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 촉 알전구
황 금 련
요셉 할아버지가 기거하는 방엔 어느 것 하나 정리된 것이 없다.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당뇨를 앓아 오른쪽 발가락 세 개가 잘려 나가 걷기도 불편하고 손가락도 굽어서 물건을 만지는 것 또한 서툴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서툰 손으로 방에서 전기 기구를 만지고 계신다. 방에는 온갖 잡동사니 전기 기구들이 어질러져 있는 가운데 겨우 몸만 비집고 앉아 허리를 구부리고 돋보기 너머로 시선을 고정시켜 두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할아버지 말을 들어보노라면, 젊었을 때 전기 기술자로 일을 했는데 이제는 일을 못하니 취미 삼아 기구들을 만지다 발명도 몇 개 했다며 웃으신다. 만드는 일에 몰입하다보면 무엇보다 시간이 잘 가서 좋단다.
방을 둘러보니 장롱 옆에 제법 큰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다. 언제 만들어 두었는지 먼지가 뿌옇게 앉아있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을 켜 보이며, 그것도 손수 만들었다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때 손자에게 줄 선물이라며 자랑을 한다.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말벗이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니 누구라도 곁에 와서 말이라도 걸어주면 좋은 것이다. 그곳에 계신 어르신들은 한번 입원을 하면 완치가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시는 분은 거의 없다. 대부분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건강이 아주 좋지 않은 중증 어르신들이 대다수다.
지난해 가을 내가 자원봉사로 나갔던 요양원엔 서른 명 정도의 어르신들이 입원해 계셨다. 일층에는 주간보호센터라는 방이 있었는데 그곳엔 몸이 덜 불편한 분들의 거처였다. 그 어르신들은 아침에 차량으로 모셔 와서 저녁에 집으로 모시고 가는 분들이었다. 왜 집에 안계시고 이곳에 오시냐고 물으니, 그런 걸 왜 물어보냐며 면박을 주신다. 말씀은 안하시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보내시기 적적하셔서 오시는구나했다. 그분들은 스스로 몸을 움직이고 시키는 것을 따라하는 정도의 인지능력이 있어서 그림 그리기, 글쓰기, 무용, 노래 부르기 등의 프로그램 진행에 어린아이들처럼 잘 따라 하신다.
2, 3층에는 정신과 몸이 온전하지 못한 중증 어르신들이 계셨다. 입원을 해서 상시 계시는 그분들은 몸도 마음도 늘 우울해 무슨 말을 해도 반갑지가 않다. 대부분 치매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치매 어르신들은 생각 없이 말을 함부로 하고 이것저것 해 달라, 오라 가라 요구사항만 늘어놓는다. 정신은 늘 오락가락하지만 몸은 정신만큼 불편하지 않아 자꾸 밖으로 나가려하고 여기저기 다니며 설치는 통에 여간 손이 많이 가질 않는다.
치매 어르신 중 한 분은 먹다 남은 밥이나 반찬을 챙겨 개에게 던져주는 버릇이 있었다.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방에 가보니 벽에 개 사진이 붙어 있었다. 집에서 기르던 개를 놓고 와서 보고 싶고 불안해서 못살겠단다. 개 사진을 보고 “미미야 자자, 미미야 울지 마, 미미야 엄마 여기 있어 응~”, 마치 집에서 기르던 미미가 옆에 있는 것처럼 얘기한다. 하고 싶은 말, 분한 말은 미미에게 다 일러바친다. 그런 어느 날, 담 너머 이웃집 개가 미미로 보인 것이었다. 미미가 혼자서 주인을 찾아왔다며, 어르신이 먹을 밥도 다 먹지 않고 던져주며 미미를 데리러 가야 한다고 문을 열어달라고 떼를 쓰는 통에 모두들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그 날 이후, 요양원에서 그 어르신께 쌀 씻기를 시켰다. 한 가지에 일에 집중을 시키면 산만한 행동이 줄어든다는 의미에서다. 그래서 밥할 때만 되면 용케도 시간을 알고 부엌에 와서 쌀을 씻는데 소매를 걷어 올리고 쌀을 씻을 때의 모습은 마치 지난날 많은 식솔을 거느리던 어머니 모습 그대로다. 따뜻한 김이 솔솔 나는 밥이 차려진 두레상에 둘러앉아 맛있게 밥을 먹던 자식들이 생각 나설까, 쓱쓱 스스 입소리를 내가며 흡족한 모습으로 쌀을 씻는다. 마치 그 일을 자기가 맡은 것이 요양원 반장이라도 된 듯 으스대기도 한다. 쌀 씻기를 다른 사람이 하면 반장 일을 빼앗기라도 한 듯 화를 버럭 내기 때문에 쌀 씻기는 아예 미미엄마의 몫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리를 펴지 못하고 걷지를 못하시는 분, 종일 휠체어에 앉아 계신 분, 종일 누워계신 분이 대다수다. 그 중 어떤 어르신은 그나마 말을 잘 알아듣고 규칙을 잘 지킨다. 하지만 걷지를 못하고 집이 없단다. 어르신이 요양원에 입원하고 난 뒤, 기거하던 집을 아들이 의논도 없이 팔아버렸단다. 이후 자식들의 발길도 끊어졌다고. 그래서 집에 가고 싶어도 갈 집이 없다는 서러움에 눈물을 하도 많이 흘리다 보니 눈이 침침하고 나빠져 간호사의 동행으로 안과에 다니신다.
학교에서 교장을 했다는 나이가 오십대 중반인 어떤 여자 분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말도 못해 하루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종일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었다. 늘 침을 흘리고 사지는 축 늘어져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요구사항이 있을 때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필요한 걸 메모지에 적는데 손이 뒤틀려 적은 글은 아무리 봐도 모르는 글이다. 하지만 담당 요양보호사는 휴지 달라, 물 달라, 써 놓은 글을 용케도 잘 알아본다. 그분은 자주 가슴을 치며 운다. 한이 많은 모양이다. 하긴 멀쩡한 사람이 어느 날 아침 혈압으로 쓰러져 건강을 모두 잃었으니 얼마나 서럽고 애달플까. 불행의 늪은 아차 하는 순간에 다가온 다. 일찍부터 건강관리를 서둘러야 했음을 만시지탄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사회에선 그래도 존경받는 생활을 했는데, 요양원에서는 아무도 그를 대우해 주는 사람이 없다. 그런 자신의 처지를 울음으로 토하고 싶었던 것일까. 한번 울면 얼마나 크게 우는지 실내가 쩡쩡 울리니 울 때마다 곁에 있는 어르신들이 보다 못해 쫓아내라, 입에 테이프를 붙여라 등 한마디씩 불평을 한다.
대다수의 어르신들은 입버릇처럼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한다. 늘 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아픔을 풀어놓으며 슬퍼한다. 하지만 그분들이 두고 온 집은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집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다.
요셉 할아버지는 그나마 병원 신세를 지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란다. 내가 보기엔 병원 신세를 지고도 남을 분인데 병원에 가지 않고 저렇게 버티고 계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손자에게 안겨 줄 크리스마스 트리 때문일까.
어머니는 몇 해 전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늘 자주 오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사는 일이 무엇이 그리 바쁘던지 그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고 게을리 했다. 내가 튼 둥지만 플러그처럼 들락거리며 살다보니 어느 사이 어머니께는 무딘 가슴이 되어버렸다. 찾아뵙는 날도 오늘은 바쁘니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그런대로 잘 보내시겠지’ 그 생각만 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뵈러 간 날, 느닷없이 어머니가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엄마 다 나으면 집에 가요 예, 곧 다 나을 거야 응" 어머니께 상투적인 그 말만 남기고 온 바로 다음날 새벽, 어머니는 채비를 차려 서둘러 떠났다. 자식이 일곱이나 되어도 그 누구하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어머니가 갈 집이 없다는 서러움에 우리 형제 그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부터 서둘러 가신 것일까.
어머니가 떠나신 날은 복사꽃 피는 봄이었다. 화사한 봄날, 새벽안개를 헤집고 홀로 이승을 떠나가는 어머니의 뒤안길이 매화꽃처럼 시리게 다가와 가슴 한 켠이 아리다.
장지로 향하는 날은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 빗길을 가르며 공원묘지로 향하는 차선을 따라 우리 형제들은 청개구리처럼 어머니가 건너가는 강을 황망히 바라보고 울고 또 울었다.
요셉 할아버지의 기나긴 기다림도 눈 오는 추운 겨울날 끝이 났다. 썰렁한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에 앞니가 빠진 요셉 할아버지가 웃고 계신다. 영정사진 아래 할아버지가 만든 카세트에서 영가가 흘러나온다. 옆에는 할아버지가 평소에 만들어 둔 축음기 백열전구등이 있고 왼쪽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이고 있다. 그것들은 마치 문상객을 맞는 가족처럼 앉아있다. 누가 저것들을 갖다 놓았을까. 아마 성당 요셉회 할아버지들이 할아버지가 평소에 식구처럼 아끼고 만지던 것들이라 가져다 놓았나 보다. 요셉 할아버지는 추운 겨울날 이승에서 아팠던 발을 고이 접고 하얀 눈이 되어 훨훨 날아, 살아생전 그토록 가고픈 북쪽 하늘로 마음껏 날아가셨으리라.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대개 가족은 한 지붕 아래 오손도손 살았다. 육십 촉 작은 알전구 아래 훤하게 둘러앉아 서로의 얼굴을 따듯하게 바라보며 밥을 먹었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우리는 부모님과 함께하는 생활을 벗어나고 또 벗어내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부모님을 멀리하려 들고 늘 온기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차디찬 가슴이 되어가고 있다.
세상도 어느 사이 육십 촉 알전구가 사라지고, 시리고 차디찬 하얀 수은등만 비추고 살아가기 때문일까.
온 가족을 한데 모아 따뜻한 정으로 밝히던 육십 촉 알전구가 그리운 세상이다.
첫댓글 알전구와 형광등에서 오는 느낌이 그대로 인간 관계로 이어지다가 다시 사회로 이어지네요. 다음 세대는 알전구의 따스함을 모르고 있습니다. 경쟁 제일주의, 개인주의...그러니 "벗어나고, 벗어내는"는 삶을 사는 거지요. 요양원 노인들의 하소연이 절절합니다. 그 중에서도 요셉할아버지의 일상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특허권을 얻으려는 희망, 열정, 행동...크리스마스트리가 끝내 손자 손에 닿지 못했네요. 글은 이렇게 조용하고 따뜻해야 하는 것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제 곧 가을호에 또 한 편 실으셔야지요.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만 쓰고보니 좀 길어서... 하고싶은 말이 많았던가 봐요..^^
앞으로 열심하겠습니다.
육십촉 알전구의 따스한 추억들이 함께 떠오릅니다. 요셉할아버지의 크리스마스 트리도 애잔하게 다가오구요.
추천완료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겨울에 손이 시려 입으로 호호 불다가 알전구를 만져보면 따뜻했지요.
마치 우리 식구같은 정겨운 알전구...그 알전구가 사라진게 슬퍼요.
'알전구'의 '알'이라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냥 '전구' 보다는 '알'자가 들어감으로써 따뜻함이 강조되는 것 같아요. 맨몸의 서글픔이 가미된....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문운 왕성하시길.
감사합니다. '알' 처럼 둥글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될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요양원에서 어머니를 보내야 했던 자식의 안타까움... 따뜻한 육십촉 알전구가 그리운 시간속의 작가를 떠올려 봅니다.
저와 함께한 선생님이시군요.
선생님 글을 보고 정회원의 되지 못해 댓글을 달지 못했는데,이렇게 찾아와 먼저 댓글을 달아주시니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저처럼 어머니를 많이 생각하고 계셔서 글을 보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왜 우리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철이들까요.
요양원에 계신 분들 하나하나 특징을 담담히 잘 그려내셨어요.
우리 동생은 요양원에 계신 시어머니를 만나고 오면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이라 표현하곤 하지요.
가본 적은 없지만 요양원의 풍경은 삶과 죽음의 경계 그 어디가 아닐까 싶어요.
남의 일 같지 않으면서도 또 내 일이 아니었으면 하는 묘한 이기심, 아니 두려움이지요.
육십촉 알 전구, 따뜻한 제목에 따뜻한 글, 진솔함이 우러나 감동으로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완료 추춴 작품 <엄마의 외출>을 보니 또 눈시울이 뜨거워지네요.
겨우 쉰을 넘기고 떠나신 엄마의 뒤안길이 외로워 마음이 아프답니다.
요양원에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아픔을 가진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저 자신의 일이 아니기를 바라고 살지만 앞일을 모르는 일이기에
다만 지금 주어진 시간을 잘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동기생이 함께 축하합니다. 육십 촉 알전구의 따뜻함이 전해옵니다. 천사가 얼굴을 드러낸다면 선생님일 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 듭니다. 최장순 선생님과 함께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야기 합시다' 공지를 보고 참석하지 못했네요.
그때 갔으면 최장순 선생님과 선생님을 뵈었을 텐데 말이어요.
제가 부산에 살다보니 참석이 쉽지 않았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글을 보면서 저는 너무 멀리 서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더 가까워 지려면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동기생이 된 것이 정말 기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