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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 무왕이 당시 천자국인 은나라 주(紂)왕을 정벌하여, 그들의 무도함을 세상에 알리고 스스로 천자의 자리에 오른다. 주 무왕은 도읍을 호경(鎬京)으로 정하였고, 당시 중국 영토의 서쪽에 편중되어 있어 나중에 동쪽에 위치한 낙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앞선 시대를 서주(西周)라 칭하였다. 그리고 평왕이 수도를 낙양으로 천도한 이후부터 동주(東周)라 칭하였는데, 이때는 이미 주 왕실이 세력이 약화되어 제후들의 중원 쟁탈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중국 역사에서는 이 시기로부터 주나라가 진나라에 의해 멸망될 때까지를 춘추전국시대라 칭했는데, 이는 동주시대의 다른 이름이라 할 것이다. 이 시기는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하는데, 공자가 편찬한 노(魯)나라의 편년체 사서 <춘추(春秋)>의 배경이 되는 BC 770~403년까지를 춘추시대라 하고, 그 이후 221년까지 중원의 제후들이 패권을 두고 다투던 시기를 일컬어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한다.
풍몽룡이 지은 <열국지>는 <동주 열국지>라고 칭해지기도 하는데, 그가 다룬 시기가 바로 춘추전국시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1권과 2권에 이어 3권에서는 중원의 세력 판도를 다투던 진(晉)나라와 초(楚)나라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어, 그 제목을 ‘진초시대’로 붙인 것이라 하겠다. 풍몽룡의 <열국지>는 이른바 장회체(章回體)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교적 긴 내용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서술하기 위하여 여러 장이나 회로 나누어 서술하는 방식이다. 3권에서는 회당 2화씩 모두 25회 50화에 걸쳐 춘추시대의 역사가 다루어지고 있다. 당시 중원의 역사는 제후국들의 세력에 따라 끊임없이 패권이 옮겨졌다고 하겠는데, 이 시대에 특히 중원의 패권을 장악했던 걸출한 5명을 일러 ‘춘추5패’라 칭하기도 한다. ‘춘추5패’는 제(齊)나라 환공과 진(晋)나라 문공과 초(楚)나라 장왕과 오(吳)왕 합려 그리고 월(越)왕 구천을 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왕 합려와 월왕 구천 대신 송(宋)나라 양공과 진(秦)나라 목공을 거론하기도 한다.
‘진초시대’는 ‘춘추5패’ 중의 하나였던 진문공 사후, 남방에 있던 초나라의 세력이 확대되면서 초장왕이 등장하여 패권을 다투던 시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초장왕은 제환공과 진문공에 이어 세 번째로 패권을 장악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데, 오왕 합려와 월왕 구천을 전국시대에까지 활약한 인물이라고 한다면, 초장왕은 가히 춘추시대 최후의 패자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관해서는 특별한 일화가 전하고 있는데, 초장왕은 즉위한 지 3년 동안 사냥과 연회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오자서의 증조부인 오삼의 간언으로 인해 정신을 차리고, 중원을 공략해 끝내 패자의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3권의 내용 중에서 이른바 ‘조씨 가문의 고아’에 관한 이야기는 이 책을 포함해 사마천의 <사기>에도 수록되어 있는 등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고사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반대 세력의 참소로 인해 집안이 몰살당하지만, 홀로 남겨져 가신들의 보호 아래 끝내 복수를 이루는 ‘조무’에 관한 이야기는 별도로 소설과 연극 등으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비장미가 넘치는 그러한 영웅 중심의 스토리에 대해 독자들이 얼마나 귀를 기울였던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모시는 주군의 가문을 위하여 처자식을 희생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정영을 비롯한 인물 형상을 과연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는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가문의 원수를 갚은 조무 역시 그 이후 여타의 인물들과 다른 점이 없이 역사의 흐름 속에 그저 그런 일생을 마치고 만다. 온갖 계략과 반칙이 난무하던 난세에 살았던 수많은 호걸들의 일화에 어떠한 의미를 붙일 것인가? 이는 결국 역사를 기술하는 사람의 인식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3권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뛰어난 활솜씨로 유명한 양유기를 주목하였다. ‘백보천양(百步穿楊)’이라는 고사로 유명한 인물인데, 이는 백 걸음 떨어진 곳에서도 조그만 버들잎을 맞출 수 있는 활솜씨를 지녔다고 한다. 과거 고사성어로만 이해했던 인물의 구체적인 활약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논어>나 <맹자>에 뛰어난 인물로 평가되는 제나라의 ‘안영’이나 정나라 ‘자산’ 등의 활약에 관해 상세히 알 수 있어, 아마도 다시 ‘사서’를 접할 때는 그 시대 배경에 대해 비교적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졌다. 또한 공자에 의해 군주를 시해한 인물로 평가받는 제나라의 ‘최저’의 무도한 행적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하겠다.
그동안 <논어>의 주석 등을 통해서 단편적으로 접했던 인물들의 행적을 보다 자세히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을 듯하다. 방대한 공간과 오랜 시간 동안의 중국 역사를 요약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이 책을 통하여 나름 춘추시대의 세력 판도와 역사의 흐름을 접할 수 있었던 것도 나에게는 적지 않은 의미로 다가온다. 특히 이미 읽었던 <사기>의 ‘열전’이 특정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어 당시의 시대적 흐름을 떠올리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이 책과 더불어 인물과 시대적 상황 등에 관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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