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함께 묶어주는 마술이 노래가 아닐까요?
천사들과 노래 불러 보셨는감요? 아름다운 가을밤, 천사들과 노래 부르며 다녀온 여행을 벗님들에게 자랑하고자 합니다.
추석 전부터 노래를 부르랴, 한 명이라도 더 성가잔치에 끌어들이랴 구역장님들이 아주 분주하게 서둘러서 준비한 구역 성가잔치가 지난 주말 빵빠래를 올리며 성전에서 열렸다. 3개 구역을 묶어 한 개조씩 편성한 팀이 7 개나 되는 맘모스 잔치였다. 해마다 달리 조를 편성하여 새로운 교우님들과 한 조를 이루어 함께 친교를 나누게 한 뜻은 누가 알리요만 분명 주임신부님 작품이겠지.
우리 15구역은 2구역, 17구역과 묶어서 2조였다. 특히 지휘자가 최고의 미인이었다는 평이 본당에 자자하더라고. 수녀님이 그러시더라고 " 2조 형제님들이 지휘자한테 꼼짝도 못하고 말을 잘 듣는다면서요. 지휘자가 예뻐서 그런가" 세상에 비밀이 없더라고. 나 혼자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비밀을 들켜버렸으니 수녀님이 내공이 높으시면 이렇게 마음 속까지 들여다 보시나보다.
조마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지휘자와 반주자까지 찾아내서 지정곡에다 자유곡까지 정하고 연습에 가속도가 붙을 즈음이면 의상까지 준비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은 비밀에 붙여야 하고 심사위원 눈에 띄게 개성이 뚝뚝 넘쳐 흘러야 함은 당연하다.
이것뿐이랴. 구역장들은 반장을 독려하다 못해 구역 반원들에게 전화를 한다거나 집에까지 처들어가 연습에 나올 것을 협박하다가 애원하기도 한대요. 더 밉살스러운 것은 연습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는 형제가 노래 부르면 입가심으로 맥주도 주냐고 조르지를 않나. 구역장님들 고생한 것은 필설로 다 못한다. 한복을 곱게 입은 조는 구역장님이 한복을 맞춰 주었다지 아마. 기왕에 하는 거 형제님들 한복도 맞춰 주지....짠돌이 우리 구역장님은 양말 한쪽도 없더라고.
이렇게 비밀리에 준비한 의상과 노래는 발표 당일에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붉은 악마도 있었고 검은 옷에 하얀 머플러로 멋을 낸 팀에 한복을 근사하게 입은 조도 있었다. 우리는 금술로 하트를 붙인 하얀 메리야스 상의에 청바지. 검은 천에 중간에 구멍을 뚫고 걸치면 흡사 수녀님의 스카폴로 같았지.
우리 조 지정곡은 헨델의 '주 찬미하라' 를, 자유곡은 순전히 주임신부님 눈 높이에 맞춘 '사랑은 아무나 하나' 로 정했다. 태진아 노래다. 우리 노래의 백미는 1절에 '복음선포 아무나 하나 우리 성당 정도는 돼야지,' 2절은 '본당 분가 아무나 하나' 로 했지만 대상은 비켜가더군. 그래도 성가잔치 심사하는 동안 우리 노래 '사랑은 아무나 하나' 로 본당 교우님들이 합창을 했으니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두서없이 내 기억에 의존하여 그날의 감흥을 곱씹어 볼까요. 아무래도 이날의 대상은 번외 경기로 출연하신 장수대학의 차례가 아닐까. 어찌 그리도 노래가 곱게 나오는지. 예쁜 한복보다 천 배나 고운 소리로 불러주신 할머님들께 앙콜을 청했건만 다른 스케줄이 있어 앙콜을 받아 줄 수가 없대요. 노래하는 건 나이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게 증명된 순간이었다. 퇴장하는 장수대학생들 모습이 수줍기 짝이 없는 처녀예요. 참 보기 좋아서 통로에서 박수로 환영해 주는 광경이 흐뭇하더군요.
어느 조였더라 그 어렵기 짝이 없는 '그리운 금강산' 을 소화한 걸 보면 조별 잔치가 아니라 서울대교구 본당 대항 잔치같이 수준이 보통이 아니더라고. 제 의견에 동의 하시나요? 본당 노래잔치를 보여드려야 했을 텐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조가 부르는 뱃노래도 탁월하더군요. 중간에 세 분인가 가르마선이 선명하게 쪽진 머리의 자매님들 수준은 범상치 않아 보였어요. 그런데 자매님들의 노래와 더불어 춤은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우리나라 춤사위의 진수를 보여 주었어요. 양(洋)춤과 달리 우리나라의 춤사위는 몸짓을 아주 극도로 절제하지요. 어깨를 으쓱하며 고무신 코를 슬쩍 들까말까 하는 간단한 동작에도 우리네 민족이 품어왔던 한(恨)이 묻어나는 뛰어난 춤사위를 보여 주거든요. 어쩌면 춤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간략하게 절제된 몸짓에서 서리서리 쌓여온 겨례의 한을 느낄 수 있다는 걸 보면 저도 이제 나이가 들기는 들었는가 봐요.
한복에는 가르마 단정하게 가른 쪽진 머리가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구요. 자매님들이 평소의 헤어스타일 그대로인데도 어찌 그리 잘 어울리는지. 오른 편에서 노래를 부르던 자매님 한 분의 머리카락이 두어올이 흐트러졌는데 오히려 보기가 좋더라고요. 다들 예뻐서 한복 모델로 나가야 할까봐요. 모델료는 본당분가에 감사헌금으로 내주시고요. 우리나라 여인들은 한복만 입으면 예쁘고 덜 예쁘고를 구분하기 힘들어요. 얼마나 고운지 그래서 제나라 것이 좋은가 봐요. 물론 우리본당 자매님들은 미인들만 모였다고 소문이 자자하잖아요.
마지막 출연하신 조가 마침표를 찍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가 오래오래 남네요. ".....눈을 뜨기 힘든 가을/ 보다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가끔 두려워져 /지난 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너의 손을 잡고/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사랑은 가득한걸/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살아가는 이유/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걸/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나지막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오래오래 성전에 남을 노래. 그래서 아름다운 가을밤,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가슴에 그 떨림, 그 향기로 전해져 문득 당신을 그리워하겠지.
왁자지껄했던 '토요일은 밤이 좋아' 도 어느 동화극에 나옴직한 올챙이춤을 흉낸낸 동요도 오늘은 모두 아름다운 천사께서 하강하시어 잠시 놀다갔나봅니다. 메마른 어른들의 세상, 잠시라도 한눈 팔 수 없이 달려온 각박한 현실에서 오늘은 세상사 모두 잊고 마음껏 노래를 부르고 웃어보았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 맑은 가을하늘로 높이높이 올라갈 즈음에는 성모님도 기뻐하실걸요. 원체 성모님이 노래 잘 하시잖아요.
그런데 성모님은 소프라노예요, 알토예요? 누가 좀 가르쳐 주시면 안될까요.
하나 더, 요사이 천사님들은 하얀 옷말고 색색이 울긋불긋한 옷 입어도 되는 건가요? |