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어두운 부분
조용미
빛이 나뭇잎에 닿을 때 나뭇잎의 뒷면은 밝아지는 걸까 앞면이 밝아지는 만큼 더 어두워지는 걸까
깊은 어둠으로 가기까지의 그 수많은 초록의 계단들에 나는 매혹당했다
초록이 뭉쳐지고 풀어지고 서늘해지고 미지근해지고 타오르고 사그라들고 번지고 야위는, 길이 휘어지는 숲가에 긴 나무 의자가 놓여 있고
우리는 거기 앉았다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처럼
긴 의자 앞으로 초록의 거대한 상영관이 펼쳐졌다 초록의 음영과 농도는 첼로의 음계처럼 높아지고 다시 낮아졌다
녹색의 감정에는 왜 늘 검정이 섞여 있는 걸까
저 연둣빛 어둑함과 으스름한 초록 사이 여름이 계속되는 동안 알 수 없는 마음들이 신경성 위염을 앓고 있다
노랑에서 검정까지
초록의 굴진을 돕는 열기와 습도로
숲은 팽창하고
긴 장마로 초록의 색상표는 완벽한 서사를 갖게 되었다
검은 초록과 연두가 섞여 있는 숲의 감정은 우레와 폭우에 숲의 나무들이 한 덩어리로 보이는 것처럼 흐릿하고 모호하다
분홍의 경첩
연두의 돌쩌귀와 분홍의 경첩을 단 네 짝 여닫이문을 열고 그가 안쪽으로 들어왔다
한 사람만 허락할 수 있는 능수벚나무의 작은 방이라면,
띠살문의 불발기창으로 어른어른 사람들 지나는 기척이 났다
분홍의 주렴 안에 우리는 서 있고 연둣빛 리본은 봄비처럼 두 사람 위로 내려왔다
새잎과 꽃잎 섞인 긴 가지가 눈동자를 잠시 흔들었던 순간을 두고
당신과 나는 능수벚나무의 바깥으로 나왔다
분홍의 자객이 이듬해에도 찾아올 거라 당신이 믿고 있어 이 봄은 더욱 짧아졌다
색체감
이제 나는 거의 실제 세계를 의식한다 앞으로는 늘, 빈틈없이,라고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른 봄의 새 연둣빛마다 마음을 빼앗기고 산자고 흰빛을 띤 연녹색에 매번 발걸음 멈추고 엎드렸다 푸른색은 항상 편애했고 초록색 크에용으로 태양을 그렸으며 검은색의 심연에 발을 들였고 에밀 놀데의 색채감에 매혹당했다
색채에 민감한 반응을 하게 된 것은 색체가 내게 감정을 투사했기 때문 내가 색채의 감정에 반응했기 때문이다 나의 내면이 색채를 불러들인 건 나중의 일이다
세상의 모든 빛과 색에 매혹당해도 그 빛이 하나의 색임을 알게 된 것은 기쁨이 아닌 슬픔에 가까운 감정이었지만 세상의 붉고 푸르스름하고 노랗고 흰 빛들이 나를 함께 나누어 가지도록 나는 기꺼이 허락한다
빈틈없는 현실 세게인, 세상의 높고 낮고 넓고 깊은 색의 심연을 나는 오래도록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