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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 10:33)
은성아,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기도하며 기다리다가 사도행전에서 고넬료의 가정이 베드로 사도를 만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상황을 떠올리게 되었다. 평소에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던(행 10:2) 고넬료에게 이제는 세상의 참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하시려고 환상을 보여 주시면서 베드로 사도를 불러오게 하셨다(행 10:4-5).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지만(행 10:4),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비로소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를 보내어 구원의 복음을 들려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 10:34-43)
사도행전 10장을 보면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고넬료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푸신 선물이다.
알다시피 고넬료는 로마의 백부장이었다. 그는 이방인으로서 약속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어떤 접촉을 통하여서인지 몰라도 유대인들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가 되었고, 경건하여 자기만 아니라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던 사람이었고, 베드로 사도를 부르러 보냈을 때에는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까지 모아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여기까지만 생각해도 그는 큰 은혜를 받고 누리는 자였지만, 이제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와서 베드로 사도를 부르라는 환상을 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 사람이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를 통하여 복음을 들었고, 성령이 임하시자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였으며, 그것을 본 베드로 사도는 세례를 베풀어 주도록 하였던 것을 볼 수 있다.
그와 그의 가족이 구원받는 과정을 보면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복음 전도자의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세례를 받는 것과 통하는 것이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가 혹시 일반 은총을 받아 경건하게 살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다 할지라도,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우리의 마음과 환경을 준비시키시고, 전도자를 준비시켜서 만나게 하시고 복음을 듣게 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살후 3:2). 우리의 노력과 지혜와 경험과 판단으로 복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고(고전 1:21-31),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임을 알기 때문이다(요 1:12-13; 3:5). 지내놓고 보면 이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고 감사하게 된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할 때에 간절한 마음으로 미리 준비하여야 한다.
고넬료는 베드로 사도를 부르러 보냈을 때 자기 가족과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까지 한곳에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행 10:24). 그들은 베드로 사도가 도착할 때를 맞춰서 모였을까?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간절히 소원할 때 예배의 자리, 말씀의 자리에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하던 몇십 년 전에는 교인들이 의자도 없는 예배당에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전에 도착하여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며 예배 시간을 기다렸다. 주일은 오직 주님만 생각하며 주님께 예배를 드리고, 주님의 자녀들과 교제하는 것에서 가장 큰 기쁨을 누렸다. 그래서 예배가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교인들과 교제하며, 조금이라도 더 오래 예배당에 머무르기를 즐거워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즘은 예배 시간에 정확히 맞춰서 5분이나 10분 전에 도착하는 분들이 대다수이고, 어떤 분들은 예배가 시작된 후에 도착하기도 한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는 분들도 상당히 많이 있고, 어떤 분들은 식사만 하고 집으로 가기도 한다.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라는 고백을 한다면 최소한 주일에는 충분한 시간을 내어서 성도들과 교통하며, 교회의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함께 기도하며 협력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음악 연주회나 연극 공연, 혹은 영화 관람을 할 때도, 야구장이나 축구장에 관람을 하러 갈 때도 최소한 시작하기 15분 전에 도착하는 것을 보는데,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러 올 때에 간신히 늦지 않게 오려고 하는 것은 고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 눈과 귀에 익숙한 것들과 마음에 남은 인상들은 약 10분이 지나야 정리가 된다는 것을 읽어본 적이 있다. 간신히 예배 시작 시간에 도착하면 아직 마음과 눈과 귀에 있는 잔상들이 정리가 덜 되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에 가장 적당한 상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3.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 5:2)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고넬료와 함께 모인 사람들은 베드로 사도를 기다리면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왜 아직 오지 않는가 하고 옆 사람과 잡담을 하였을까? 아니면 모처럼 만난 친척들에게 안부를 물으면서 가정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들은 경건한 자세로 베드로 사도를 기다리면서 하나님께서 왜 이런 특별한 일을 벌이고(?) 계신지 궁금해 했을 것이다. 백부장인 고넬료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지시하신 일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가. 그들은 두렵기도 했을 것이고, 기대되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조용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고 생각된다. 고넬료가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확실히 그렇다고 생각된다. 백부장인 고넬료는 인간 베드로 사도도 대단하게 여겨서 엎드리어 절을 하니까 베드로가 말렸는데, 그가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가장 예의를 갖추어 경건하게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러 예배당에 도착하면 무엇을 하는가 생각해 본다. 어떤 분들은 주차 안내로, 어떤 분들은 식당 봉사로, 어떤 분들은 예배당 안내로, 어떤 분들은 찬양과 방송 봉사로 많이 분주하다. 화분을 관리하고, 화단을 정리하기에 바쁜 분들도 있다. 그것들이 다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하여 필요한 일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가끔은 정말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한 준비와 봉사를 하고 있는지 되돌아 보면서 혹시 고칠 것이 보이면 철저히 고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예배 시작 5분 전, 혹은 3분 전까지 여기저기 다니면서 계속 봉사만 하고 있는 분들은 과연 예배를 잘 드릴 수 있을지 궁금할 때가 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본질이 손상을 입는다면 그런 봉사는 다시 한번 정리를 해야 할 것이다.
예배 모범을 보면 예배하러 예배당 안으로 올 때에는 인사를 하는 것도 삼가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을 본다. 예배당 밖에서 서로 인사하고,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괜챦겠지만, 예배당 안에 들어와서 이사람 저사람과 인사를 건네고, 큰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친한 사람과 함께 앉아 있는 경우엔 예배 직전까지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분들이 있는데, 엄위하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려고 준비하는 시간임을 기억하고 고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지극히 드문 일이지만 예배 도중에도 휴대폰을 받거나,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기본적인 것은 공동체로 드리는 예배를 망치는 것이므로 예배 인도자들이 잘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학생들의 경우엔 시험을 앞둔 주일에 시험공부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어른들 중에도 월요일에 해야 할 일에 대한 계획을 생각하며 메모를 하는 경우도 보여져서 슬픔을 느낀 적이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잠 1:7)이요, 지혜의 근본(잠 9:10)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되 사람과 비슷하게 알고 함부로 대하면 안 될 일이다. 성경도 많이 읽고, 기도도 많이 하는 분들 중에도 예배 시간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가볍게 행동하는 잘못을 범하기도 한다.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을 더욱 경외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우리는 죄인이요, 비천한 자임을 깨닫게 되고, 반대로 하나님은 크신 분이요, 무한하신 분임을 알게 되어서 그 앞에 설 때에 고개를 숙이고 겸손히 절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혹시 목사님만 의식하면서 예배를 드리지는 않는가? 목사님께만 보이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행동을 하거나, 다른 생각을 한다면 안 될 일이다. 실제로 기도를 할 때나 찬송을 부를 때에 교인들은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해도, 오직 교인들만 생각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 보고 듣고 계신다. 고넬료의 말을 명심하자.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비록 목사님의 입을 통하여 말씀을 전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그 말씀을 듣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최선의 정성을 다하여 예배하며 말씀을 들어야 할 것이다.
4.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행 10:47-48)
이 기사의 마지막은 더욱 생각할 것이 많게 한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행 10:45-46)”는 말씀을 볼 때에, 그리고 사도행전 11장의 말씀을 일을 때에 예루살렘의 할례자들은 사도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 일행에게 찾아갔다는 것과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신다는 것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들의 말에 대한 베드로 사도의 답변이 너무 놀랍다.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행 11:16-17)
그렇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예정하신 것을 때가 차매 이루신 일이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나중에 바울 사도를 통하여 하신 일이 바로 이것이다.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7-48)
그리고 고넬료 일행은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였다고 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의 정당한 반응이다. 먼저는 그 말씀이 너무 좋고 감사해서, 다음에는 그 말씀을 전해 준 사도가 너무 고마워서, 잠시라도 더 같이 있으면서 계속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배우고자 했을 것이다. 예배의 날에 교회에서는 말씀이 끊임없이 공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말씀을 사모하는 교인들이 몰려들어야 한다. 목사님은 말씀을 전하고 있는 시간에 교인들은 차를 마시며 이야기만 나누고 있는 교회는 웬지 아쉬움을 많이 느끼게 한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가는 자세도 아쉬움이 크다. 심지어 어떤 분은 예배의 끝부분에 벌써 가방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모습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자세로서 어울릴 수가 있을지 자신이 없다. 축도가 끝나기 전에 슬쩍 나가버리는 분들도 있다. 이 역시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린 것인지 궁금해진다. 예배는 ‘설교를 듣는 시간’이 아니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영혼으로 절하는 시간’임을 잊지 않아야 하겠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했는데, 모처럼 얼굴을 보게 된 가족과 인사도 나누고 안부도 나눌 수 없을까? 주님의 날에 예배를 드리고, 성도와 교통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면, 결국 하나님과 그의 교회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되는 것이요, 그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고넬료 일행은 며칠 더 머물러 주기를 청하였다는 말을 명심하자. 주일에는 모처럼 드리는 예배를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드리고, 모처럼 만난 교인들과 좀 더 충분한 교제를 나누기를 힘쓰면 좋겠다. 설교가 끝나고 기도를 할 때나 찬송을 부를 때에 벌써 가방을 챙기는 행동은 제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예배 후에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보려고 애쓰고, 주중에도 서로 카톡으로 연락을 하거나 함께 식사나 차를 나누면서 성도 간의 교제를 넓혀가면 좋겠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는 말씀이 구호에 그치면 안 될 것이다. 우리의 예배 속에서, 그리고 서로의 교제 속에서 이러한 사랑의 실천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기도한다.

첫댓글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