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퀴즈는 애들 장난이 아니다. 고등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던 시절과는비교도 되지 않는 액수의 상금이 등장한 이래 퀴즈프로그램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초등학생부터 성인, 연예인에 이르는 다양한 출연자에서부터 대결방식, 상금을 주는방식까지 천차만별이다. 이제 퀴즈는 서로의 지적수준을 겨루는 프로그램이라기 보다는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쇼가 되었다. 지금 이 땅의 생존경쟁과도 닮은 21세기 퀴즈쇼의 정답을 <매거진t> 차우진 기자와 조지영 TV평론가가 찾아본다. /편집자주
퀴즈쇼의 핵심은 긴장감이다. 정답과 오답 사이의 긴밀한 긴장감, 문제 하나를 틀리면 쇼에서 탈락이다. 이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은 막대한 상금이다. 순간의 실수로 눈앞에서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이 사라진다. 상금과 문제의 난이도가 높을수록 쇼의 재미는 증가된다. KBS 퀴즈쇼 <1vs100>은 ‘전국민의 퀴즈쇼 출연’이라는 목표 아래 퀴즈쇼 고유의 긴장감과 재미를 극대화시킨 프로그램이다.
라스트맨 스탠딩, 끝까지 살아남아라
1명의 출연자가 100명의 사람들과 퀴즈 대결을 벌인다. 그야말로 1당 백. 무림고수의 진검승부를 떠올리게 되는 설정이다. 아닌 게 아니라 퀴즈쇼의 형식에 무협지적인 비장미가 가미된다. 100명에 맞서는 출연자 1인은 다른 퀴즈쇼와는 달리 자신의 의지에 따라 중간에 대결을 멈출 수 없는 대신 3개의 찬스 중 2개를 쓸 수 있고, 100인의 출연자는 찬스는 없지만 끝까지 생존하면 상금을 차지할 기회가 생긴다. 1인으로 참가하면 무협지의 주인공 같은 기분을, 100인으로 참가하면 서부시대의 건맨이 된 기분일 것이다. 어쨌든 양 쪽 다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 목표다. 개인이 가져갈 수 있는 최대 상금은 5천만 원, 1인으로 출연해도, 100인 중 한 명으로 출연해도 진검 승부의 긴장감을 만끽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1vs100>의 재미와 미덕은 퀴즈쇼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맞히는 사람이 상금을 가져간다’라는 룰에 이렇게 형식적 변수를 대입함으로써 ‘사행심 조장’이라는 TV 퀴즈쇼의 본질적 딜레마를 서바이벌 쇼‘로 전환시켰다는 데 있다. 시청자들은 100명 앞에 홀로 서 있는 1인을 지지할 수도 있고, 그 앞에 도열한 100인 중 하나를 지지할 수도 있다. 이런 형식적 신선함을 보여주는 <1vs100>의 세트는 다분히 SF적이다.
생존경쟁을 극대화한 SF적인 세트
<1vs100>의 세트는 계단식으로 지어졌다.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이 거대한 세트는 SF영화에 등장하는 대형 콘솔이나 대의원 회의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결이라는 콘셉트를 가장 극단적으로 시각화한 <1vs100>의 세트는 이 프로그램이 퀴즈보다는 쇼에 집중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게다가 문제를 틀릴 때마다 자리의 불이 꺼지는 광경은 지금까지 그가 몇 명의 사람들을 탈락시켰는지, 지금까지 누가 생존했는지를 보여주며 최후의 1인이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한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그야말로 퀴즈쇼가 보여줄 수 있는 재미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의 세트 설계는 중첩된 고민의 결과다. 여기에 신청자들이 방송 전까지 자신이 1인이 될 지, 100인 중 하나가 될지 모른다는 심사 과정도 참여하는 단계부터 흥미를 유발시킨다. 신청서를 접수하는 순간부터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1차 서류 예심과 2차 필기시험, 3차 면접을 통과한 사람들이 모두 무대에 선다는 점은 출연자들이 모두 비슷한 수준의 내공을 가지고 게임에 임한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1vs100>의 진검승부의 긴장감은 거기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런 긴장감을 끝까지 부드럽게 유지시키는 것은 김용만의 진행이다. 진행자가 출연자보다 두드러지면 안 된다는 퀴즈쇼의 기본에 있어서 김용만의 무색무취의 진행은 적절하다. 그 사이 사이에 미리 면접을 통해 파악한 출연자들의 장기를 유도하는 재미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1vs100>이 지금 가장 새롭고 흥미로운 퀴즈쇼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살아남은 마지막 한 명이 곧 승자가 된다는 생존게임이 곧 지금 여기의 삶과 직관적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는 어떻게 살 것이냐는 삶의 질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자체가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글 차우진
무릇 퀴즈쇼의 본질은 퀴즈를 맞히는 자가 우승한다는 원리로 움직인다. SBS <퀴즈! 육감대결>도 퀴즈쇼의 범용적 원칙에 어긋나지 않지만, 이 프로그램의 묘미는 ‘내가 얼마나 아느냐’가 아니라 ‘남들이 아느냐 모르느냐’ 혹은 ‘알아도 아는 데로 쓰겠느냐’는 퀴즈 외의 변수에 있다. 아는 데로 열심히 퀴즈를 푸는 출연자는 우승할 확률이 의외로 적다. 아는 데로 쓰다간 ‘다 알지?’라는 공격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알면 알아서 걱정, 모르면 몰라서 걱정이다. 그야말로 육감에 강한 자가 오래 간다.
퀴즈에 불쑥 끼어든 도박의 쾌감
<퀴즈! 육감대결>의 룰은 상상외로 복잡해서, 처음 출연하는 사람은 다소 적응이 어려울 수도 있다. 정답을 정답대로 쓰지 않아도 살아날 길이 있고, 한번에 한 팀, 두 팀, 세 팀 혹은 상대팀 모두를 공격할 수 있는 옵션도 있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고스톱 같은 도박의 룰과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방송 자막에서 조차 ‘축! 쓰리고 달성’이라는 문구를 달아주기도 한다. 고스톱에서 소위 3점을 난 상황에서, ‘고’를 할 것인가, ‘고스톱’을 할 것인가 판단해야 하는 것처럼, <퀴즈! 육감대결>에서도 공격을 한번 성공시키고 나서 동일한 고민에 빠진다. 무리하게 ‘고’했다가 ‘독박’을 쓰게 되듯, <퀴즈! 육감대결>에서도 자충수가 되는 공격이 있다.
그런가 하면 내가 가진 패가 대단한 듯 위장하는 광경은 ‘포카’나 ‘섯다’와도 닮았다. 투페어를 가진 사람이 배짱만 좋으면 ‘겁먹고 포기하는’ 풀하우스를 이기기도 하는게 도박판이니, 정답을 못쓰고도 잘 아는 양 교묘하게 허풍을 떠는 케이스가 있다면, 맞게 답을 쓴 것처럼 교란을 하다가 일부러 틀리게 쓰는 트릭도 넘친다. ‘황진이’라는 정답을 쓰고도 <논개> 노래를 부르는 조형기의 연기와 ‘삽살개’라는 쉬운 정답 대신 ‘밤안개’를 쓰는 신정환의 능청은 프로그램을 놓칠 수 없는 재미다. 누가 정답을 맞힐 것인가 보다는, 몰라서 쓰는 오답, 알고도 쓰는 오답이 더 눈길을 끌기도 한다. 결국 <퀴즈! 육감대결>의 승운은 타고난 상식보다 눈치와 배짱이라는 출연자 저마다의 타고난 ‘감’에 기대는 부분이 많다.
오락은 주재료, 교양으로 간한다
진행자 이경규는 <퀴즈! 육감대결>은 공공연히 상식과 교양을 높인다는 멘트를 잊지 않는다. 어쨌거나 <퀴즈! 육감대결>의 본원은 일상 혹은 과학과 역사, 문화와 예술을 아우르는 상식 퀴즈를 맞히는 것이다. 힙합 그룹 ‘빅뱅’은 알아도 우주 생성의 이론 ‘빅뱅’은 알기 쉽지 않은 현실인 만큼, 시청자에게나 출연자에게나 적절한 난이도의 문제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가끔 어떤 문제는 상식을 넓혀주기 위해서 라기 보다는, 엉뚱한 질문과 답변을 과도하게 의도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게다가 명색이 퀴즈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신정환 같은 고정게스트가 자리잡은 것은, 이 프로그램의 딜레마다. 잘하는 게스트는 프로그램의 양념이 되지만, 과도한 양념은, 언제나 재료 자체의 선도를 퇴색하게 한다. 어쨌든 현재까지 <퀴즈! 육감대결>의 균형은 나쁘지 않다. 오락 프로가 교양 프로가 되기 어렵고, 그 반대는 더욱 어렵거니와, 교양 프로를 흉내내는 오락 프로는 실패하기도 쉽다. 그런 점에서 주재료를 오락으로 삼고, 교양으로 간한 <퀴즈! 육감대결>의 행보는 영리하다. 방영 초창기, 다소 생경할 수도 있었던 퀴즈의 형식은 오히려 인기의 엔진이 된 셈이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무엇이’ 라기 보다는 ‘어떻게’ 라는 것은, 기억할만한 경험의 교훈이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잘봤어요..
잘 보았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