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1부-(50)
☆ 고향(故鄕)에서 ☆
이튿날 이른 아침 삿갓, 아니 병연은 아우 병호의 안내로 뒷산에 올라 형의 무덤에 성묘(省墓)하고 모처럼 고향(故鄕)의 마을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병호야! 네가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
형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니?"
아우 병호도 장가를 가고 분가(分家)를 한 뒤지만 집에 와 들으니 농사일은 그 아우가 모두 보살펴
주었다는 것이다.
"제 생각으로는 형님이 집에 계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형님은 형님대로 생각이 있으시니
제가 어찌 형님 뜻을 좌우(左右)하겠습니까?"
"글쎄 말이다. 뜻이라는 것이 별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방랑(放浪) 생활(生活)을 하니까 세상의
번뇌(煩惱)는 잊을 수 있더구나."
"형님, 그래도 아주머니나 어머니가 불쌍해지니 집에 계셔야죠."
"허긴. 그래서 우선 온 게 아니냐?"
형제(兄弟)는 산에서 내려오며
허심탄회(虛心坦懷)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침을 먹고 난 병연은 먼저 글방에 들러 자기를 가르쳐 준 스승을 찾았다. 백발(白髮)이 눈에 띄게 더 성성해진 스승은
크게 반가워했다.
"아니! 이게 병연이 아닌가?"
"네! 그간 무고하셨습니까?"
"허 어! 언제 돌아왔나?“
"어젯밤에 돌아왔습니다."
"그래 돌아다니며 마음 좀 추슬렀는가?“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다니며 세상 구경을 했습니다."
"어디를 돌아보았나?"
"네, 금강산(金剛山)으로 해서 함경도(咸鏡道) 길주(吉州), 명천(明川)까지 다녀왔습니다."
"암 사람은 그렇게 객지(客地) 바람을 경험(經驗)
하면 듣고 배우는 것도 많을 것이니!"
"뭐! 별로 배운 거야 있겠습니까?“
"그동안 자네 집도 형이 타계(他界)하고 변화(變化)가 많았지?"
"네, 오늘 아침 산소에 다녀 왔습니다."
"이제 그만하고 내 글방에 와서 아이들이나 가르치게. 난 도무지 나이가 들어서 이것도
이젠 못하겠네."
"원! 선생님도, 이제 환갑이 조금 지나셨는데."
"아니야 자네 같은 제자가 좀 해주었으면 해.“
"같이 수학하던 동학들 소식은 있습니까?"
"이제는 모두 농사나 지으며 잘들 살고 있지.“
"제법 어른티가 나겠군요."
"암! 모두 가장들 아닌가?"
병연은 옛 스승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또 찾아뵙겠다는 인사를 한 뒤 마을로 들어가서 옛 글방 친구들을 만났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각별(恪別)하게 지낸 친구와 모처럼의 회포(懷抱)를 나누면서 그 친구의 주선
(周旋)으로 그의 집 사랑에 옛 글방 동학(同學)들이 모여 술상이 벌어졌다.
"허, 병연이 죽은 줄 알았다.“
"그놈의 백일장(白日場)이 생사람 잡았지."
"그래 금강산 절경이 그렇게나 기막히다며?“
친구들은 반가워하면서 묻는 말도 많았다. 이렇게 마을에 동학들은
함께 술에 취하고 흥에 겨웠다.
병연이 여기저기 다니며 걸식하던 얘기, 서당 훈장 하고 싸운 이야기 등,
구경하며 다닌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자 한 친구가
"그 훈장 혼내준 글 하나 소개해 봐라!" 하며 졸라댔다.
병연은 몇 번 사양(辭讓)하다가 함경도(咸鏡道)
어느 서당(書堂)에서 훈장(訓長)을 혼내준 다음과
같은 글을 소개(紹介)하여 좌중(座中)을 웃겼다.
****
두메 구석에 완고(頑固)한 백성(百姓)이 고약한 버릇이 남아서 문장대가(文章大家)를 함부로
욕하며 虛風만 떠벌리는구나!
조그만 조가비 잔으로 바닷물을 어찌 測量할 수가 있으며 쇠귀에 경을 읽는 격이니 어찌 글의 뜻을 알겠냐?
서속(黍粟)이나 훔쳐먹는
산골에 간악한 쥐 같은 네놈이요
구름을 타고 넘는 붓끝에
용(龍)을 날리는 내로다
마땅히 볼기를 쳐서 죽일 죄이로되
잠시 용서(容恕)하노니
다시는 어른 앞에서
버릇없는 행동(行動)을 하지 말지어다.
****
좌중(座中)은 모두 허리를 잡고 웃으며 다시 한번 병연의 재주를 아깝게 생각했다.
이렇게 고향에 온 병연은
삼 년 동안이나 자기가 배운 서당(書堂)에서 훈장(訓長) 노릇을 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시간(時間)이 흐르자 고향(故鄕)에서의 안일(安逸)한 생활이 또 권태(倦怠)롭기 시작했다.
병연은 다시, 방랑(放浪)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의 생리(生理)이며 숙명(宿命)인지
몰랐다. 방랑(放浪)할 때 쓰던 삿갓과 죽장(竹杖)을 볼 때마다 바람과 구름과 유유(悠悠)한 산수(山水)
가 그리워졌다.
(이번에는 한양(漢陽)이나 가 볼까? 아니면
경상도(慶尙道)나 전라도(全羅道)를 가 볼까?)
김병연 김삿갓! 그는 오늘도 강원도(江原道) 영월(寧越) 땅에서
전국 팔도 모두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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容恕 용서
容 얼굴 용
恕 용서할 서
{心(마음 심) + 如(같을 여)}
周旋 주선
周 두루 주
旋 돌 선
{方(모 방) + 𠂉(-) + 疋(짝 필)}
黍粟 서속
黍 기장 서
粟 조 속
悠悠 유유
悠 멀 유
1. 아득하게 먼 모양(模樣).
2. 때가 오랜 모양(模樣).
3.침착(沈着)하고 여유(餘裕)가 있는 모양(模樣)
倦怠 권태
倦 게으를 권
{亻(사람인변 인) + 卷(책 권)}
怠 게으를 태
{心(마음 심) + 台(별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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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국환 방랑시인 김삿갓 #백마야울지마라 #아리조나카우보이 #홍서범 #김삿갓' 보기
https://youtu.be/1ibe5Z5US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