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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인인 저자가 대도시의 생활을 청산하고 제주도에 깃들어 산 이후 처음으로 출간한 산문집이라고 한다. 저자는 글을 쓰는 행위를 일컬어 ‘문장을 얻는다’라고 표현을 했는데, 아마도 수많은 고민의 시간을 거친 후 얻어낸 시들이 그러한 결과물들일 것이다. 그리하여 애써 ‘문장을 찾는다’라고 하지 않고 ‘문장을 기다린다’라고 표현한 것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기나긴 고민과 탐색을 거쳐 또 그만큼의 조탁과 퇴고를 거친 이후에 얻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좋은 문장은 기다림의 과정을 거쳐 찾아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글감이 되는 대상에 대해서 오랜 동안의 관찰과 애정어린 시선이 전제되어야만 할 것이다.
저자 역시 ‘문장은 개개의 사물과 사람과 생명이 고유하게 간직한, 꺼지지 않는 빛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은 그렇게 저자가 일상을 영위하면서 자신과 세상을 관조하는 가운데 얻어낸 글들로 엮은 것이라고 이해된다. ‘제주 애월읍 장전리에 이사 와 살면서 새로운 마음을 얻었’고, 주위에 널려 있던 ‘돌밭과 해안과 오름과 숲’이 저자에게 내어준 ‘고유한 빛’을 기다려 얻은 글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목차는 봄부터 겨울까지의 사계절을 제목으로 내세우고, 그에 걸맞은 글들을 배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저자 자신의 1년 동안의 생활을 바탕으로, 그 속에서 기다려 찾아낸 소재들로 엮어진 글들이라고 짐작된다. 이제는 초보 농군으로서 활동하면서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저자의 넉넉한 마음이 충분히 느껴지고 있었다. 나아가 시인이라는 자신의 천직에 걸맞은 시와 시인들의 이야기는 물론, 자신의 시 창작에 얽힌 이야기들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등단한 이후 25년이 흘러 어느덧 문단의 중진으로 역할을 하면서, 저자는 자신이 ‘시를 짓는 이유도 사람과 함께 어울려셔 살려는, 사람이 전부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고스란히 시인의 작품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다고 여겨진다. 최근 출간한 그의 시집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거기에 수록되었던 작품들을 이 책의 글들과 연결시켜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그의 신작 시집에는 사람보다 자연의 모습이 더욱 부각되어 있다고 느꼈는데, 아마도 제주도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면서 찾은 여유와 자연에서 발견한 착상들이 작품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새롭게 정착한 그의 제주 생활이 좋은 활력으로 작용하여, 독자들에게 좋은 작품으로 만나게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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