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황문수) 서문 - 니체의 생애와 사상 -
니체는 철학가라기보다는 오히려 예언자였다. 19세기의 철학자이면서도 니체의 사상이 ‘너무나 현대적인’ 까닭은 바로 그의 예언자적 성격을 보여 주는 것이다. 생존시에 그의 저술들이 출판사를 찾지 못해 자비 출판의 형식을 취하고 그나마 제대로 판매되지 않았다는 것은 19세기에 살면서 20세기를 예감한 철학자 니체에게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키에르케고어와 마찬가지로 ‘행 밖에 찍힌 구두점’으로서 예외자로서의 운명을 참아 온 철학자였던 것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하 『짜라투스트라』)는 명실공히 니체의 대표작으로 니체는 자서전 『이 사람을 보라』에서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저서 중에서 『짜라투스트라』는 특수한 것이다. 나는 이 저서로 지금까지 인간이 받은 선물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을 선사한 것이다. 수천 년에 걸쳐 가슴을 울려 줄 소리를 가진 이 책은 세계의 최고의 책이며 정녕 준령(峻嶺)의 분위기를 가진 책이다.
이러한 자찬의 말은 자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책은 그 정도의 찬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실존 철학의 거두인 카를 야스퍼스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 책에 대한 니체의 자찬이 과언이 아님을 입증한다.
이 책은 니체의 주저로 생각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어떠한 전형에도 어울리지 않는 독특한 형식을 갖고 있다. 이것은 문학인 동시에 예언이며 철학이지만, 이러한 형식 어느 것에도 적중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는 니체의 모든 사상이 집약되어 있어서 니체 사상의 진수를 보여 준다. 그뿐 아니라 이 책은 서사시적 구성에 문장 또한 유려하여 어떠한 문학서, 어떠한 시보다도 더 문학적이고 시적이다. 야스퍼스의 말대로 이 책은 철학과 문학과 예언이 일체를 이룬 장관을 보여 준다. 니체 스스로가 루터, 괴테에 이어 세번째로 독일어를 완성시켰다고 자처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이 책은 심원한 사상을 유려한 문장으로 표현한 뛰어난 걸작이며 삶과 인간과 세계를 생각하려면 빼놓지 않고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그 구성 자체가 특이하다. 제1부에는 ‘서설’과 ‘설교’가 들어 있고 제2부, 제3부, 제4부는 아무런 제목도 없다. 그뿐 아니라 ‘서설’과 제4부를 제외하고는 일견 아무런 전후 관련이 없는 듯 독립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이 책을 애매하고 난해한 책으로 만들고 있다.
일종의 서사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0년간 산 속에서 고독한 생활을 보내던 짜라투스트라는 40세가 되어 산에서 내려온다. 그는 인간 세계로 돌아와 주로 ‘얼룩소’라는 이름의 도시에서 초인의 이상을 설교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 못해 다시 산으로 돌아간다. (제1부)
다시 산중의 고독한 생활로 돌아간 짜라투스트라는 인간 세계에서 그의 가르침이 왜곡되고 있음을 알고 다시 하산한다. 이때는 ‘지복의 섬들’이 그의 활동 무대가 된다. 여러 가지 설교를 통해 그는 초인을 설교하고 초인의 적대자들에게 맹타를 가한다. 이때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사상(영원 회귀 사상)이 그의 내면에서 성숙해 간다. 그러나 짜라투스트라는 아직도 이러한 사상을 세계에 전하기에는 자신의 역량이 부족함을 느끼고 더욱 성숙한 인식을 위해 산으로 되돌아간다. (제2부)
여러 곳을 방랑하며 산으로 돌아간 짜라투스트라는 고독한 생활 속에서 영원 회귀 사상의 성숙을 기다리며 삶의 절대적 긍정을 노래한다. (제3부)
가장 희곡적인 구성을 갖는 것이 제4부다. 동굴 생활 중 짜라투스트라는 일곱 명의 보다 높은 인간들을 만난다. 아직 초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중도 아닌, 고뇌하는 인간들에게 짜라투스트라는 동정을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동정은 짜라투스트라에게 새로운 유혹이요 시련이다. 그는 결국 동정이라는 마지막 시련을 이기고 홀로 이제 성숙한 영원 회귀 사상의 고지를 위해 산을 떠난다.
일견 단순한 줄거리이지만, 이 책은 서사시나 희곡이 아니라 철학서이며 그것도 니체 사상의 집약체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줄거리를 이루는 각 장은 일정한 테마를 갖고 짜라투스트라의 초인과 영원 회귀의 사상을 전한다. 그것도 비유와 상징을 주요한 무기로 삼아서, 독자는 너무나 풍부한 비유와 상징, 그리고 너무나 간결한 문장 때문에 혼란과 오해에 이끌리고 결국은 테마를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에 놓이게 된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는 데에는 상당한 인내와 조심이 필요하다. 각 부와 각 장의 연결을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옮긴이 주(註)를 통해 이해를 돕고자 했지만, 사실상 비유와 상징을 규명하는 견해가 반드시 일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주는 이해의 길잡이에 지나지 않으며 이 책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주체적 입장에서 독자적으로 읽어야 할 책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이 책은 어디까지나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것’이라는 입장에서 읽어야 할 것이다.
첫댓글 독자의 주체적 입장에서 독자적으로 읽을 것. 누가 발표할 차례인지 궁금합니다. 누구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