래 시인의 『구름의 연비』가 국경을 넘어 캐나다에 당도했다는 소식의 디카시다. 마니아 카페를 통해 알게 된 디카시집을 받아 든 시인의 설렘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디카시 문예 운동이 급속도로 한국을 넘어 세계로 확산하고 있는바, 작년 11월에 한국디카시인협회 및 국경 없는 디카시인회 발기인 대회가 고성에서 개최되었다. 발기인취지문과 정관을 채택해 놓은 상태로 거기에 따른 소식이 곧 전해질 예정이다.
새해는 시작되었네
사 천년 구약의 강물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네 개의 초로 다가와
우리를 맑게 해주는 기다림의 시간
- 「대림초」 전문
정서적으로 편안함과 행복감에 들게 하는 양초는 휘겔리한 분위기를 창조하기에 충분한 요소가 된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그곳 사람들은 휘게의 절정을 기대하며 대림절을 준비하는데 가톨릭에서 말하는 대림절이란 성탄절 전 4주간, 예수의 성탄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를 말한다. 4개의 대림초가 대림환에 꽂혀 있다. 예언자의 초(진한 보라), 베들레헴의 초(연한 보라), 목자들의 초(장미색), 천사들의 초(흰색)로 그 빛이 세상을 비추는 것을 말하며 메시아를 기다리던 구약의 사천 년을 의미한다. 초의 색깔이 점점 밝아지는 동시에 죄가 용서함 받는다고 여긴다. 대림초에 대한 이 모든 의미를 짧은 5행 이내로 함축한 시인은 이같이 ‘지금은 내면의 물거품 모두 빠지고/ 침묵으로 나를 말리는 은총의 시간(「은총의 시간」부분)임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이미지(영상)는 항상 시인의 의식이며 그 의식은 기억 속에 가라앉아 있는 존재와 연결되어 출발하게 되어 있다. 시인에게 있어 가장 아득한 기억은 무엇일까. 가슴 밑바닥에 고여 출렁이는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지 않을까. 삶의 뼈대가 된 기나긴 이민 생활이 그리 만만치는 않았을 터, 하루하루의 삶이 수도자의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토록 최선을 다해 살아온 시인에게 문학은 위로였고 스러진 것 같으나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동력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흔들릴 때마다 다가와 중심을 잡게 해 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파문. 시인은 고국 어머니들의 삶의 정서에 대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한(恨)을 기억하고 있다. 단 한 편인, 아버지의 피난길인 듯한 기억(「1·4 후퇴」)에 비해 여러 시편을 통해 어머니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안으로 삭이고 견디어 낸 시간이
어느덧 뜸이 들어가면
허공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길
흔들리면서 하얀 한숨 되어
휴우, 하고 쏟아내셨지
- 「어머니의 한숨」 전문
아침 잠결 눈 감은 채
기차 소리 사이로 들려오던 어머니의 밥 짓는 소리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나와 그 소리 들리지 않네
- 「기차 소리」 부분
숨 가쁜 세상에 아무리 과학기술로 업그레이드가 가속화 된다 할지라도 ‘어머니’는 변함없는 사랑의 표상이며 숭고의 대명사다. 고인이 생전에 사용하다 남긴 갈색 머플러는 접혀 있던 유년의 내부를 어루만져 주는 기억의 결정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