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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한국어로 쓴 외국어(언어) 이야기, 이 책의 성격을 한 마디로 이렇게 규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유학을 통해서 외국에서의 생활을 오래 했고, 한국에서는 한때 대학 교수로 재직을 했었던 저자의 언어에 대한 탐구의 내용들이 이 책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저자는 다양한 국가의 언어를 배우면서, 서로 다른 언어들이 어떻게 다른 나라에 전파되는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외국어는 어디에서 어디로,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졌는가’라는 부제가 이 책의 성격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책의 서문이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일본어 등 3개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처음부터 본문은 한국어로 저술했음을 밝히고 있다.
개인적으로 오래 전부터 저자를 잘 알고 있고, 한국에서 대학교수를 하는 동안 몇 차례 학회에서 만났던 기억이 있다. 저자가 한국에서 있을 때 시조를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는 서문의 내용이 있는데, 당시 몇 달 동안 그와 함께 시조 읽기를 했던 까마득한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매번 저자를 만나면서 언어에 대한 특별한 능력과 관심이 있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언어에 대한 생각들을 접해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다양하고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여 글 속에 잘 녹여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다섯 항목으로 구성된 목차에서 첫 번째 항목의 제목은 ‘외국어 전파의 첫 순간, 그 시작에 관하여’이다. 세계 각국의 문자의 기원과 서로 다른 언어들이 교섭하는 가운데, 언어의 전파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라 하겠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체로 초기에는 특정 종교의 포교를 위하여 그와 함께 언어가 전파되는 것이 일반적인 특징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종교의 확산 과정은 곧 외국어 전파의 역사'라고 강조한다. 때로는 필요에 의해서 새로운 문자가 탄생을 하여 그에 대한 수요가 충분하면 발전하지만, 수요가 그치면 이내 다시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언어가 지닌 지배적인 특징을 고려하면, ‘평화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외국어 전파의 속사정’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라 하겠다.
중세를 지나 금속활자가 발명되면서 언어의 전파가 상대적으로 용이해졌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미일 것이다. 유럽의 그리스어와 이슬람 문화권의 이슬람어 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그리고 동양의 한자는 당대에 보편어(고전어)로서의 지위를 획득했음을 알 수 있다. 보편적인 언어로 자리를 잡으면서, 그 중심에 있는 문화를 주변에 전파하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러한 속에서 우리의 경우 한글을 새롭게 만들어 사용하고, 그것이 굳건히 활용되고 있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보아도 유례가 없다고 한다.
두 번째 항목은 ‘제국주의와 문화 이식의 첨병, 외국어’라는 제목으로, 세계 각국에서 통용되는 언어의 의미를 고찰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이 통용하는 언어는 프랑스어이고, 남미에서는 스페인어가 가장 통용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 뒤에는 바로 근대 이후 유럽이 제국주의가 한 몫을 했다는 것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즉 식민지 국가의 약탈과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국의 언어를 강요했고, 그에 따라 그것이 식민지에서 상용어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종교는 제국주의의 확산에 절대적으로 기여를 하며, 선교라는 이름으로 식민지에 종교를 이식하면서 식민지 국가의 전통 사상을 말살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들이 이 책을 통해서 상세히 소개되고 있다.
‘혁명과 전쟁, 그리고 외국어’라는 제목의 세 번째 항목에서는, 그야말로 혁명과 전쟁이 자주 벌어지던 전환기로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시기에 이르면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만이 아니라, 특정 민족의 주체성을 상징하는 표지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던 ‘조선어학회’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제국주의의 침략에 일상화되던 시절, 그에 맞서서 항거를 하던 국가들에서 자국어를 지키기 위한 힘겨운 투쟁이 지속되었다. 이처럼 일제가 우리에게 일본어 사용을 강제했듯, 지배국의 언어를 이식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도 함께 나타나기 시작한다. 결국 외국어 전파는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고, 다른 의미에서 국가의 힘을 강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하였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네 번째 항목에서는 ‘외국어 전파의 역사는 곧 학습 방법의 변천사’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아마도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영어 조기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깊이 고민할 수 있도록 만드는 주제일 것이다. '이중 언어'에 노출되는 상황이 언어 습득의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모국어에 대한 이해도 충분치 못한 상태에서 일방적인 외국어 교육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과 달리 과거의 학교 현장에서는 회화보다 문법 위주의 교육이 성행했고, 나이가 들면 외국어 습득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도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외국어에 대해 얼마나 절실한 욕구를 지니는가에 따라서, 나이가 들더라도 외국어 습득 능력은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신 자유주의 시대, 영어 패권의 시대’라는 제목의 다섯 번째 항목에서는, 어느 틈엔가 ‘세계어’로 행세하고 있는 영어의 위치에 주목하고 있다. 이제는 마치 영어 구사력이 그 사람의 능력인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이 되었다. 물론 국문학을 전공하는 나로서는 여전히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며, 또한 영어 사용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전혀 불편한 상황이 전개되지 않는다. 외국에서 1년 동안 살면서도 읽고 쓰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지냈던 터라, 이제 필요하다면 번역 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간간이 ‘한국도 이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해야 한다’는 넋이 빠진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보통의 한국 사람들에게는 그저 영어는 필요하면 사용하는 외국어일 뿐이다.
그럼에도 영어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저자는 ‘21세기, 외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짚어보고 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저자의 관점에서, 필요한 외국어를 한다는 것은 절실한 요구에 응한 것이라 여겨진다. 호기심이 강했던 저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외국인들과 교류하면서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막무가내로 ‘영어가 중요하다’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작 막대한 시간을 들여서 습득한 외국어가 막상 일상에서는 전혀 쓸모없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외국어는 필수 과목이 아닌, 필요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선택 과목이 되어야 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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