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같은 친구, 현정에게
얼마 전 선운사에 갔었다. 절 마당 감나무엔 까치밥으로 남겼다기엔 너무 많은, 마치 애초 까치네 감나무이기나 한 듯, 홍시들이 눈 속에 땡땡땡 느낌표로 달렸더구나. 잎 하나 없이 마른 가지들이 달고 있기엔 버거워 보이는 열매들 위 까치집은 고대광실 같아 그 집을 차지하고 있는 까치란 놈이 탈속의 공간에 어울리잖는 탐욕꾼, 비대한 승려를 보는 듯도 하였단다.
얼음 같이 차고 투명한 공기 속에서도 오히려 반질반질 윤이 나는 동백잎들 사이사이 젖꼭지 같은 새순들이 빠꼼 얼굴을 내민 채 여물어가고 있더구나. 땅에 닿을 듯 풍성하게 벋은 가지와 잎들 아래 꼼지락거리는 작은 새는 동박새인가,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었는데 놀라 달아나 버릴까 가까이 가지 못했어. 쌓인 눈 위에 또 눈발이 날리는데 마른 가지 위에 살포시, 소복히 쌓인 눈들은 목화솜을 한 뭉치씩 얹어 놓은 듯 따뜻해 보이기까지 하더구나.
우리가 함께 눈을 맞은 게 언제였을까. 아마도 20세기? 까마득한 10대 때의 기억을 떠올리자니 너무 늙어버린 듯하구나.
광주는 살짝,잠깐 지나가는 눈만 있었을 뿐, 그렇게 눈 속에 폭 파묻힌 풍경은 올 겨울 들어 그곳이 처음이었어. 이 겨울 너는 어찌 지내니?
미국에 보냈다지만 큰 애한테도 늘 마음이 쓰이겠고
늦둥이 준형이가 방학인데다 아직 손길이 많이 갈 때라 하루하루가 바쁘겠지?
언제든 안부 전하며 목소리 들을 수 있고, 마음 먹으면 만날 수도 있는 곳에 네가 있다는 사실이 참 든든하다.
준형이 그 녀석 빨리 키워놓고 여기저기 함께 다니자. 불자인 너와 선운사에 함께 가보는 것도 좋겠지?
첫댓글 한아님 글을 읽고 졸업 여행으로 갔던 30년도 더된 겨울 선운사 풍경이 눈에 선하게 떠
올랐습니다.
그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들은 어디서 무얼하며 지내는지?
그래도 이 겨울 나에게도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같은 수미씨가 있어 행복합니다.
깜~~놀^^
내 이름과 비슷하네~
좋은 친구 옆에 사는거 든든하고 행복하지~
국어 시험지 본문 인줄^^
솜사탕 처럼 사르르 녹는 편지글 받을 친구 부럽네^^
역시 국어선생님이시구만
감성이 풍부하고 내가 보기에 여기 저기 잘도 돌아다니십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옆에서 보는 나도 즐겁네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