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크라테스의 변론” 강독을 마치고
금년 1월3일 시작된 “소크라테스의 변론” 강독 강의가 4월 18일 끝을 맺었다.
첫 문장 “아테네인 여러분!”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문장 “그러나 우리 중에서 어느 편이 더 나은 쪽으로 가게 될지는, 신을 빼고는 모두에게 불명한 일입니다.”에서 끝났다. 소크라테스 사후 250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 여러분!” 이라고. 좀 거창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테네인 여러분!”의 시대이나 “현대인 여러분!”의 시대이나 “삶과 죽음”이란 테마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는 생각에 위안을 삼는다.
중국의 역사 고전해설가 이중텐(易中天)은 축심시대(軸心時代)를 기원전 800년부터 기원전 200년 까지 6백여 년을 인류 문명의 중대한 돌파시기라고 했다. 이는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가 말한 개념이다. 그는 1949년에 출간된 “역사의 기원과 목표”라는 책에서 말하였다. 당시에 세계적으로 각 민족의 위대한 정신적 스승이 출현해 세계 대문명의 표지가 됐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스라엘의 유태교 선지자들, 인도의 석가모니, 중국의 공자와 노자 등이다. 그들이 제시한 사상 원칙은 각기 다른 문화 전통을 이뤘으며, 이후 줄곧 인류의 생활에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야스퍼스는 그 시대를 축심시대라고 한 것이다.
석가모니는 기원전 565년에 태어나 기원전 485년에 열반할 때까지 80세를 살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공자(기원전 551~기원전479년)와 동시대이며, 소크라테스(기원전 469~기원전 399년)는 묵자(기원전 468~기원전 376년)와 동시대이고, 플라톤(기원전 427~ 기원전 347년)은 노자(생졸연대 미상)와 동시대일 가능성이 있다. 인류의 4대 성인이 석가모니,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라 한다면, 각 각 마차의 4바퀴 축을 이루어 2500여 년 동안 전 인류를 태우고, 그 사상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동서양 종교적 두 바퀴 축과 동서양 철학적 두 바퀴 축으로서 그 정신들은 오늘도 생생히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한 축의 한 바퀴로서 소크라테스의 정신은 “삶과 죽음”의 정신일 것이다. 그의 “삶”은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강독하면서 그 편린을 보았고, 그의 “죽음”은 “파이돈”에 잘 나타나 있다. “파이돈”은 그의 사후 플라톤이 42,3세쯤(385년경)에 저술한 중기 대화편에 속한다. 물론 “소크라테스의 변론”도 플라톤이 썼다고 하는데, 이는 실제로 법정에 입회하였던 사람들 대부분이 아직도 생존해 있었던 때였다.
이현복 교수님의 열정적인 “소크라테스의 변론” 강독을 들었다. 그동안 내가 관심을 가졌던 행간의 의미를 반추해 보며,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을 나의 내면 속에 담아보고자 한다. 텍스트를 다시 읽으며, 나의 노트에 적힌 키워드와 나의 생각을 총 정리하여 본다. “언제 그것을 할 수 있겠는가?”하는 마음에서다.
소크라테스는 신화적(Mytos) 세계와 자연철학으로부터 이성적(Logos) 세계로 이끈 최초의 철학자이다. 기원전 5,6세기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이라고 불리는 자연철학자들도 이성(Logos)을 통하여 자연의 원인과 근원(Arche)을 탐구하였지만, 소크라테스는 지혜와 영혼(Psyche)을 탐구하였다. “바보여, 부드러운 것을 바라지 말라, 굳은 것을 얻지 못할지니." 교수님은 크세노폰이 쓴 "소크라테스의 회상"에서 이 문구를 인용하면서 ”덕의 길, 올바름의 길은 험하고, 악덕의 길, 불의의 길은 편하다는 말로 이해하였다.“고 설명하면서, 소크라테스의 치열한 도덕적 ”삶“을 예기하여 주셨다.
이성(Logos)을 통한 소크라테스의 인간탐구는 당시 언변과 수사학을 통한 소피스트들의 인간탐구와는 그 족적을 달리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당시 아테네인들로부터 소피스트의 아류라고 비판을 받는다. 당시의 아테네인들은 소피스테스들과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다른지를 구별하지 못했다. 기원전 424/3년에 공연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구름”에서 소크라테스는 대표적인 소피스테스로 풍자되고 있다. 그는 변론에서 "최초의 고발인들"을 "나중 고발자들"과 대비해서, 전자를 "보이지 않는, 그래서 더 무서운"고발자들 이라고 거론한다.(101P,18b) 또한 그는 변론을 시작하면서 “아테네인 여러분! 아울러 여러분께서 오랜 기간에 걸쳐 갖게 된 이 선입관(diabole 비방, 중상)을 여러분한테서 제거해야만 합니다.”(105p, 19a) 라고 말한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는 것이 “선입관”일까?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구름”은 소크라테스에 대한 “선입관”을 가지고 씌어 졌다. “선입관”에 대한 철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글을 게시판에 올렸다. ”이성주의자들의 지식은 경험주의자들에게 편견으로 지목되고, 이 경험주의자들의 지식은 다시 고개를 든 이성주의의 후계자들에게 편견으로 되고, 이렇게 철학사의 관점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하면서, “철학은 철학적 통찰력을 키울 수 있을 뿐이다. 즉, 통찰력(insight), 꿰뚫어 보는 능력을“ 이라고. 소크라테스는 짧은 시간 안에 아테네인들이 가지고 있던 ”선입관“을 제거하려고 했고, 그는 이는 신의 마음에 드는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법에 복종하며 변론을 진행하였다.(106p,19a)
소크라테스의 이름(명성)과 선입관을 생기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무지의 자각”을 통해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만은 적어도 알고 있다는, 이른바 “무지(無知)의 지(知)” 즉, “인간적인 지혜”를 깨닫고, 이를 아테네인들에게 교화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델피 신탁의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자는 없다”는 응답을 전해 듣고, 그는 그것을 확인하고 나섰다. “신이 나를 두고 가장 현명한 자라고 단언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으로 말하는 것일까?”(116p,21b) 그는 정치인들과 시인들과 장인들과의 캐물음(exetasis)의 대화의 길에 나섰다. 이들에 대한 캐물음으로 증오심을 샀고, 현자로 소문이 났다. 그리고 “인간들이여! 누구든 소크라테스처럼, 지혜와 관련해서는 자신이 진실로 전혀 보잘 것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가 가장 지혜로운 자이니라”(123p,23b)라고 신이 말하려 한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가장 많이 회자 되는 말- “너 자신을 알라!” 이는 크나큰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캐물음의 지혜를 통하여, 자기 자신 존재의 부정, 부정을 통한 자기 반성, 겸양지덕을 깨우치는 인간 정신의 근본이며, 바로 철학을 통한 통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부름에 응한 용기 있는 전사였다. 그는 3번의 전투에 참가하였다. 하물며, 죽음이 두려우랴! “신이 저로 하여금 지혜를 사랑(철학)하며 캐물어 들어가면서 살아야만 한다고 신이 지시하였는데, 이 마당에 두려워하여, 자리를 뜬다면,-여러분!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145p,28e) 죽음이 두렵지 않은 그의 자신감과 용기는 무엇인가? 이를 교수님은 아테네 사회의 주요한 덕목 2가지를 들었다. “정의로움과 수치심” 2가지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소크라테스로서는 “정의로움과 수치심”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하는 것이---나쁘고 수치스런 것이라는 점은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저는 결코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며 회피하지도 않을 것입니다.(147p,29b) 지혜를 사랑하지(철학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무죄 방면을 제시하는 것에 대하여, 오히려 그는 “슬기(사려 분별: phronesis)와 진리(aletheia)에 대해서는 그리고 자신의 혼(psyche)이 최대한 훌륭해지도록 하는 데는 마음을 쓰지도 않고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까?”(148p,29d)라고 반문하고 있다.
지혜(sophia)를 사랑하는 것은 철학하는 것이다. 철학은 이론적인 지혜(epistenia : 지식 knowledge)와 실천적인 지혜(슬기 : prudentia)를 같이 추구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언급한 진리(aletheia) 란 무엇인가? 희랍어로 진리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알레테이아(Aletheia)란 말이 사용되어졌다. 이 말은 망각을 의미하는 레테(Lethe)란 말에 부정적 접두사 아(A)가 붙어서 기억 또는 상기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비은폐성이란 용어로 번역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상기(想起), 혹은 비은폐성(非隱蔽性)이란 그 어원에서부터 진리의 개념과 긴밀히 결부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상기(想起), 혹은 비은폐성(非隱蔽性)이 가지고 있는 진리와의 관계에 대해서 가장 심도 있게 접근한 사람은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인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이다. 진리는 망각의 역사이며, 진리는 자기 스스로를 계시한다. 내 안에 있는 망각된 진리의 씨앗을 잘 다듬어 드러내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혼(psyche)을 철학의 전면에 등장시킨다. 혼은 신체에 잠재한다고 믿어지는 초자연적 존재. 영어로는 soul이나 spirit. 인간만이 아니라 만물에 잠재한다고 할 때는 애니마(anima)라고 하는데 혼(psyche)은 “숨 쉬다”라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짐승, 식물에게 각각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이성적 영혼, 감각적 영혼, 식물적 영혼이다. 소크라테스가 “혼이 훌륭해지도록 돌보라”라고 했을 때, 이는 인간이 이성적 영혼을 가지고 훌륭한 도덕적 “삶”을 살아라. 한 것일 것이다. 이런 주장은 대체로 목적론적 세계관과 상당부분 부합하고 있고, 그래서 기계론적 세계관의 소유자들에게 강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는 “몇 번이고 죽는다 할지라도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149p,30c) 라는 굳센 소신을 피력하면서, “등애에 의한 자극을 받을 필요가 있는 말처럼”(151p,31a) “여러분 개개인에게 달라붙어서 여러분을 일깨우고 설득하며 나무라기를 결코 그만두지 않겠다. 고 공언한다. 이는 죽음을 불사하는 그의 의지이며 신념이며 용기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실제 행적들을 열거하고 있다. “제가 죽음을 두려워해서 올바른 것을 거슬러 누구에게든 굽히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걸, 그 즉시 죽을 지라도 그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걸”(155p,32a)
그는 “저에 대한 판결을 내려 주시도록 여러분과 신께 맡깁니다.(169p,35d)하면서 그의 변론을 끝낸다. 일차 변론이 끝난 후 투료 결과는 280:220이었다. “30표만 옮겨갔던들 저는 무죄 방면이 되었을 것”(169p,36a) 이라며, 유죄판결이 난 다음, 그는 30므나의 벌금형 제시하였으나 결국 사형이 확정된다. 사형이 확정된 후, 소크라테스는 죽음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
그의 죽음에 대한 변론을 보자. “죽는다는 것은 둘 가운데 하나---아무 것도 아닌 것(meden)---그것은 일종의 변화(metabole)이며, 혼(psyche)에는 이곳에서(이승에서) 다른 곳으로의 이주일 테니까요"(182p,40c) 그리고 마지막으로 변론한다. "이제는 떠날 시간입니다. 저에게는 죽으러, 여러분한테는 살아가러 떠날 시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어느 편이 더 나은 쪽으로 가게 될지는 신을 빼고서는 모두에게 불명한 일입니다“(189p,42a)
이성을 통한 캐물음으로 무지의 지를 설파하였고 지혜를 사랑(철학함)하며 치열한 “삶”을 살았던 소크라테스! 신만이 아는 “죽음”의 길을 택한 소크라테스! 그의 “삶과 죽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율성이며 합리성이며 도덕성이다”는 단어가 나의 노트에 적혀있다. 또한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의 영혼이 나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69 ~기원전 399년)가 살았던 시대가 축심시대 이었다면, “현대인 여러분!”의 시대는 무슨 시대인가? 2500년이 흐른 시대임은 분명한 사실이고, 나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통하여 축심시대의 사상 편린을 현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마간산으로 흘러갔을 뿐이다. 나는 말 타고 산천초목을 바라보았지만, 그러나 “귀가쫑끗” 강의실에서 보낸 4개월여가 그저 유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수님의 열띤 강의가 있었고, 텍스트를 읽어가면서, 그의 영혼(Psyche)이 나의 영혼을 일깨웠으며, 게시판을 통한 우문현답이 추운 겨울을 버티게 해 주었다.
밤늦은 시간, 강의 후 가진 소맥파티는 그동안 얼마나 즐거웠던가? 얼마나 정겨웠던가? 얼마나 뜨거웠던가? 이현복 교수님 감사합니다. 학우여러분 같이 공부해서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입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끝-

첫댓글 이보다더좋을수가,바로이것. 대단,감동,보람,감사합니다
Tomas샘
역시 기 죽이시는군요.
같이 강의 들은 거 맞는지..........부끄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