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썩지 않을 음식,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얻도록 하십니다. 지난 주,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도 오천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은 기적에 이어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썩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찾게 하십니다. 빵과 양식 그리고 의식주는 우리의 삶에 아주 필수적인 것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빵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 하십니다. 우리를 먹이시는 분, 살게 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라 하십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살리시고, 살게 하시고, 배불리 먹게 하신다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하십니다. 하느님을 찾을 때 배불리 먹을 수 있고, 굶주리지 않을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얻도록 힘쓰라 하십니다.
사람에게는 물리적으로 욕구가 있습니다. 욕구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욕구가 없다면 우리는 살아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욕구 중에도 아주 기본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욕구들이 있습니다. 흔히 식욕, 성욕, 수면욕이라고 합니다. 이런 욕구는 사람이라면 다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합니다. 함께 살기 위해서 그리고 인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살아야 합니다. 아주 당연합니다. 또한 사람은 잠을 자야 합니다. 쉬어야 합니다. 그렇게 회복을 해야 합니다. 잠을 자지 않으면 사람은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피조물입니다. 이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욕구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으면서까지 식욕을 채울 것인가, 남을 해치고 남의 삶을 파괴하면서까지 성욕을 채울 것인가, 잠을 자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식욕은 물욕과 재물욕과 관련이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여기게 합니다. 그렇게 착취를 정당화합니다. 성욕은 지배욕, 권력욕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렇게 타인을 억압합니다. 수면욕은 우리가 피조물임을 일깨웁니다. 그래서 죽지 않으려는 욕구, 피조물임을 거부하는 욕구는 잘못되면 우리를 거짓된 망상으로 이끌고, 여기에 사이비가 끼어듭니다.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욕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우리의 욕구는 삶의 선물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문제는 이 욕구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욕구를 잘못 사용할 때 죄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신앙생활, 영성생활은 이 욕구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선하고 거룩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욕구들을 제대로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곧 우리의 욕구는 근본적으로 하느님을 찾으려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 안에서 우리의 욕구를 온전하고 충만하게 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찾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 우리의 근본적인 욕구가 우리를 속이고 멸망에 이르게 하는 욕망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우리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모습을 밝게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찾고, 의로움을 좇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과 나눔과 희생의 삶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으로 새롭게 되고 하느님의 뜻을 우리의 양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입니다. 욕망으로 살아가지 않고 하느님을 향한 욕구를 청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쉽지 않습니다. 항상 욕구와 연관된 욕망의 유혹이 강합니다. 하느님이 가까이 계시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아니 우리가 하느님을 멀리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굶주림으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합니다. 지금 굶주리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집트의 노예 생활을 그리워합니다. 하느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느님 대신에 유혹에 다가갑니다. 죄에 다가갑니다. 그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 무렵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였다.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
Covid 이후에 우리의 신앙생활은 많이 약해졌습니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미사에 참석하지 않아도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의 삶이 점점 더 세상의 양식에만 매몰되어 간다는 데에 있습니다. 더 이상 하느님을 찾지 않고 물질적인 것에 만족합니다. 세상에서 편한 대로 살아가려 합니다. 결국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는 데만 혈안이 되어갑니다. 그래서 지금은 편안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망각하고 하느님 없이 세상의 썩어가는 음식만을 찾으면 문제는 우리의 삶이 결국 썩어가게 된다는 되에 있습니다. 곧 우리의 삶 전부가 멸망의 길에 들어선다는 데에 있습니다. 하느님을 다시 찾지 않으면, 세상은 지옥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종교와 그 지도자들의 책임이 적지 않습니다. 세상 속에서 진리이신 하느님을 제대로 증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양식이 참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이요, 생명의 양식임을 증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증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율법학자와 바리사이, 수석사제와 원로들처럼 권력에 빌붙어 세상의 욕심을 추구하고 썩어 없어질 양식만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위선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찾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들이, 그리고 종교가 하느님을 오염시켰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드러내지 못하고, 세상의 권력, 곧 빌라도 앞에서 그 시녀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예언자들이어야 할 사람들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 시선을 돌리고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의 표징입니다. 단순히 외적인 빵이 아니라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사랑과 나눔과 희생과 연민이 하늘나라의 표징입니다. 우리를 살게 하는 양식은 먹고도 다시 배고프게 하는 빵이 아니라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고 진실하고 의롭고 거룩한 삶으로 이끄시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표징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미사에 참석하여 예수님의 몸을 받아모실 때마다 하느님 나라의 표징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이 우리 안에 살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아야 하고 그리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살리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알고 고백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하느님의 길을 가십니다. 이 십자가가 영원한 생명의 양식입니다. 진리이신 하느님을 섬기는 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죽음으로 지키는 길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영원한 양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매 미사에서 이 양식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십니다. 우리에게 같은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주십니다. 우리가 같은 식사에 참석하도록 하십니다. 매 미사는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이 베풀어지는 잔치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도록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