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공장 탐방기 / 차창룡 시창고
숯공장 탐방기 / 차창룡
그 이상한 화장터는 강원도 횡성군 포동면 갑천리 고래골에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날마다 나무들의 장례식이 벌어지고 있지요. 다비식(茶毘式)을 위해 사제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토막 살해된 나무의 시신을 가마 속으로 집어넣습니다. 구멍에 불을 넣으면, 커다란 바람 속에서 불벌레들이 번식하기 시작합니다. 불벌레들이 나무와 나무 사이로 건너다니며 나무껍질 속에 숨어 있는 개미와 진딧물과 거미들을 잡아먹습니다. 한 번의 장례식은 그리하여 수십만 번의 장례식입니다.
수많은 나무와 벌레들을 잡아먹으면서 불벌레들은 하나이면서 여럿인 불호랑이가 됩니다. 커다란 불호랑이는 선풍기의 도움을 받아 숨을 들이쉬고 굴뚝을 통해 연기로 변한 날숨을 하늘로 내보냅니다. 불호랑이의 삶(죽음)이 4∼5일 동안 계속되면, 사제들은 드디어 활활 타오르는 죽음의 입구를 열고 수없는 불덩이로 몸을 나툰 불호랑이의 살아 있는 시체들을 꺼냅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한 사제가 긴 부장대로 시체들을 끌어내 입구 앞에 모으면, 역시 눈물 흘리면서 다른 두 명의 사제가 부삽으로 떠서 옆으로 옮기고는 미리 준비해둔 재로 덮습니다. 이곳의 다비식이 여느 화장법과 다른 점은 시체들이 한창 타고 있을 때 불을 끈다는 것입니다.
잿무덤 속에는 사리가 들어 있습니다. 사제들이 사리를 조심스럽게 모아 관에 넣으면 장례식은 끝이 납니다. 그 사리가 바로 숯입니다. 숯이 됨으로써 나무의 생은 끝났지만, 숯이라는 새로운 생애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뜨거운 가마는 나무의 무덤이자 숯의 자궁인 셈이지요. 숯은 세상의 온갖 더러운 기운을 흡착하면서 공기를 정화시키고, 음식물의 맛을 신선하게 유지해주고, 아기의 탄생을 알려주러 달려갑니다. 숯에 불을 붙이면 또 한 번의 장례식이 벌어집니다.
숯은 불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숯 굽는 재료로는 반드시 갓 베어낸 나무를 사용하는데, 이런 나무는 물을 잔뜩 머금고 있지요. 물을 잔뜩 머금은 나무에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불이 번지고, 흙가마가 불을 보호해줍니다. 따라서 숯은 우주의 4대 요소인 지수화풍(地水火風)이 서로 교접하여 만들어내는 것으로, 곧 우주의 다른 이름입니다.
깜깜한 밤하늘의 잿더미에서 별들이 무수한 원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잿더미의 만다라에서 지금 우주의 장례식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지요. 장례식의 자궁 속에서 우리는 모두 숯이 되어갑니다.
시집 <나무 물고기> 2002년 문학과지성사
차창룡 시인
1966년 전남 곡성에서 출생
조선대학교 법학과와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
1989년 『문학과사회』 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 평론 부문에 당선
시집으로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1994),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1997)
제13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
[출처] 숯공장 탐방기 / 차창룡|작성자 마경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